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호

“비 올 확률 50%는 ‘온다’보다 훨씬 과학적이고 유용”

유희동 기상청장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23-01-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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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 강수 확률은 정서상 40대 60으로 보정해 예보

    • 지진 관측 9초 만에 속보, 100m 달리기 세계기록보다 빨라

    • 100% 완벽한 날씨 예측모델 없어… 예보관 판단 여전히 重要

    • 임진강 범람 피해 막으려면 북한과 기상 교류 물꼬 터야

    • 여름철 기상 난제, 북태평양고기압 넌 누구냐

    지난해 6월 취임한 유희동 기상청장. [홍태식 기자]

    지난해 6월 취임한 유희동 기상청장. [홍태식 기자]

    1월 9일 새벽 1시 28분. 한밤중 ‘삐~삐~’ 하는 날카로운 경보음과 진동이 인천, 경기, 서울 지역 시민들을 깨웠다. ‘인천 강화군 서쪽 26㎞ 해역 규모 4.0 지진 발생, 낙하물로부터 몸 보호, 진동 멈춘 후 야외 대피해 여진 주의’라는 긴급재난문자가 뿌려졌다. 3분 뒤 수동분석 결과 인천 강화군 서쪽 25㎞ 해역에서 규모 3.7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하향 조정되긴 했지만 이미 달아난 잠을 붙잡을 순 없었다. “벽이 흔들렸다” “전쟁이 난 줄 알았다”는 피해 신고가 잇따랐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긴급재난문자를 확인하는 중에 부르르 진동을 느꼈다는 증언도 나왔다. 지진보다 문자가 한발 빨리 도착한 것. 오전 1시 28분 15초 지진 발생, 오전 1시 28분 19초 강화군 교동관측소(GDS5) 지진 관측, 오전 1시 28분 28초 지진 조기 경보 발령. 지진조기 경보시스템에 의해 조기 경보는 진앙 반경 80㎞ 이내인 수도권 전역에 자동으로 송출됐다. 발생 4초 만에 지진이 관측됐고, 최초 관측 9초 만에 조기 경보가 발령됐다. 관측 후 경보까지 기록으로만 보면 100m 달리기 세계기록(9.58초)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보다 빨랐다. 이후 규모 1.2의 여진이 한 차례 발생했다. 지진 발생 9시간 뒤 유희동(61) 기상청장을 만났다.

    1초의 전쟁, 지진 조기 경보

    관측 후 9초 만에 조기 경보가 나간 것은 최단시간 기록 아닌가.

    “이번 지진의 특이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취약 시간대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속보가 중요했다. 지금까지 규모 3.5 이상의 지진이 이 시간대에 발생한 경우가 거의 없다. 지난해 10월 29일 괴산 지진(규모 4.1)이 발생한 시각은 오전 8시 20분이었다. 다행히 한밤중이라는 취약 시간대임에도 발생에서 통보까지 전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됐다. 2016년 경주(규모 5.8)와 2017년 포항(규모 5.4) 대지진을 계기로, 행정안전부 시스템을 통해 발송하던 재난문자 중 지진과 지진해일은 기상청이 직접 국민에게 전달하는 체계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지진을 빠르게 인지하고 대응하는 실질적 효과가 컸다. 초기 50초대에 머물렀던 지진 조기 경보 발령 시간(관측에서 경보 발령까지의 시간)이 9초로 빨라진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향후 지진 조기 경보를 얼마까지 앞당길 수 있다고 보나.

    “거의 임계치에 왔다고 보지만 4초를 더 줄여서 5초 이내로 앞당기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러려면 지진계를 더 설치해 감지 시간을 줄이고, 자동분석 후 경보가 발령되는 시간도 줄여야 한다. 1초라도 더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생각이다.”

    지진 규모가 4.0에서 3.7로 낮아지면서 별일 아니었는데 한밤중에 수면만 방해했다는 불만도 있었다.

