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새 증권·보험·캐피털·저축은행 부동산 PF 급증
6월 말 금융권 부동산 PF 잔액 112조2000억 원
강원도의 레고랜드 채무보증 거부 시사에 시장 패닉
전국 미분양 확대 분위기, 정부 근본 대책 절실
10월 강원도가 레고랜드 채무보증 거부를 시사하면서 부동산 PF 시장이 패닉에 빠져 제2의 저축은행 사태까지 거론되는 모양새다. 사진은 5월 어린이날 정식 개장한 강원 춘천시 레고랜드. [레고랜드 코리아]
일각에서는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시 정부가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규제를 강화한 데다 건설사들 역시 신중하게 사업을 운영해 왔다는 설명이다. 리스크가 그때만큼 크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다.
다만 규제에 허점이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저축은행이나 은행들이 부동산 PF 대출을 신중하게 다룬 것은 사실이지만, 증권사와 보험사, 캐피털사 등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점에서다. 특히 지난 정권 내내 부동산시장이 호황을 기록하면서 부동산 PF 규모가 급격하게 커졌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사업을 빠르게 확대했던 건설사들은 물론 증권사와 보험사, 캐피털사 등이 시장 침체기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PF는 부동산개발사업의 미래 현금 흐름을 예측해 대출해 주는 방식을 지칭한다. 과거에는 건설사들이 부지 매입과 시공, 분양 등을 모두 맡아 사업을 진행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시행과 시공을 분리하는 사업 구조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부지 매입과 각종 인허가, 분양 등은 전문 시행사가 맡고, 건설사는 공사비를 받고 건물을 짓는 식이다.
지난 정권 급격히 늘어난 부동산 PF, 부실 우려
이때 시행사는 금융사에 해당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믿고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금융사는 미래의 분양 수익 등을 평가해 자금을 댄다. 대신 건설사도 이 과정에서 일종의 연대보증을 하게 된다. 혹여 사업이 잘못되더라도 건설사가 일정 부분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이다.부동산 PF는 경기가 호황일 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역과 입지 등을 막론하고 수요가 많기 때문에 건설 현장 대부분에 현금이 쏟아져 들어오는 덕분이다. 하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사업성에 따라 부실화하는 사업장이 늘면서 대출을 해준 금융사들 역시 타격을 입게 된다.
과거 저축은행들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인 2000년대 초중반에 이런 부동산PF 대출을 적극적으로 취급했다. 금융위기 이후 곳곳에서 사업이 부실화하면서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해 줄도산이 현실화했다.
이에 따라 당시 금융 당국은 저축은행들에 부동산 PF 대출 부실이 전체 금융권을 흔들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했다. 1건당 대출금액을 120억 원으로 제한한 게 대표적이다. 대출을 많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한 셈이다.
저축은행업계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79개 저축은행이 취급한 부동산 PF 대출 규모는 10조8000억 원가량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국내 전 금융권의 부동산 PF 잔액 112조2000억 원의 10%도 되지 않는다. 절대적 규모에서는 큰 금액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흐름이 좋지 않고, 질이 나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일단 저축은행들이 2012년에 취급한 부동산 PF 대출 규모는 2조7000억 원 수준이었는데 이 금액이 10조 원대로 늘었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 정권 부동산 호황기와 맞물리면서 10년 동안 지속해 늘어 결국 네 배가량 불어난 셈이다.
특히 건당 대출액을 제한하면서 사업성이 좋은 아파트 등 큰 사업장에는 저축은행이 참여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지적된다. 저축은행들이 취급한 대다수 PF 대출이 사업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중소형 사업장에 치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저축은행 부동산 PF 대출의 87.5%가 시공사 신용등급이 ‘투기·무등급’이었다.
저축은행뿐만 아니라 시장은 다른 금융업권도 주시하고 있다. 저축은행이 규제에 억눌려(?) 있는 사이 보험사와 캐피털사, 증권사 등이 경쟁적으로 부동산 PF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대출액이 가장 많은 곳은 보험업권이다. 6월 말 기준 보험업권이 보유한 부동산 PF 대출액은 43조3000억 원이다. 이는 10년 전인 2012년 말 4조9000억 원보다 10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여신전문회사(카드·캐피털)의 부동산 PF 대출액도 2012년 말 2조8000억 원에서 26조7000억 원으로 크게 확대됐다.
다만 업권에 따라 보유한 대출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 PF 대출은 본대출과 브리지론으로 나뉘는데 보험사들은 시공이 결정된 후 자금을 대는 본대출에 주로 참여했다. 규모 자체가 크긴 하지만 대출의 질이 나쁘지는 않은 셈이다.
반면 캐피털사들의 경우 주로 브리지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브리지론이란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토지 매입과 인허가, 시공사 보증에 필요한 자금을 대는 것을 말한다. 본격적인 사업 전에 대출을 내주는 만큼 본대출로 연결돼야 대출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업 진척이 잘 안되면 그대로 자금이 묶인다. 부동산 침체기에는 브리지론의 리스크가 크다. 프로젝트 자체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탓이다.
증권사의 경우 다른 방식으로 부동산 PF 시장에 뛰어들었다. 부동산 PF 시장은 기존의 대출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바로 ‘유동화’다. 쉽게 말해 대출금을 담보로 증권을 만들어 여러 이해관계자가 돈을 투자하고 이자를 받아 가도록 설계한 기법이다. 증권사는 이런 업무를 주관하면서 채무보증을 서기도 했다. 해당 프로젝트가 잘못되면 증권사가 이를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다.
증권사의 PF 대출 잔액은 올해 6월 말 3조3000억 원으로 보험사 대비 규모가 적은 편이다. 하지만 PF 대출 관련 채무보증이 크게 늘어 6월 말 기준 24조9000억 원에 달한다.
최근 부동산 PF 부실화 우려를 크게 증폭시킨 레고랜드 역시 이와 유사한 구조로 사업을 진행하다가 어긋나면서 심각한 자금시장 경색을 초래했다. 이 사업의 경우 증권사가 아닌 강원도가 보증을 섰는데, 이후 사업이 차질을 빚자 강원도가 사실상 채무보증 거부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장이 패닉에 빠졌다. 이후 금융사들이 줄줄이 부동산 PF 관련 대출을 옥죄는 모양새다.
부동산 PF 부실화時 금융사도 동반 위험
무엇보다 금융사들의 이런 대출과 채무보증 등은 해당 부동산을 팔아야 원금과 이자를 회수할 수 있는데, 최근 시장 침체로 수요가 위축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여겨진다. 특히 주택시장의 경우 전국 미분양 가구가 지난해 말 1만7710가구에서 9월 말 4만1604가구를 기록하며 빠르게 늘고 있다. 건설업계에 돈이 안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의미다.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의 사태는 미분양이 급증한 영향으로 현금이 돌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기보다는, 금리인상으로 인한 자금시장 경색과 레고랜드 사태라는 돌발 변수가 초래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실제 곳곳의 사업이 부실화하면서 금융사들이 대출 원금과 이자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부동산 PF에 대한 공포감이 금융권에 빠르게 확산하면서 건설사들이 자금 조달을 하지 못해 곳곳에서 곡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건설사나 시행사가 부실화해 대출금을 갚지 못하게 되고, 금융사 역시 어려움에 빠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최근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50조 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놨는데, 여기에 더해 부동산시장 침체 장기화 등을 대비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저축은행 사태의 재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