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정치학’ 성공과 실패
책임 회피·농담·주무장관 두둔…
다섯 재난에 대한 文정부 대응
애티튜드, 자원 적시 동원, 대통령 역할
11월 1일 윤석열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재난의 정치학에서, 보수와 진보는 무엇이 달랐을까. 크게 세 가지가 달랐다. 첫째, 재난과 슬픔을 대하는 애티튜드(attitude)가 달랐다. 둘째, 적시에 적절한 국가 자원이 동원됐는지가 달랐다. 셋째, 대통령을 비롯한 리더십의 역할이 달랐다.
10월 29일 토요일 저녁,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비극이 됐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압사로 인해 156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는 151명. 외국인 사망자는 26명이다. 중학생 1명, 고등학생 5명도 사망했다.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로서, 참사 뉴스를 접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믿기지 않을 만큼 감수성 떨어지는 멘트
사고 이튿날인 10월 30일, 정부는 합동 브리핑을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은 “그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였다. 당시 이태원에는 핼러윈 축제로 인해 10만 명이 몰린 것으로 추산된다. 좁은 골목길 일대에 엄청난 인파가 모였다. 경찰 병력은 예년에 비해 적었다. 과거에는 경찰에 의해 일방통행으로 관리되던 길이다. 이번에는 경찰 없이 양방 통행이 이뤄졌다. 좁은 골목길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압착’돼 한번 넘어지자 도미노처럼 156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그러나 해당 업무를 총괄하는 정부 부처 장관의 일성은, “특별히 우려할 정도의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였다. 150명이 넘는 청춘의 죽음 앞에서 부처 장관이 내뱉은 말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수성이 떨어지는 멘트다.
다음 날인 10월 31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상민 장관의 발언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기자들이 묻자 이 장관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같은 날,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경찰 병력 투입’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며 역시 이 장관을 두둔하는 발언을 내놨다.
이날 저녁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MBC 인터뷰에서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며 “이태원 할로윈 행사는 주최 측이 없어 축제가 아니라 현상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주최가 없는 행사였기에 책임 소재를 묻기 어려우며, 그렇기에 ‘하나의 사회현상’이라는 취지의 발언이다. 박 구청장은 국민의힘 소속이다. 자신의 관할구역에서 발생한 참담한 비극이다. 박 구청장의 최우선 관심사가 ‘책임 회피’가 아니라면, 좀체 이해가 가지 않는 발언이다.
11월 1일 한덕수 총리의 외신기자 간담회가 있었다. 외신기자가 물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뭔가?”라고. 이 질문은 통신 오류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이에 한 총리는 ‘통역 안 되는 것에 대한,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취지로 활짝 웃으며 농담을 했다. 한 총리의 웃음은 화면 영상과 함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대규모로 퍼졌다.
10월 29일은 집회가 많았다. 진보 쪽 집회와 보수 쪽 집회가 시내 한복판에서 있었다. 용산경찰서의 상당 인력은 대통령실 경호에 투입됐다. 이태원에서는 10만 명 규모가 참석하는 핼러윈 축제가 있었다. 그 시각, 윤희근 경찰청장은 충북 제천시 캠핑장에서 지인들과 있었다. 오후 11시쯤 잠이 들었다.
그날 오후 10시 15분, 소방청에 첫 번째 사고가 접수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시 1분에 보고받았다. 이상민 장관은 11시 20분에 보고받았다. 그 시각에 윤 청장은 캠핑장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윤 청장은 10월 30일 0시 14분이 돼서야 전화 보고를 받았다. 왜인지 모르지만, 경찰청의 부하 직원들은 아무도 윤 청장을 깨우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실무 책임자인 윤 청장은 대통령보다 늦게, 장관보다 더 늦게 보고받았다.
이상민 장관과 박희영 구청장의 책임회피성 발언, 외신기자들과 웃으며 농담을 던지던 한덕수 총리, 행안부 장관을 두둔한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 캠핑장에서 단잠을 자고 있던 윤희근 청장에 이르기까지. 왜 보수 정부 책임자들은 하나같이 재난에 대해, 슬픔에 대해 이토록 둔감한가.
