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호

당신이 보유한 ‘코인’ 생사여탈권, 美 손에 달려 있다

[잇츠미쿡] 암호화폐 증권 되면? “즉각 상장폐지”

  •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前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입력2023-02-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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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품이냐 증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FTX 사태 불똥 튄 암호화폐 시장

    • 美 시장에서 퇴출 가능성↑

    미국 당국이 암호화폐를 증권 혹은 상품 가운데 무엇으로 판단할지에 따라 암호화폐 시장 향방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Gettyimage]

    미국 당국이 암호화폐를 증권 혹은 상품 가운데 무엇으로 판단할지에 따라 암호화폐 시장 향방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Gettyimage]

    2023년 미국 나아가 전 세계 디지털 자산 시장을 좌우할 핵심 변수는 미국 의회가 암호화폐, 이른바 ‘코인’을 상품으로 규정하느냐, 증권으로 규정하느냐다. 필자는 미국에서 특정 암호화폐가 증권으로 분류된다는 것은 시장에서 사망선고를 받는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암호화폐가 미국에서 증권이 되는 순간 미국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세계 3대 암호화폐 거래소 가운데 하나인 FTX가 파산보호(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미국 의회의 암호화폐에 대한 시선은 급속히 냉랭해졌다. ‘FTX 사태’는 암호화폐 자체 문제라기보다 경영진이 고객 자산을 유용하다가 날리고, 망해 버린 ‘회계 부정 사건’ 성격이 강하지만 불똥은 암호화폐로 튀었다. 대부분 암호화폐를 증권으로 분류해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됐기 때문이다. 과연 암호화폐는 증권이 될 것인가, 상품이 될 것인가.

    “암호화폐 거래소=카지노”

    “암호화폐 분야는 대부분 법을 준수하지 않는다. 현재 1만 개 정도의 크립토 토큰(암호화폐)이 존재하고, 아마도 수백 개의 (암호화폐 거래소 등의) 서비스 제공자가 있다. 이런 서비스 제공자를 일종의 카지노로 볼 수 있다. 수익을 얻기 위해 돈을 투자하는 대중이 있는 카지노다. 대부분의 토큰은 증권이다. 따라서 그걸 제공하는 상점, 말하자면 카지노는 우리와 협의해 법을 준수해야 한다.”

    개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FTX 사태’ 이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암호화폐에 대해 규제를 강화할 방침을 밝혔다. [SEC 홈페이지 캡처]

    개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FTX 사태’ 이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암호화폐에 대해 규제를 강화할 방침을 밝혔다. [SEC 홈페이지 캡처]

    FTX 파산 사태 이후인 지난해 12월 7일 개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야후파이낸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겐슬러 위원장 인터뷰의 핵심은 정확히 세 가지다. 첫째, 대부분의 암호화폐는 미등록 증권이다. 둘째, 암호화폐 거래소를 비롯해 암호화폐 대출이자 상품을 제공하는 금융업체는 미등록 증권 상품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SEC에 자진출두해 법을 준수하는 방안을 조속히 찾아라. 셋째, SEC는 조만간 강력한 행동에 나설 것이다. 형태가 암호화폐든 기존 금융상품이든 본질이 증권이면 증권법에 따라 규제할 것이다.

    겐슬러 위원장의 말은 마치 최후통첩과도 같았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비롯한 관련 업체들을 겨냥해 “활주로가 짧아지고 있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압박했기 때문이다. SEC에 서둘러 협조해서 법을 지키든지 아니면 규제의 철퇴를 받으라는 의미다.

    미국에서 특정 암호화폐가 주식처럼 증권법 규제를 받는 증권(security)인지, 금이나 원유·철강처럼 증권법 규제 대상이 아닌 상품(commodity)인지 규정한 법은 아직까지 없다. 2009년 비트코인 등장 이후 이더리움을 비롯한 각종 알트코인(비트코인 이외의 암호화폐), 그리고 최근엔 대체불가토큰(NFT)까지 나오는 동안 일부 세금과 관련한 제한적 규제가 나오긴 했다. 그럼에도 암호화폐, 그리고 더 넓은 의미의 암호 자산(디지털 자산)을 다루는 포괄적 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SEC가 개별 사안에 따라 대응해 왔다. SEC가 ‘리플랩스’에 대해 미등록 증권 판매 등의 혐의로 제기한 소송을 예로 들 수 있다. 리플랩스는 한국에서도 많이 팔려 잘 알려진 암호화폐 리플(XRP)을 발행한 회사다.



