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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안철수 지지하던 그룹 당겨야 민주당 집권”

前 민주연구원 부원장 최병천의 親기업 진보주의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유승민·안철수 지지하던 그룹 당겨야 민주당 집권”

  • ● ‘고운’이 가진 고졸 멘탈리티
    ● 어머니·전태일·마르크스의 영향
    ● ‘억강부약’ 말고 ‘부강부약’하자
    ● 이재명, 판을 완전히 잘못 읽고 있다
    ● 文정부는 온건 정의당 정권이었다
    ● 野, 與 왼쪽 입증하려 안달하지 말라
10월 6일 ‘신동아’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지호영 기자]

10월 6일 ‘신동아’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지호영 기자]

10월 6일 서울 여의도.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이 불러준 주소로 갔을 때 당황했다. 문 앞에는 잘 알려진 보수 성향 연구소의 간판이 부착돼 있었다. 문을 열자 최 소장이 손을 흔들며 기자 일행을 맞았다. 간판의 속사정을 물으니 책(‘좋은 불평등’)을 내면서 연구소를 꾸리게 돼 아직 정리 중이라는 답을 들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였지만 실은 복선 같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난 뒤 그를 두고 ‘보수와 대화가 가능한 진보’라고 여기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고운’이라 했다. ‘고’등학교 ‘운’동권. 한때 ‘고운 세대’가 있었다. 1987년과 1992년 사이. 그러니까 6월 항쟁이 터지고 김영삼 정부가 출범할 즈음까지. 고등학생도 으레 혁명적 분위기에 휩쓸렸다. 1973년생인 그도 그 세대의 일원이었다. 그는 ‘고출’이라고도 했다. 노동 현장으로 들어간 대학생들을 ‘학생운동 출신 노동자’ 일명 학출이라고 불렀다. 그는 고운 출신이라 고출이었다. 구로공단 3공단 비디오 헤드 만드는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해 독산동, 천안에서 일했다. 전기용접 자격증도 땄다.

고로 이 사람은 진보 안에서도 비주류다. 거창한 운동단체의 리더 직함을 가져본 적이 없다. 최종 학력은 석사과정 수료라는데, 스스로는 “고졸 멘탈리티를 갖고 있다”고 했다. “고운이긴 했지만 대학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스스로의 장점이자 단점이 “학생운동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진영 내에서도 네트워크가 없는 단독자다. 이것만으로도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그에게 ‘경계인 같다’고 말을 건네니 “맞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진보에 오랫동안 몸담고 진보에 애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진보 주류에 비판적 시선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이너서클’ 언저리

외딴섬에 고립돼 있는 사람 같지는 않다. 어쨌든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했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부소장을 지냈으며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지막 정책보좌관으로 일했다. 여의도에는 그 각각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 박사급 인력도 즐비한 정당에서 ‘고졸 멘탈리티’로 정책 요직을 두루 꿰찼다. 성공담에 끼워 넣음직한 스토리다. 집권여당의 핵심부는 아니었지만 ‘이너서클’ 언저리에 있었다. 혹시 그는 지금 ‘아웃사이더 마케팅’을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 찰나에 그가 말했다.

“고(故) 신영복 선생께서 ‘변혁은 변방에서 일어난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실제로는 중심부의 변방에서만 변혁이 일어난다고 봐야 한다. 아주 변방은 세상 돌아가는 걸 알 수가 없고 자원도 동원할 수 없다. 중심 한복판에 있으면 변혁할 이유가 없고. 그래서 실제로는 중심부의 변방에서만 변혁이 일어난다고 봐야 하는데, 내가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인 셈이다.”



그의 고향은 강원 정선이다. 아버지는 광부였다. 강원 사투리가 느껴지지 않았는데, 다섯 살 때 서울로 이사했고 주로 동대문구에 살았다고 했다. 자신이 기층 민중의 정서를 갖고 있단다. 과장이나 피해의식이 아니다. 그의 집은 영세민, 그러니까 오늘날의 기초생활수급대상자였다.
그는 책 첫 장에 “1938년 태어나, 한평생 노동하다, 2020년에 돌아가신,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윤길순 여사와 그 시대를 함께했던 모든 어르신들께 이 책을 바칩니다”라고 썼다.

