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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국 편에 서는 날이 ‘통일의 그날’

한반도 통일 보는 美·中·日 지정학적 관점

  • 이춘근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

북한이 미국 편에 서는 날이 ‘통일의 그날’

  • ●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두 나라, 한국과 폴란드
    ● 중국은 두 동강난 망치, 일본은 부러진 단도 원해
    ● 주변 강대국에 분단은 평화를 가져다주는 장치
    ● 통일 한반도에 긍정적인 나라는 미국뿐
    ● 미·중 패권경쟁은 남북통일 이룰 기회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6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 전시컨벤션센터에서 회담을 가졌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6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 전시컨벤션센터에서 회담을 가졌다. [뉴시스]

미국 시카고대의 저명한 국제정치학 교수 존 미어샤이머는 200여 개에 달하는 세계 국가 중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곳에 처해 있는 나라가 한국과 폴란드라고 말했다. 폴란드는 서유럽의 역사적 강대국인 프랑스, 독일과 동쪽의 전통적 강대국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는 나라로 유럽의 큰 전쟁을 모두 겪어야만 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정벌, 독일이 일으킨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2차대전 당시에는 소련)가 충돌하는 한복판에서 고통을 당했다.

전쟁 발발 가능성 높은 분쟁지역

대한민국도 지정학적 측면에서 폴란드보다 나을 게 없는 나라다. 근대 국제정치 체제가 시작된 이후 세계적 강대국이 한반도 주변에 있었고 그 나라들은 모두 한반도를 두고 각축을 벌였다. 21세기인 지금도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각축은 변한 게 없다.

한반도는 1800년대 말엽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130여 년 동안 청일전쟁(1894~1895), 러일전쟁(1904~1905), 2차대전, 6·25전쟁, 냉전 등 현대사의 모든 중요한 전쟁이 치러진 전쟁터였다. 냉전이 끝난 후에도 지구의 몇 안 되는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으며 그 중에서도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세계적 냉전이 끝난 후에도 한반도 내부에서의 냉전은 오히려 더욱 고조되고 있고, 작금 진행되는 미·중 패권 전쟁의 핵심적 위치에 한반도가 놓여 있다.

혹자는 우리가 미국과 멀리함으로써 미·중 충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망상을 갖고 있다. 지도책을 보라. 미국과 중국의 대결에서 한국이 중립을 유지할 수 있는지 살펴보라. 1953년 한미동맹 체결 이전까지 한국은 동북아의 어떤 강대국 편에도 선 적이 없지만 전쟁은 언제나 한반도에서 전개됐다. 우리가 미·중 패권 경쟁에서 벗어나 보겠다고 미국과 관계를 소홀히 하는 어떤 결정을 내린다면 중국은 그날로 한국을 자국 영향권 아래 복속시키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웃에 강한 나라가 들어서는 것을 허용하지 말라

지정학은 국제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운명적인 것이며 이 운명을 피해갈 뾰족한 방법은 없다. 지정학은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국제정치적 상수(常數)다. 다만 우리가 힘을 길러 이웃 나라들과 비슷한 수준의 강대국이 되던가, 아니면 국제적 힘의 관계가 대폭 변경돼 우리나라가 이웃 나라들의 힘에 대항하기 충분할 정도로 상황이 변한다면 우리의 운명은 대폭 개선될 수 있다. 이 글은 지정학적 맥락에서 우리가 당면한 사안 중 가장 중요한 한반도 통일문제와 이에 대한 주변국들의 지정학적 관점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전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는 목표를 갖는다.

대륙과 해양을 잇는 요충지에 위치한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에 강대국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다. 중국과 일본은 전통적 강대국일 뿐 아니라 2022년 현재도 각각 세계 2위와 3위의 종합 국력을 보유했다. 대한민국의 국력도 세계 10위권에 육박하지만 여전히 혼자 힘만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힘에 대처하기 벅차다. 게다가 한국의 국제적인 힘을 대폭 상쇄하는 북한 변수까지 고려한다면 한국은 아직도 동북아시아에서 약한 나라다. 한반도에 직접 간여하는 미국은 종합 국력 측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1위 초강대국이다. 우리의 통일을 지정학적, 권력정치(Power Politics)적으로 반대하는 세계 2위 중국과 세계 3위 일본이 우리 주변에 포진해 있다는 점이 특히 문제다. 미국, 중국, 일본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분석하지 않은 채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논할 수는 없다.

