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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미의 달콤쌉쌀한 스위스

코코넛 안에 복숭아씨 있다?

인구 4분의 1이 외국인

  • 글·사진 신성미 | 在스위스 교민 ssm0321@hanmail.net

코코넛 안에 복숭아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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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위스 인구 800만 명 중 200만 명이 외국인이다.
  • 다문화 사회 가운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 외국의 전문직 인재들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기 위해 적극적으로 불러들인 결과다. 고임금과 쾌적한 삶의 질이 매력적인 나라지만 토박이들은 보수적, 배타적인 경우가 많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만 헤세,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아일랜드 문호 제임스 조이스, 영국 영화인 찰리 채플린과 록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이들 유명 인사의 공통점은 뭘까. 이들은 일생의 한 페이지를 스위스에 살면서 작품·연구 활동을 이어가거나 여생을 보낸 이방인들이다. 이들뿐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 예술가와 학자, 기업인이 스위스에 살면서 업적을 일궜고, 그 결과물은 스위스의 문화적 학문적 경제적 자산이 돼 이 나라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지금도 스위스는 유럽에서 외국인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인구 800만 명 중 무려 200만 명이 외국 여권을 소지한 외국인이다. 연방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스위스 인구의 24.3%가 외국인이며 그 가운데 대다수인 81.5%가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소속 국가의 국적을 가졌다. 스위스가 EU 회원국이 아님을 감안하면 놀라운 숫자다.

특히 대도시 취리히는 약 40만 명의 인구 중 32%가 외국인일 정도로 다문화 도시다. 스위스는 국적 취득이 매우 까다로우며, EU에도 가입하지 않은 채 작은 땅에서 자기들끼리 잘 먹고 잘살고, 국제정치적으로도 영세중립국가라는 폐쇄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이렇게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다는 건 의외였다.

스위스에 사는 외국인들은 대개 일 때문에 이곳에 왔다. 인구가 적은 스위스에선 외국의 전문직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불러들여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는다. 스위스는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최상위권인 만큼 외국인 근로자 처지에선 고임금과 쾌적한 삶의 질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피부로 느끼는 ‘세계’

세계적인 은행과 제약회사, 기계 제조회사 등이 몰려 있는 스위스에서는 대기업 임원도 자국인을 고수하기보다 능력을 보고 외국인을 스카우트하는 게 흔한 일이다. 대형은행 크레디트스위스의 최고경영자(CEO) 티잔 티암은 검은 피부에 코트디부아르와 프랑스 국적을 지녔다. 외국인 인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회사 공용어로 영어를 쓰는 대기업도 많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스위스 국가대표팀 선수 23명 중 15명이 외국 출신이거나 이민자의 후손이었다. 국제기구 본부가 몰려 있는 제네바, 로잔 등에는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외국인 엘리트가 많다. 의사 같은 전문직종에도 외국인이 많다.

스위스 기업의 3분의 1은 외국인이 창립했다는 통계도 있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세계적 식품회사 네슬레의 창립자 앙리 네슬레는 독일에서 스위스로 이민 온 약사 출신이고, 스위스 시계회사 스와치의 창립자 니콜라스 하이에크는 레바논 출신으로 스위스 여성과 결혼해 스위스로 건너왔다.

고급 인력뿐 아니라 3D 업종에도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 특히 동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 건설 현장 노동자나 청소원, 간병인 등으로 일한다. 스위스인들이 꺼리는 직종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고급인력이든 3D 업종의 노동자든 이런 외국인들이 없었다면 이 작은 나라가 지금처럼 세계적인 경제 선진국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고국에서 전쟁이나 분쟁을 겪거나 정치적 핍박을 받는 난민들이 탈출해 영세중립국 스위스에 정착하기도 한다. 한국에선 난민이라고 하면 그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렸는데, 스위스에 와서는 독일어 수업 때 심심치 않게 난민들을 만났다. 수업에서 만난 쿠르드족 여성은 쿠르드족 분리독립운동을 하는 여전사로 중동의 산속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그러다 눈사태로 부상을 당하고 동지들이 모두 죽자 안전하게 살 곳이 없어 10년 전 스위스로 탈출했다.

그녀는 태어나서 학교라고는 가본 적이 없다. 그나마 독일어학원이 처음 밟아본 학교 문턱이란다. 스위스에서 같은 쿠르드족 난민을 만나 결혼해 두 자녀를 낳고 청소부로 일하며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밝은 표정이지만 얼굴에 어딘가 고생한 흔적이 있는 데다 사연도 기구해서 나이가 꽤 있을 거라고 짐작했으나 알고 보니 36세밖에 안 됐다. 이처럼 난민들을 직접 만나면서 나는 신문 기사로만 막연하게 접하던 세계정세를 피부로 느끼고 국가와 민족, 전쟁, 박해, 자유 등에 대해 좀 더 고민해보게 됐다.



