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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영화 ‘불모지’라서 ‘신천지’인 곳

간월암, 개심사, 해미읍성…매력의 충남

  • 글 · 사진 오동진 | 영화평론가

영화 ‘불모지’라서 ‘신천지’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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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군가가 말했다. “영화만 열심히 만들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 그것 참,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영화와 세상은 연결돼 있다. 세상이 저럴진대 영화를 만드는 일이라고 어디 쉽겠는가. 영화로 세상을 치유해야 하는가, 아니면 세상부터 고치고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가.
모두들 이 정도까지일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석 자 이름 하나가 세상사를 집어삼켰다. 어렵게 쌓아놓은 국가의 자존심은 일순간에 무너졌다. 이제 세계의 모든 통신사, 모든 매체가 한국을 비웃는다. 어떻게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아무런 자격도 없는 자에게 모든 국사를 맡기고 집무실로 출근도 하지 않은 채 관저에 홀로 남아 ‘혼밥’을 먹고(‘혼술’은 안 했을까?) 막장 드라마나 보고 앉아 있었을까.

그러면서 갑자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기로 결정해서 중국과의 교역을 망치고, 아닌 밤중에 역사 교과서를 자기 입맛대로 통일한다 해서 온 나라를 뒤흔들었을까. 세월호 아이들이 죽을 때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메르스 사태로 난리가 났을 때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두고 운명은 재천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가씨’도, ‘가려진 시간’도 묻혔다 

기이한 관계의 두 여성에 대한 분노가 모든 뉴스를 삼켰다. 평소 같으면 신문 1면 사이드에 실릴 뉴스도 1단 처리가 될까 말까 한 상황이 됐다. 예컨대 박찬욱의 ‘아가씨’가 LA비평가협회로부터 외국어영화상과 미술상을 수상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아가씨’가 2월에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퀴어 영화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LA비평가협회 시상식과 달리 아카데미는 보수적인 백인 남성들을 대변하는 영화상으로 알려진 만큼 수상은 미술상 하나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자력으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영화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뉴스가 다 묻혀버렸다.



강동원 주연의 ‘가려진 시간’ 같은 영화가 흥행에서 밀린 것도 이 끔찍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때문이다. 60만 명 정도의 관객을 모은 데 그친 이 영화는 그 정도로 대접받을 작품이 아니었다. ‘가려진 시간’은 세월호 침몰로 수장된 아이들에 대한 시간을 은유한다. 차라리 시간이 멈춰버려서 아이들이 죽지 않고 어느 공간에 ‘가려져’ 있기를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 담겼다. 그런데도 워낙 믿을 수 없는 사실과 진실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이 영화의 진심이 ‘가려져’ 버렸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자신들이 세상을 얼마나 망가뜨렸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이 시녀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 하나 때문에 나라가 이 지경이 됐다는 식으로 말한다. 아직도 군주제적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대통령=왕’이며 따라서 자신은 백성을 통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앙투아네트의 최후는 어떠했는가.

충남영상위원회가 이런 와중에 팸투어를 계획한 것은 세상이 이렇게 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탓이다. 팸투어는 영어로 패밀리라리제이션 투어(familiarization tour)다. 사전답사라는 뜻인데 항공사나 여행업체, 지방자치단체 등이 자신들의 관광상품이나 특정 관광지를 홍보하기 위해 유관업체 사람들을 초청해 관광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한들, 영화감독조합과 프로듀서조합 등등의 단체 사람들이 대거 움직이는 터라 일정을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들 주말 집회에만 참석할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조금 쉬고 싶기도 했다. 세상의 평온을 보고 싶기도 했다.

충남영상위원회는 후발 주자다. 전국에 영상위원회는 충남을 포함해 11개가 있다. 부산영상위원회를 시작으로 서울과 전주, 청풍(제천), 제주 등 각 지역에 차례로 들어섰다. 충남은 제일 마지막에 만들어졌다. 이들 11개를 통틀어 한국영상위원회가 따로 있기도 하다.

