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집 20채 가격, 학 무늬 상감청자
고려 인종 소장품, 참외 모양 청자
일상 아름다움 담아낸 容器 청자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국보 청자 참외모양병. [동아DB]
1915년 코카콜라병 공모전에서 당선한 디자인(오른쪽) (코카콜라). 콜라병 하부가 청자 참외모양병 하부와 유사하다. [동아DB]
그런데 청자도 그 모양이 무척 다양하다. 항아리, 주전자, 대접, 연적(硯滴) 등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청자도 있고 고려청자 특유의 상감기법으로 무늬를 표현한 상감청자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고려청자 가운데 과연 무엇을 한국미의 대표작으로 내세울 수 있을까. 사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한국미의 대표작, 고려청자의 대표작을 거론하는 일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정답이 있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고려청자의 대표작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우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질문은 늘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구름학무늬매병과 간송 전형필
국보로 지정된 청자 상감 구름학무늬매병. [동아DB]
이 청자 상감 구름학무늬매병은 당당하고 유려하다. 높이는 41.7㎝로, 지금까지 전해 오는 고려청자 가운데 가장 큰 편에 속한다. 입 부분은 다소 작고 납작한 듯 보이지만 어깨는 씩씩하게 벌어졌고 그 어깨를 타고 S자 곡선이 몸통 아래쪽으로 시원하게 뻗어 내려온다. 표면엔 학과 구름을 상감기법으로 빼곡하고 정교하게 새겨 넣었다. 여러 개의 원 안에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학을, 원 밖에는 지상으로 내려오는 학을 배치했다. 학의 몸짓을 원 안팎에 상승과 하강으로 표현함으로써 생동감을 부여하면서도 질서정연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고려인들의 고고한 정신세계를 세련된 미감으로 표현한 청자 명품이다.
이 청자 상감 구름학무늬매병은 전형필이 1935년 일본인 골동품상으로부터 2만 원을 주고 구입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당시 서울에서 가장 좋은 기와집 한 채가 1000~1500원이었다고 하니 2만 원은 실로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청자매병 자체의 매력과 함께 간송의 스토리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이 고려청자는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명품으로 자리 잡았다.
형태와 색감만으로 닿은 미의 극치
그런데 간송미술관의 청자매병 외에 언제부턴가 내 마음을 사로잡은 청자가 있다. 국보로 지정된 청자 참외모양병(靑磁瓜形甁·12세기·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다. 이 청자 참외모양병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고려 17대 임금인 인종의 무덤에서 출토됐다. ‘황통육년(皇統六年)’이라고 연대가 표기된 시책(諡冊)과 함께 발견됐다. 황통 6년은 1146년으로, 제작 시기를 가늠할 수 있기에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다.고려청자 전성기인 12세기에 만들어진 이 청자 참외모양병은 이름 그대로 참외를 형상화했다. 몸체는 참외 모양이며 그 위로 목을 길게 붙이고 잎 부분을 여덟 장의 꽃잎으로 표현했다. 그 모습이 나팔꽃잎 같기도 하고 참외꽃잎 같기도 하다. 몸체의 아래쪽에는 치마 주름을 연상케 하는 굽이 연결돼 있다. 전체 높이는 22.7㎝, 입(병의 입구 부분) 지름은 8.4㎝이다.
이 청자 참외모양병은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단정한 형태에, 투명하고 깊은 비색(翡色)이 두드러진다. 참외 모양의 몸체는 단순하지만 실제 참외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오목하게 들어간 골 사이로 참외의 몸집이 팽팽하게 드러났다. 참외의 양감과 탄력이 두드러져 생동감이 넘친다. 이런 참외를 치마 주름 모양의 굽이 받치고 있으며 참외 몸체 위로는 여덟 장의 꽃잎이 아름답게 쫙 펼쳐져 있다. 참외와 꽃잎, 치마 주름이 한자리에서 만나 멋진 디자인을 완성했다. 몸통과 굽, 몸통과 주둥이가 서로 대비와 조화를 이루며 긴장감과 함께 경쾌함을 전해 준다.