진보 인사들이 쓰는 책에는 노년 세대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드문데.

“그런 유의 진보 쪽 정서에 나는 불만이 많다. 빈곤이 심각한 세대는 75세 이상 후기 노인에 집중돼 있다. 1930~40년대생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분들이 무학 세대, 초졸 세대다. 우리나라의 불평등 문제는 실은 세대 문제다. 압축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분들은 사회보장제도에 들어오는 과정이 한 박자 늦었다.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해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1차 베이비부머 초입에 해당하는 60대 초반의 경우 국민연금 가입률이 60%를 넘는다. 즉 1차 베이비부머 초입 세대가 노인의 주류를 형성하면 실은 노인 빈곤 문제도 해결되는 거다. 기초연금 100%를 할 게 아니라, 후기 노인에게 집중해야 한다.”

어머니는 무슨 일을 했나.

“공장을 다니셨고 그 뒤에 빌딩 청소부 일을 하셨다. 이태리타월 같은 걸 팔러 다니시기도 했고. 우리 집은 가난하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살았다. 중학교 시절, 어머니가 친구네 집 파출부를 해서 부끄러웠다. 나이가 들면서 부끄러워했던 나 자신이 더 부끄러웠다.”

고등학교 때 운동권이 된 계기는 가난이었나.

“가난 때문이기도 했고, 또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괴롭히는 아빠, 괴롭힘당하는 엄마’ 같은 프레임을 갖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엄마의 편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사회로 투영됐다. 돌아가신 분 중에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세 사람을 꼽으라면 어머니, 전태일, 마르크스다.”

그렇다면 사상적으로 강한 충격을 준 텍스트도….

“‘전태일 평전’과 카를 마르크스의 책이다. 마르크스적 사고의 핵심은 역사적 분석과 유물론적 분석이다. 보통 역사 유물론이라고 표현하는데,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역사적 분석과 경제학적 분석이다. 내 책에서도 역사적 분석을 시도했다. 마르크스적 사고방식이 남아 있는 것이다. ‘방법론 마르크스’가 있고 ‘결론 마르크스’가 있다. ‘결론 마르크스’는 혁명하자는 거다. 나는 ‘방법론 마르크스’의 전통을 이어가려 했다.”

3당에서도 3당 출신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더불어민주당을 두고 “국민의힘의 왼쪽을 입증하려 안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더불어민주당을 두고 “국민의힘의 왼쪽을 입증하려 안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바꿔 말하면 ‘결론 마르크스’에 더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 된다. 그는 시장·경쟁·이윤·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발화자를 지우면 진보 정책통이 꺼낸 말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책을 읽어보면 친기업적인 마인드가 읽힌다.

“‘반기업 진보주의 하지 말고 친기업 진보주의를 하자’ ‘억강부약 말고 부강부약하자’가 내 메시지의 핵심이다.”

운동권 시절부터 친기업 마인드가 있었나.

“친기업 진보주의와 반기업 진보주의를 가르는 분기점은 사회주의 정서를 기반으로 한 운동권 마인드를 아직 갖고 있느냐 폐기했느냐에 있다. 사회주의 문화의 자기장 안에 있으면서 공장으로 갔다. 1991년 소련 붕괴, 1993년 문민정부 출범을 기점으로 ‘학출’의 상당수가 철수했다. 나도 뒤늦게 사회주의가 정말 틀렸는지, 틀렸다면 왜 틀렸는지 알기 위해 독학했다. 스웨덴 사민주의를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면서 스웨덴 사민주의 세력이 가진 경제정책적 유능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기업하기가 좋은 나라이면서도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논리 아닌가.

“맞다. 스웨덴은 투자 촉진형 복지국가다.”

투자와 복지국가가 따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건가.

“그렇다. 사회주의 이론 자체가 반기업 진보주의다. 사회주의에서 사민주의로 돌아오는 과정은 반기업 진보주의에서 친기업 진보주의로 돌아오는 것과 같다. 기업을 착취의 공간이 아니라 혁신의 주체로 보는 거다. 다만 노동과 자본 사이의 힘의 균형은 그것대로 추구한다. 또 사회복지는 자영업자와 어르신 등 비(非)노동을 포함한다.”

