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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바리스타 박영순의 커피 인문학

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커피,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갔을까

  • 박영순 | 바리스타,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twitnews@naver.com

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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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상징  ‘커피 당구공’

에티오피아에 소를 키우며 사는 갈라(Galla)족이 있었다. 유목민인 이들은 자주 이동해야 했기에 간편하게 지니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것을 잘 만들었다. 그러던 중 체리처럼 빨간 열매를 씹으면 힘이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열매를 통째로 먹다가 그것의 에너지가 씨앗에 농축돼 있음을 깨닫고, 오랜 세월을 거쳐 열매를 동물성 기름과 섞어 볶아 당구공처럼 뭉쳐 가지고 다니며 힘을 써야 할 때 꺼내 먹었다.

이 방법은 여러 면에서 유용했다. 사냥을 하거나 새 주거지를 찾으려고 산속을 헤맬 때 ‘커피 당구공’은 비상식량으로 제격이었다. 입에 쏙 넣으면 곧 에너지가 불끈 솟아오르고 집중력도 바짝 높아지는 커피의 놀라운 능력은 다른 부족과의 전투를 앞뒀을 때 더욱 요긴했다. 칼디 시절에 에티오피아 부족들은 대부분 유목민이었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 주거지를 옮겨야 했기에 부족 간 마찰이 일었고 크고 작은 전투는 부족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했다.

목숨을 건 전투를 앞두고 각 부족은 커피의 각성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찾기에 골몰했다. 전투에 앞서 커피를 마시는 성스러운 의식(儀式)도 생겨났다. 의식은 커피 마시는 방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들은 그 효과가 씨에 농축돼 있음을 깨닫고 씨만 골라내 볶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기분 좋은 향기는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키웠고 ‘톡톡’ 터지는 크랙 소리는 그들에게 승리를 약속하는 신의 응답이었다.

갈라족은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커피 당구공 식문화’를 퍼트린다. 갈라족보다 고지대에 살던 오로모족에게 커피가 전해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커피나무는 해발고도가 높을수록 향미가 좋아진다. 오로모족이 더 좋은 커피 열매를 구하게 되면서 커피를 즐기는 문화는 급속히 퍼져나갔다.

에티오피아를 ‘커피의 고향’이라고 일컫는 것은 인류의 기원을 아프리카로 보는 관점과 비슷하다. 유전학적 측면에서 모계 유전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역추적해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아프리카 대륙의 한 여성이 현 인류의 기원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미토콘드리아 이브(Mitochondria Eve)’라고 명명된 이 여성은 약 2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오래된 물증은 화석인데, 에티오피아의 하다르 계곡에서 발견된 350만 년 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뼈 화석이 그것이다. 발굴단이 당시 비틀스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다이아몬드를 지닌 하늘의 루시)를 듣고 있다가 발견한 것이 인연이 돼 ‘루시’라는 이름을 얻은 이 화석의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현재까지 인류의 기원으로 대접받는다. 루시가 발굴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커피가 처음 발견된 지역으로 알려진 카파가 있다. 오늘날엔 짐마(Djimmah)라고 불린다.



‘생명의 고향’ 에티오피아

45억 년인 지구 나이를 24시간으로 가정하면 루시를 선두로 인류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오후 11시 58분이다. 지구 역사 24시에서 인류가 등장한 것은 불과 2분 전의 일이다. 하물며 커피가 발견(6~7세기로 추정)된 지는 눈 깜짝할 사이보다 짧은 100분의 4초를 지나고 있을 뿐이다.

커피나무는 아마도 인류보다 훨씬 먼저 생명력을 얻어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험준한 산악지대로, 지금까지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깊은 계곡이 많다. 식물학자들이 새로운 종자를 찾기 위해 몰려드는 곳이 에티오피아이고, 3000여 종의 종자가 그 유래를 에티오피아에 두고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커피가 세계 각지로 퍼지면서 커피 품종의 다양성은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만 품종 개량이 이뤄진 탓이다. 품종의 획일화는 종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렇기에 야생 품종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커피의 기원지 에티오피아가 갖는 진정한 가치다.

