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당대회 앞두고 나온 美 보고서
냉전기 ‘땅따먹기’ 목표하는 것 아냐
시진핑·왕이, 일거수일투족 훈계하지만…
이이제이, 선전선동, 안전불감증 유발
지정학적·지경학적 가치 활용할 때
[Gettyimage]
당대회를 며칠 앞둔 10월 12일, 미국은 국방안보전략(NSS) 보고서를 통해 탈냉전기의 종결과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을 선언했다. 강대국 경쟁 시대의 개막을 알린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을 독보적 경쟁 대상이자 최대 위협으로 정의했다. 10월 27일 발간된 미국 국방부의 국방전략(NDS) 보고서는 중국을 “기존의 국제질서를 바꾸려는 의지와 이를 달성할 수 있는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과 기술력 등을 모두 유일하게 갖춘 나라”로 지목했다. 또한 ‘다양한 영역에서의 위협(multi-domain threat)’이라며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나라로 규정했다. 이 보고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중국, 유럽에서는 러시아를 위협의 대상으로 봤다. NSS와 NDS 보고서 공히 도전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과 우방 간의 연대를 촉구했다.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 뉴시스]
압박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시진핑 3기의 중국은 미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할 태세다. 시진핑 정권이 처음 출범한 2012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한 국정목표와 일정 등이 담긴 ‘중국몽(中國夢)’이 발표됐다. 2049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이 돼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과 우수성을 세계에 입증하겠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2013년 당 간부 회의에서 이런 결의를 알렸다. 그는 ‘자본주의가 소멸하고 사회주의가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2017년 제19차 당대회 보고에서는 사회주의 시스템 강화를 촉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이 말의 의미를 중국인들에게 직접 보여줄 기회를 갖게 된다. 2021년 9월 ‘제로 코로나’ 정책 승리를 치하하는 자리였다. 그는 공을 ‘우월한 사회주의 방역체계’로 돌렸다.오늘날 중국이 상정하는 체제 경쟁은 냉전 시기의 그것과 다르다. 지리적으로 세를 확장하고 규합해 진영을 이루는 ‘땅따먹기’ 경쟁이 아니다. 기존 체제(민주주의, 자본주의 등)보다 중국이 추구하는 체제가 더 우월하고 우수하다는 점을 국력과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입증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2009년 독일을,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 반열에 올랐다. 이제 중국에 남은 경쟁 대상은 미국뿐이다. 중국이 미국을 능가해야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고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이 됐다는 점을 선언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에 앞으로 10년은 경쟁에서 승리할 터전을 닦는 중요한 시기다. 이번 당대회는 앞으로 5년을 두고 그 기반을 구축해야 하는 관건적인 시기로 규정했다. 이 기간에 중국 공산당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 내부에서 사회주의 시스템의 기반을 닦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외부 세계의 질서가 중국의 국익과 전략 이익에 더욱 부합하도록 개선·변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시진핑 3기의 중국은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총력전을 펼 것이다. 미·중관계에 내재적으로 병존하는 협력과 갈등 성질 중 후자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전망이다.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는 우리 외교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체제 경쟁을 하는 두 나라 사이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요소는 가치와 이념이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추구한다. 중국과 이 대목에서 상충할 수밖에 없다. 대개 각기 다른 이념과 가치를 가진 나라 사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 ‘책임 전가’다. 서로 다른 이념과 가치를 가진 나라는 책임 소재에 대한 인식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문제 해결을 위한 절충점은 고사하고 접점마저 찾기 어렵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남북관계에서 이미 경험하고 있다. 그렇기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의 선택은 자명하다. 이 말인즉슨, 미국의 두 전략 보고서가 우려하듯 한국에 대한 중국의 고압적 압박(coercion)도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中 저의 직시해야
10월 12일 중국 베이징 한 전시장에서 마스크를 쓴 언론인과 관람객들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10년 업적을 선전하는 전시회를 둘러보고 있다. [AP 뉴시스]
사실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 전략은 중국에서 우연히 시작됐다. 2013년 북한이 3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중국이 독자적 대북제재에 나섰다. 당시는 한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설도 나돌면서 중국의 압박이 시작될 때였다. 이듬해 11월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는 사드가 양국관계를 순식간에 파괴시킬 수 있으며, 회복하는 데 오래 걸릴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2016년, 사드 배치 결정이 이뤄지자 중국은 한국에 즉각 보복 조치를 취했다. 지금까지 이는 유지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북제재와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가 모두 이뤄졌다. 중국이 남북한에 동시에 제재를 가한 것은 한반도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의도된 전략적 계산의 결과는 아니었다. ‘어찌하다 보니’ 중국이 남북한의 고삐를 동시에 쥐어 잡는 형국이 만들어졌다. 이런 호기를 중국이 놓칠 리 없다. 왜냐하면 보복 효과가 우리 사회에서 극명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미동맹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서 한국이 중국의 반응을 선제적으로 두려워하고 우려하는 악습관을 내보인 탓이다.
