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호

우수한 글로벌 인재가 甲인 세상에서 한국이 살길

[신기욱의 밖에서 본 한반도] 저출산·고령화·두뇌 유출 ‘삼각파도’에 비틀거리다

  •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아시아 태평양 연구소장

    gwshin@stanford.edu

    입력2022-11-27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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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뇌 유치’와 ‘이민자 수용성’ 우려

    • 폐쇄적으로 변하다 뒤처진 日 기업

    • “50년 이내 가장 늙은 나라 될 것”

    • 해외 인재 다국적군이 실리콘밸리 일궈

    • 해외 숙련 노동자 유치로 시선 돌려야

    • 청년실업 해소하고 문화적 다양성 제고

    • 이스라엘·독일·일본·중국도 애쓰는데…

    • 이민청 설립 시의적절하나 전제가 있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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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세계는 두 가지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맞고 있다. 하나는 정보화, 디지털화로 대변되는 기술·경제적 변화(4차 산업혁명)다. 다른 하나는 저출산, 고령화로 촉진되는 사회·인구학적 변화다. 세계적으로 기술·전문 인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반면, 선진국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의 감소로 수요-공급 간 불균형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우수한 인재 유치를 위한 국가 간, 기업 간 전쟁도 심화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우수한 인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저출산, 고령화, 생산인구 감소, 두뇌 유출 등 사회·인구학적 변화의 속도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더 빠르다. 그동안 한국은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비숙련 노동자를 유치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나 이젠 글로벌 인재 유치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 더는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한국은 우수한 해외 인재를 유치하는 데 한참 뒤처져 있다. 프랑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에서 발표한 2021년 ‘글로벌 탤런트 경쟁력 지수’를 보면, 한국은 134개국 중 27위였다. 10~15위권인 국가 경제력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특히 경쟁력 지수를 산정하는 데 중요한 지표인 ‘두뇌 유치’와 ‘이민자에 대한 수용성’ 부문에서 각각 45위와 65위에 그쳐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사회·인구학적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한국은 어떠한 정책과 전략으로 해외 인재를 유치하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민청 설립을 논의하는 등 정부도 이에 대한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으나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미국, 호주 등 이민 국가는 물론이고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사회적 환경을 지닌 독일이나 일본도 해외 인재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의 경험에서 배울 교훈은 무엇인가.

    세계 5大 기업 공통점

    21세기는 그야말로 치열한 글로벌 인재 유치 전쟁 시대다. AI(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 자동차, 로봇 등의 최첨단 분야에서 경쟁의 강도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우수한 인적 자원의 범세계적 이동이 증가하는 가운데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많은 선진국이 해외에서 인재를 적극 유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인재들은 전 지구적으로 수요가 많으므로 국적과 국경을 초월해 본인에게 최상의 조건을 제시하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즉 우수한 인재일수록 임금 조건 이외에도 삶의 질이나 사회문화적 환경 등 전반적인 조건을 고려해 이동한다. 자연히 이들이 갑이 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



    반(反)이민 정서를 동반한 국수주의적 흐름이나 미·중 간의 기술·정보 전쟁 등 지정학적 요소 또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리콘밸리만 봐도 치열한 기술·정보 전쟁과 인재 유치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등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과 벌이는 인재 싸움에서는 긴박함이 묻어난다. 미·중 무역 분쟁은 표면의 일각에 불과하며, 정작 수면 아래 있는 큰 빙산은 기술·정보 싸움과 인재 싸움이다. 기술, 인력, 데이터 등 미래의 운명을 좌우할 분야에 중국 정부가 직·간접으로 나서고 있어 미국으로서도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전기차, 반도체, AI 등 첨단 분야에 중국 견제 입법을 서두르고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칩(Chip)4 등 기술·경제 동맹을 강화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신기욱의 밖에서 본 한반도’ 신동아 2022년 11월호 참조)