토박이 사귀기 어려워

2015년부터 서유럽에 대규모 난민이 유입되면서 스위스에서도 지역별로 난민을 나눠 수용하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얼마 전부터 지역 커뮤니티 센터를 임시 난민 숙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동네에서 난민으로 보이는 아프리카계, 중동계 외국인을 자주 볼 수 있다.

스위스에 사는 외국인의 상당수는 결혼이민자다. 스위스 공영방송 SRF의 보도에 따르면 2014년 결혼한 커플의 36%가 국제결혼이다. 10쌍 중 4쌍꼴이다. 나도 스위스인과 결혼해 스위스 거주가 허용된 결혼이민자다. 독일어 수업에 가면 상당수가 스위스인 배우자를 둔 결혼이민자로, 나는 여기서 대만, 일본, 필리핀, 태국, 브라질, 미국, 에콰도르 등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을 만났다.

어느 나라에 살든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언어의 장벽, 고국과 가족 친지에 대한 그리움, 새로운 문화와 규칙에 적응하는 어려움 등이 일반적이다. 이에 더해 스위스에 사는 외국인들은 높은 물가를 최악으로 꼽는다. 여기서 일하면 그만큼 고임금을 받을 수 있으니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은 없지만, 그래도 고국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비싼 물가에 부딪힐 때마다 소심해지기 일쑤다.



또한 많은 외국인이 스위스에서 외국인 친구가 아닌 토박이 스위스인 친구를 사귀기가 무척 어렵다고 토로한다. 얼마 전 SRF의 다큐멘터리 한 편을 봤다. 젊은 독일인 여성이 취리히의 유명 출판사에서 1년간 일하다 그만두고 자발적으로 독일로 돌아가는 이야기였다. 사람 사귀기 힘든 스위스에서 겪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녀는 “스위스인들은 공손하지만 온정이 느껴지진 않는다”고 했다.

마음을 열고 사람을 사귀는 방식을 논할 때 보통 독일어권 스위스인들을 ‘코코넛 문화’, 미국이나 캐나다 등 영어권 사람들을 ‘복숭아 문화’라고 한다. 겉은 말랑말랑한데 속에는 단단한 씨가 박힌 복숭아처럼 미국인과는 처음에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고 친해지기는 쉬워도 진정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가까워지는 건 어렵다고 한다. 반면에 껍데기는 단단하지만 일단 그것을 뚫으면 속은 부드러운 코코넛 같은 게 스위스인이라는 것이다. 가까워지기가 몹시 어렵지만 한번 친해지면 성심성의껏 정을 준다는 것이다. 영어 연수를 위해 캐나다에서도 살아봤고 지금은 스위스 독일어권 지역에 사는 나로서는 이 말에 웬만큼 동의한다.



환영 못 받는 이방인

내가 지켜본 바로는, 스위스인들은 한국인들만큼 평소에 많은 사람을 만나진 않는 것 같다. 비교적 소수의 사람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다. 우선 일로 만나는 사람과 사생활에서 만나는 사람의 경계가 뚜렷해서, 퇴근 후에는 직장 동료나 일로 알게 된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사적인 영역에서도 배우자나 파트너, 가족, 오래된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그러니 외국인이 이런 단단한 울타리를 뚫고 들어가 스위스인과 친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경우에는 남편이 스위스인이라 스위스인들을 사귀고 스위스 사회와 문화에 통합되기가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그리고 스위스인들은 한국인들과 달리 친구들을 만날 때 파트너와 함께 만나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남편의 친구들, 그들의 파트너들과도 어렵지 않게 친해졌다. 스위스 친구들은 내게 친절하고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지만, 친구 사이에도 너무 격식을 차리고 공손한 태도에 조금 거리감을 느낄 때도 있다. 외국인으로서 현지인들과 친해지고 싶다면 외국인 스스로 먼저 호의적이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수밖에 없다.

스위스에는 외국인이 많이 살고 공식 언어가 4개(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레토로만어)나 될 정도로 다문화 사회이지만, 스위스 신문과 방송을 보면 많은 외국인은 자신들이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 특히 농촌과 산악지역으로 갈수록 외국인에 대해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경우가 많다.