이후 중국은 시진핑의 역사의식과 같이 한반도를 종속시키기 위한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2018년 6월 시진핑은 방문한 김정은에게 ‘3개의 불변’ 사항을 제시했다. 즉 중·북관계의 공고한 발전에 대한 확고한 입장, 중국의 대북 우호와 우정, 그리고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지지가 불변하다는 것이었다.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도 든든한 후견인(중국)이 존재한다는 점을 사전에 확인해준 셈이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일거수일투족에 훈계를 일삼고 있다. 가령, 시진핑과 왕이 외교부장은 2019년 6월과 12월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양국 관계가 외부 압력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2021년 6월에는 5월에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우리의 ‘늑장’ 보고를 지적했다. 그리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우리의 협력 강화 입장을 비판했다. 왕 부장은 한국을 두고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하고,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며 정치적 공감대를 지키고 잘못된 장단에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질책했다.
한국 외교가 처한 상황은 미국과 중국 중 누구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우리와 공조하려는 의도와 목적을 냉정히 판단해야 하는 문제다. 중국은 영향력 확대를 통해 한국을 복속하려는 것이다. 이런 중국의 저의를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대(對)중국 전략의 대명제라고 할 수 있다.
군사도발, 독자적으로 억제 못 해
한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국내에서 중국에 대한 ‘공포증(차이나 포비아)’이 커질수록 중국이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의 수도 증가한다. 최근 중국이 한국에 구사하는 전략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선전선동, 반복학습으로 인한 안전불감증 유발 등을 아우른다. 하나씩 살펴보자.우선 이이제이로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고 관계를 이간시키려 한다. 사드 배치가 이 전략을 발현시켰다. 사드가 주한 미군기지에 배치되는 미국의 전략자산임을 중국은 누구보다 잘 안다. 게다가 주한 미군기지가 한국의 치외법권 지역인 사실도 너무 잘 안다. 그럼에도 중국이 한국만 보복한 이유는 한국의 정치문화와 반미운동의 역사를 잘 알기 때문이다. 외부 압박에 쉽게 동요하는 한국 사회를 한미동맹 이간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 돌을 던지면 그 파장이 양 갈래로 분화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은 한미동맹에서 한국이 약한 고리라고 치부하고 있다.
중국은 또 지난 수년 동안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과 영해 및 수역에 무단 진입을 일삼고 있다. 중국의 행동은 1986년 확정된 해상작전전략개념의 연장선에서 작동한다. 이 개념은 유사시 한국의 바다와 하늘을 중국의 방어 대상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중국은 평시에 이런 개념을 관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한다. 같은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한국의 안전불감증을 유발하는, 즉 반복학습 효과를 노리는 전략이다.
