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호

1975년생 화이트칼라는 왜 윤석열이 싫을까

노무현·서태지·슬램덩크 꽂힌 세대의 反尹 선언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3-02-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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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5년생은 16%, 76년생은 17% 尹에 긍정적

    • 74·75·76·78·79년생, 민주당 지지율 50%↑

    • 투표는 진보적이지 않은 86세대

    • 가장 덩어리 큰 사무직서 尹 지지율 24%

    • 주류가 됐으나 주류로부터 배척받다?

    • “진보 외치나 일종의 경제 기득권자들”

    • “몸으로 리버럴 분위기 경험한 세대”

    • “홍콩영화 향유하는 ‘시네키즈’의 등장”



    [Gettyimage]

    [Gettyimage]

    숫자는 진실을 담보하지는 않으나 사실은 말한다. 어지러이 늘어선 숫자 행렬에서 취한 사실은 이렇다. 윤석열 대통령의 인기도를 세대별로 살펴보면 40대에서 가장 인기가 없다. 40대에서 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21%다. ‘잘못하고 있다’는 72%로 집계됐다. 40대 남녀 공히 21%만 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40대는 성별 격차 없이 윤 대통령에게 불만이 많다. ‘모름/응답거절’이라 답한 비율은 5%에 그쳤다.

    한국갤럽이 2022년 12월 15일 발표한 ‘2022년 월별·연간 통합-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 정당 지지도, 주관적 정치 성향’에 나오는 대목이다. 한국갤럽이 매주 진행하는 ‘데일리 오피니언’ 데이터를 통합한 자료다. 윤 대통령이 2022년 5월에 집권했으니 7개월치 데이터가 쌓였다. 조사 대상자만 3만1023명이다. 응답 방식은 전화조사원 인터뷰다. 표본이 많아 여론의 심층을 들여다보는 데 용이하다.

    90년대 학번의 단결?

    세대별 여론은 익숙하나 나이별 여론은 낯설다. 1주일에 한 차례씩 발표되는 여론조사에서도 기술적으로 나이별 여론을 가늠할 수는 있다. 다만 표본이 적어 오독(誤讀)의 여지가 생긴다. 7개월치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국갤럽은 별도의 표를 통해 조사 대상자 전체를 나이별로 집계한 결과를 발표했다. 2022년 기준 만 18세(2004년생)부터 만 89세(1933년생)까지는 일일이 살폈다. 만 90세(1932년생)부터는 ‘90세+’로 표에 썼다. 2022년 11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대통령 긍·부정 평가, 주요 정당 지지도, 정치적 성향을 모두 기록했다. 정치 데이터의 보고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 중 윤 대통령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은 1975년생이다. 대학 입학 연도는 1994년, 그러니까 94학번이다. 조사 시점 기준으로는 만 47세, 올해 기준으로는 만 48세다. 1975년생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은 16%에 불과했다. 부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은 76%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층 비율이 높은 사람들은 딱 한 살 아래, 그러니까 1976년생이다. 1976년생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은 17%였다. 부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은 77%여서 외려 1975년생의 같은 비율보다 더 높다. 부정 평가 기준으로 보면 1976년생이 윤 대통령에게 가장 비판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를 포함해 1970년대 중·후반생들이 윤 대통령에게 유독 부정적이었다. 긍정 평가 기준으로 보면 1977년생 22%, 1978년생 19%, 1979년생 19%다. 90년대 학번으로 묶이는 1980년생에서도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비율은 19%에 그쳤다. 2023년 기준 43세에서 48세 사이, 굳이 따지자면 사회에서 커리어의 전성기를 구가할 시점의 시민들이 집권세력에 대한 비토층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74년생, 1975년생, 1976년생, 1978년생, 1979년생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50%를 넘었다. 전 세대를 통틀어 민주당이 과반 지지율을 확보한 나이대는 이들뿐이다. 1976년생에서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19%에 그쳐 민주당 지지율(53%)과의 격차가 34%포인트다. 70대(1942~1952년생)에서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 지지율에 비해 30% 안팎 높았는데, 이와 겉모습은 유사하되 구도는 정반대다. 무당파 비율이 높으면 윤 대통령 처지에서도 공략 포인트를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강력한 연료로 자리 잡은 세대라면 마땅한 묘수가 없다.