    기존 법률로 대응하기 버겁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가 내놓은 연례보고서가 대표적이다. FSOC 보고서에는 디지털 자산 분야 권고 사항이 포함됐는데, 권고라기보다는 의회를 향한 하소연에 사실상 더 가까웠다. 기존 법규로 규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고, 정부의 어느 기관이 규제 권한을 갖고 있는지 명확하지도 않아 의회에서 법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FSOC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금융위기 위험을 감지하고 대응하기 위해 2010년 7월 출범한 연방정부 차원 조직이다. 재무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증권거래위원회(SEC),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 금융과 관련된 주요 정부 기관이 참여하는 만큼 무게감이 크다.

    FTX 사태로 급변한 워싱턴 기류

    당초 의회에서는 암호화폐 업계에 친화적 법안이 논의되고 있었다. 지난해 5월 테라-루나 붕괴 사태가 일어나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지만 흐름은 업계에 우호적이었다. 같은 해 6월 초 상원 금융위원회 소속 신시아 러미스 공화당 의원과 농업위원회 소속 키어스틴 질리브랜드 민주당 의원은 ‘책임있는금융혁신법안(Responsible Financial Innovation Act·러미스-질리브랜드법안)’을 내놨다.

    법안에는 주요 암호화폐를 증권이 아닌 상품으로 규정해 CFTC에 규제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SEC를 비롯한 규제 당국이 상품으로 인정하는 비트코인뿐 아니라, 상품인지 증권인지 논란이 있는 이더리움도 상품으로 분류하자는 게 법안의 핵심이다. 다른 암호화폐의 경우에도 거래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상장회사들이 SEC에 분기별 보고서를 내듯 1년에 두 차례 보고서를 내는 조건으로 상품처럼 거래하게 해주자는 내용도 담겼다. 즉, ‘산업 발전’을 위해 규모가 큰 암호화폐는 상품으로 취급하자는 것이다.

    8월 초 연방상원 농업위원장 데비 스탭나우 민주당 의원과 존 부즈먼 공화당 의원 등이 발의한 ‘디지털상품소비자보호법안(Digital Commodities Consumer Protection Act·스탭나우-부즈먼법안)’은 암호화폐에 더 우호적이었다. ‘디지털 상품’이라는 새로운 법적 개념을 도입해 암호화폐를 규제가 덜한 CFTC 관할에 두자는 취지의 법안이기 때문이다.

    FTX 사태 이후 분위기는 규제 강화 쪽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12월 초 러미스 의원은 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와 인터뷰하면서 “이더리움은 거래 검증 방식이 바뀌어 이젠 증권이다. 비트코인만이 유일한 상품 자격을 갖춘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러미스 의원의 말은 규제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스탭나우 의원과 부즈먼 의원은 FTX 사태로 인해 역풍을 맞았다. 두 의원이 추진한 법안을 강력하게 옹호하면서 대부분의 암호화폐 규제 권한을 SEC가 아닌 CFTC에 맡기도록 워싱턴 정가에 로비를 한 인물이 바로 FTX 창업자이자 전 CEO 샘 뱅크맨-프리드이기 때문이다. FTX 사태 직후 부즈먼 의원은 “스탭나우 의원과 나는 투자자가 안심할 수 있게, 신뢰를 높일 수 있도록 법안 최종안을 만들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판단 척도, 하위테스트