    “조기 경보라는 것은 가급적 빨리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 정도 오차는 늘 있다고 봐야 한다. 다행히 큰 피해가 없었지만, 이번 지진은 새해 들어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 중 가장 큰 규모였고, 1978년 지진 관측 이래 인천 강화도 인근 반경 50㎞에서 발생한 지진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였다. 피해가 없다고 안심할 게 아니라 경보가 나고 흔들림을 느꼈다면 반드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교육과 홍보가 더 필요하다. 긴급재난문자를 보낼 때 글자 수의 한계가 있지만 향후 지역별 맞춤형으로 대피 요령을 안내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유희동 기상청장은 연세대 기상천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클라호마대에서 기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기상청 기상연구사로 출발해 예보상황과장, 수치모델개발과장, 예보정책과장, 기후과학국장, 기상서비스진흥국장, 관측기반국장, 예보국장, 부산지방기상청장, 기획조정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독자적 수치예보모델의 필요성을 주창해 2011년부터 9년에 걸쳐 ‘한국형수치예보모델(KIM)’을 개발한 주역이기도 하다. 이로써 한국은 유럽연합, 영국, 캐나다, 독일,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9번째로 자체 수치예보모델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지난해 6월 22일 윤석열 대통령이 신임 기상청장에 유희동 차장을 임명하자 기상청 내부에서는 예보·기상관측·행정을 아우른 ‘정통 기상인’의 발탁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였다. 유 청장은 취임식에서 “국민 눈높이로부터 시작하는 기상청, 세계 선도기술을 확보하는 기상청, 미래를 향한 새로운 업무에 과감하게 대응하는 기상청”을 내걸고 “국민에게 가족 다음으로 신뢰받는 기상청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환영의 꽃다발이 아니라 ‘역대급 집중호우’를 몰고 온 기후변화라는 괴물이었다.

    사람 목숨 살리는 20분

    지난해 여름은 8월 8, 9일 양일간 집중호우로 재산 피해는 물론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이 침수돼 일가족 3명이 사망하는 등 인명 피해가 컸다. 속수무책이었나.

    “기상청은 호우 발생 하루 전인 8월 7일, 수도권을 중심으로 8일과 9일 사이 300㎜ 이상의 매우 많은 강수가 내릴 것을 예보했다. 당시 나는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기상 통보문을 받아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시간당 60~100㎜가 내릴 거라니, 말도 안 된다, 예보가 잘못된 거 아닌가 싶었다. 비는 시간당 15㎜만 내려도 쭉쭉 내리꽂고, 30㎜면 양동이로 들이붓듯 쏟아진다. 60~100㎜면 아예 자동차를 세워야 한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서울시 동작구에 시간당 최대 141.5㎜라는 관측 사상 유례 없는 강도의 비가 내렸다(이틀 동안 누적 강수량 500㎜).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이 됐다. 연간 강수량의 10분의 1일이 단 한 시간 만에 쏟아진 셈이다. ‘물폭탄’이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신림동에서 사망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예보관들이 동요했다. 심지어 무섭다는 말도 했다. 총괄예보관이 ‘25년 가까이 쌓은 지식이나 경험이 도움이 돼야 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국민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전혀 설명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마주했을 때의 두려움이 이해가 됐다. 결과적으로 더 빠르고 더 정확한 예보가 있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은 있지만 현재의 모든 기술력을 총동원해 분석과 예측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은 말씀드리고 싶다.”

    8월 집중호우에 이어 9월엔 괴물 태풍이라고 불린 ‘힌남노’가 상륙했다. 충분히 예상하고 철저히 대비했음에도 인명 피해를 막지 못한 이유는 뭔가. 하천의 범람으로 경북 포항시 인덕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만 7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참사가 벌어졌다.

    “힌남노가 역대급 슈퍼 태풍인 건 맞다. 상륙 당시 중심기압이 955.9헥토파스칼(hPa)로 이는 1959년 사라, 2003년 매미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낮은 기압이었다. 태풍은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풍속이 빠를수록 위력이 커진다. 특히 기후변화가 심화될수록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태풍의 강도 역시 점점 더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분석관, 예보관, 대변인실까지 기상청 직원들이 8박 9일 동안 집에 가지 못하고 태풍 대응에 만전을 기했다. 대통령 주재 회의 5회, 상황점검 회의만 16차례 열렸다. 내가 기상청에 30년 넘게 있으면서 재난 대응 예보 현장에서 비상근무를 한 게 20년 가까이 되지만 힌남노 때처럼 대통령이 밤새 기상 상황을 점검하는 경우는 처음이었고, 행안부 등 유관 기관과 지자체가 총력 대응한 것도 처음이었다. 전반적으로 대응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피해로 7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예보관들의 다리가 풀렸다. 하지만 예보관들을 더 절망하게 만든 것은, 별것도 아닌 일로 공포로 몰고가며 호들갑을 떤다는 식의 비판이다. 이는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대응 방법을 호도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발언이다.”