그는 민주노동당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다. 민노당 분당 뒤 진보신당에 합류해 서울시당 부위원장도 지냈다. 그런 그는 2012년 19대 국회 개원과 함께 민병두 당시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국회에 들어왔다.

진보정당에서 민주당으로 왜 옮겼나.

“민주노동당에는 크게 세 개의 파(派)가 있었다. NL(민족해방 계열)과 PD(민중민주 계열), 그리고 내가 속한 SD(사회민주주의 지향)다. 민주노동당 내 1당은 NL이고 2당이 PD였다. 나는 제3세력인 셈이지.”

3당에서도 3당….

“그렇다. 민주노동당은 원래 복지국가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다. NL과 PD는 혁명이론이기 때문에 사민주의와 복지국가를 혐오하는 논리 구조를 갖고 있다. 민주당이 2010년 무상급식을 내건 걸 보고 나는 노선 전환으로 이해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열린우리당은 ‘반독재 민주화’ 어젠다는 있지만 노동·복지·재벌 등 사회경제 어젠다는 취약했다. 그게 민주노동당이 먹고살 수 있던 이유였다. NL과 PD 공히 이념적 편향성이 있지만, 어젠다에서 미래 지향성을 띠었으니까. 그런데 무상급식을 통해 민주당이 진보정당화하고 있다고 봤다. 그러면 여기(민주노동당) 있을 이유가 없는 거지.”

복지국가에 관한 한 이 사람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 근래 만난 진보인사 중 이 정도로 순도 높은 복지국가론자를 본 기억이 없다. 이내 옛 둥지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이어진다.

“NL, PD와 친하게 지내는 건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복지국가를 실제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했다. 유럽에서 사민당과 노동당은 집권 세력이다. 집권을 지향하지 않는 정당은 큰 의미가 없다. 나는 녹색당이나 해적당 유(類)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다. 동아리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 나에게는 민주당으로 옮기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원래 노선 중심으로 사고한다. 내가 대학교에서 학생운동을 안 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네트워크에 엮이지 않기 때문인가.

“매몰비용이 별로 없지. 선·후배와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 있는 사람은 네트워크도 단절해야 한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삼성 반도체 공대, 현대 미래차 공대

한국 진보는 재벌 편향 정책, 신자유주의 편향 정책, 비정규직 남용 정책이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본다. 그의 명명대로라면 ‘3대 적폐론’이다. 그가 보기에는 잘못된 통념이다. 한국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수출 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다. 수출이 잘되면 불평등은 증가한다. 한국 경제의 수출 주력은 여전히 제조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이다. 한데 이것은 ‘좋은 불평등’이다. ‘나쁜 평등’보다는 낫다. 그러니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는 ‘기업대학’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예시로 “삼성 반도체 공대, 현대 미래차 공대, SK 정보통신 공대, 네이버 웹툰 대학”을 언급한다.

한국 경제에서 재벌의 역할을 강조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의견과도 비슷해 보인다.

“장 교수는 재벌을 옹호하는 성격이 강하고 나는 대기업을 옹호하는 성격이 좀 더 강하다.”

장 교수는 비즈니스에서 오너십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 아닌가.

“나는 재벌, 대기업, 산업은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재벌 개념의 핵심은 소수 가문이 작은 지분으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재벌 개념과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건 주식회사 개념이다. 다만 한국 현대 경제사에서 재벌도 공과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재벌개혁은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장 교수와는 강조점에 차이가 있다.”

재벌개혁론자들이 문재인 정부에 여럿 참여하지 않았나.

“박정희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는 경제성장에 기여한 독재자라는 것이다. 재벌도 비슷하다. 지배구조는 불공정했으나 효율적이었다. 기존의 재벌개혁 운동은 재벌 체제가 가지는 빛과 그림자 중 그림자를 계속 부각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절반의 프레임이다.”