이 청자 참외모양병엔 별다른 장식이 없다. 오직 형태와 비색만으로 승부를 걸었다고 할까. 그건 놀랍고도 대범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비색과 상감기법뿐만 아니라 단순한 듯 과감하고 세련된 조형미도 고려청자 미학에 중요하게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국인 손에서 간송이 구한 청자들
간송 전형필이 1937년 일본에서 활동하던 영국 변호사 존 개스비에게 사들인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동아DB]
새끼를 바라보는 어미 원숭이의 눈길은 사랑으로 가득하고 새끼 원숭이는 귀엽고 앙증맞다. 누군가는 “어미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를 안아주려고 하는데 새끼 원숭이가 두 손으로 밀쳐내는 모습”이라고 짓궂게 말하기도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미 볼을 만지는 것이든 어미를 밀쳐내는 것이든, 귀엽고 사랑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보는 이를 한없이 미소 짓게 하는 이색적인 명품이다.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은 일제강점기에 전형필이 일본에서 수집한 것이다. 전형필은 1937년 평소 알고 지내던 중간 골동품상으로부터 “일본에서 활동 중인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가 귀국을 앞두고 고려청자를 처분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전형필은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개스비를 만났고 그의 청자 컬렉션에 매료됐다. 전형필은 주저하지 않고 고려청자 명품 20여 점을 구입했다. 이 모자원숭이 연적을 비롯해 국보 청자 기린모양 향로, 국보 청자 상감 연못원앙무늬 정병(淨甁), 국보 청자 오리모양 연적 등이 이때 구입한 것들이다.
흙과 불이 만들어낸 참외꽃
참외 모양의 청자는 꽤 많다. 중국에서도 많이 제작했지만 색감은 물론 전체 조형미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청자 참외모양병이 단연 독보적이다. 참외와 꽃잎, 치마 주름의 크기와 비율이 가장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덕분이다. 참외의 양감이 빈약하다면 전체적으로 균형감을 상실해 참외모양 병은 옹색하게 보일 것이다. 반면 참외가 너무 통통하다면 그 반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청자 참외모양병은 지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다.몸체 윗부분의 입과 목은 활짝 핀 나팔꽃 같기도 하고 참외꽃 같기도 하다. 참외라고 하면 먹을 줄만 알았지, 그 꽃이 어떻게 피는지 눈여겨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이 청자를 계기로 사진을 찾아봤다. 청자의 주둥이 꽃잎 부분은 나팔꽃 같기도 하고 참외꽃 같기도 하다. 다소 헷갈리지만 그래도 참외꽃이 아닐까 싶다. 이와 관련해 도자기 전문가인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언급이 인상적이다.
“참외꽃이 예쁘게 피어나면 얼마 있다 꽃과 줄기 사이에 새끼손가락의 반쯤이나 될 듯한 참외가 달렸다가 참외가 조금 자라면 꽃은 이내 떨어진다. (…) 이 화병의 꽃잎은 꽃이 활짝 핀 바로 그 순간이거나 활짝 피기 바로 전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은 몇 초일 수도, 찰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화병을 만든 사람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가장 아름다운 그 순간의 모습을 가슴에 품어두었다가 이 화병의 꽃잎을 만든 것이다.”(‘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1-회화 공예’에 실린 정양모의 글)
정 전 관장의 글을 읽으면, 이 청자 참외모양병 입 부분의 꽃잎이 더더욱 애틋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앞으로 언젠가 참외꽃을 유심히 눈여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그런데 이 꽃잎 가장자리는 상당히 얇게 처리됐다. 이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대목이다. 정 전 관장의 글을 계속 읽어보자.
“청자는 불길에 지극히 민감하다. 불길 속(가마 속) 산소의 함량에 따라 비색 청자도 되고 황색 청자도 되고 갈색 청자도 된다. (…) 적정한 온도일 때는 작가가 원하는 형태가 되지만 불과 10도, 20도, 30도 차이에도 처지고 주저앉고 일그러지는 등 바라지 않는 여러 가지 상황이 전개된다. 더구나 이 화병과 같이 꽃잎이 얇은 경우에는 순간 온도 상승에 따라 처지고 말기 때문에 이와 같이 아름다운 꽃잎을 청자로 만든다는 것은 신기라고 할 수밖에 없고 결국은 바람과 불길이라는 자연에 맡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연의 순리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이다.”