    최근 30년 동안의 글로벌 기업의 부침을 보면 기술·인재 전쟁의 심각함을 이해할 수 있다. 2018년 7월 기준, 자본 규모 면에서 세계 5대 기업은 애플, 아마존, 알파벳(구글 모기업),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이다. 공히 비교적 역사가 짧은 신생 기업들이다. (최근 들어 유가의 급등으로 사우디의 아람코가 톱 5에 진입). IT(정보기술) 관련 기업으로,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특히 이들 기업엔 중국, 인도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모인 글로벌 인재들이 포진해 있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미·중 간의 기술·정보 인재 싸움도 매우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일본의 경험은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전성기이던 1989년 당시 글로벌 톱 10 기업 중 7개, 톱 50 중 32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톱 30 안에 드는 일본 기업은 없고 그나마 도요타 자동차(49위)만 간신히 50위권을 지키고 있다. 일본이 쇠퇴한 원인은 상품의 글로벌화에는 성공했지만 조직문화와 인재의 글로벌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 문화와 조직이 점점 내부 지향적이고 폐쇄적으로 변하면서 글로벌 인재 유치 경쟁에서 뒤졌던 일본의 경험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늙어가는 세계에 놓인 한국과 일본

    2월 23일 노형준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이 정부세종청사에서 2021년 출생·사망통계 잠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1년 출생아 수는 26만600명으로 전년보다 1만1800명, 4.3% 감소했다. [뉴스1]

    2월 23일 노형준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이 정부세종청사에서 2021년 출생·사망통계 잠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1년 출생아 수는 26만600명으로 전년보다 1만1800명, 4.3% 감소했다. [뉴스1]

    한국은 저출산-고령화-두뇌 유출이라는 사상 초유의 ‘삼각파도’를 맞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라는 사회·인구학적 위기에 더해 두뇌 유출(brain drain) 또한 심각하다. 이 엄청난 파고는 인재풀의 약화를 가져와 한국의 미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직면했던 이른바 ‘잃어버린 20년’도 저출산·고령화라는 급격한 인구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과거의 경제모델이 인구통제 즉 산아제한 등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예: 박정희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 저출산·고령화라는 정반대 현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깊은 연구와 성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 중 일본이 가장 먼저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학적 위기에 직면했다. 이를 예측하고 대응하지 못한 것이 일본의 경제 침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과 비교해도 한국의 인구학적 변화의 속도나 영향은 두드러진다. 출산율은 이미 일본보다 더 낮아졌고 고령화의 속도도 더 빠르다. 두뇌 유출의 정도도 더 심해 인구학적 변화가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클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출생 통계’ 확정치에서 출생아 수는 26만600명으로 집계돼 1년 전보다 4.3% 감소했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60만 명 수준이었으나 약 20년 만에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여성 1명이 가임 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로 환산해 보면 0.81명으로, 1년 전인 2020년(0.84명) 보다 0.03명(-3.6%) 줄었다. 여성 1명이 평생 1명의 신생아도 출산하지 않게 된 것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이 1.3명 이하일 때는 ‘초(超)저출산’ 으로 분류된다. 한국은 2002년부터 20년째 초저출산 국가다. OECD 38개 회원국과 비교할 때 한국은 지난 2017년부터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됐다. 더구나 한국은 이미 대학 입학 연령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머잖아 한국 경제에 필요한 인재풀의 축소 역시 불가피할 것이다.

    고령화도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6%를 넘어 ‘초고령 사회’가 되고, 2050년에는 40%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대표적인 고령화 국가인 일본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다. 미국 통계국의 ‘늙어가는 세계 2015(The Aging World: 2015)’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한국은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은 그동안 가장 젊은 나라 중 하나였지만, 향후 50년 이내 가장 늙은 나라로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일조했다면, 이젠 저출산과 고령화가 한국의 지속적인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의 여파로 한국의 생산가능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체 인구 대비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7년 73.2%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하기 시작해 2030년 66.0%, 2050년 51.1%로 급격하게 줄어들 전망이다. 노동인구 대비 비노동인구의 비율이 상승하면서 전자의 후자에 대한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도 그 나름대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해 왔다. 결과는 참담하다. 2006년부터 10년간 123조 원을 들여 다양한 출산장려 정책을 폈지만 합계출산율은 2008년과 2013년 각각 1.19명으로 아무 변동이 없으며, 2018년부터는 외려 1.0 이하로 떨어졌다. 고령화 대책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관련 예산을 늘리고 있지만 2020년 노인 빈곤율(가처분가구 소득을 기준으로 중위소득의 50퍼% 이하에 속하는 비율)은 40.4%에 이르렀고, 인구 10만 명당 노인 자살률은 2017년 54.8명으로 OECD 평균의 3.2배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두뇌 유치는커녕 두뇌 유출 中

    두뇌 유출도 심각하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공계 고급 인력의 두뇌 유출이 심각한 문제다. 2016년, BRIC(생물학정보연구센터)이 과학기술자 1005명을 대상으로 한 이공계 두뇌 유출 조사에서도, “만약 앞으로 1년 안에 취업해야 한다면 국내와 국외 중 어느 지역을 우선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47퍼센트가 해외 취업을 택했다. 미국에서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 유학생들의 취업 선호도는 한국이 아닌 미국 기업이다. 실제로 이들 중 절반은 졸업 후 미국에 남는다.