좌파적 정권이 들어설 때 자주 나타난 ‘우리민족끼리’ 식의 접근 방법으로 한반도 통일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된다. 우선 분단 그 자체가 우리 민족에 의해 야기된 것이 아니다. 국제정치의 결과로서 분단됐기에 해소 방법 역시 국제정치에서 찾아야 한다. 한반도 통일이 주변 강대국의 합의를 통해 이뤄질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다. 그만큼 주변 강대국들의 한반도 통일 방정식은 복잡하다. 둘째로 한반도 통일은 힘의 관계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한반도 통일을 원하는 세력의 힘이 현상 유지를 원하는 세력의 힘보다 더 클 때 비로소 통일은 가능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 통일에 대해 가장 심각한 이해관계가 걸린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한반도와 1200㎞의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인류 역사에 나타난 모든 전쟁의 90%가 국경을 접한 나라 사이에서 발발했다는 사실에서 미뤄볼 때 중국은 한반도 통일문제를 고려할 때 필수적 변수다. 중국은 통일 한국이 중국을 위협하는 세력이 돼서는 결코 안 된다고 생각한다.

6·25전쟁 당시 중국은 130만 명의 대(大)병력을 파견해 한반도의 통일을 막았다. 그때는 물론 지금도 중국은 통일된 한국은 중국에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오로지 중국에 위협이 될 뿐이라고 인식한다. 특히 중국은 통일 한국이 미국 혹은 일본 편이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통일 한국이 누구 편도 아닌 경우라 하더라도 스스로의 힘이 막강해지는 것을 꺼린다. 중국은 국경을 접한 통일 한국이 지금보다 훨씬 힘이 막강해질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통일된 한국이 힘이 막강해지지 않을 수도 없고, 미국 혹은 일본과 한 편이 아닐 수도 없다는 점이다. 중국이 권력정치적 측면에서 한반도 통일을 결연히 반대하는 것은 ‘이웃에 강한 나라가 들어서는 것을 허용하지 말라’라는 국제정치의 철칙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은 권력정치적인 측면 외에도 지정학적 이유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고 있다. 중국인이 보기에 통일된 한반도는 ‘중국의 뒤통수에 붙어 있는 망치’와 같다. 그러나 분단된 한반도는 중국에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분단 상태는 ‘망치의 쇠 부분과 나무 부분이 완전히 분리된 두 동강 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망치는 남의 뒤통수를 때리기는커녕 압정도 박을 수 없다. 그래서 중국은 한반도의 분단 상태가 지속되기를 열렬히 원하며 지지하는 것이다.

전혀 비현실적인 일이지만 중국은 한반도에 북한이 주도한 통일국가가 들어서는 경우라도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북한은 중국과 사이가 좋지 않다. 시진핑이 김정은을 죽이려 했다는 내용의 책이 나왔을 정도다.

김정은(왼쪽)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동아DB]

김정은(왼쪽)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동아DB]

부러진 단도는 일본을 위협할 수 없다

중국보다는 그 정도가 약할지 모르지만 일본 역시 한반도의 통일을 구조적으로 반대한다. 한반도와 일본의 거리가 가깝다는 사실에서 일본은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해 중국과 대동소이한 관점을 갖고 있다. 감정적으로 일본 열도와 대단히 불량한 관계에 있는 한반도가 통일을 이룩함으로써 강대한 국가가 된다는 것은 일본이 결코 바라는 일이 아니다.

지정학적으로 일본은 한반도를 자신의 심장을 겨누는 단도(短刀)처럼 인식한다. 현재 그 단도는 부러진 상태다. 부러진 단도는 일본을 위협할 수 없다. 일본 역시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은 미국과 동맹이라는 맥락에서 한국의 통일을 노골적으로 반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2차대전 이후 일본은 모범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일원이 됐다는 점에서 한국의 통일이 공산 통일이 아닌 자유 통일인 한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일본 영향력 하의 한반도를 용인할 수 없는 중국, 중국의 수중에 한반도라는 단도를 맡길 수 없는 일본의 충돌은 19세기 말엽 20세기 초반 한반도 주변 국제정치를 규정하는 상수(常數)였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미국과 소련의 충돌로 바뀌었을 때도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은 마찬가지였다.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를 분단함으로써 두 동강난 망치, 부러진 단도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에게는 고난의 시작이었던 분단이 저들에게는 문제의 해결 방법이었던 것이다.