압달 카디르가 1587년에 쓴 ‘커피의 합법성 논쟁과 관련한 무죄 주장’이란 문헌이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이 문헌에 칼디와 오마르(Omar)가 처음으로 언급된다. 칼디에 대해선 시기를 적지 않고 이집트 북부 또는 아비시니아 지방의 염소지기라고 소개하면서, 그에게서 열매를 받은 수도원 원장이 효능을 알게 된 후 수도사들에게 커피 열매 달인 즙을 마셔 밤새 기도하게 했다고 적었다.

이슬람권에서 칼디의 전설은 ‘불면(不眠)의 수도원’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오마르에 대해선 1258년이라고 시기를 못 박으면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커피 열매를 달여 마신 사연을 적었다. 마호메트가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커피 열매를 알게 됐다는 이른바 ‘마호메트 기원설’은 그 출처를 알 수 없다. 무슬림들 사이에 구전돼 신화로 굳어진 듯하다.



마호메트의 커피

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커피의 유래에 관한 에티오피아의 멋진 스토리텔링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 기원설은 이슬람 문화권의 메카를 방문하는 ‘하지(Hajj)’라는 풍습에 무릎을 꿇고 만다. 당시 ‘커피를 몸속에 넣고 죽는 자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스토리가 만들어져 커피는 순식간에 전 세계 이슬람 국가에 퍼졌고, 결국 커피는 이슬람의 문화가 됐다. 그리스도 국가인 에티오피아가 커피의 원조이면서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 역사적 사실은 일면 “콘텐츠가 아무리 좋아도 유통(전파)이 약하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교훈을 준다.

커피가 마호메트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는 종교적이어서 커피 관련 교재에선 언급만 할 뿐 구체적으로 소개되지 않는다. 요지는 이렇다.

“마호메트가 동굴에서 수행을 하는데, 거의 죽을 지경이 됐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기력이 다해가는 상황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로 안내했다. 열매를 따먹은 마호메트는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2년간 가브리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따라 읽으라며 이야기를 해주는데, 살아가는 데 매우 긴요한 것이었다고 한다. 마호메트는 꿈에서 깨면 천사가 해준 말을 잊지 않도록 양피에 적었다. 이것이 코란(Koran)이 됐다.”  

이슬람 국가에선 커피의 유래가 마호메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따라서 무슬림에게 커피는 아무리 일찍 잡아도 7세기를 넘지 못한다. 마호메트는 570년 4월 메카에서 이 지역을 지배하던 쿠라이시족의 하심(Hashim) 가문에서 태어났다. 유복자라 삼촌과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이 부족은 구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일의 자손이라고 주장한다. 아브라함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의 직계로 묘사되며, 따라서 마호메트는 하느님(무슬림에게는 알라)이 창조한 성스러운 아담의 핏줄이 된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 제단을 짓고 알라신에게 기도를 올렸는데, 노아의 방주를 거치면서 흔적이 사라졌다. 그것을 다시 찾아 신전으로 꾸민 인물이 아브라함이다. 다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위치를 잃어버린 신전을 되찾은 사람이 마호메트의 할아버지다. 마호메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 사망했기에 신전을 찾은 전설의 주인공은 할아버지가 됐다.

신전은 찾아냈지만 다신교가 횡행하면서 메카의 신전은 온갖 잡신을 모아둔 공간으로 전락했다. 잡신을 모두 쫓아내고 유일신 알라만을 이곳에 모신 인물이 마호메트다. 그리고 이 신전이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카바(Kaaba) 신전이다.       

5~6세기 아라비아 반도의 신앙 형태는 다신교였다. 애니미즘적 성격이 강한 원시 종교였다. 이에 앞서 서기 70년경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유대교인들이 아라비아 반도로 내려와 유일신의 맥락을 이어갔다.