    86세대(80년대 학번·1960년대 출생)에서는 예상보다 윤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 비율이 높지 않다. 오히려 평균에 수렴했다. 86세대가 대부분인 50대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3%로, 전체 평균(34%)과 유사했다. 1960~1963년생에서는 43~48%로 과반에 육박했고, 1964~1965년생은 똑같이 37%를 기록했다. 그리 나쁜 성적표가 아니다. 1970년대생에 가까운 1968년생(26%)과 1969년생(23%)에서만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에 머물렀다.

    1차 베이비부머와 2차 베이비부머

    이는 그간의 경험적 분석과 맥이 닿아 있다. 배진석 경상국립대 교수가 동아시아연구원(EAI) 대선 패널 조사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2022년 대선에서 1960년대생의 투표 선택은 전체 유권자의 투표 선택과 거의 일치했다. 배 교수는 “이념에 따라,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에 따라, 그리고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에 따라 후보를 선택했다”고 했다. 단, “세대 효과 중 그나마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발견은 1970년대생일수록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정도였다”고 했다.(EAI 워킹페이퍼 ‘86세대와 세대 효과의 종언: 1992-2022 대선 분석’)

    그러면서 배 교수는 “1960년대생은 스스로를 진보적으로 평가해 왔지만, 투표 선택은 이념 평가만큼 진보적이지는 않았다”며 “오히려 1970년대생이 1960년대생보다 40대에 더 진보적으로 투표 선택을 하고 있다”고 썼다. 86세대에 초점을 맞춘 보고서이긴 하나, 간접적으로나마 1970년대생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어느 각도로 보나 1970년대생은 반(反)보수 내지 비(非)보수 성향을 보이고 있다.

    다른 연구 결과도 소개한다. 최슬기 KDI(한국개발연구원) 부교수, 이윤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2019년 발표한 논문 ‘세대별로 투표하는 정당이나 후보는 달라지는가?’(한국사회 제20집 2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자들이 한국종합사회조사를 자료로 활용해 APC(Age-Period-Cohort) 모델로 분석한 결과, 가장 보수적이지 않은 정치 행태를 보인 세대는 1970~1974년생이었다. 두 번째는 1965~1969년생이었고, 다음이 1975~1979년생이었다. 1970~1974년생의 진보성을 확인한 연구여서 발간 직후 적잖은 화제를 모았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민주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386세대가 정치이념과 태도에서도 가장 진보적일 것이라는 통념에 반하는 결과”라고 썼다. 그만큼 1970~1974년생의 진보성이 도드라진다는 얘기다. 이 논문이 나온 지 3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오히려 1975~1979년생의 비보수적 성향이 윗세대보다 두드러졌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1970년생 27%, 1971년생 23%, 1972년생 31%, 1973년생 26%, 1974년생 23%였다. 전체 평균(34%)을 밑돌긴 하나, 16~17%로 나온 바로 아래 세대보다는 윤 대통령에게 호의적인 셈이다.

    국내에서 주민등록인구상(2022년 11월 기준) 가장 인구가 많은 나이대는 1971년생(93만3689명)이다. 이어 1969년생(91만8280명), 1968년생(91만1451명), 1970년생(90만5504명), 1960년생(90만4915명), 1961년생(90만3780명) 순이다. 이들 6개 집단만 ‘90만 명 클럽’에 속해 있다. 1960~1961년생은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에 해당한다. 1968~1971년생은 2차 베이비부머(1968~1974년생)에 포함된다. 윤 대통령은 1차 베이비부머 쪽에서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다. 86세대가 ‘진보 세대’라는 통념은 데이터에 따르면 사실이 아니다. 이와 달리 윤 대통령은 2차 베이비부머 쪽에서 인기가 없다. 2차 베이비부머 이후 처음 세상에 출생한 1975년생은 반(反)윤석열 정서를 보인다.