    중국, 유럽 등에서는 최첨단 분야의 한국인 인재를 스카우트하고 있다. 스웨덴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는 LG화학 인력을 영입해 회사 설립 초기부터 배터리 연구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기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의 헝다 신에너지차 역시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인재 채용에 나서고 있다. 미·중 간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중국은 반도체등 첨단기술 분야 인재를 겨냥해 국내 기업의 2~4배 수준의 연봉 등 파격적 조건으로 이들을 영입하고 있어 한국의 두뇌뿐 아니라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연례 세계인재 보고서를 보면, 2016년 한국은 글로벌 ‘두뇌 유출(brain drain)’ 면에선 조사 대상 63개국 중 41위에, ‘두뇌 유치(brain gain)’ 면에선 33위에 그쳤다. 이 보고서의 자료를 기준으로 두뇌 유출과 두뇌 유치를 두 축으로 해 조사 대상국을 4개 그룹으로 분류해 보면 한국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더욱 명확해진다. 미국, 영국 등이 속한 그룹은 두뇌 유출은 적고 두뇌 유치는 많아 인재풀이 풍부하다. 반면 그 대척점에 있는 그룹은 두뇌 유출은 많은 반면 두뇌 유치는 적다. 한국의 경우 일본, 대만 등과 함께 이 그룹에 속해 있는데, 이 그룹 안에서도 두뇌 유출과 유치의 격차는 가장 큰 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풀 활용에 있어 한국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방증이다.

    삼각파도를 헤쳐가기 위해선 우수한 해외 인재의 유치와 활용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첨예화하는 글로벌 인재 전쟁에 적극 참전해야 한다. 해외 인력 활용과 관련해 그간 한국은 주로 중국, 동남아시아 등에서 비숙련 노동자를 유치해 왔다 (2021년 현재 약 85만5000명). 국내에 와 있는 해외 숙련 노동자의 비율은 비숙련 노동자의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우수한 인재 유치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물론 해외 인재 유치는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청년실업률이 높은 현시점에서 해외 인재를 유치하자는 주장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가 쉽지 않다. 유럽을 휩쓸고 있는 반(反)이민 정서는 물론 미국에서조차 이민자들이 중산층 백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불만이 팽배해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트럼프를 백악관에 입성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해외 인재가 청년실업을 가중시키고 일자리 경쟁을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는 단면적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해외 인재 유치가 외려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 청년실업 해소에도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을 제고해 첨단산업에 필요한 창의적 사고를 가져올 수 있다.

    누가 다음 세대 아이폰을 만들 것인가

    2021년 5월 18일(현지 시간) 온라인으로 열린 ‘구글 개발자 대회(I/O)’에서 강연하고 있는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 그는 인도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와서 성공한 기업인이다. [구글]

    2021년 5월 18일(현지 시간) 온라인으로 열린 ‘구글 개발자 대회(I/O)’에서 강연하고 있는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 그는 인도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와서 성공한 기업인이다. [구글]

    21세기 기술혁신의 메카라 불리는 실리콘밸리는 해외 인재 유치 논쟁에 있어 중요한 경험적 논거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민국이라는 특별한 역사와 특성의 영향도 있겠지만, 인종과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인재를 끌어들인 실리콘밸리의 포용적 문화는 세계경제를 이끄는 핵심 원천이 됐다. 그런 다양한 인재들이 30년 전만 해도 포도넝쿨로 가득 찬 허허벌판이던 캘리포니아 북부의 변방 지역을 오늘날 기술혁신의 중심지로 일궜다. 이들 해외 인재들은 인근에 위치한 스탠퍼드, 버클리 등 대학이나 대학원으로 유학을 온 후 자리 잡은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취업을 위해 온 경우도 있지만 서로 경쟁과 협력을 하면서 21세기 혁신을 이끌어가고 있다.