    역대급 집중호우와 태풍을 겪은 후 기상청의 재난 대응 방식에 변화가 있었나.

    “솔직히 말해 기후변화로 인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극한 기상현상의 발생 빈도는 늘고 있지만 예보의 기술력은 점진적으로 향상되기 때문에 단시일 내에 따라잡기 힘들다. 이런 고민은 전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예보의 정확도를 향상하는 노력은 물론이고, 이와 별개로 예보의 선행시간(통보 전 관측 자료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쉽게 말해 조기 경보가 빠르면 빠를수록 태풍, 집중호우, 지진 같은 위험으로부터 국민들이 피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토네이도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오클라호마에서는 툭하면 토네이도 경보가 울린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정해진 안전건물로 대피하는데 어느 곳에 있든 20분 거리 안에 대피소가 있다. 만약 20분이 아니라 토네이도 발생 40분 전에 경보를 할 수 있다면 대피소를 확보하는 데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개인은 그만큼 대피할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자연 재난을 막지는 못해도 사람 목숨만은 구하자는 게 나의 목표다. 지난해 신림동 반지하 주택 침수로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사건을 보면 구조 요청이 접수된 후 30분 만에 경찰이 출동했지만 이미 구조 타이밍을 놓쳤다. 이에 착안해 최초 구조 요청 이전에 기상청이 얼마나 더 빨리 위험경보를 낼 수 있는지 자체적으로 검토했더니, 20분 정도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나 실제로 예보의 선행시간을 줄이려면 기상청 실황 자료를 더 빨리 분석해 내야 하기에 예보관들에게 엄청난 부하가 걸린다.”

    오보 책임 뒤집어쓴 슈퍼컴은 억울하다

    매년 국감 때마다 600억 원짜리 슈퍼컴을 도입하고도 ‘오보청’이라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예보가 불완전한 예측일 수밖에 없는 이유부터 이해해야 한다. 첫째 자연 자체가 가진 불가능한 비선형성, 둘째 기상관측 기기 자체의 오차, 셋째 자연을 100% 수식으로 옮길 수 없는 수치예보모델의 한계, 넷째 수치모델 결과를 해석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의 오차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책임을 슈퍼컴에 지우면 슈퍼컴도 억울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보 정확도를 높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예보의 발전 단계가 있다. 1단계는 소위 ‘김동완 통보관의 시대’라고 불리는 주관적 예보의 시대였다. 똑같은 관측 자료라 해도 예보관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예보 결과가 달라진다. 누구는 비가 온다고 하고, 누구는 비가 안 온다고 하니 예보가 온오프 게임처럼 된다. 슈퍼컴의 도입과 함께 수치예보의 시대가 시작됐다. 컴퓨터가 날씨, 습도, 기온, 바람을 숫자적으로 계산해 예보하니 사람의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1980년대 후반 수치예보모델이 빠르게 발달하자, 미국 기상학계에서 한 세대(30년)가 지나면 예보관이라는 직업이 사라질지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예보관은 여전히 필요하다. 아무리 수치예보모델이 발달해도 100% 완벽한 예측모델은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불확실성을 사람, 즉 예보관이 보완해 줘야 한다. 그래서 정확한 예보를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양질의 관측 자료, 둘째 일종의 소프트웨어인 수치예보모델의 성능 개선, 셋째 예보관의 전문성 강화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예보 역량에는 ‘최소량의 법칙’이 작용한다. ‘최소량의 법칙’이란 물통에 담긴 물의 높이는 가장 낮은 구멍에 따라간다는 것. 즉, 세 가지 요소 중 가장 낮은 요소가 있으면 예보 정확도도 그 수준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예보 정확도를 높이려면 이 세 가지 요소가 동반 상승해야 한다.”

    1000억 원을 들여 개발했다는 한국형수치예보모델(KIM)도 정확도 면에서 늘 도마 위에 오른다.