    한국 사회의 主流

    이번에는 직업을 보자. 2022년 5월부터 12월 누적 데이터 기준으로 윤 대통령에게 가장 비판적인 직군은 사무/관리직이다. 긍정 평가 비율이 24%, 부정 평가 비율은 68%로 두 쪽 모두 전체 평균(긍정 34%, 부정 55%)과의 격차가 두 자릿수 이상 났다. 전 직군을 통틀어 유일하게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 비율이 60%를 넘겼다. 사무/관리직의 경우 표본이 9599명에 달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94%였다. 가중치를 적용한 표본은 1만154명으로 그 비중이 32.73%까지 높아졌다. 개별 직군으로만 보면 대한민국에서 덩어리가 가장 큰 집단이다.

    다음으로 학생층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이 27%에 그쳤다. 다만 학생층에서는 부정 평가 비율이 56%로 전체 평균(55%)과 비슷했다. 모름/응답거절 비율이 15%로 다른 직군에 비해 유독 높았던 점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학생층의 표본은 가중치를 적용해도 2125명으로, 전체의 6.84%에 불과했다. 긍정과 부정 평가를 모두 종합하고 표본까지 고려하면 사무/관리직이 가진 윤 대통령에 대한 비토 정서가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뜻이 된다.(이하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세대와 직업을 종합하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2022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성인 중 윤석열 대통령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은 1975~1976년생 사무/관리직이라고 말이다. 다른 말로 ‘40대 중·후반 화이트칼라’라 할 수도 있다. 기업에서의 직급으로 치면 고참 차장이거나 부장, 혹은 상무 언저리에 해당할 이들이다.

    1990년에는 국민소득에서 기업의 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16.1%였다. 2011년에 그 비중은 24.1%로 급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한국 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자영업자는 추락했다. 1996~2000년 자영업자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9.3%로 기업의 영업이익 증가율 7.5%를 앞섰다. 2001년에 이르러 자영업자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1.5%로 급락했다. 대신 기업은 2000년대 들어 연 11% 이상 저축을 늘리면서 현금유보를 점점 늘렸다.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쓴 ‘격변과 균형: 한국경제의 새로운 30년을 향하여’에 나오는 얘기다.

    2010년대 기업의 영향력이 한층 커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40대 중·후반 화이트칼라는 한국 사회의 주류(主流)다. 윤 대통령에게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자영업자(긍정 평가 비율 37%)는 위기를 겪어왔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집권함으로써 주류가 됐으나, 막상 주류의 지지는 못 받고 있다는 뜻이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2020년 총선 직후 “이 상황을 ‘뉴노멀’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 사회의 주류가 산업화 세력에서 민주화 세력으로 교체됐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 치러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산업화 세력에 해당하는 보수가 승리했지만, 대한민국 주류가 민주화 세력으로 표현되는 진보를 지지하는 건 분명 숫자로 증명된다.

    통계 분석의 대가인 바츨라프 스밀 캐나다 매니토바대 환경지리학과 명예교수는 “우리 세계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그런 숫자를 적절한 맥락에 대입할 수 있어야 한다”(‘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넘겨짚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71가지 통찰’ 중)고 했다. 역사적·사회적·국제적 맥락을 살펴야 숫자에 담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부터 주목하려는 키워드도 맥락이다.

    “일종의 경제 기득권자들”

    국회 보좌진 출신인 김형호 동국대 산학협력중점교수는 99학번(1980년생)으로 정치학을 전공했다. 학부 졸업 후 곧장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 덕분에 1990년대 초·중반 학번에서 2000년대 중반 학번까지 모두 지켜봤다. 서울 지역구에서 여러 차례 총선과 지방선거를 치러 현장의 민심을 읽는 데도 능하다. 그와 나눈 문답이다. 전반적으로 비판적 시각이 묻어 있긴 하나, 당사자들 옆에서 관찰한 경험이 녹아 있어 흥미롭다.