    해외 인재로 짜인 다국적군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도 없었을 것이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 가상 증강현실, 사물인터넷….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핵심 기술을 실리콘 밸리에서 이끌고 있고, 거기에는 세계 최고 인재들이 모인 강력한 다국적군의 힘이 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메타), 테슬라 등 실리콘밸리의 대표 기업들에서 인도나 중국계 엔지니어와 기업인들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구글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마이크로소프트 CEO, 라지브 수리(Rajeev Suri) 노키아 CEO 등은 모두 인도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와서 성공한 기업인들이다. 엔비디아(Nvidia)의 CEO 젠슨 황(Jen-Hsun Huang), 유튜브의 창업자 스티븐 첸(Steven Chen) 등은 중국계 엔지니어·사업가로서 실리콘밸리의 거두가 됐다. 마크 테시르-라빈(Marc Tessier-Lavigne) 스탠퍼드대 총장은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뒤 박사후 과정으로 미국에 왔으며, 유학생 출신 인도계·중국계 교수도 많다.

    2014년 6월 18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구글코리아에서 유튜브 창업자 스티브 첸이 국내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중국계 엔지니어·사업가로서 실리콘밸리의 거두가 됐다. [구글]

    2014년 6월 18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구글코리아에서 유튜브 창업자 스티브 첸이 국내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중국계 엔지니어·사업가로서 실리콘밸리의 거두가 됐다. [구글]

    2012년 만들어진 ‘미국에 투자하라(INVEST in America Act)’ 법안은 STEM 분야 유학생들이 졸업 후 창업을 하고 영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법안을 주도한 애덤 시프(Adam Schiff)와 찰스 배스(Charles Bass) 의원은 “해외에서 온 고급 인력 1인당 미국인 2명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이들이 “다음 세대의 애플을 만들고 아이폰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법안이 만들어지기 전인 2008년 의회 청문회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에 H1-B 비자로 고용된 기술자 한 명당 이들을 지원하는 일자리 4개가 창출됐다”고 역설하며 미국 정부가 해외 우수 인재 유치를 적극 지원할 것을 촉구했다.

    2006년에서 2012년 사이에 미국에 세워진 기술, 공학 관련 기업의 약 4분의 1이 이민자에 의해 설립됐다. 실리콘밸리의 경우 그 비율이 50%에 육박한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구글의 세리게이 브린, 인텔의 앤드루 그로브, 선 마이크로시스템의 비노드 코슬라 등 대표적인 1세대 이민자 기업가들이 이례적인 사례가 아니다. 1세대 이민자에 의해 설립된 상위 벤처기업의 경우 기업당 약 150명의 일자리가 창출됐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를 비롯해 해외 우수인재 유치가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기보다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고용효과뿐 아니라 기술혁신을 통한 경제발전을 가능케 한다는 수많은 연구 사례가 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메타)의 대표들이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을 비판하며 강력하게 반발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中도 비자 및 영주권 취득 조건 완화

    창조경제의 모델로 각광을 받는 이스라엘도 다국적 인재를 끌어들여 오늘의 성공을 이뤘다. 한국처럼 이스라엘은 자원이 빈약하고 국제정치에서 분쟁지역에 속해 있지만, 다국적기업뿐 아니라 우수한 해외 인재를 유치하는 데 성공해 오늘날의 ‘스타트업 국가(Start-Up Nation)’를 만들 수 있었다. 특히 1990년대 초 옛 소련의 붕괴와 함께 유입된 85만 명의 이주민 가운데 40% 이상은 연구 경력이 풍부한 대학교수, 과학자, 엔지니어들이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드는 데 중추 역할을 했다.

    인종적 민족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독일도 중요한 사례다. 2000년 이전만 해도 독일은 해외 인재들의 취업이민을 극히 제한해 왔다. 그러나 저출산, 고령화, 우수 과학기술 인재 부족 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해외 인재 유입 제도를 개정하고 2012년부터 외국인 전문 인력에 대한 취업 및 체류허가제도인 ‘블루카드 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비(非)EU(유럽연합) 국가 출신의 인재를 끌어모으며 실행 2년 만에 1만7000여 명의 외국인 전문 인력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반이민 정서가 득세하는 이웃 국가와 달리 독일의 해외 인재 유치는 앞으로도 가속화할 것이며 이에 힘입어 독일은 앞으로도 유럽연합의 중심축으로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저출산·고령화로 몸살을 앓는 일본도 최근 눈에 띄게 달라졌다. 과거엔 한국처럼 3D 업종에 비숙련 노동력을 수입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이젠 외국 인재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중요한 축의 하나가 해외 인재 유치였다. 일본은 ‘유학생 30만 명 유치 계획’을 발표하며 적극적으로 유학생들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유학 전 정보 제공에서부터 입학, 졸업, 취업 지원까지 단계별 지원을 했다. 특히 대학(원) 졸업 후 일본 내 취업을 원하는 유학생들에게는 취업 상담 및 취업지원, 비자제도 개선(취직 준비 기간을 1년으로 연장) 등을 통해 취업 기회를 제공하면서 해외 인재 유치 정책을 강화했다. 이를 반영하듯 2018년 12월 10~19일 사이에 732개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대졸 이상의 ‘외국인 인재’ 고용 실적이 있는 (또는 고용 예정이 있는) 기업은 68.2%에 달했다.