文과 트럼프의 정반대 선택
문재인 정부는 어쩌면 세월호의 슬픔으로 탄생한 정권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304명이 사망 및 실종됐다. 박근혜 정부는 처음에는 애도를 하고, 이후에는 사과를 하고, 그 이후에는 세월호 유가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 역시 세월호 유가족 공격에 가담했다. 일베들은 ‘유가족충’이라고 패륜적 언어를 쓰고, 단식투쟁을 하는 유가족 앞에 몰려와서 ‘폭식 투쟁’을 하는 패륜적 행위를 일삼았다. 박근혜 정부와 일부 언론, 일베들의 패륜 행위에 대한 울분이 쌓이고 쌓여 터진 사건이 ‘박근혜 탄핵’이었다. 논리적으로 보면 둘은 별개의 사건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연결된 사건이었다. 사람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다. 뇌 과학과 행동경제학의 연구에서도 감정과 이성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문재인 정부 시절에 크게 다섯 번의 재난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 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 지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수능 시험을 바로 앞둔 날이었다. 수능시험장 14개 교 전수 점검 결과 포항고, 포항여고, 대동고, 유성여고, 포항 중앙고 등에서 ‘균열’이 확인됐다. 지진 발생 이후 46회 추가 여진도 발생했다. 문재인 정부는 수능을 일주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수능 연기는 초유의 사태였다. 찬반 양론은 갈렸지만 ‘안전’을 우선시한 결정이었다.
두 번째, 2017년 11월 27일 인도네시아 발리섬에 있는 해발 3142m 아궁산에서 화산이 폭발했다. 화산재가 높이 2000m까지 치솟았다. 발리섬 옆에 있는 롬복 프라야 국제공항이 11월 30일 폐쇄됐다. 한국인들은 발이 묶였다. 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발리 교민과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전세기 파견 검토를 외교부에 지시했다. 외교부는 발이 묶인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버스 9대를 동원했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발리 공항과 수라바야 공항에 모이게 됐다. 대한항공은 276석 규모의 특별기를 발리 공항에 보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273명의 국민을 태우기 위해 수라바야 공항에 전세기를 보냈다. 대한항공 특별기와 아시아나 전세기는 한국 국민들을 태우고 12월 1일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발리에서 화산이 터지자, 한국 국민을 태우기 위해 특별기가 날아간 경우였다.
2019년 4월 4일 강원 고성과 강릉 등지에서 발생한 산불로 전국 소방차가 강원도로 집결했다. 사진은 4월 5일 강원 동해시 망상해수욕장 주차장에 전국에서 모인 소방차가 집결해 있는 모습. [동아DB]
네 번째, 2020년 5월 1일에 강원 고성군에서 또다시 산불이 발생했다. 2019년 4월에 한 차례 경험이 있었기에 전국의 소방차를 총동원해서 산불을 조기에 진압했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산불 진화의 최일선에 있었다.
다섯 번째,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대처다. 이때를 계기로 ‘K-방역’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같은 해 4월 총선이 치러질 예정이었다. 그에 앞서 2019년 10월 ‘조국 논란’으로 정국이 시끄러웠다. 2020년 2월 중순까지만 해도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당시 자유한국당에 뒤진 상태였다. 총선 승리 전망을 묻는 여론조사에서도 자유한국당이 더 우세했다. 2월 중순부터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대규모 발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3월 11일 팬데믹을 선언했다. 마스크 수요가 폭증하고 사재기가 발생하자 정부는 ‘마스크 5부제’를 실시했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도 실시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경제’를 희생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안전을 우선시했다. 대신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도널트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정반대 선택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지 않았다. 마스크 착용은 불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한국과 미국은 코로나 첫 확진자가 같은 날 발생했다. 그러나 미국은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했고, 한국은 ‘수그러지기’ 시작했다. 3월 말경부터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BBC 등 영미 언론을 중심으로 K-방역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결국 2020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은 대승을 거뒀다. 선거 승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K-방역에 대한 외신과 유권자들의 호의적 평가였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서 패했다. 미국 대통령선거 역사상 재선에 실패한 6번째 대통령이 됐다.
국가 재난은 ‘리더십’ 시험대
이태원 참사 이후, 11월 4일 한국갤럽의 첫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잘못하고 있다’가 63%, ‘잘하고 있다’는 29%였다. 부정 평가는 1% 늘었고 긍정 평가는 1% 줄었다. 유권자 비중에서 가장 큰 덩어리를 차지하는 중도층에서는 긍정 평가가 21%, 부정 평가가 72%였다.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 34%, 국민의힘 32%였다. 두 정당은 모두 전주 대비 1% 떨어졌다. 민주당은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재난은 리더십의 시험대다. 위기 상황에서 리더십은 더욱 빛나기 마련이다. ‘재난의 정치학’에서 박근혜 정부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이고, 문재인 정부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윤석열 정부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세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재난과 슬픔을 대하는 에티튜드(attitude)가 중요하다. 둘째, 국가 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해야 한다. 셋째, 대통령의 역할이다. 윤석열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신동아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상처 입은 분들의 쾌유를 빌며,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께도 위로를 드립니다.
신동아 12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