    1970년대 중·후반생이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를 가장 싫어하는 집단이더라.

    “그들은 일정하게는 이중성을 보이는 세대 같기도 하다. 입으로는 진보를 부르짖으면서 행동은 보수를 지향한다. 학생운동의 끝자락에서 운동권의 맛은 살짝 봤지만, 20대 때 IMF 외환위기를 겪고 30대 때는 세계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자본이 최고’라는 인식을 갖게 된 세대이기도 하다.”

    특히 화이트칼라층의 반감이 강한데.

    “화이트칼라는 세계금융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아 일종의 경제 기득권자가 된 이들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가게 문을 닫은 자영업자와는 다르지 않나.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취업은 00~01학번이 취업 전선에 나가기 시작한 2004~2005년부터 힘들어졌다. 그 여파로 (뒷세대부터는) 공무원 하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엄청 늘었다. 94~99학번은 의외로 취업이 잘됐다.”

    IMF 여파가 있었는데도 말인가.

    “94~99학번도 취업을 위해 어느 정도는 스펙을 쌓아야 했지만, 그 뒷세대에 비하면 스펙이 조금 약해도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학생운동을 해도 대학만 나오면 취업이 잘된다거나 서류만 내도 취업에 성공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스펙 경쟁을 할 정도의 상황도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00~01학번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내가 학교에 있으면서 그 단절선이 명확히 느껴졌다. 즉 94~99학번은 사상적·이념적으로는 낀 세대고 화이트칼라만 놓고 보면 경제적 기득권자다.”

    보수정당 보좌진으로서 현장에서 느낀 분위기는 어땠나.

    “(1970년대 중·후반생은) 경계심을 표할 정도로 보수정당을 싫어한다. 이들을 공략하기가 쉽지 않으니 지금의 20·30 세대, 그중에서도 특히 남성들만 적극 겨냥하는 쪽의 전략이 나오는 거다. 20·30 남성의 경우, 역차별을 당한다는 인식이 상당히 강하고 취업도 어렵다 보니 (보수정당 처지에서는) 정치적 에너지를 결집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이 훌륭한 대통령이라 얘기하면…

    이번에는 중도 진보 성향 지식인의 해석을 들어보자. ‘좋은 불평등’을 쓴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1973년생이다. ‘진보 정책통’으로,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부소장을 역임한 ‘사회조사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에게도 같은 취지의 질문을 던졌다. 앞서 소개한 김 교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1970년대 중·후반생에 호의적이다. 관찰자의 시각에서 두 사람의 답변을 종합하면 이 세대의 초상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1970년대 중·후반생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이 최저 16%라는 한국갤럽 조사가 나왔는데.

    “이들은 탈권위주의 성향이 강하고 ‘서태지 세대’다. 세계화 얘기가 나올 때고, 민주화 이행기이기도 했다. 세대 효과는 20대 때 형성된 세계관이 죽을 때까지 간다고 본다. 80년대 학번에는 그것이 1980년 광주와 1987년 6월 민주항쟁이다. 이른바 ‘세대교체 30년 주기론’이란 가설이 있는데, 20대 때 형성된 세계관으로 50대 때 의사결정의 주도권을 쥔다는 거다.”

    그 시기 즈음 사회 주류가 되니까….

    “그렇다. 20대에 품은 생각을 50대에 실현하는 것이다.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세대’는 1960~70년대에 20대를 보냈다. 가장 큰 관심사는 북한과 가난이었다. 이들은 후진국 시대를 살았다. 1980년대에 20대를 보낸 86세대는 군부독재 타도가 최대 관심사였다. 이들을 포함해 40·50대는 중진국 시대를 살았다. 그중 90년대 학번들의 경우 노무현의 존재가 가장 크다.”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서거하지 않았나.