    암호화폐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한 법이 존재하지 않는 지금 미국에서 암호화폐의 증권성을 판별하는 기준은 대법원 판례에서 유래된 ‘하위테스트(Howey Test)’다. 1933년 플로리다에서 오렌지 농장(하위컴퍼니) 주인(윌리엄 존 하위)이 농장 절반을 일반에 분양하면서 오렌지 경작 판매 서비스를 제공한 데에서 온 개념이다. 통상 테스트는 통과하면 뭔가 이득인데, 이 테스트는 통과하면 증권으로 분류돼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당시 사건에서 SEC는 하위컴퍼니가 미등록 투자계약(investment contract)을 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SEC는 농장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 직접 경작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오렌지 나무를 심은 땅을 팔면서, 그들 대신 경작 및 수확한 뒤 오렌지를 판매해 수익을 지급하겠다는 계약을 했기에 이를 증권법 위반으로 봤다. 증권법에는 투자 계약이 무엇인지 명확한 규정이 없었지만 1946년 대법원은 세 가지 기준에 의거해 투자 계약이라고 판결했다. 돈이 투자되고, 그 돈이 공통의 사업체(하위컴퍼니 및 농장 운영)에 쓰이며, 타인(하위컴퍼니)의 노력으로 금전적 이득을 얻을 거라는 합리적 기대가 있다면 투자 계약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현재 SEC는 하위테스트를 가장 중시하고 있다. 그간 겐슬러 위원장은 “하위테스트를 적용하면 비트코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암호화폐가 증권에 해당한다”고 밝혀왔다. 위원장 취임 전이던 2018년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시절 암호화폐 강의 동영상을 보면, “이더리움은 하위테스트를 통과하기 때문에 증권”이라고 했다. 그는 취임 후 이더리움의 증권성 여부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해 왔지만 의회에서 암호화폐를 폭넓게 상품으로 분류하는 법안을 추진하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다 FTX 사태로 강한 규제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현행법에 따른 규제를 강력히 외치고 있다.

    암호화폐가 증권 된다면…

    현행법을 적용할 경우 특정 암호화폐가 SEC 규제를 받는 증권으로 분류되면 증권을 일반인에게 판매할 때 가해지는 규제가 그대로 적용된다. 회사를 설립한 뒤 일정한 준비를 거쳐 기업공개(IPO)를 하듯 암호화폐를 만든 창업자나 통상 재단(foundation)이란 이름을 붙이는 사업체가 SEC에 등록하고 승인을 받은 후 암호화폐를 판매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엘비알와이크레딧(LBC)이란 암호화폐는 이런 절차를 밟지 않은 채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판매했다가 SEC에 소송을 당한 뒤 패배해 미국 시장에서 퇴출됐다.

    암호화폐가 증권으로 분류될 경우 SEC에 등록 및 판매 승인을 받기 위해선 막대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창업자와 재단(사업체)뿐 아니라 투자자들의 지분, 발행량과 발행 스케줄, 사업계획, 위험 요소 등 구체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상장기업 정보를 주식투자자에게 제공하듯 암호화폐 투자자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면 미국 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상장등록서류(Form S-1)를 보면, 위험 요소, 주요 주주, 회사 관계자들 간 거래 내역 등 온갖 종류의 회사 관련 세부 정보가 들어 있다. 특히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해 누가 얼마나 주식을 갖고 있는지 지분 내역을 샅샅이 공개하고 있다. 만약 공개한 내용이 허위이거나, 반드시 공개해야 할 내용을 숨긴 게 밝혀지면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

    지난해 8월 23일 브라이언 암스트롱 코인베이스 CEO는 CNBC와 인터뷰하면서 “암호화폐가 증권으로 분류되면 즉각 상장 폐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DB]

    지난해 8월 23일 브라이언 암스트롱 코인베이스 CEO는 CNBC와 인터뷰하면서 “암호화폐가 증권으로 분류되면 즉각 상장 폐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DB]

    이런 규제는 ‘암호화폐 거래소’에도 해당된다. 암호화폐 거래소도 증권업 허가를 받고 SEC에 등록하고 승인 받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해 8월 23일 브라이언 암스트롱 코인베이스 CEO는 CNBC와 인터뷰하면서 ‘코인베이스에 상장된 암호화폐가 증권으로 분류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렇게 되면 해당 암호화폐들은 즉각 상장 폐지될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 법을 따르는 회사니까요.”



    잇츠미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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