    “일단 예보 역량의 한 축인 독자 수치예보모델을 개발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 기상·기후 환경 변화를 우리나라 특성에 맞게 반영할 수 있고 모델에 문제점이 있으면 즉각 수정, 개선할 수 있어 수치 예보 기술의 완전한 자립과 지속 발전이 가능하다. 처음 이 사업을 위해 예비타당성 심사를 받으면서 9년에 걸쳐 1000억여 원의 사업비가 든다고 했더니 난리가 났다. 다리를 건설하는 것 아니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1000억 원씩 투입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독자 수치예보모델 개발에 성공했고 이미 2년 전부터 현업화(연구 목적이 아닌 실제 예보에 적용하는 것)를 하고 있다. 독창적으로 만든 역학 부분도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어느 나라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다. 유럽연합 모델이나 미국 모델만큼 단시간 내에 선두주자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향후 개선 속도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100% 보장한다. 독자 수치예보모델 9번째 보유국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그 개선 속도는 매우 빨라 그 성능 면에서 세계 5위권의 진입도 머지않은 장래에 가능하리라 본다.”

    비 올 확률 50%의 숨은 의미

    과잉 예보도 문제지만 ‘비 올 확률 50%’ 같은 하나마나한 일기예보가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요즘은 왜 50% 확률을 예보에 쓰지 않나.

    “1988년 올림픽을 전후로 날씨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을 때 ‘비 올 확률 50%’라고 예보를 내보냈다가 기상청 문 닫을 뻔했다는 얘기가 있다. ‘오면 오고 안 오면 안 오는 거지 ‘비 올 확률 50%라니 장난하느냐’며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그러나 ‘비 올 확률 50%’는 과거 유사한 조건에서 10번 중 5번 비가 왔다는 의미로, 매우 과학적인 예보 방식이다. 다만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워 예보관들이 수치상 50%가 나와도 40대 60으로 보정해서 예보하고 있다. 앞으로는 50%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확률 예보’가 필요한 이유는 일단 비가 온다, 안 온다로 단정하는 예보보다 훨씬 과학적일 뿐 아니라 정량적인 확률 값이 우리 삶에 유용하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정장을 입는 사람들은 강수 확률 30%에도 우산을 준비하지만, 운동복 차림의 사람은 40%의 강수 확률에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 방재 측면에서도 발생 확률이 40%지만 일단 내리면 심각한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집중호우와, 발생 확률이 60%지만 비구름이 비껴갈 가능성도 동시에 예상된다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발생 확률이 낮더라도 집중호우에 대비하는 쪽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확률 예보를 재해 대응뿐 아니라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남북 기상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기예보는 전 세계 나라들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각 나라별로 기상을 관측하고 그 자료를 세계기상통신망(GTS)을 통해 공유하면서 자기들에게 필요한 예보를 생산해 낸다. 현재 우리는 거의 10초마다 관측해 1분마다 기상자료를 내보낸다. 북한(27개 지점)의 경우 기온, 기압, 강수량, 풍향·풍속 등의 관측 자료가 GTS를 통해 하루 8회 수집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북한의 기상자료가 GTS를 통해 우회하기 때문에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1시간 넘게 걸린다. 기상자료는 실시간이 아니면 쓰레기 자료라고 할 만큼 시간이 생명이다. 특히 집중호우 같은 상황에서는 실황 자료가 굉장히 중요하다. 과거 임진강 범람 때 기상자료만 공유했어도 피해를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황사나 미세먼지도 북한 측 관측 자료를 공유할 수 있으면 훨씬 더 정확한 예보를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데 북한이 갖고 있는 100년 전 기상자료가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본다. 1904년 한반도에는 서울, 인천, 부산, 목포, 용암포 5곳에 기상관측소가 설립됐다. 이른바 백년관측소 가운데 평양 아래 용암포(평안북도 용천군 압록강 하구의 3대 항구 중 하나)만 빼고 전부 도시화가 진행돼 관측 결과가 기후변화 요인인지 도시화의 요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만약 용암포의 관측 자료를 볼 수 있다면 기후변화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다음 프로젝트는 뭔가.