영상위원회란 영어로 필름 커미션(film commission)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영화 촬영과 제작을 지원하는 지역 조직이라는 뜻인데, 쉽게 말해서 지역마다의 로케이션 사업(location business)을 관장한다. 영화를 찍으려면 촬영 장소를 물색해야 하고, 그러려면 사전 헌팅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영화는 공간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

예전에는 무턱대고 장소를 찾아다녔다. 아니면 알음알음으로 찾아다녔거나. 각 지역 영상위원회는 영화사들이 자신들의 공간으로 촬영을 오도록 유도한다. 이 로케이션 비즈니스는 헌팅 작업을 체계화해 영화를 찍을 때 촬영 장소를 손쉽게 찾게 해주는 사업인 셈이다. 지역의 경제효과가 유발되기 때문이다. 지역 영상위원회에 지자체의 예산이 투여되는 것은 다 그래서다. 영화계로서는 촬영 과정에서 각종 지원을 받아낼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충남영상위원회는 만들어진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충남영상위원회가 영화인들을 상대로 몇 차례 팸투어를 기획하고 실행한 것은 그래서다. 촬영을 유치하기 이전에 가장 먼저 충남 내에서 촬영할 만한 곳이 얼마나 많은지 자랑부터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충남 지역, 특히 이번 팸투어의 대상인 서산과 당진은 영화 촬영의 불모지였다. 이상하게도 백제권은 모든 면에서 개발이 좀 더딘 편이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신라권에 치우쳐 있던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면 그것 역시 정치적 편견 탓으로 돌릴까.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이쪽 지역에는 촬영지로서 신천지가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아직은 영화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


애정 도피, 마지막 정사의 適所

간월암(看月庵)이 바로 그런 곳이다. 간월암은 간월도에 있는 작은 사찰 혹은 암자다. 간월도는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있는 반경 1km가 안 되는 작은 섬이다. 섬이긴 한데 지금은 오래전 간척사업으로 육지와 연결된 상태다. 지금은 걸어서 들어가지만 옛날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신기한 느낌이 든다.

중간에 바다가 있고 틈틈이 꽤나 풍랑도 거셌을 터다. 그런데 어떻게 저기다 암자를 세울 생각을 했을까. 서까래 같은 저런 건축자재는 언제, 어떻게 다 날랐을까. 저기에 작은 사찰을 세울 만큼의 불심(佛心)은 과연 무엇을 향한 것이었을까. 여기저기를 뒤져보면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을 보다가 깨우침을 얻어 만들어진 것처럼 전해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일 것이다. 다만 조선 중기 이후에 누군가가 세운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육지와 섬 사이에 이어진 자갈모래밭을 걸어 간월암에 닿으면 세상사가 후욱 잊힌다. 매일 저렇게 바다를 보고 있으면 삶이 어떻게 변할까 싶다. 암자에 홀로 앉아 태풍이 부는 바다의 소리를 들으며 수행을 하는 구도자에게도 번뇌는 있을까. 어두운 밤 그가 두드리는 목탁 소리는 일종의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중간 강도의 운동을 30분 이상 계속했을 때 느끼는 행복감) 같은 상태를 불러올지 모른다. 이상한 환각. 천국의 체험 같은.

간월암을 보면서 프로듀서들의 머릿속에는 지독한 멜로 영화 한 편이 기획되고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유폐(幽閉)된 연인의 이야기. 예컨대 와타나베 준이치의 소설 ‘실락원’의 주인공 남녀 같은 연인. 모리타 요시미쓰 감독이 만들고 구로키 히토미, 야쿠쇼 고지가 주연한 그 영화를 한국식으로 다시 만든다면(1998년 장길수 감독, 이영하 심혜진 주연의 동명영화로 만들어졌으나) 간월암은 주인공 남녀의 마지막 정사와 동반자살을 찍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일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사람들은 치명적인 사랑을 원한다. 막상 그것이 닥쳐오면 처음에는 무섭다가도 나중에는 죽음에 이르게 될 그 독성을 만끽하게 된다. 아무리 두려워도 그 사랑이 나만의 것이라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것이라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실락원’이 내세운 주제, 곧 탐미주의의 극치다. 이곳 간월암은 언젠가 한국의 많은 영화에서 애정 도피 행각의 최우선 촬영지로 쓰일 것이다.



