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면 ‘평균적으로는’ 기량 하락… 왜 그럴까
잘하는 선수는 혼인 여부 무관 좋은 성적
[Gettyimage]
SSG 랜더스는 7월 4일 오른손 투수 서동민(28)의 결혼 소식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내놓았습니다. 그달 16일 인천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보도자료를 보고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프로야구 종사자는 ‘비활동 기간’인 12월에 결혼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의문이 풀린 건 신부 이름을 확인한 다음이었습니다. 서동민의 배필은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에서 리베로(수비 전문 선수)로 뛰는 김연견(29)이었습니다. 프로배구선수는 야구선수와 달리 12월에는 한창 시즌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프로야구 올스타전 휴식기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던 겁니다.
이 보도자료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서동민은 6월 3일부터 7월 2일까지 12경기 연속 무자책점 행진을 이어가면서 준(準)필승조 정도로 평가받던 선수였습니다. 전반기를 마칠 때만 해도 평균자책점이 0.98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후반기 들어서는 2와 3분의 2이닝 동안 4점을 내주면서 평균자책점이 13.50으로 치솟았고 결국 퓨처스리그(2군)행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시즌 끝까지 1군 무대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 결과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하나는 이성적인 분이라면 이해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유부남이라면 일부 이해할 수 있는 접근법입니다.
총각 마지막 해 vs 유부남 1년차
SSG 랜더스의 투수 유망주이던 서동민은 결혼 후 성적이 하락해 퓨쳐스리그(2군)로 강등됐다. [동아DB]
문제는 2군에 내려간 뒤에도 평균자책점 8.31로 부진했다는 점입니다. 2군에서도 전반기에는 평균자책점 2.19를 기록하던 서동민이었습니다. 전후반기 사이에 서동민이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유부남이 됐다는 것. 그러니까 서동민이 후반기에 부진한 이유는, 자세한 속사정까지는 모르겠지만, 결혼한 데 있습니다. (네, 그래서 제가 유부남 일부만 이해하실 거라고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결혼은 프로야구선수 성적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이를 알아보려고 2020년 12월 이후 보도자료 등을 통해 결혼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선수 가운데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 통계 업체 스포츠투아이 기준으로 결혼 전후 시즌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WAR)를 모두 확인할 수 있는 22명의 성적을 확인해 봤습니다. 따라서 결혼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았거나 한 해라도 스포츠투아이에서 WAR를 산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출전이 적었다면 이 명단에서 빠집니다.
이 기간 결혼한 타자 9명은 총각 마지막 해에 OPS(출루율+장타력) 0.706을 합작했지만 유부남 첫해에는 0.678로 기록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3분의 2는 유부남 1년차 때 기록한 희생 번트와 희생 플라이를 합친 총 희생타 숫자가 총각 시절 이상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몸에 맞는 공은 3분의 2가 총각 시절보다 적었습니다. 결혼하면 생산력은 줄어들고 희생이 늘어나면서 몸을 사리게 되는 겁니다.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타자 중 전민수(33·NC 다이노스)는 올 시즌 초반 은퇴를 선언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혼 후 ‘대박’ 선수도 많아
국내 최정상급 마무리 투수 오승환도 결혼 후 성적이 소폭 하락했다. [동아DB]
자, 이제 진실을 이야기할 때가 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데이터를 다루는 게 바로 지난달 ‘베이스볼 비키니’에서 문제를 제기한 바로 그 방식입니다. 실제로 결혼이 야구선수 성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려면 어떤 선수의 결혼 전후가 아니라 그전까지 비슷한 성적을 내고 있던 선수 두 명 가운데 한 명만 결혼했을 때 성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하는 게 더 사리에 맞는 접근법일 겁니다.
이 22명은 평균 29세에 결혼했습니다. 타자 9명은 평균 29.9세에 결혼식을 올렸고, 투수 13명은 결혼 당시 28.3세였습니다. 20세에 결혼한 롯데 자이언츠 서준원(22)을 빼면 투수 쪽 나이도 평균 29.0세까지 오릅니다. 이런 나이를 생각하면, 역시 지난달에 알아본 것처럼, ‘평균적으로’ 성적이 떨어지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2012년 결혼 후 4시즌간 홈런왕을 기록한 KT 위즈의 박병호. [동아DB]
그리고 2012년 홈런 1위(31개), 타점 1위(105타점), 장타력 1위(561)를 기록하면서 골든글러브와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까지 차지했습니다. 당시 박병호는 “올 시즌 내 성적의 70%는 아내 덕분”이라면서 “타석에 나설 때마다 ‘혼자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타석에서 집중력이 좋아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야구가 안되면 집에 가서도 고민을 계속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내와 함께 대화하면서 여유가 생겼다”고 덧붙였습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용덕(57) 전 한화 이글스 감독 역시 결혼 이후 기량이 만개한 케이스입니다. 1987년 전신 빙그레에 ‘배팅 볼 투수’로 입단한 그는 정식 선수가 된 1988년에 2승 1패, 그 이듬해에도 2승 2패 1세이브를 기록한 게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1989년 12월 24일 결혼식을 올린 뒤 1990년에는 13승 9패 3세이브를 기록하면서 본격적으로 ‘연습생 신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NC 다이노스 양의지(35)는 총각 때도 잘하던 선수가 결혼 후 아주 잘하는 선수가 된 케이스입니다. 2010년 신인상 수상자 출신인 양의지는 2011~2014년 사이에 OPS 0.764를 남긴 타자였습니다. 그리고 2014년 12월 6일 결혼식을 올린 뒤에는 이듬해(2015) 바로 OPS 0.928을 기록했고 2016년에는 0.973까지 기록을 끌어올렸습니다.
올라갈 성적은 올라간다
그런데 재미없게 말하자면 결혼 당시 박병호는 25세, 한용덕은 24세, 양의지는 27세였습니다. 전부 전성기를 향해 가는 나이였던 겁니다. 그러니 이 선수들 성적이 올라간 게 그럴 나이가 돼서 그런 건지 결혼 때문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양의지는 2015년 ‘베이스볼 긱’ 인터뷰에서 “결혼하면 안정이 되니까 분명 그런 영향도 있는 것 같다”면서 “(그래도) 후배들에게 결혼을 늦게 하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나는 적당한 나이에 했는데 운명이니까 한 거다. 다른 친구들은 좀 더 인생을 자유롭게 즐기다가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디 야구선수만 그러겠습니까. 결혼이야 나이가 몇 살이든 임자를 만나야 하게 되는 거고 또 요즘 세상에 평생 비혼으로 살면 또 어떻습니까. ‘양신’ 양준혁(53)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선수 시절 내내 결혼하지 않고도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성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니 꼭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시면 인터넷 검색창에 ‘늬들은 결혼하지 마라’를 입력해 보세요. 이상 N년차 유부남 1인이었습니다.
P.S 이번 호는 ‘베이스볼 비키니’ 편집을 맡아주고 있는 박세준 ‘신동아’ 기자가 결혼 소식을 전해 쓴 칼럼이 절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