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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쥐 계모’의 심리 남인데 남이 아니라 학대한다

  • 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 저자 artppper@hanmail.net

‘팥쥐 계모’의 심리 남인데 남이 아니라 학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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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붓자식은 ‘제거 대상’?

성격이 모난 탓에 이혼했다면 재혼을 해도 모난 성격은 사라지지 않는다. 성격파탄자인 남편은 새 아내와의 사이도 원만할 수 없어 아내가 데려온 의붓자식에게 화풀이를 한다. 성격파탄자인 아내도 남편이 데리고 온 의붓자식에게 화풀이를 한다.

이렇게 성격장애를 지닌 이들은 친자식도 학대한다. ‘무늬만 부모’일 뿐 아이를 제대로 키울 능력이 없다. 아이가 말을 안 듣거나 울면 때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들은 재혼하기 전에도 자신의 아이를 학대했다. 친자식, 의붓자식을 가리지 않는다. 이런 남자, 이런 여자와 살다보면 서로 닮게 된다. 원래는 아이를 때리지 않던 사람도 배우자가 아이를 때리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때리게 된다. 폭력이 전염되는 것이다.

친자식은 없고 의붓자식만 있다면 더 쉽게 학대하는 경향이 있다. 결혼 전에는 의붓자식을 잘 키우겠다고 다짐하지만, 남편의 태도에 따라 아내의 생각은 바뀐다. 남편이 꼬박꼬박 집에 잘 들어오고 아내에게 잘하면 계모가 아이를 학대할 개연성도 줄어든다. 반대로 남편이 술 마시고 밖으로 돌아다니면 계모의 학대 가능성은 높아진다. 더욱이 자기 자식이 생기기 않으면 더 불안해진다. 남의 자식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인생 종 칠 것 같다.

양쪽 모두에게 의붓자식이 있다면 계모가 대놓고 자기 자식을 편애하기는 쉽지 않다. 이 경우, 보통 상대방이 보는 앞에서는 공평하게 대하는 척하면서 상대방이 없을 때는 차별한다. 자신은 차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못한 것을 바로잡으려 할 뿐이라고 합리화한다. 자기 자식이 잘못한 것은 눈에 안 띄고, 남의 자식이 잘못한 것은 자꾸 눈에 띈다.

의붓자식보다는 내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돈도 많고 여유가 있다면 내 자식에게도 잘해주고 의붓자식에게도 잘해주면 된다. 하지만 형편이 그렇지 못하면 내 자식에게 상대적으로 잘해주게 된다. 의붓자식을 차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똑같이 잘해주면 되지만, 남의 자식에게 잘해주기는 싫다. 이 경우 의붓자식과 친자녀를 똑같이 학대한다. 다 같이 잘해주자니 ‘자원’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재혼 부부가 아이를 가지면 계모와 계부에게 의붓자식은 자기 자식의 강력한 경쟁 상대로 여겨진다. 미움이 더해간다. 의붓자식이 ‘제거 대상’이라는 생각마저 무의식적으로 든다. 이 글 맨앞에서 예로 든 ‘팥쥐 계모’의 경우에도 부부는 전 배우자와의 사이에 각기 딸 하나씩이 있었고, 재혼 후 아들이 태어났다. 아내에게 남편의 전처 소생 큰딸은 눈엣가시처럼 보였을 수 있다.

재혼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는 자신들의 온전한 유전자가 반반씩 공평하게 섞여 있다고 여긴다. 그러다 보면 둘 사이의 유전자를 공유한 아이 외의 나머지 자식들은 찬밥 신세가 되곤 한다.

전남편이나 전처에 대한 감정이 자녀 학대로 이어지기도 한다. 계부가 자녀를 학대하는 데엔 ‘질투의 심리’도 포함돼 있다. 재혼한 아내의 전남편이 ‘매력남’이었다면 아내가 전남편을 만나지 않을까 의심한다. 의붓자식을 전 남편에게 보내버리고 아내가 연락도 못하게 만들고 싶다. 그러지 못하면 자꾸 화가 난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남편의 전처가 매력적일수록 의심이 간다. 하지만 아이를 전처에게 보내거나 외할머니에게 보내면 양육비를 줘야 하는데 그것도 싫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이 자신과 전처를 비교하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된다. 아내의 분노는 의붓자식을 향한다. 의붓자식이 생부, 생모를 꼭 빼닮은 것 같아 꼴도 보기 싫다.  



섹스 때문에 학대한다?

재혼 후 의붓자식이 아니라 친자식을 학대하는 경우도 있다. 결혼이 깨질까 두려워 알아서 먼저 자식을 때리는 남자가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과거 결혼생활에도 문제가 있었다. 견디다 못해 아내가 떠나가면 그 아내를 닮은 자식도 미워진다. 그런데 이렇게 이기적인 남자들일수록 재혼을 서두른다. 여자가 있어야 섹스를 할 수 있기에 성급하게 재혼한다. 여자가 알코올 중독에 살림도 안 하고 낭비벽이 심해도 얼굴 반반하고 매일 섹스만 할 수 있으면 된다.

계모가 자식을 때려도 상관없다. 계모가 아이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남자가 알아서 친자식을 때린다. 결혼이 깨지는 게 싫어서다. 성매매를 하면 적잖은 돈이 든다. 어떤 계모는 아이가 속을 썩이면 성관계를 거부한다. 남편은 아이를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하고 싶다. 그래야 섹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야 어떻게 되건 상관없다.