개심사에서 영화를 찍는다면

서산에는 유명한 사찰이 하나 더 있다. 개심사(開心寺)다. 충남 4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 규모보다는 구성미가 돋보인다. 산기슭에 덩그러니 위치한 일주문(一柱門,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 가운데 첫 번째 문)도 자연스럽다. 절의 입구는 저래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개심사는 일주문부터 약간의 오르막길을 거쳐 도착하게 된다. 그리 길지 않다. ‘실락원’의 남녀 같은 연인이 간월암에서 마지막 날을 보내기 전 따뜻한 절밥과 사람들의 인심을 즐기고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배창호 감독의 숨은 걸작 ‘러브 스토리’(1996)도 생각나는 곳이다. 영화 속 중년 영화감독과 젊은 처자는 시골집 같은 곳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는데 아마도 그 장면을 다시 찍는다면 이곳 개심사 객실 같은 곳이 적당할 것이다. 그런데 개심사 주지께서 그런 촬영을 허락하실지 모르겠다. 공연히 유명한 스타가 나오는 영화를 찍었다가 일본 아줌마들과 중국 사람들이 넘쳐나는 철부지 관광지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촬영지로 쓰지 않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곳이다.

충남 서산과 당진에는 천주교 순교의 장소가 많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왔다 갔다 해서 유명해진 서산의 해미읍성과 당진의 신리성지가 그곳이다. 왜 이곳에 천주교가 전파되고 확산됐는지는 지리적 위치를 잘 보면 알 수 있다. 태안반도의 바다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육지다. 한양과도 상대적으로 그리 멀지 않다.

파란 눈의 천주교 신부가 왜 이곳으로 들어와 포교를 했는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사명감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종교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오지(奧地)로 오게 하는 것일까. 그 불편함과 두려움을 감수하게 하는 정신적 모토는 과연 무엇일까. 천주교가 그렇게 급속도로 확산된 것은 또 무엇 때문일까.

정부와 체제의 저항과 탄압이 있긴 했지만 한국만큼 천주교와 개신교가 쉽게 전파된 곳도 없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국내 초기 기독교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구복(求福)의 열망과 결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말처럼, 복을 바라는 사람들의 심정에 호소하는 것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종교적 마케팅을 잘한 셈이다.



최배달의 최후 혈전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해미읍성은 그 웅장함으로 사람들을 압도한다. 이게 그 옛 시절에 축성된 것인가 의구심이 들 만큼 현대적이다. 성곽 둘레가 1800m에 달한다. 높이는 5m다. 왜구의 침입에 맞서기에 낮은 것 같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함락시키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축조의 방식과 느낌이 아주 단단하다. 웬만해서는 성곽이 무너지거나 뚫리지 않을 것이다.

해미읍성 안은 상대적으로 아주 평온하다. 여기서 유일하게 만들어진 영화가 있는데 양윤호 감독의 ‘바람의 파이터’(2004)다. 일본 가라테의 명인인 조선인 최배달의 삶을 극화한 이 영화에서 최배달 역의 양동근과 가토 역의 가토 마사야가 최후의 혈전을 벌인다. 영화에선 그곳이 일본으로 그려지지만 사실은 이곳 서산의 해미읍성 구릉이다. ‘바람의 파이터’는 살짝 잊힌 영화다. 양동근은 요즘 잘 지내고 있을까. 양윤호 감독은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이 됐다던가. 읍성 안에 덩그러니 놓인 ‘바람의 파이터’ 입간판이 생뚱맞아 보인다.

간월암과 개심사, 해미읍성과 신리성지를 다니는 앞뒤로 당산 앞바다에 있는 삽교호 함상공원에도 들렀다. 이제는 ‘은퇴’한 구축함 두 척이 있는 곳으로 이 배를 이용해서 많은 영화가 촬영됐다. 예컨대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 흥남부두 철수 장면의 일부를 이곳에서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함상공원을 안내하는 군 하사관은 영화보다는 연평해전 등의 전과를 알리는 데 더 열을 올렸다. 그는 2002년 6월 29일 발발한 제2연평해전에 대해 설명했다. 당시 정부는 우리 군 희생자에게 올바른 보훈을 주저했다는 식으로 비판받았다. 삶을 오로지 군대에서 보낸 직업군인들은 2015년 600만 관객을 모은 김학순 감독의 ‘연평해전’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 영화는 잘 만들어진 것일까. 올바른 시선을 지닌 것일까. 우리 영화 현대사에 얼마나 유의미한 족적을 남길까.



영화로 세상을 치유해야 하나

1박의 짧은 일정을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리무진 버스 안에서 모두들 입을 다물고 종편 채널을 보느라 열심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영화만 열심히 만들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 그것 참,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영화와 세상은 연결돼 있다. 세상이 저럴진대 영화를 만드는 일이라고 어디 쉽겠는가.

영화로 세상을 치유해야 하는가, 아니면 세상부터 고치고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가. 깊은 고민의 분위기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 휘감겼다. 휘영청 달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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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오동진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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