얼마 전 SRF 방송에서 독일인 리포터가 스위스의 한 농촌 지역을 방문했다. 반(反)이민정책을 내세우는 우파 스위스국민당(SVP) 지지율이 76%나 되는 보수적인 마을이었다. 리포터가 양떼를 몰고 지나가던 늙은 농부에게 물었다. “저는 독일인인데요, 여기서 일을 해도 될까요?” 그러자 늙은 농부가 외쳤다. “독일 사람처럼 생겼군. 여기서 일을 할 수야 있겠지만 난 자네가 필요 없수다.”

TV를 보면서 내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자기들과 외모도 비슷하고 같은 언어를 쓰는 독일인한테도 저렇게 이방인 취급을 하는데 외모부터 완전히 다른 동양인인 나를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다행히 아직까지 나는 외국인으로서 스위스에서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진 않았다. 한번 기분이 몹시 나빴던 경험은 있다.

한국에서 친한 지인이 놀러 와서 같이 동네를 한가롭게 산책하고 있는데 순찰 중이던 경찰차가 우리 옆에 멈춰 섰다. 경찰이 창문을 내리더니 다짜고짜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거리낄 게 없어 친절하게 응했다. 신분증은 집에 있으며 지금은 동네 산책 중이라고.



산책하다 불법체류자 몰려

그러자 경찰은 신분증이 왜 필요한지 아무 설명도 없이 갑자기 단호하게 나오며 “신분증이 없으면 지금 경찰서로 가자”고 했다. 아니, 집 앞에서 산책하는데도 외국인이면 늘 신분증을 소지하고 다녀야 하나,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더니 경찰은 스위스에 입국할 때 공항의 입국심사관이 말해줬을 거라고 했다. 입국심사관이 그런 고지를 해준 적이 없다고 했더니, 그걸 모르고 스위스로 입국한 내 잘못이라며 경찰서에 가자는 것이었다. 경찰의 말투는 몹시 위압적이었다.

지인은 이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어서 경찰서에 갈 경우 비행기 시간을 놓칠 수도 있었다. 공항이나 국경 검문소도 아니고 동네에서 별안간 이런 검문을 당하니 당황스럽고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사는 도시에 동양인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우리의 외모가 더욱 눈에 띄었을 것이다.

“나는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외국인이며 집이 여기서 3분 거리에 있으니 거기서 내 신분증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경찰은 우리 집까지 같이 가줄 수 없다고 고집했다. 결국 내 주소와 이름, 생년월일을 알려주고 또 다른 경찰이 시청에 전화해서 내가 합법 거주자인지 확인한 후에야 우리에게 가도 좋다고 했다. 지인도 여권 정보를 알려줬고, 경찰은 오후에 지인이 정말 출국했는지 공항에 확인하겠다고 했다.

나는 강압적인 말투로 명령하는 경찰에게 “아무리 경찰이라지만 무슨 이유로 신분증이 필요한지 설명도 없이 지나가는 행인에게 다짜고짜 그렇게 불친절하고 강압적으로 말할 권리가 있느냐”며 따졌다. 당시 스위스에 온 지 5개월밖에 안 돼 독일어를 잘하지 못했는데도 열이 받으니 신기하게 독일어가 술술 나왔다.

옆에 있던 경찰이 뒤늦게야 “이 근처 중국 식당에서 불법체류자를 고용한다고 해서 순찰 중”이라고 설명했다. 오직 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중국 식당에서 일하는 불법체류자로 간주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몹시 불쾌했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그런 일을 겪어 화가 나셨는지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기면 현장에서 바로 자신에게 전화를 걸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사실 웬만한 스위스인들은 예절과 교양을 중시해서 그런지 외국인 앞에서 대놓고 차별하진 않는다. 나 역시 그 ‘무례한 경찰 사건’ 말고는 외국인이라고 차별이나 무시를 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 뒤에서는 이민자들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풍토가 이 나라에도 있다.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제도가 바로 ‘이민제한법’이다.


시대 역행하는 이민제한법

우파 스위스국민당이 발의한 이민제한법은 2014년 2월 국민투표에서 50.34% 찬성으로 간신히 과반수를 얻어 통과됐다. 이는 EU 시민권자들의 이민에 엄격한 쿼터를 두어 제한하는 법이다. 스위스는 2007년 EU와 협정을 맺어 EU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락했는데, 이를 뒤집겠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EU 이외의 국가, 즉 한국을 비롯한 제3국 시민권자에게만 쿼터제를 뒀다. 이민자가 증가해 스위스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주거비가 상승하며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외국인 범죄가 늘어난다는 게 이민제한법 찬성자들의 주장이다.

