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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 마카오

현실과 환상의 경계 사라진 슬픈 섬

澳 카지노 왕국의 그늘

  • 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현실과 환상의 경계 사라진 슬픈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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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광둥성은 진(秦)나라가 정복하기 이전에도 이미 남중국해의 중요 무역항일 정도로 상업의 역사가 뿌리깊은 곳이었다. 광둥의 현지 관원과 호족들은 조정과 달리 교역을 원했다. 이들이 조정에 통상 허용을 계속 탄원하자, 조정도 이들의 의견을 일부 수용했다. 포르투갈은 이에 편승해 명의 조공국인 말라카의 무역선으로 위장하고 중국과 교역을 시작했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기 마련이다. 포르투갈인은 무역·해군기지로 쓸 수 있는 마카오 반도를 탐냈다. 1553년 포르투갈 상인은 바닷물에 젖은 화물을 말린다며 마카오 반도에 상륙 허가를 받았다. 이후 소사는 상인의 경거망동을 자제시키는 한편 중국에 20%의 세금을 내며 마카오에 은근슬쩍 눌러앉았고, 결국 1557년 조정은 포르투갈인이 마카오에 살 수 있는 거주권을 부여했다.

당시 황제가 가정제였던 것이 포르투갈에 큰 행운이었다. 가정제는 불로장생술에 빠져 생리혈과 아침이슬 등으로 불사의 약을 만든답시고 궁녀들을 학대했다. 학대를 견디지 못한 궁녀 16명이 황제를 목 졸라 죽이려 한 사상초유의 일이 벌어질 정도였다. 이토록 불로장생에 집착하던 가정제가 찾던 물품 중 하나가 용연향(龍涎香)이었다. 용연향은 ‘용의 침으로 만든 향’이라는 뜻으로, 향유고래의 토사물이다. 오늘날에도 ‘바다의 금덩이’라고 불릴 만큼 희귀한 최고급 향료다. 가정제는 환관을 채향사(採香使)로 임명해 방방곡곡에서 용연향을 구하게 했고, 못 구하면 중형으로 다스렸다.

그러나 10여 년이나 애타게 찾아도 구하기 힘들던 용연향을 마카오의 포르투갈 상인이 구해주었다. ‘향료천국’ 인도와 동남아를 석권한 포르투갈 상인에게 용연향 조달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조정은 마카오에 향의 품질을 관리하는 향산험향소(香山驗香所)를 세웠다. 포르투갈인은 ‘위험한 오랑캐’에서 황제에게 꼭 필요한 상인으로 바뀌었고, 마카오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중국은 아편으로 홍콩을 잃고, 용연향으로 마카오를 잃었다”는 말이 생겼다.





“천여 채 집, 만여 명 오랑캐”

“초왕(楚王)이 마른 여자를 좋아하니 많은 후궁이 굶어죽었다”는 말이 있다. 황제가 마카오 포르투갈 상인에게 사치품을 사니, 황제 아래로 수많은 사람이 마카오에서 물건을 구했다. 당시 문헌에 따르면, 마카오는 “천여 채의 집에 만여 명의 오랑캐”가 사는 무역항으로 성장했다. “높은 건물이 치솟고 서로 바라다 보일 정도로 즐비하여”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수백 블록이 되더니 지금은 거의 1000블록 이상”이 됐고, 만력제 중기에 이르면 “마카오로 모이는 자가 1만 가구 10여만 명”에 달했으며 “서양 국적을 지닌 자가 대략 6000~7000명”이었다.

1591년 극작가 탕현조는 마카오에 와서 중국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속에 사는 사람들을 묘사했다.

“부유한 상인은 전원에 살지 않고 뽕나무도 심지 않지만, 마노(수정) 장식에 비단옷을 입고 구름 같은 돛대에서 내렸고, 꽃 같은 얼굴의 오랑캐 여인 열다섯이 장미 이슬로 아침 단장을 했다.”

당시 마카오는 “황금의 명령이 하늘을 지배하고, 돈의 신이 땅에 우뚝 솟은” 땅이었다. 광둥의 권세가들은 대형 선박을 건조해 상업 활동에 뛰어들었고, 경쟁이 격화되자 상인들은 태풍이 와도 출항을 강행해 목숨을 잃곤 했다.

임진왜란(1592~1598) 이후 명이 일본과의 교역을 금지하자, 마카오는 전성기를 맞았다. 정치적 이유로 무역을 금지하긴 했지만, 중국은 일본의 은이 필요했고, 일본은 중국의 비단이 필요했다. 포르투갈은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 양국과 중계무역을 했다. 포르투갈이 구축한 ‘포르투갈 리스본~인도 고아~동남아 말라카~중국 마카오~일본 나가사키’의 무역 네트워크 중 ‘마카오~나가사키’ 구간이 최고의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마카오의 삶이 속 편한 일만은 아니었다. 스페인을 꺾은 신진 강호 네덜란드가 마카오를 노렸다. 1601년부터 네덜란드는 장장 20년 동안 마카오 점령을 시도했다. 포르투갈은 마카오에 성벽과 요새를 지으려 했으나, 명나라는 포르투갈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포르투갈인이 성벽을 쌓으면 광둥성 군대가 곧바로 출동해 성을 허물어버렸다.