일상에서 찾은 현대적 아름다움
국보 청자 참외모양병의 매력은 국보 청자 상감구름학무늬매병과 비교해보면 좀 더 선명해진다. 청자 상감구름학무늬매병은 육중한 곡선미와 정교하고 화려한 상감 무늬가 돋보인다. 당당하고 유려하다. 학과 구름이라고 하는 불교적이면서도 도교적인 요소를 차용함으로써 귀족적인 철학과 미감을 드러냈다. 고려의 미감과 정신을 청자로 구현한 것이다. 지극히 고려적이라고 할까. 그 고풍스러움이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청자 참외모양병의 미감은 청자 상감구름학무늬매병과 많이 다르다. 우선, 옛날 것 같지 않고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참외라고 하는 일상적인 사물을 디자인의 모티프로 삼았고, 그것도 별다른 장식 없이 단순하게 표현했다. 그래서 편안하고 부담이 없다. 그러면서도 세련된 형태로 경쾌함과 유쾌함을 발산한다.
일상의 요소를 절제된 미감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현대적 미감과 통한다. 청자 상감구름학무늬매병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고려청자의 또 다른 미감이 아닐 수 없다. 청자를 잘 모르는 외국인이 이 청자 참외모양병을 보면 현대 공예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인지 요즘 이 참외모양병을 변주한 미술품이나 참외모양병을 모티프로 삼은 문화상품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700년 세월 넘어 서로 닮은 코카콜라병과 청자
고려청자는 기본적으로 그릇이고 용기(容器)였다. 청자 참외모양병도 마찬가지다. 참외 모양 청자는 일상의 사물을 디자인의 모티프로 삼았다, 청자 참외모양병은 가운데 몸통이 볼록하고 아랫 부분은 주름치마 모양이다. 이런 형상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코카콜라병이 떠오른다. 카카오 열매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는 코카콜라병은 특유의 초록빛 투명함과 곡선을 이룬 형태가 주된 특징이다. 1915년 처음 만들어진 코카콜라병은 청자 참외모양병과 많이 닮았다. 코카콜라병의 가운데 몸통 부분과 아랫부분이 특히 그렇다.불세출의 음료 코카콜라는 1886년 탄생했다. 1년 뒤인 1887년 코카콜라 로고가 만들어졌다. 이 로고는 이후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코카콜라병은 1915년 디자인됐다. 액체 음료를 좀 더 효율적으로 유통·판매하기 위해 코카콜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915년 코카콜라는 500달러의 상금을 내걸고 병의 디자인을 공모했다. 조건은 하나였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만져도, 깨진 병 조각을 보고도 코카콜라병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점. 이때 미국 인디애나주 한 유리 회사에 다니던 디자이너와 직원 5명이 카카오 열매의 곡선을 차용해 코카콜라 병을 디자인했고 공모에서 당선했다. 코카콜라병은 투명한 초록빛이다. 이 색은 코카콜라를 생산하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푸른 자연환경을 상징한다. 그래서 코카콜라병의 색을 ‘조지아그린’이라고 한다.
당시 코카콜라병은 지금의 것보다 가로 둘레가 길고 통통했다. 우리의 청자 참외모양병과 비슷한 분위기다. 이후 콜라병은 조금씩 날씬해졌지만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코카콜라의 로고와 병이 100여 년 전 초창기 디자인을 그대로 지켜내고 있다는 점이 놀랍고 흥미롭다. 코카콜라병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했고, 예술 작품의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코카콜라병의 형태를 두고 여성의 치마에서 착안했다는 설도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1910년대 유행한 호블 스커트(밑으로 내려갈수록 통이 좁아지는 치마)와 모습이 비슷해 호블 스커트 병이라고 불렸는데 이런 내용이 와전된 것이다. 어쨌든 코카콜라병의 아랫부분도 치마를 연상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12세기 청자 참외모양병과 20세기 코카콜라병은 출현 상황과 맥락이 다르다. 그럼에도 묘한 유사점이 있다. 참외와 카카오 열매, 주름치마와 호블 스커트, 비색과 조지아그린…. 누군가는 청자 참외모양병과 코카콜라병을 비교하는 것에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럼에도 나는 비교해 보고 싶다. 비교를 통해 고려시대 참외 모양 청자의 매력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왜 이렇게 젊고 싱그러운지, 왜 이렇게 일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지, 왜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모던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지. 이런 점은 코카콜라병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참 기분 좋은 비교가 아닐 수 없다. 이 또한 국보 청자 참외모양병의 명품 스토리로 기억되지 않을까.
이광표
● 1965년 충남 예산 출생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졸업(박사)
● 前 동아일보 논설위원
● 저서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박물관’ ‘한국의 국보’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