반면 스위스 기업들은 이 법에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 EU 시민들의 취업을 제한할 경우 기업에서 마땅한 인재를 충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적 고립과 국가 신뢰도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민제한법은 2017년 2월부터 시행되는데, 스위스가 이 법을 그대로 시행할 경우 스위스와 EU가 수십 년 간 맺어온 개별 협정 120여 개가 전부 무효가 된다. EU와 스위스의 국민이 자유롭게 이동한다는 기존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對)EU 수출의존도가 높은 스위스에는 비상이 걸렸다. 스위스 의회는 이 법을 완화한 수정안을 만들어 논의 중이지만 EU가 수정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사실 제3국 시민들에게는 이미 스위스 이민이 제한돼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스위스에서 취업허가를 받으려면 그를 고용하려는 고용주가 나서서 왜 스위스 국민도 아니고 EU 시민도 아닌 한국인이 굳이 필요한지를 정부에 알려야 한다. 정부가 그 이유를 납득해야만, 그것도 정해진 쿼터 안에서 취업비자를 준다.

한마디로 아인슈타인 같은 대단한 인재가 아닌 이상, 혹은 스위스인과 결혼해 자동적으로 취업허가가 나오는 배우자가 아닌 이상 제3국 시민이 평범한 직업으로 스위스에서 취업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스위스의 호텔학교에서 엄청난 학비를 내며 유학한 학생들도 졸업 후에는 취업허가가 나오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인재의 부익부 빈익빈

취업을 위한 이민보다 훨씬 어려운 게 스위스 국적 취득이다. 스위스인으로의 귀화는 그 조건과 심사 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기간도 십수 년이 소요되며 행정수수료도 많이 들기로 악명이 높다. 스위스 관청은 어떻게든 국적을 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스위스는 속인주의를 채택해 부모 중 한 명이 스위스인이 아니면 스위스 영토에서 태어난다고 해서 바로 스위스 국적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귀화한 스위스인의 3분의 1은 이미 스위스에서 태어나 살아온, 결국 다른 스위스인들과 별다를 바 없는 외국인이라고 한다.

아무튼 이민제한법을 밀어붙이려는 스위스 정치인들을 보면 착잡한 마음이 든다. 이민자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풍요롭고 발전한 스위스는 없었을 것이다. 스위스는 세계 최고의 철도 국가로 명성이 높지만, 그것 또한 19세기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고된 노동과 위험을 무릅쓰고 산악지대에 철도와 터널을 건설한 결과다. 스위스의 크고 작은 기업들도 외국인 인재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외국인에 대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이어간다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스위스가 짊어질 것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표한 ‘2015 세계 인재 보고서’에 따르면, 61개국을 대상으로 ‘두뇌유출지수’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하위권인 42위였다. 많은 한국인 인재가 한국을 떠나 처우가 나은 외국에서 일한다는 뜻이다. 반면 스위스는 노르웨이에 이어 2위에 올라 인재 유출이 적은 나라로 분석됐다.  



동네 클럽에 國代급 강사

산악 지형의 작은 나라 스위스가 왜 이렇게 잘사는지 늘 궁금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스위스인이든 외국인이든 가리지 않고 인재를 끌어모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높은 임금과 삶의 질, 좋은 노동조건 덕분에 스위스의 고급 인력들은 자국 내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세계의 고급 인력들은 이 나라로 몰려든다. 인재의 부익부 빈익빈. 잘사는 나라에는 더 많은 인재가 일함으로써 더 잘사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피트니스 클럽에서 줌바댄스(라틴 음악을 이용한 댄스 스포츠)를 가르치는 우마르는 인도네시아 사람이다. 독일어는 잘 못해도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회원들에게 인기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우마르는 인도네시아의 가라테 국가대표 선수로 수많은 메달을 딴 유명인이다. 스위스 여성과 결혼해 이곳에 정착했다.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려 가라테를 가르치며 부업으로 피트니스 클럽에서 줌바댄스도 가르친다. 동네에 가라테 스튜디오가 있어서 무심코 배우러 갔는데 강사가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라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 세계적인 인재를 흡수하는 나라의 국민이니 이런 엄청난 혜택을 보는 것이다.

외국인이라는 소수자 신분과 정체성을 갖고 살면서 나는 같은 처지의 외국인들과 다문화에 더욱 관대해지고 있다. 스위스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보니 정말 중요한 건 상대방의 국적, 피부색, 직업, 지위 등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품과 인간미라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신성미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동아 일보 경제부·문화부, 동아 비 즈니스리뷰 기자로 일했다.
2015년부터 스위스인 남편과 스위스 장크트갈렌(St. Gallen) 근교에 산다. 스위스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면서 느낀 단상과 스위스 사회, 문화에 대해 블로그(blog.naver. com/sociologicus)에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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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신성미 | 在스위스 교민 ssm03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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