그는 “민주당의 일부는 스타트업·벤처는 찬성하고, 대기업을 반대한다”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발상이다. 스타트업·벤처 역시 대기업과 연동해서 발전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이어 “스타트업 성공의 지표는 ①상장 ②엑시트(M&A)다. 달리 표현하면 대기업이 되거나, 대기업에 팔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말한 사람이 민주당 소속임을 고려하면 파격적 주장이다.

책을 보면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위기가 한국 경제에 반드시 나쁜 게 아니었다는 뉘앙스도 읽힌다.

“IMF 당시 고통을 겪은 분들의 아픔을 공감한다. 다만 역사를 길게 보면 새옹지마의 성격이 있었다. 일본식 모델에 가까웠던 한국 자본주의가 미국식 모델로 전환되는 분기점이 됐다. IMF는 우리 사회에 세 가지로 영향을 미쳤다. 먼저 그 자체로 국민적 쇼크로 작동했다. 또 정치를 바꿀 에너지로 이어지면서 정권이 교체됐다. 그리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다. 혹시 삼성 반도체와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일본을 월등히 앞서고 있다는 건 알고 있나?”

과거에 삼성을 취재한 적이 있어 알고 있다.

“나는 솔직히 말해 몰랐다. 최근 몇 년간 공부하면서 알게 됐는데 깜짝 놀랐다. 일본 경영학자들이 쓴 ‘삼성에서 배워야 한다’는 유의 책들을 보면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이후에도 삼성 내부에서는 이 회장의 말이 잘 안 먹혔다고 한다. 그러다 IMF가 터지니 이 회장이 구조조정을 장려한다. 삼성이 리딩 기업이었기 때문에 다른 재벌도 삼성식 구조조정을 재빨리 모방한다. 그전까지 한국 자본주의는 문어발 경제로 상징되는 영토 확장 전략을 폈다. IMF 이후 부채비율을 급격히 줄이면서 조직을 효율화했다. 중국 경제의 부상과 디지털화라는 변화에 굉장히 기동적으로 대응하는 조직으로 바뀌었다. 질적 전환의 분기점이었다.”

그가 제시한 데이터에 따르면 불평등은 1997년이 아니라 1994년 시작됐다. 그는 원인이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 체결에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해 섬유·가죽·신발산업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이들이 도·소매업, 숙박·음식업, 부동산·임대업으로 이동했다. 대신 중국의 급성장으로 한국 대기업이 특수를 누렸다. 상층의 소득이 급증하자 하층과의 격차가 더 커졌다. 그의 말대로라면 “나쁜 일과 좋은 일이 공존”한 시기였다.

비판이론 있으나 국정운영 이론 없는…

진보의 스타 지식인인 김상조·장하성·홍종학 교수가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급 요직을 맡았지만 세상이 평등해진 것 같지는 않다. 집권여당이 다수당이었으니 누가 방해해서 못했다고도 말할 수 없는데.

“다수당 정도가 아니라 국회 선진화법의 제약을 받지 않는 180석 이상 정당이었지. 장하성 전 정책실장은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을 팍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 진보경제학계의 상당수는 비판이론은 갖고 있는데, 대안적 국정운영 이론은 갖고 있지 않은 거다.”

문재인 정부는 진보 진영이 25년간 축적해 온 어젠다를 거의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그 덕에 지지율이 임기 말까지 45% 안팎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맞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보성향 유권자와 생각이 다를 경우 ‘돌격 앞으로’를 한 스타일이라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진보성향 유권자의 의견을 반영하려 노력했다. 말하자면 노 전 대통령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포함해 정책적으로 옳았지만 정무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문 전 대통령은 정무적으로 안정됐지만 정책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둘 다 정답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 지지층과 같이 변해야 한다. 나는 책을 통해 우리 지지층이 모여 있는 광장에 논리 폭탄을 던졌다. ‘여러분 우리가 그동안 틀렸습니다. 같이 바뀝시다’라고. ‘민주당이 틀렸다거나 문 전 대통령이 틀렸다거나 친문(親文)이 틀린 게 아니라 우리가 틀렸습니다’라고.”

