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조선은 황제국을 선포하며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꿨다. 1900년 열린 파리만국박람회는 대한제국이 독립적 전시관을 세워 참여한 첫 박람회다. 대한제국의 권위와 위상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국가적 기획이었다. 한 가지 특기할 점은 한국 최초의 사진엽서가 탄생한 계기가 됐다는 것.
당시 한국에서 프랑스어 교사로 일하던 샤를 알레베크는 파리만국박람회 한국 측 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때 서울에서 찍은 사진 등을 이용해 파리에서 48종의 사진엽서를 제작했다. 이는 한국 최초의 사진엽서로서 대한제국관의 공식 기념품으로 판매됐다.
지금으로부터 123년 전 신생 제국 대한제국은 파리만국박람회를 통해 세계와 마주했다. 개화기 한국 관련 외국 문헌 수집가 김홍석의 수집품을 통해 당시 대한제국을 만나보자.
1900년 12월 16일(일요일)자 타블로이드판형 프랑스 주간지 ‘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 내용 중 한 면 전체에 걸쳐 실린 박람회의 대한제국관에 관한 삽화(왼쪽)와 그 표지(오른쪽). 삽화 속 건물은 실제 박람회장에 설치된 경복궁 근정전을 축소해 만든 건물이다.
박람회에 관한 폴 제르(Paul Gers)의 저서 ‘1900년에’(En Coree, 1900년 발행). 대한제국을 소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1900년 박람회 공식 카탈로그 표지.
1900년 박람회 공식 카탈로그에 실린 대한제국관의 위치. 대한제국관은 L951로서 박람회 중심가에서 약간 벗어난 슈프렌(Sufren)가에 위치했다.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이 박람회 즈음에 펴낸 한국 소개 책자 ‘서울의 추억(Souvenir de Seoul)’ 표지. 앞면 왼쪽 위에 1900년 박람회에서 대한제국이 1개의 그랑프리, 2개의 금메달, 10개의 은메달, 5개의 동메달, 3개의 가작까지 총 21개의 상을 수상했다고 적혀 있다.
(왼쪽부터)대한제국 시기 서울의 관립 프랑스어학교 교사이던 샤를 알레베크의 초상. 한국 최초 사진엽서 시리즈를 만든 주인공이다. 1900년 당시 주한 프랑스 공사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 대한제국이 박람회에 참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박람회 대한제국 대표 민영찬의 초상. 충정공 민영환의 동생이다. 박람회 대한제국 위원 중 한 명인 이인영의 초상.
알레베크가 제작한 48장의 엽서를 순서대로 늘어놓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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