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어’ 분당론, 검찰 수사에 수면 아래로
李 사법 리스크 현실화에 당내 위기감 증폭
총선 공천권 놓고 친명 vs 비명 격돌 가능성
당 쪼개질 가능성 낮아… 총선 이후 주목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측근 정진상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가운데 11월 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이 대표가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하나의 유령이 더불어민주당을 떠돌고 있다. 분당(分黨)이라는 유령이.”
유령은 사라졌을까. 아니면 여전히 존재할까. 분당의 그림자가 더불어민주당 안팎을 배회하고 있다. 가까이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논란에서부터 멀리는 2024년 22대 총선 공천 주도권을 놓고 친명(親이재명)계와 비명(非이재명)계가 등을 돌릴 것이라는 우려다.
최근에는 분당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이들은 없다. 민주당과 윤석열 정부 사이의 팽팽한 대치 전선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외부의 적과 치열하게 싸울 때 적전분열(敵前分裂) 양상을 보이면 안 된다는 정치권의 불문율 탓에 분당론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다만 이 대표를 향한 사법 리스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거나 차기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계파 간 파열음이 커질수록 분당 위기감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수면 아래 여전히 잠복된 불씨다.
물론 ‘분열은 곧 패배’라는 과거 민주당 계열 정당의 학습효과를 감안하면 ‘분당’이라는 최악의 카드를 선택할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이 대표 주도의 단일 대오가 ‘한 지붕 두 가족’ 형태로 바뀔 여지는 있다. 사실상 ‘심리적 분당’ 상태에서 총선을 치를 수도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2016년 20대 총선을 시작으로 2017년 19대 대선→2018년 7회 지방선거→2020년 21대 총선까지 연전연승을 구가하며 최전성기를 보냈다. 원동력은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카리스마였다. 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권력의 무주공산을 장악한 이 대표가 상응하는 정치적 존재감을 발휘할지는 불투명하다. 특히 20대 대선 이후 조기 등판의 후유증과 리스크는 날로 커져가고 있다. 민주당 분당론의 실체를 추적해 봤다.
민주당 vs 尹 정권 전면전 양상
“당이 굉장히 혼란스럽고 분당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대선과 지방선거의 책임자로서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대로 가다가는 당이 분열하거나 쪼개질 수 있다”(김민석 민주당 의원). 지방선거 참패 이후인 6월 말 이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한창일 때 분당 우려가 터져 나왔다. 이후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이 강력하게 반발했고 ‘어대명(어차피 당대표는 이재명)’ 흐름 속에서 이는 해프닝에 그쳤다.현재 민주당에서 ‘분당’은 100% 금기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찰을 두려워할 사람은 범죄자뿐”이라고 말해 왔지만 민주당은 검찰을 앞세운 윤석열 정부의 정치탄압과 보복수사가 극에 달했다는 정서가 지배적이다. 이에 공개석상에서 분당론은 가라앉았다. 간혹 사석에서 당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이마저 자취를 감췄다. 대장동 리스크로 촉발된 대선자금 수사가 민주당의 존립 기반을 뒤흔들 것이라는 우려 탓이다.
이 때문에 당 일각에서 소수의견이 나올 경우 팬덤 정치의 강력한 응징에 노출된다.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의 일원이던 김해영 전 최고위원이 “이재명 대표님 그만하면 됐습니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 주십시오”라며 퇴진을 촉구했다가 융단폭격에 시달린 게 대표적 사례다.
경선 당시 극심한 갈등을 겪은 이 대표는 ‘대장동 리스크’를 말끔히 해소하지 못한 채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엎치락뒤치락하는 승부 속에서 24만7077표(0.73%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졌잘싸’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문제는 대선 이후였다. 이 대표가 당 안팎의 비판 여론에도 민주당 텃밭이나 다름없던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이후 6·1 지방선거 참패 책임론에도 8·28 전당대회 출마를 강행했다. 역대 대선 패장들이 휴지기를 갖고 한동안 정중동 행보를 이어간 것과는 대비된다.