중국 공군의 전투기가 우리 영공과 근접 지역의 비행을 일삼고, 해군의 군함이 서해 중간선 수역에 매일 출몰하면, 우리도 어느새 이를 의례적이고 일상적인 일로 착각할 수 있다. 중국의 되풀이되는 군사행동에서 위협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중국의 평시 군사 활동을 ‘정상’적인 것으로 인지하며 우리의 하늘과 바다의 주권이 잠식되는 것을 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군사적 도발 행위를 한국의 독자적인 힘으로 억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기에 외부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 한미동맹뿐 아니라 가용 가능한 외교 자원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여기에는 제도라는 평화적인 수단이 적격이다. 중국이 이를 엄격히 준수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美 의회 입법 과정 근거해 전략 짜야
미국이 현재 주도하는 대중국 전략 구상의 핵심은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하는 데 있다. 미국은 중국이 국제법과 규범, 제도를 준수하길 희망한다. 앞서 언급했듯 앞으로 10년 동안 미국은 이를 위해 중국을 계속 압박할 것이다.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첨단과학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려 한다. 이는 지금 당장 중국의 접근을 중단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앞으로 중국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첨단기술 및 제품이 중국에 이전되고 공급되는 것을 엄격히 통제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구체적으로, 하위 수준의 반도체가 중국에서 생산·유통·판매되는 것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상위 수준에서 엄격한 통제를 꾀하겠다는 목적이다.미국의 의도는 비단 반도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회기에 미국 의회에 상정된 경제안보 관련 법안만 해도 수십 개다. ‘반도체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바이오법’ 등 대표 법안은 이미 통과됐다. 미 의회에 상정된 법안의 영역과 범위도 다양하다. 일례로, 현재 두세 가지의 정보통신법이 하원에서 가결됐다. 다음 회기 때 상원에서 이들 법안의 통과를 예측할 수 있겠다.
대만과 관련해 미국 의회는 이번 회기에 10여 개의 법안을 상정했다. 모두 대만의 방위와 방어 능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는 ‘대만무장법’도 포함된다. 대만해협지역에서 전략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함이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 전략경쟁은 최소한 2024년 대만 총통 선거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다음 회기에서 이들 법안의 통과 여부를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대중 전략은 의회의 승인을 전제로 삼는다. 관련 구상이 입법화돼 재정 지원을 받아야 정책적 실효를 발휘한다. 그렇지 않은 행정부의 단독적인 언사는 수사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하는 경우에도 미 의회의 입법 과정에 근거해야 명분도, 논리도 확보할 수 있다.
휘어지나 부러지지 않는
3월 11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접견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축전을 받은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지정학적 면에서 보면 중국의 해상작전전략개념에서 한국의 지리적 위치는 중국에 눈엣가시 격이다.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이 그 중심부에 위치한다. 중국이 2020년에 한중안보전략대화를 차관급으로 격상하자고 제안한 건 이 때문이다. 지경학적인 면에서는, 중국의 4차산업 발전에 있어 한국의 협력은 필수불가결하다. 이와 관련해 2022년 8월 2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한국 언론 인터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우리의 칩(chip)4 참여를 노골적으로 반대하면서도 “칩4를 할 거면 중국까지 포함해서 칩5를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렇게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변한 상황에서 중국은 사드가 한중 양국관계의 발전에 더는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수차례 피력했다. 2016년 이후 중국은 사드 문제를 한중 양국의 “중대 관심사(彼此重大關切)”로 포장하고 있다. 사드 문제를 덮어두고 가려는 의중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은 중대 관심사라는, 명확하지도 않고 전략적으로도 모호한 용어를 쓰면서 내부 반발을 진정시킬 만한 여지를 만들려고 한다. 양국의 중대 관심사가 사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둘러댈 수 있다는 의미다. 양국의 관심사는 2단계 FTA(자유무역협정) 체결부터 전략안보대화까지 다양하다. 따라서 한국도 ‘중대 관심사’의 해결을 원한다며 중국의 언사에 호응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는 사드 문제를 덮는, 그리고 한중관계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명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8월 한중외교장관회담에서 우리 측이 또 다시 ‘사드’라는 두 글자를 직접 언급하면서 한중관계의 발전 기회를 스스로 박차 버렸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서 한국 외교는 판세를 정확히 읽고 수를 내다보며 상대와 ‘딜(deal)’을 해야 한다. 한국의 지정학적·지경학적 전략 가치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상대방의 ‘니즈(needs)’를 파악해 우리만의 수를 갖고 대응해야겠다. 특히 최대한으로 ‘휘어지나 부러지지 않는’, 즉 유연한 전략 사고와 자세로 외교를 구사해야겠다. 상황 변화에 즉각 적응해 국익을 최대화 또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게 외교의 본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