    중국도 해외 인재 유치에 적극적이다. 중국 온라인 구인업체 자오핀닷컴의 하오젠 수석컨설턴트는 “중국은 인공지능(AI) 등 분야에서 고급 인재가 절실하게 필요하만 중국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그런 첨단 분야 인재를 육성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바이두, 알리바바 등 중국 대표 인터넷 기업이 해외 인재 유치에 주력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해 최근 비자 및 영주권 취득 조건 완화 정책으로 기업들의 해외 고급 인재 유치를 지원하고 있다. 2016년에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행하던 해외 고급 인재 비자 우대 정책을 지방정부의 55개 인재 유치 정책에도 확대 적용키로 했다. 또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에서 창업하는 외국인에게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영주권을 주는 정책을 내놨다.

    학연·지연 슈퍼 네트워크 담장 허물어야

    이렇듯 우수한 해외 인재를 유치하고 활용하는 것은 글로벌한 흐름이다. 한국에도 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저출산·고령화·두뇌 유출이라는 삼각파도를 넘기 위한 생존의 문제다.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해외 인재 유치에는 다양한 방안이 있겠지만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현 상황에서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실행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국내의 외국인 유학생들을 필요한 부분에 인적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외국인 유학생 수가 10만 명을 넘어섰으나 여전히 이들을 중요한 인적자원으로 양성하고 활용하기보다는 줄어든 대학의 인원을 보충하는 데 그치고 있다. 유학생들의 질이 국내 인재에 비해 부족해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고도 한다. 하지만 선발에서부터 한국에 필요한 인적자원 양성에 초점을 두면 졸업 후 이들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유학생의 취업률이 높아지면 향후 우수한 유학생을 유치하는 데도 도움이 되니 일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은 물론 유학생 30만 명 시대를 연 일본도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19년 3만여 명이 졸업 후 취업했는데, 전체 유학생 중 4분의 1인 8만 명이 졸업했다고 보면 취업률은 40%에 근접한 셈이다. 이젠 50% 취업률을 목표로 향해 가고 있는데, 취업률의 증가는 우수한 유학생 유치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도 ‘우수한 유학생 유치–취업 가능성 증가–더 우수한 유학생 유입’으로 인적 자원의 질과 양을 모두 향상하는 체계를 구축할 때다.

    더구나 해외 인재는 부족한 인적자원의 보충을 넘어 문화적 다양성을 제고해 창조적 사고와 생산성 향상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산업화 시대에는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일사불란함을 위해 표준화된 노동력이나 단결이 중요했다. 지금과 같은 혁신과 창조의 시대에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훨씬 더 큰 잠재력을 지닌 가치다. 한국처럼 다양성이 부족한 사회에서 해외 인재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기술혁신에 기여할 수 있다. 오랫동안 인종적·문화적 동질성을 강조해 온 한국 사회에서는 다양성 확보가 매우 절실하면서도 어려운 과제다. 때마침 해외에서 불고 있는 K-컬처에 대한 관심이 해외 인재 유치에 호재가 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구상하는 이민청 설립은 시의적절하다. 다만 단순히 이민법을 개정하는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되며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특히 한국 사회의 폐쇄적 순혈주의와 학연·지연 등으로 얽힌 슈퍼 네트워크의 담장을 허물어야 한다. 그래야 인재를 폭넓게 수용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문화와, 다양한 인재가 어울려 혁신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과거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했지만 21세기 글로벌 인재들은 ‘로마법을 고집하는 로마에는 가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신기욱
    ●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미국 워싱턴대 사회학 석·박사
    ● 미국 아이오와대, UCLA 교수
    ● 現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 및 아시아 태평양 연구소장
    ● 저서 : ‘슈퍼피셜 코리아: 화려한 한국의 빈곤한 풍경’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 ‘하나의 동맹, 두 개의 렌즈’ 등



    신동아 12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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