방향이 바뀌면 중도나 개혁보수 유권자 그룹도 넘어올 수 있어 보인다.

“지금 가장 마음 둘 곳 없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복지를 찬성하되 경제 최일선에 있는 개혁 진영 유권자들이다. 이들은 과거에 유승민과 안철수를 지지하던 그룹이고, 탄핵 연합의 한 축이었다. 그들을 당기면 민주당이 다수파가 된다. 그들을 놓치면 소수파에 안주하는 세력이 된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패착이었다고 본다. 그의 말대로라면 진보의 집단지성이 오류를 일으킨 사례다.




2018년 9월 6일 서울 광화문 이마빌딩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 [동아DB]

2018년 9월 6일 서울 광화문 이마빌딩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 [동아DB]

소기업이 중기업으로 크는 길은 오래 걸린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건 빠르니 ‘5년 단임 정권’으로선 소득주도성장이 정무적으로 효율적인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랬겠지. 그런데 정무적 효율성과 정책적 정합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정책적 부작용이 생기면 나중에 정무적 역풍도 반드시 맞는다. 최저임금을 성장률+CPI(소비자물가지수) 합계보다 너무 많이 올리면 ‘일자리 충격’이 발생한다. 3대 저부가가치 산업 종사자가 약 1000만 명이다. 그쪽 산업 종사자들에서 강한 반감이 생긴다.”

소득주도성장에 반대했는데 2018년 소득주도성장 특위에는 왜 참여했나.

“지금도 페이스북에서 내 이름과 최저임금을 같이 검색하면 수십 개의 글이 뜰 것이다. 나는 소득주도성장에 비판적인 입장이라는 걸 알고도 채용한 경우다. 솔직히 말하면 생계 문제가 1순위였다. 물론 내부에서 역할을 할 생각도 있었다. 내부에서 어떤 생각과 어떤 고민을 하는지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실제로 큰 도움이 됐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종합부동산세 인상은 어떻게 보나

“종부세에는 주택분 종부세와 토지분 종부세가 있다. 2021년 주택분 종부세가 2018년과 대비하면 대상자가 3배, 과세액이 14.3배 늘었다. 제정신이 아닌 거다. 나는 대선 직후 ‘정권교체 촉진세’라고 표현했다.”

어지간한 정책 다 해봤다

정의당이 민주당의 2중대가 아니라 민주당이 정의당의 1중대라고 주장했더라.

“정책 관점에서 보면, 민주당과 구분되는 진보정당의 특징은 진보적 노동정책과 진보적 복지정책이다. 이 두 가지를 담론으로 만들어서 내놓은 게 소득주도성장이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는 온건 민노당 혹은 온건 정의당 정권이었다고 봐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진보 세력이 25년간 주장한 진보 정책을 실천한 25년짜리 진보 정부였다. 문재인 정부는 왜 진보 정책을 펴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진보 쪽 교수들은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분들이다.”

지식인 사이에는 많지 않나.

“많다. 왜냐하면 세상과 팩트에 관심이 없거든. 그분들 보라고 쓴 책이다. 그분들이 하라는 대로 해서 작살났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은 2018년·2019년·2020년 이후 세 국면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2018년은 임금주도성장론, 2019년은 노인주도성장론을 폈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 경제위기 관리 정책을 썼다. 그건 잘했다. 2018년은 부작용이 컸다. 복지정책에서는 공도 있다. 치매 국가 책임제, 건강보험 비급여의 급여화 및 보장성 강화, 고용보험 사각지대의 부분적 해소는 잘한 일이다. 잘했건 못했건 (진보가 주장한) 어지간한 정책은 다 해봤다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지난 대선에서 거대 담론이 없어진 것이다.”

수위가 높다. 아군도 과감하게 도발한다. 논쟁적이며 찰지다. 체면을 살려줘야 할 선·후배가 없기 때문에 나온 자유로움 같다. 누가 따지고 들면 데이터로 반박해 주겠다는 자신감도 느껴진다. 당신들이 잘못해 기회를 날렸다는 반감도 읽힌다. 진보 진영의 뜨거운 감자에 관해서도 묻고 싶어진다.