그러던 중 포르투갈에 또 한 번 행운이 찾아왔다. 누르하치가 이끄는 만주군이 명나라에 맹공을 퍼붓자, 1621년 천계제는 마카오에 100명의 정예병, 몇 명의 뛰어난 포수와 문사(文士, 가톨릭 신부)를 파견해 관군들에게 화포 사용법을 가르치라는 성지를 내렸다. 마카오에서 사들인 홍이포는 후금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일개 쇳덩어리인데도 ‘안변정로진국대장군(安邊靖虜鎭國大將軍)’에 봉해졌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마카오의 포르투갈인은 중국인과 같은 권리를 보장받았고, 마카오의 숙원사업인 군사방어시설 건축도 허가받았다.

그러나 이들이 역사를 바꿀 수는 없었다. 명나라는 이미 기강이 무너지고 통제력을 잃은 상태였다. 만주족 역시 포르투갈에서 화포를 수입해 화력을 강화했다. 결국 한족의 명나라는 만주족의 청나라로 바뀌었다.



‘건달’ 출신 해상왕

대륙에서 격변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마카오는 활력이 넘쳤다. 명나라 말기 필리핀 마닐라는 멕시코에서 수입한 백은 2644만8000페소 중 2569만 페소(97.1%)를 중국으로 수출했다. 이 중에서 마카오를 거친 양은 2025만 페소로, 중국 전체 유입량의 79.1%에 달했다. 마카오는 서양 최대의 동방무역항이 됐다.

이때 마카오를 찾은 중국의 한 건달이 훗날 동중국해를 주름잡는 해적왕이 된다. 바로 정성공(鄭成功)의 아버지 정지룡이다. 푸젠성 말단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정지룡은 천성적으로 게을러서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없던 반면, 힘이 세고 무술을 좋아했다. 골칫덩이 정지룡은 아버지의 첩과 동침하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마카오의 외갓집으로 도망쳤다. 외가 황씨 가문은 마카오에서 큰돈을 번 상인이었다. 많은 마카오 상인대부분이 그렇듯 그들의 사업도 합법과 불법 사이를 오갔을 것이다.

건달 정지룡은 거친 바다 사나이들과 쉽게 의기투합했다. 그는 마카오 밀수단 두령인 이단의 오른팔이 돼 광둥·푸젠뿐 아니라 필리핀, 베트남, 일본 등 동아시아 바다를 종횡무진 누볐다. 포르투갈 상인, 선교사들과 어울리며 당대 국제 무역공용어였던 포르투갈어를 익혔고, 무역과 밀수, 해적이 묘하게 뒤섞인 활동을 하며 ‘바다사업’에 눈을 떴다.

이단이 죽은 후 정지룡은 밀수단을 크게 키워 해적왕이 됐다. 그는 네덜란드의 지원을 받아 사략선(私掠船, 무장한 사유 선박)을 지휘하며 유럽의 항해술과 해적의 노하우까지 습득했다. 쇠약한 명나라 조정은 정지룡에게 “해적을 토벌하는 공을 세우면 전 해역을 통제하는 도독에 임명하겠다”고 제안했다. 전형적인 차도살인(借刀殺人) 전략이지만, 정지룡은 동료 해적을 소탕하고 중국 바다를 석권했다. 명 조정은 다시 이이제이 전략을 써서 네덜란드에 무역을 허가해줄 테니 정지룡을 치라고 했지만, 정지룡은 이미 400척의 정크선과 6만~7만 명의 인력을 자랑하는 선단을 거느리고 있었다. 네덜란드 해군이 패한 뒤 정지룡을 제압할 자가 없어지게 되자 조정은 별수 없이 벼슬을 내렸다. 훗날 명나라가 망할 때 조정은 정지룡이 구원해주길 바랐으나 정지룡은 명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청에 투항했다. 다만 그의 아들 정성공은 대만을 근거지로 삼아 죽는 날까지 반청복명(反清復明)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카오는 정지룡·성공 부자를 바다의 제왕으로 만든 숨은 공신이다.

청나라는 대만의 정성공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연해지역에 사람을 살지 못하게 하고 널빤지 한 장 바다 위에 띄우지 못하게 하는 해금령(海禁令)을 내렸다. 시랑이 대만을 정복한 후 해금령이 완화되긴 했지만, 조정은 한인들이 해외에 나가는 것을 경계했다. 한족 선비가 동남아 등에서 재상이 돼 청나라의 화근이 될 수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마카오는 다소 부침을 겪었지만, 순치제·강희제의 신임을 받던 선교사 아담 샬과 페르비스트 덕분에 큰 타격은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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