이 대표가 마주한 사법 리스크는 크게 △대장동 리스크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성남FC·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이다. 검찰의 수사 진전 여부에 따라서는 이 대표가 언젠가는 검찰 포토라인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는 만큼 이 대표가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평가다. 이 대표의 유죄 여부와 관계없이 정치·도의적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이 대표로서는 정치생명을 건 싸움이지만 벗어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시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면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커질수록 민주당에 전가된다는 점은 더욱 부담”이라고 평가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 역시 “검찰 수사의 칼끝이 이재명 대표를 향하고 있다”며 “사법 리스크 탈출은 쉽지 않다. 특히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 혐의는 최대 난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경기지사 시절과는 달리 이번에는 빠져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만일 1심에서 유죄가 나올 경우 민주당은 극도의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이 대표의 구심력은 흔들리고 원심력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반면 법무법인 로우의 김윤우 변호사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진술의 신뢰성이 낮다. 법리적으로 충분히 다퉈볼 만하다”면서도 “이 대표에게 가장 위험한 상황은 대법원이다. 1·2심에서 무죄가 나와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달이 차면 기운다”… 여야 모두 분열의 늪
11월 9일 검찰 수사관들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측근 정진상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의 국회 본청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민주당 계열 정당은 보수정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헤쳐모여’를 반복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 쇄신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다가 ‘난닝구·백바지’로 불린 머리채 사건으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심한 레임덕이 이어지는 가운데 친노·비노·반노의 거친 반목과 갈등으로 합종연횡이 이어졌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문재인·안철수 연합 성격의 새정치민주연합이 탄생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2016년 20대 총선 직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쪼개졌다. ‘문재인·안철수’라는 두 마리 용(龍)이 있었다는 점에서 어차피 불편한 동거였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몰락하자 민주당의 단일 대오는 막강해졌다. 이후 민주당은 행정 권력은 물론 지방·의회 권력까지 장악한 달콤함을 누리면서 크고 작은 파열음이나 잡음 없이 당을 유지해 왔다. 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민주당은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만으로는 민주당 단일 체제를 유지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안팎에서 분당론이 흘러나오는 이유는 ‘공천권’에 있다.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선거 지원에 소극적이었거나 계양을 보선과 전대 출마를 반대했던 비명계 의원들이 차기 총선 공천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18대 총선에서 친이계의 친박계 학살, 19대 총선에서 친박계의 친이계 공천 학살과 같은 악몽이 민주당에서도 세대교체 물갈이론과 이재명 친정 체제 구축을 명분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2015년 당시 문재인 대표 체제의 새정치민주연합과 매우 유사하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대표로 선출한 이후 친노 패권주의 반대를 명분으로 안철수·김한길·박지원·정동영 등이 주도해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이와 유사한 흐름이 총선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총선 이전 분당 현실화?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넘어 차기 경쟁력을 유지한다면 분당론은 공수표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정당사를 돌이켜 보면 압도적인 차기 경쟁력이 곧 강력한 구심력으로 작용했다. ‘친이 vs 친박’이라는 최악의 계파 갈등을 겪었던 한나라당은 ‘박근혜’라는 강력한 차기 주자를 내세워 2012년 대선 과반 승리를 이끌었다. 반면 차기 전망이 불투명할 경우 원심력이 극대화하면서 당의 분열은 가속화됐다. 노무현 정부 말기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이 보여준 극도의 혼란과 내홍이 그 증거다.민주당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해 윤석열 정부 검찰의 정치탄압이라는 프레임으로 내세워 강력 반발하고 있다. 최대 관건은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진술이다. 유동규 전 본부장에 이어 추가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면 모든 것은 예측 불허다. 이 대표가 회복 불가의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사법 리스크를 탈출한다 해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새겨진 ‘부패한(?) 정치인’이라는 주홍글씨가 꼬리표가 될 수도 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재명 체제로 총선 전망이 어렵다는 판단이 나오면 분당론을 둘러싼 상황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친명계와 비명계의 대립뿐만 아니라 양측 강성 팬덤의 격렬한 비난전은 같은 당이라고 말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분당이 말처럼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22대 총선 이전 민주당의 분당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오히려 총선 이후를 주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배종찬 소장은 “민주당 분당은 어렵다. 정치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이 끝나는 것”이라고 했다. 야구에서 4번 타자의 타율이 낮다고 쉽게 교체할 수 없는 것처럼 민주당에는 이 대표를 대체할 세력과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배 소장은 다만 “(민주당 내부의) 심리적 분당은 여전하다. 당 지지율이 25% 밑으로 내려가면 이 대표 단독 체제로는 힘들다는 비명계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며 “차기 총선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완패하거나 의석수에서 뒤지면 이재명 카드로는 당을 이끌고 나가기는 힘들다. 총선 성적표가 패배로 나타난다면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나 이낙연 전 총리의 재등장을 통한 집단지도체제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율 교수 역시 “민주당 분당은 어불성설”이라면서도 “사법 리스크는 이 대표에게 우호적인 정치적 팬덤을 통해 극복해 나갈 수밖에 없다. 다만 총선 이후까지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재원 교수도 분당 가능성이 낮다는 데 동의했다. 차 교수는 “사법 리스크로 이 대표가 무너질 경우 오히려 친명과 비명이 정치 탄압을 명분으로 똘똘 뭉치면서 역설적으로 단일 대오가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변수는 국민의힘의 정치 지형”이라면서 “만일 유승민 전 의원이 차기 전대에서 승리해 국민의힘이 찢어질 경우에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당을 달리해서 해볼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