민주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돼야 하나.

“민주노총은 최대 규모의 노동조합 대표체다. 나는 대한노인회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보는데, 이념적 스펙트럼과 무관하게 대중조직은 존중해야 한다. 다만 민주노총의 중심은 상위 10% 대기업과 공공부문이다. 상층노동을 주로 대표한다. 유럽의 노총은 국정 운영의 주체로서 경험이 많다. 국정 운영의 파트너라는 마음으로 정책을 고민한다. 반면 민주노총은 전투적 조합주의 전통이 워낙 강해서 문제 제기를 주로 하지 국정을 책임지는 자세로 정책을 제안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민주당이 (민주노총의) 제안을 넙죽넙죽 받아먹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사안별 연대가 옳다.”

상위 중산층인 노조가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보수 버전의 적폐론이다. 도덕적 비난을 위한 프레임이다. 한국 양극화의 실체는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있지 않다. 고부가가치 대기업과 저부가가치 영세기업 사이에 있다. 올바른 해법은 법과 제도의 개혁인데 결국 세금과 사회안전망, 계층 사다리 정책이 중요하다. 정치권이 하면 될 일이다. 양보는 엉뚱한 개념이다. 삼성전자 직원이 동네 식당 노동자에게 월급을 양보해야 한다는 말과 뭐가 다른가.”

왼쪽보다 유능함이 중요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기본사회’를 주장했다. 결국 기본소득 하자는 얘기인데.

“이 대표가 판을 완전히 잘못 읽고 있다. 성남시장이나 경기도지사와 대선후보의 성공 경로는 다르다. 지자체에서는 옆 동네 안 주는데 우리 동네만 돈 주면 좋아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돈을 준다고 하면 그 돈 어디서 나오는지부터 연상하게 된다. 기본소득과 국토보유세는 진보 내부에서 주도권을 잡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이 대표는 이미 진보 내부에서 주도권을 잡았다. 본인의 미션은 중도 확장이다. 이 대표 본인에게 손해다.”

‘좋은 불평등’이 나오자 수많은 언론이 그를 찾았다. 기자와 인터뷰하는 와중에도 연신 기자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자세히 보면 묘한 맥락이 있다. 그의 책은 보수 성향 일간지와 경제지에서 관심 받는다. 진보 성향 일간지는 그를 (현 시점까지) 인터뷰하지 않았다. 그의 주장이 불편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의 처지에서 보면 고약한 일이다. 그는 ‘우리가 틀렸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막상 그 ‘우리’의 자장 안에서 주류 의견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진보 내부에서 토론되지 않는데 민주당이 움직일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친기업’은 민주당 주류의 분위기상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이 성장을 전면에 앞세우면 보수와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나.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주장했다. 그렇다고 박근혜를 보수가 아니라 진보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나? 민주당이 친기업을 표방한다 해서 민주당을 반노동으로 생각하는 집단이 누가 있겠나.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말했듯 한국 민주주의 특징은 운동에 의한 민주화다. 나를 포함해 민주당 정치인 대부분이 운동권 출신이다. 과거에는 친노동을 주장하거나 선명한 차별화 전략을 펴서 비주류 총결집 노선을 추구해야 했다. 45% 결집 전략이다. 효과가 있던 이유는 45%도 안 되는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보수와 국민의힘이 허약해졌고 진보와 민주당은 과거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그러니 51% 이상을 확보하는 다수파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꾸 45% 차별화 전략에 연연한다. 자해 전략이다.”

말한 대로 보수는 과거보다 약해졌다. 한데 민주당은 상대가 강하다고 하면서 자꾸 유령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중심 세대는 40·50세대다. 민주당은 이들 주류 세대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다. 그런데 민주당 정치인 대다수는 비주류 세계관을 갖고 있다. 주인의식이 아니라 나그네 의식을 가진 나그네 정당인 거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왼쪽임을 입증하려는 강박관념을 가졌다. 국민의힘의 왼쪽임을 입증하려 안달하지 않아도 된다. 국민의힘보다 유능함을 입증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신동아 11월호 표지.

신동아 11월호 표지.



신동아 202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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