한반도 전체를 다 차지하기는 어렵기에 반쪽이라도 장악한다는 것 역시 저들에게는 해법 중 하나였다. 두 동강난 망치, 부러진 칼로 상대방을 위협할 수는 없을 터이니 한반도의 분단은 주변 강대국들에게 상당 기간 평화를 가져다주는 장치였다. 현재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원하고 있다. 이들이 현상을 유지하려는 한 한반도의 통일은 요원하고 불가능해 보인다.

한반도 통일을 구조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나라

우리의 통일을 구조적으로 반대하는 중국과 일본은 각각 세계 2, 3위의 강대국이다. 2, 3위의 강대국이 반대하는 통일을 우리민족끼리 이룩하겠다는 발상은 허상이며 중국을 설득해 통일하겠다는 것 역시 국제정치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통일 전망에 관해 이 같은 암담한 상황을 해소해 주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그동안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발 벗고 나서지는 않았지만 한반도 통일을 구조적으로 반대하는 나라는 아니었다. 우선 지정학적으로 미국은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다. 그래서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한반도에 대한 중국 혹은 일본의 관심과는 다르다.

우선 미국은 한반도에 대해 영토적 이익을 갖고 있지 않다. 한반도는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볼 때는 중요하지만 그 자체로 사활적으로 중요한 나라로는 보지 않는다. 역으로 한반도 통일에 대해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작금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은 오히려 한반도의 통일을 구조적으로 환영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통일된 한반도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대단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은 미국이 오랫동안 패권국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목표는 중국을 견제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는데 중국을 견제하는 데 통일된 한반도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지금 해외 미군기지 중 가장 크고, 가장 새 것이고, 가장 훌륭한 기지는 평택 기지다. 평택은 중국에 가장 가까이 인접해 있는 미국의 군사기지다. 이처럼 미국은 한반도를 미국의 동북아 전략 및 세계 전략에서 요충지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은 지정학적으로 통일된 한반도는 운명적으로 미국 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진리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통일된 한반도는 그것이 북한에 의해 이뤄졌다고 황당한 가정을 할 경우라도, 궁극적으로 미국 편이 될 것이다. 공산주의로 통일을 이룩한 베트남이 결국 미국 편이 되고 말았다는 지정학의 논리는 한반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기독교적인 도덕률을 중시하는 미국이 북한에 의한 통일을 방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은 중국을 미국에 대한 패권 도전국의 반열에서 낙마시키기 위해 북한마저도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북한이 미국의 입장에 서는 날 중국은 경악하겠지만 한반도는 통일을 이룩하는 날이 될 것이다.

박성조 독일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독일의 통일은 미국의 도움, 서독의 경제력, 서독인의 단결력으로 이뤄졌으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의 도움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한반도 통일도 마찬가지라며 특히 미국의 지원이 없다면 한반도 통일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결국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남북한 모두가 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세력은 미국뿐일지 모른다.

미·중 패권경쟁 활용해야

미국만이 한반도 통일에 대해 권력 정치적, 지정학적 반대를 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다. 그래서 우리가 통일을 원한다면 반드시 미국의 힘을 빌려야 한다. 아무리 우리가 설득을 잘한다 해도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베이징은 한반도 통일을 중국에 부정적 영향을 크게 주는, 사활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중국의 부정적인 힘을 상쇄함으로써 한반도 통일을 가능케 하는 힘은 미국의 힘밖에 없다. 물론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의거해 한국의 통일 문제에 적극적일 수도 소극적일 수도 있다.

미국에 대한 중국의 패권 도전이 심각한 상황에서 미국이 자신의 패권을 오래 향유할 수 있는 좋은 방안 중 하나가 통일된 한반도와 전략적으로 제휴하는 것이다. 한국은 작금 미·중 패권 경쟁을 한반도의 자유민주통일을 이루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신동아 2022년 11월호

이춘근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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