최고급 커피 名所 된 예멘

6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사산왕조 간 전쟁으로 말미암아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왕래하던 대상들은 아라비아 반도를 지나는 것을 선호하게 됐다. 덕분에 메카는 교역의 중심이 됐다. 570년경 메카를 지배하던 부족이 마호메트가 속한 가문이었고, 마호메트는 25세 때 부유한 미망인 카디자에게 고용돼 사업을 크게 성공시켰다.

그는 40세 때 카디자와 결혼해 경제적 안정을 얻으면서 영향력 있는 지위를 얻었다. 610년쯤 그는 신들린 상태의 종교적 체험을 한다. 꿈에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알라 이외엔 신이 없다는 유일신 사상을 갖게 되고, 이 사상을 주변에 전파해 종교적으로도 ‘성공’했다. 바로 이 대목에 커피 유래설이 끼어 있다. 무슬림은 마호메트에게 건강을 되찾게 해준 커피를 신성하게 여겼다. 커피를 몸에 담은 자는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팽배해져 무슬림이라면 모두 마셔야 하는 ‘이슬람의 음료’처럼 됐다.   

커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예멘은 아예 커피를 직접 재배하기에 이른다. 최우성 박사(감리교 태은교회 목사)에 따르면, 이와 관련해선 2가지 이론이 전해진다. 6세기 고대 에티오피아는 국력이 강해 홍해 건너 아라비아반도 서남부에 위치한 시바왕국(지금의 예멘지역)을 식민통치했는데 그때 자국의 야생 커피를 예멘 지역에 옮겨 심었다는 고대 에티오피아 식민지설, 1450년 에티오피아를 여행한 제말 에딘에 의해 커피 관목의 경작법과 음용법이 예멘에 전해졌다는 커피 경작법 유래설이다.

어느 이야기도 예멘을 커피나무의 고향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예멘의 토질과 기후가 커피 경작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기에 예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최고급 커피를 생산하는 명소로 찬사를 받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 대목을 종교적 시각으로 살펴보면 더욱 흥미롭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공통 경전인 구약성경 창세기에 따르면 태초에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 신은 세상의 모든 동·식물을 만들었고, 땅엔 각종 씨 맺는 채소와 나무가 자라났다. 신은 세상을 창조한 후 에덴이라는 동산을 만들고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 동산을 다스리게 위임했다.

에덴동산엔 4개의 강이 흘렀는데 기혼, 비혼, 힛데겔, 유브라데다. 유브라데 강은 현재 이라크의 유프라테스 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혼 강은 구스온 땅에 두루 흐르고 있었는데, 그 곳은 아프리카 남부인 에티오피아 지역이다. ‘구스’는 에티오피아의 옛 이름이다. 이로 미뤄볼 때 에덴동산은 작은 지역을 의미하지 않고,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아프리카 남부까지를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커피나무 고향은 에덴동산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이 성립된다. ‘커피나무의 고향은 에티오피아다. 에티오피아는 에덴의 강이 흐르던 곳이다. 그러므로 커피나무의 고향은 에덴동산이다.’ 구약성경의 구절을 추적해도 커피나무의 고향이 예멘이라는 주장은 에티오피아만큼 단단한 토대를 지니지 못한다.

이슬람도 구약성서를 믿는다. 더욱이 무슬림은 아담과 아브라함, 이스마일로 내려오는 혈통을 이어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에 태초부터 커피나무가 있었다는 믿음은 설령 그곳이 자신들의 텃밭인 아라비아 반도가 아니라 그리스도 국가인 에티오피아라고 할지라도 그리 서운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닐 성싶다. 

박 영 순


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 충북대 미생물학과 졸업, 고려대 언론대학원 석사
● 세계일보 기자, 메트로신문사 취재부장, 포커스신문사 편집국장  
● 現 인터넷신문 커피데일리 발행인, 커피비평가협회장,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경민대 평생대학원 바리스타과정 전담교수







신동아 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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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순 | 바리스타,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twit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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