재혼한 여자 앞에서 자기 자식이 못난 모습을 보이는 게 창피해서 미리 야단을 치는 남자도 있다. 여자들은 자신의 배로 아이를 낳았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어도 사랑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다르다. 아버지란 존재는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다. 새로 들어온 아내가 예쁘니 이전 아내가 싫어진다. 전처의 못난 자식 때문에 현재 아내를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옆에서 아내가 계속 험담을 하면 친자식이라도 결혼의 방해물로 인식된다. 나쁜 말을 자꾸 듣다보니 아이가 정말 엉망인 것 같다. 재혼한 여자가 ‘남의 아이를 돌보는 한 아이를 갖지 않겠다’면서 섹스를 기피하면 못난 자식 때문에 자기만 피해 보는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생모에게 보내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을 때는 자식을 때려 감정을 푼다.  



‘잔인한 계모’가 필요한 이유

그렇다면 재혼 후 친자식을 학대하는 아내의 심리는 뭘까. 재혼할 때 흔히 자식 핑계를 댄다. 아이에겐 아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새아빠가 있으면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물어보면 새아빠를 반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재혼을 원하는 것은 엄마다. 재혼을 결심한 순간 여자와 엄마 중에서 여자를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남자와 섹스를 하고 싶어서건, 경제적으로 편해지고 싶어서건 여자는 가정을 깨고 싶지 않다. 이런 여자는 결혼하자마자 아이에게 남자를 새아빠라고 부르도록 다그친다. 아이가 의붓자식과 싸우면 생모가 알아서 자신의 아이를 야단친다. 아이 때문에 다시 이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자기 자식이 눈엣가시 같다.  

계부가 자식을 때리면 아이가 맞아 죽을까봐 자신이 먼저 아이를 때린다는 생모도 있다. 그러면 계부가 덜 때린다는 게 이유다. 그런 결혼이라면 아이를 생각해 당장 끝내는 것이 낫다. 하지만 엄마는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엉망인 가정이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은 자신 때문이다. 경제적 의존 때문에 그런 경우라면 일정 부분 이해가 가지만. 또다시 이혼할 수는 없다는 엄마의 이기심 때문에 아이가 학대받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자녀의 처지에선 계부와 계모 중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범죄 통계를 보면 계부의 학대가 압도적으로 많다. 대다수 계모는 오히려 의붓자식 눈치를 보면서 지낸다. 의붓자식의 장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이도 많다. 그렇다면 악독한 계모에 대한 구전설화는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성모 마리아, 그리고 연속극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완벽하게 자애롭고 너그러우며 모든 죄를 용서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모성 신화’를 지녔다. 이러한 모성 신화의 대척점에는 ‘잔인한 계모 신화’가 있다. 백설공주, 장화홍련전 등에는 잔인한 계모가 빠지지 않는다. 이는 ‘투사(projection)’라는 심리현상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자신을 돌봐주는 어머니와 자신을 야단치는 어머니를 통합하지 못한다. 자신을 화나게 하는 엄마, 자신을 슬프게 하는 엄마는 자신의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친엄마를 미워하면 죄책감이 든다. 그래도 친엄마는 차마 죽고 싶을 정도로 미워할 순 없다. 엄마가 없으면 밥해줄 사람도, 재워줄 사람도, 안아줄 사람도 없다. 따라서 나도 죽는다. 그러니 착한 엄마는 살려놓고 나쁜 엄마만 죽여야 한다. 그래서 야단을 맞고 힘이 들 때 아이들은 자신의 엄마가 친엄마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친엄마의 이미지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엄마의 나쁜 점을 분리해 계모라는 상상 속 대상으로 투사한다.

실제로 나쁜 계모는 생각보다 적다. 여성은 본질적으로 모성을 가졌다. 대부분의 계모는 어느 정도 동정심을 지녔기 마련이다. 못된 생모보다 착한 계모가 더 나은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 중에는 자신도 어려서 학대받은 이가 많다. 어려서 폭력에 노출된 트라우마나 불우한 성장과정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부모의 성격을 물려받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감정 조절 못하는 뇌를 물려받은 자녀는 훗날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남이 아니라서 더 싫다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것은 아이가 말을 안 듣거나 울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뇌를 물려받은 자녀 역시 나중에 아이가 말썽을 부리면 때려서 해결하려고 한다. 가난할수록, 주거환경이 안 좋을수록, 도와줄 사람이 없을수록 아동학대는 늘어난다. 아동학대가 일어날 상황이나 환경을 물려받은 사람은 나중에 자녀를 학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다수 계모, 계부는 아이를 학대하지 않는다. 인간의 동정심은 타고난다. 착한 남자는 착한 계부가 되고, 못된 남자는 못된 계부가 된다. 착한 여자는 착한 계모가 되고, 못된 여자는 못된 계모가 된다. 재혼을 하면 내 자식은 기본적으로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내 자식을 상대방에게 책임지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계모, 계부는 친모, 친부와 같을 수 없다. 처음부터 아버지, 어머니로 불리고 대접받는 데 집착하지 말자. 차라리 남이면 이렇게 학대하지는 않는다. 남이 아니기에 더 싫다. 남이어서 학대하는 게 아니라 남인데 남이 아니어서 학대한다.





신동아 201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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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 저자 artpp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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