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미는 어획량이 많고 값이 저렴해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생선이다. [Gettyimage]
양념 먹으면 쫄깃해지는 살집
가자미조림. [Gettyimage]
꾸덕꾸덕하게 마른 가자미를 서너 토막으로 내어 고춧가루, 간장, 다진 마늘, 송송 썬 파 같은 갖은 양념을 넣고 만든다. 조림이라고 하기엔 물기가 없다. 가자미가 양념 국물을 완전히 먹어치울 때까지 끼얹고 뒤집어가며 지지듯이 바짝 조리기 때문이다. 맛좋은 양념에 버무려 뚜껑을 덮고 가만히 두어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 맛이다. 뜨거운 김을 쐬며 부지런히 손을 놀려야 온전하고 깊숙하게 양념을 머금은, 윤기 나는 가자미조림을 만들 수 있다.
안 그래도 바닷바람에 마르느라 여물어지고 얄팍해진 가자미의 살집이 양념을 먹으면서 단단해지고 쫄깃해진다. 나는 생선을 좋아하지만 기술이 부족한 터라 몸통의 살만 뜯어 먹는다. 괘씸한 며느리 같지만 우리 어머님은 내가 가지런히 남겨둔 지느러미를 사탕처럼 빨아 드신다. 손발이 척척 맞는 셈이다. 갓 지은 흰 쌀밥에 가자미조림 몇 쪽만 있으면 우리는 모녀처럼 앉아 푸지게 밥을 먹는다. 실은 맛좋은 가자미조림은 매운 닭발 먹듯이 손으로 들고 쪽쪽 빨아 먹는 게 답이다. 젓가락으로 헤집다가는 살집 뜯느라 힘들고, 지느러미 발라 먹느라 시간만 든다. 그러다보면 양념 맛도 조각이 나버리는 기분일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어머님은 그 맛좋은 반찬을 며느리 앞에 밀어주고, 뱃살도 떼어주고 십 년째 조각난 양념만 겨우 드셨나 싶은 송구한 마음이 든다.
가자미구이. [Gettyimage]
‘노란 띠’ 참가자미, ‘반점 6개’ 물가자미
몸에서 점액이 나오는 물가자미. [Gettyimage]
내가 수년간 가자미를 먹다 보니 흔하게 만나는 게 참가자미와 물가자미다. 이름만 들으면 참가자미가 맛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참’이라는 접두가가 가진 힘이다. 참죽, 참뜻, 참사랑, 참숯이 보여주듯 ‘진짜 좋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반면 물가자미는 역시나 ‘물’이 붙는 바람에 허툰 것이거나, 싱거움, 물은 맛이 날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둘을 구분하자면 참가자미의 살은 도톰하고, 물기가 많아 부드럽고 촉촉하다. 배 쪽을 보면 지느러미 근처에 노란 띠가 선명해 다른 가자미와 금방 구분이 된다. 물가자미는 이름과 달리 참가자미보다 살이 단단한 편이다. 몸에서 점액이 나오며 등껍질 쪽에 6개의 반점이 또렷하게 있어 역시 명확히 구분된다. 간혹 기름가자미라고도 불리는데, 기름가자미라는 종류는 따로 있으며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
우리 어머님의 선택은 언제나 물가지미다. 참가자미는 비린내가 적고 맛과 살이 워낙 순해 오히려 심심하고, 배릿한 맛이 깃든 물가자미가 더 맛좋다고 평한다.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양쪽 모두를 숱하게 먹어본 나 역시도 물가자미 편에 서고 싶다.
동해의 재래시장에 가서 ‘미주구리’를 찾으면 대체로 물가자미다. 생물도 있지만 대체로 어느 정도 물기 없이 말린 것이다. 바구니에 둥글게 널어 수북하게 쌓아 두거나 빨랫줄에 가지런히 걸어 놓고 열 마리, 스무 마리씩 싸게도 판다. 이걸 구해 냉동실에 두었다가 기름을 살짝 발라 그릴에 굽거나 찌고, 솜씨는 부족해도 양념 넣어 조려 먹으면 감칠맛이 꽤나 좋다. 겨우내 마른 가자미를 하나씩 하나씩 꺼내 먹다 보면 어느새 횟감 가자미가 나오고 쑥국에 도다리 넣고 끓이는 봄이 성큼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