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측 “쿨하게 처리하면 그만입니다”
법적 근거 마련 안 한 책임, 文 청와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취지 어긋나지 않아
5~11월 사이 국유재산 사용·수익한 셈
北, 개를 ‘선물 가능한 물건’ 취급했거늘…
2018년 10월 12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외신 인터뷰를 하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풍산개 ‘곰이’와 ‘송강’을 소개하고 있다. [동아DB]
11월 5일,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에 올라온 게시물 중 한 문장이다. 평산마을 사저에서 기르던 풍산개 세 마리의 양육비 지원을 거부하는 현 정권을 비판하며, 그렇다면 개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문제의 개는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선물 두 마리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 한 마리다. 북측에서 받은 두 마리는 원칙적으로 국가 정상끼리 주고받은 선물이므로 대통령기록물이 되며 대통령기록관에서 관리해야 한다.
임기가 거의 끝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정든 개를 두고 갈 수 없다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인정에 호소하는 요구를 했고 윤 당선인은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김정은의 선물인 풍산개 송강, 곰이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다운이는 문 전 대통령의 양산 사저로 향했다. 5월 4일의 일이다. 그리고 11월 6일, 그러니까 SNS에 글이 올라온 지 하루 만에 풍산개 두 마리는 양산 사저를 떠났다.
훨씬 중요하고 근본적 논점
전직 대통령이 기르던 개를 돌려보냈다. 그 이유를 따져보면 결국 돈 때문이다. 대다수의 시민은 이 사안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문재인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경호, 비서실, 그 외 다양한 혜택을 제공받고 매달 1390만 원의 연금을 받는다. 그런 그가 고작 개 사료값 50만 원을 내기 싫다며 남북 정상회담 기념 선물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애견을 대통령기록관에 돌려보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후 문재인이 개를 데리고 있을 때의 어색해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 그리 건강해보이지 않는 풍산개들의 상태 등을 담은 사진 등이 다시 주목받았다. 설령 애견인이 아니라 해도 공분할만한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그러나 이 사안을 그러한 차원에서만 바라볼 수는 없다. 문재인이라는 한 사람이 개를 진짜 좋아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단지 사진을 찍을 때만 이용했을 뿐인지 등은 공적으로 논의할만한 주제가 못 된다. 사료값 50만 원을 아까워할 정도로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지, 그럼에도 200만 원의 인건비를 요구한다면 애초에 개를 데려가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닌지 따위도 ‘신동아’ 지면을 통해 논할만한 일은 아니다. 이 사안에는 그보다 훨씬 중요하고 근본적 논점 세 가지가 얽혀 있다. 법치주의, 동물권 및 인권, 그리고 북한에 대한 포용의 한계가 그것이다.
전반적 여론은 문재인과 비서실에 호의적이지 않지만, 한 가지 언급해야 하는 요소가 있다. 대통령기록물인 개를 전직 대통령 본인이 계속 기르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며, 법적 근거 또한 미비하다는 항변만큼은 타당하다는 것이다. 현행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6조의3 2항은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의 장은 제1항에 따라 등록정보를 생산·관리하고 있는 대통령선물이 동물 또는 식물 등이어서 다른 기관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것인 경우에는 다른 기관의 장에게 이관하여 관리하게 할 수 있다.”
핵심은 여기서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보좌기관인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경호기관인 대통령경호처, 그 외 여러 자문기관 및 소속위원회가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에 속한다. 여기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기록물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곳이지 대통령기록물을 ‘생산’하는 기관이 아니다. 다시 말해 해당 시행령 제6조의3 2항은 대통령기록관이 대통령기록물인 풍산개를 문 전 대통령 비서실 측에 위탁할 수 있을만한 법적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시행령을 누가 만들었는가? 3월 29일, 당시만 해도 현직 대통령이던 문재인의 청와대가 만들었다. 왜 만들었는가? 풍산개를 평산마을로 데려가기 위해서다. 그리고 대통령기록관과 문재인 비서실은 풍산개를 반환 혹은 멸실(사망) 시까지 데리고 있겠다는 위탁협의서를 작성했다. 그 협의서에 따라 풍산개들은 청와대를 떠나 양산으로 향할 수 있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
정리해보자. 문재인 측에서 풍산개를 데리고 있을 법적 근거가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했고 그럴 수 있던 시점에 제대로 된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않은 책임은 결국 문재인의 청와대가 질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청와대에서 뜻한 바대로 시행령을 만들 수 있던 시점에 엉뚱한 시행령을 만들었으니 말이다.게다가 문재인 비서실에서 요구하는 시행령 개정안은 현 정부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난감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역시 전문을 읽어보자.
“제2항에도 불구하고 동물 또는 식물 등인 대통령선물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된 경우에는 대통령기록관의 장이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기관 또는 개인에게 위탁하여 관리하게 할 수 있다. 이 경우 대통령기록관의 장은 수탁받은 기관 또는 개인에게 예산의 범위 내에서 필요한 물품 및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
많이 거론되고 있는 “물품 및 비용 지원”도 그렇지만 눈에 띄는 구절이 하나 더 있다. 문재인 측에서 잘못 만든 현행 시행령 제6조의3 2항은 대통령선물을 위탁관리할 수 있는 주체를 “다른 기관의 장”으로 정하고 있다. 반면 동법 시행령 개정안 3항은 “기관 또는 개인”으로 범위를 확 넓혔다.