    “북태평양고기압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한중일이 참여하는 국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집중호우, 장마, 태풍, 폭염 같은 여름철 날씨는 북태평양고기압이랑 관계가 깊다. 예를 들어 폭염의 원인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북태평양고기압이 확장해서, 또는 발달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북태평양고기압이 왜 확장했느냐고 물으면 거기서부터 막힌다. 고기압 중에서 크고 센 것을 ‘기단’이라고 하는데 북태평양고기압은 전 세계 기단 중 제일 크고 넓고 힘도 세다. 북태평양고기압을 모르면 우리나라 여름철 예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작 이 북태평양고기압의 정체를 잘 모른다. 너무 커서 오히려 관측 자료가 별로 없다. 위성 데이터가 있긴 한데 원격 탐사 자료여서 정확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여름 동안 북태평양고기압 중심에서 할 수 있는 관측을 다 해볼 것을 제안하려 한다. 비행기에서도 관측하고 배로도 관측하고 가용자원을 모두 동원해서 4~5년 정도 데이터를 모으면 어느 정도 참값이 나오고 그것으로 위성 데이터 값을 보정하면 나중에는 위성 데이터만 가지고도 북태평양고기압의 관측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눈은 까다로워요”

    “폭설이 더 무서운가, 폭우가 더 무서운가?”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전북 순창에 63.4cm라는 기록적 폭설이 내리는 등 남부권이 60년 만에 눈폭탄을 맞은 직후 유 청장에게 이런 질문은 한 적이 있다. ‘눈폭탄’과 ‘물폭탄’ 어느 쪽이 더 무섭냐는 질문은, 마치 사자랑 호랑이가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기냐는 질문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런 유치한 질문에 기상청장은 ‘과학적’으로 답해주었다.

    “눈이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폭설이 내리면 물류, 교통 통신 장애로 인한 불편함이 훨씬 더 많다. 전 세계 기상학 하는 사람들에겐 아무래도 여름철 집중호우가 먼저고 대설은 다음 단계다. 폭우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비가 강하게 내리는 만큼 대단히 위험하다.”

    이미 답은 나온 것 같은데, 그러나 설명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눈이나 비나 똑같은 강수다. 발생 메커니즘은 같다. 하나는 얼어서 내리는 것이고 하나는 녹아서 내리는 것이다. 문제는 같은 1~2㎜라도 비로 내리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우산 없이 다녀도 된다. 하지만 눈으로 내리면 일반적으로 적설량은 10배가 된다. 즉 1㎜가 1㎝가 되고, 2㎜면 2㎝가 된다. 또 습기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 등 구조에 따라 쌓이는 정도의 편차가 아주 크다. 보통은 강수량의 10배, 적게는 5배, 많게는 30배를 넘기도 한다. 눈의 모양은 눈구름의 온도에 따라 결정되는데 1℃보다 작은 온도 변화에도 눈의 모양이 바뀌어 쌓이는 정도, 즉 적설에 큰 차이가 생긴다. 기온이 임계치에서 왔다 갔다 하면 진눈깨비가 되고 어느 때에는 비로 내린다. 구름에서 만들어진 눈이 따뜻한 공기를 통과하면 비로 변한다. 또 눈이 녹지 않고 땅에 떨어지더라도 지면의 온도가 높으면 눈으로 쌓이는 대신 녹아서 물로 변하게 된다.

    적설량 5㎝는 대설주의보 기준이다. 5㎝가 되면 기상청은 특보를 발령한다. 겨울철 예보관들은 지금이 특보를 내는 상황이냐 아니냐로 고민한다. 염화칼슘을 뿌리느냐 마느냐, 그 부분까지 정해줘야 하는 게 예보관의 일이다. 그만큼 눈은 까다롭다. 강수량 1㎜, 온도 0.1℃의 변화가 우리가 활동하는 데 불편함을 넘어 인명과 재산 피해를 불러오는 수십㎝의 적설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폭설 또한 대응하기 대단히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눈은 까다로워요.”

    1월 26일 오전, 서울 전역을 포함한 수도권 서남부와 충남 서해안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아침 기상청장의 이 말이 떠오른다. 대설주의보는 ‘24시간 동안 새로 내려 쌓이는 눈의 양이 5㎝ 이상으로 예상될 때’ 발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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