    “(1990년대는) 권위주의에서 탈권위주의로 넘어가는 이행기였고, 서태지나 X세대라는 단어가 다 그와 같은 분위기를 상징하는데, 그 정점이 2002년 노 전 대통령 당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또 하나의 정점이었던 거고.”

    그것이 이른바 리버럴(liberal)의 정서를 만들어낸다?

    “97(90년대 학번·1970년대 출생)세대인데 보수정당에서 활동하는 정치인 중 노 전 대통령이 좋다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권위주의에 맞서는 리버럴함’을 이유로 댄다. 탈권위주의 이행기의 정서를 여전히 갖고 있는 것이다. 86세대가 머리로는 리버럴을 배웠으나 몸으로는 리버럴을 배운 적이 없다면, 97세대는 몸으로도 리버럴의 분위기를 약간이나마 경험한 세대다.”

    그렇다면 그 세대가 앞으로도 윤석열 정권을 좋아할 수 없을 것 같다.

    “복잡한 방법을 쓸 필요가 없다. 윤석열 정권이 ‘80년 광주’ ‘87년 6월 민주항쟁’을 인정하고 김대중·노무현이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얘기하면 된다. 윤 대통령이 2022년 5·18 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면서 KTX 특별열차를 타고 여권 인사들과 함께 갔다. 그런 게 좋은 행보다.”

    그러면 97세대로 지지를 확장할 여지가 생기나.

    “반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지. 정치를 바둑으로 본다면, 우리 집은 지키고 중도로 나아가 상대방의 결집을 약화시키는 거다.”

    與에는 딜레마, 野에는 기회

    1970년대생들은 X세대, 신(新)세대, 신(新)인류로 불리며 1990년대 화려하게 출현했다. 세계사적으로는 미·소 냉전이 종식되던 시기였다. 이즈음 대중 소비문화가 본격 개화했다. 86세대가 운동의 영역에서 전복을 꾀했다면, X세대는 문화의 영역에서 반란을 꿈꿨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X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서태지 본인부터가 1972년생이다. 이 세대에서 방시혁(1972년생·하이브 의장), 김태호(1975년생·PD), 나영석(1976년생·PD), 류승완(1973년생·영화감독) 등 창의적 기획자들이 나온 건 우연이 아니다. 1970년대 중·후반생을 이해하는 데서 대중문화는 핵심 고리다. 대중문화 연구자인 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1970년대 중·후반생들은 슬램덩크에 열광하던 세대”라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홍콩영화를 즐겨 보는 등 해외 콘텐츠가 들어오기 시작한 부흥기를 향유한 세대기도 하다. ‘시네키즈’가 많고 영화 잡지를 즐겨 읽던 세대다. 비디오게임이 막 개발되던 시기였고, 월드와이드웹이 열리던 때다. 대중문화 콘텐츠를 세대 문화로 받아들인 첫 번째 세대다. 김영삼 정권이 세계화를 외치던 시기와 맞물려, 배낭여행 등으로 해외에 오가던 세대이기도 하다. 이 세대에서 유학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금과 같은 조기유학이 아니라, 10대 이후에 해외로 공부하러 간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한 때다. 기존의 한국과는 다른 형태의 문화를 접하면서 글로벌에 조금씩 눈뜨게 된 세대라 할 수 있다. 대중문화, 해외여행, 유학 증가 등의 키워드를 통해 드러나듯 세대 전반적으로 리버럴 성향이 짙다.”

    고로 정치의 문법으로건 문화의 문법으로건 1970년대 중·후반생을 설명하는 열쇠 말은 ‘리버럴’이다. 그런 이들이 자유를 어젠다로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과 불화하고 있다. 윤 대통령에게는 참으로 고약한 딜레마다. 5년 만에 정권을 잃은 진보에는 기회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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