필자로서는 이 대목이 더욱 의아하게 느껴진다. 문재인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나는 나의 비서실을 해산하고 완전한 일개 시민으로 돌아간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문재인과 문재인 비서실은 한 몸으로 붙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풍산개를 문재인이 반려동물로 키우고 싶은 목적이라면 문재인 비서실이라는 기관에서 맡아서 기르면 충분하다. 왜 굳이 ‘개인’을 넣었는가. 문재인 비서실 바깥에 있는 누군가가 그 개를 맡을 여지를 주는 것 아닌가.
여기서 잠시 대통령선물로 받은 동물을 처리한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북한으로부터 풍산개를 선물 받았다. 그의 임기 후 개들은 서울대공원에 위탁됐고 4대를 넘어 잘 번식하고 있다. 대통령기록물인 개를 다른 기관에 위탁할 수 있는 명백한 법적 근거는 당시에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상식으로 볼 때 대통령기록관보다는 서울대공원이 해당 풍산개에 더 유리한 환경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된다’는 법과 시행령이 없이도 일 처리가 가능했던 것은 그래서였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모든 대통령기록물은 법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다. 기록이 훼손되거나 손실되거나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아무리 길어도 20년을 살지 못하며 한국에서도 흔한 품종인 풍산개는 익숙한 주인과 함께 살 수 있게 배려해도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 ‘법이 없어서 개를 못 키우겠다, 데려가라’는 문재인 측의 주장은 그런 면에서 잘못됐다. 이유가 뭐가 됐건 기르던 개를 내보내는 건 야박한 처사다. 법치주의는 그런 행동의 핑계로 대라고 있는 게 아니다.
인권변호사와 동물권
문재인은 정계 입문 전부터 인권변호사로 알려진 인물이었고, 대통령 후보 시절에는 동물권에도 우호적인 목소리를 냈다. 청와대에 들어간 후에는 유기견 ‘토리’를 입양한 바 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사안을 통해 특정인의 동물 애호를 넘어 동물권과 인권이라는 전반적 개념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윤석열 퇴진 운동을 벌이는 단체 촛불승리전환행동의 공동상임대표인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11월 7일 SNS에 올린 게시물을 살펴보자. “특별한 사유가 아닌 비용 문제라고 하니 솔직히 퇴임 당시 보여준 모습과 함께 황당하다”며, 그는 “들여다보면 (문제는) 법적으로 동물을 물건 취급하는 것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물을 사고팔거나 주고받는 물건이 아닌 인격체로 다룬다면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소리다.
과연 그럴까? 안타깝게도 잘못된 진단이다. 이 논란은 동물의 소유권과 사용·수익권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촉발됐다. 문제의 풍산개는 대통령선물로 국가에 소유권이 있다. 하지만 문재인이라는 사람이 대통령 퇴임 후에도 그 개를 반려동물 혹은 애완동물로 삼고자 했다. 문재인의 풍산개 애완 행위는 동물을 기르면서 발생하는 정서적 만족감이라는 이익을 얻는 것이다. 그는 5월부터 11월까지 국유재산을 사용·수익한 셈이다.
소유자와 사용수익권자가 서로 다른 경우, 대체로 사용수익권자가 소유권자에게 대가를 지불한다.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집주인에게 월세나 전세금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번 논란은 정반대로 진행됐다. 국유재산을 사용·수익하는 자가 해당 재산의 소유자인 국가를 상대로 비용을 지불하라고 요구하더니,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용·수익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 재산을 반환했다.
동물권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지 말자, 생명으로 또 인간과 교감하는 정서적 존재로 바라보자, 등은 모두 좋은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결국은 소유권을 분명히 하는 것, 동물을 기르는 자가 직접 그 동물을 소유하며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해법일 수밖에 없다. 조금 더 넓혀보자면 인권 역시 마찬가지다. 현존하는 법적 시스템을 존중하고 또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인권의 보편성을 지킬 수 있다.
11월 10일 대구 경북대 수의과대학 부속 동물병원 앞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선물 받아 키우던 풍산개 ‘곰이’와 ‘송강’이 산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정권의 한계와 모순
아주 근본적 차원으로 들어가 보자. 애초에 북한에서 풍산개를 선물로 주지 않았다면 이런 논란이 생길 수도 없었다. 2018년 북한이 우리에게 준 선물은 애물단지가 돼버렸다.개처럼 주인과 정을 주고받는 동물이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팬더나 따오기 등 희귀동물을 국가 차원에서 선물로 제공하거나 대여해주곤 한다. 한국처럼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나라에서도 때로는 처치가 곤란하다. 경제력이 약한 제3세계 국가에서는 더 큰 골칫거리가 되곤 한다. 주는 쪽의 체면만 고려할 뿐 받는 쪽의 처지는 신경 쓰지 않는 퍽 자기중심적인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동물을 물건처럼 취급하지 말자, 애완동물 역시 가게에서 사지 말고 유기동물을 입양하자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세상에서, 국가 정상끼리 동물을 선물로 주고받는 것은 오늘날의 상식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그런 보편적 감수성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나라, 그저 ‘우리에게는 이렇게 진귀한 동물이 있다’고 자랑하고픈 권력자의 의지만이 중요한 나라에서나 제공할 법한 선물이다.
문재인 정권 당시 ‘북한에서 선물 받은 풍산개’를 남북평화의 상징처럼 홍보했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더욱 얄궂게 느껴진다. 우리 국민을 향해서는 개는 물건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하더니, 북한이 개를 ‘선물 가능한 물건’ 취급하는 것은 왜 그렇게 반갑게 여겼는가.
이 모순 속에 문재인 정권 5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과 그의 여당은 자국민 중 지지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한없이 고압적이었으며, 반대로 북한을 대할 때는 한없이 저자세로 일관했다. ‘문재인 풍산개 논란’은 지난 정권의 한계와 모순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신동아 12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