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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내 싫어하는 엄마도 사로잡은 그 맛! 밥식해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비린내 싫어하는 엄마도 사로잡은 그 맛! 밥식해

곡식, 생선, 누룩과 소금을 버무려 삭힌 반찬 식해. 매콤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곡식, 생선, 누룩과 소금을 버무려 삭힌 반찬 식해. 매콤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연말에 잡은 몇 개 안 되는 약속마저 죄다 취소됐다. 크리스마스 인사부터 연말 안부와 새해 인사까지 메시지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주고받다 보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시간만 길어지고 있다. 대형 서점엔 크리스마스와 새해 인사를 전할 수많은 카드가 진열대에 빼곡하지만 그 주변은 예전과 달리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다. 서로 만날 수 없으니 손 글씨 담는 카드도 점점 멀어진다. 뜨끈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이 친구 저 친구에게 건넬 카드 문구를 골똘히 생각하던 겨울날이 점점 아득해진다.

이맘때면 밥상에 오르는 겨울 반찬이 생각난다. 뜨끈한 전기장판에 나와 함께 누워 있던, 작은 스테인리스 통에 담겨 있던 그것. 엄마는 시집 와서 그것을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어서 고모에게 만드는 법을 배웠다. 비린내가 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꺼려하던 엄마가 아빠를 위해서가 아닌, 당신 입맛에 맞아 만들기 시작한 처음이자 유일한 바닷가식 반찬이다.
그것은 바로 ‘밥식해’. 밥알 동동 뜬 감칠맛 나는 구수한 음료인 ‘식혜’가 아니다. 고춧가루 옷을 새빨갛게 입고 삭은 반찬 ‘식해(食醢)’다. 공교롭게도 겨우내 우리 집 부엌에서 이래저래 많이 불리는 게 식혜와 식해였다. “여기 식해 좀 더 내오소, 곶감이랑 식혜 가지고 가서 오빠랑 무라” 같은 말들이 무수했으니까.

설날 밥상에 꼭 오르는 귀한 반찬 식해

가자미를 넣어 만든 가자미식해. 식해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면 별미로 추천한다.

가자미를 넣어 만든 가자미식해. 식해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면 별미로 추천한다.

식해는 밥과 같이 익힌 곡식과 생선, 누룩과 소금을 버무려 삭힌 것을 말한다. 젓갈은 소금에 절여 삭히지만 식해는 곡식과 누룩이 들어가는 점에서 다르다. 동해안 지역에서 즐겨 만들어먹는 음식이며 가자미나 명태처럼 비린내가 적고 맛이 깨끗한 생선을 주로 사용한다.

집마다 생선을 손질하는 방법은 다르다. 어느 집은 자그마한 것을 구해 지느러미와 꼬리만 떼고 숭덩숭덩 썰어 넣고, 또 다른 집은 살이 두툼한 것을 구해서 내장과 대가리도 떼버리고 살집만 썰어 넣는다. 이때 생선은 소금을 뿌려 서늘한 바람에 꾸덕꾸덕해질 때까지 말려야 한다. 처음부터 생물 대신 마른 가자미나 코다리를 구해 식해를 만들기도 한다. 생선에 물기가 없어야 식해가 묽어지지 않고, 살 씹는 맛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곡식은 메조, 차조, 멥쌀을 주로 쓰는데 한 가지만 사용하기도 하고 섞어 쓰기도 한다. 곡식은 모두 식혜 만들 듯 고두밥(아주 되게 지어져 고들고들한 밥)을 지어 사용한다. 누룩 대신 구하기 쉬운 엿기름을 쓰며 간은 소금으로 맞추되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으로 맛을 더한다.



식해에서 생선만큼 중요한 재료가 바로 무다. 나박나박 두껍게 혹은 무말랭이 만들 듯 가늘게 썰어 준비한 무는 소금에 절여 물기를 꽉 짠 다음 다른 재료와 함께 버무린다. 식해 전체에 달고, 아삭하고, 시원한 맛을 보태주는 게 무인 만큼 겨울에 거둔 것을 사용해야 제 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식해는 겨울의 반찬이고 설날 밥상에 꼭 오르는 귀한 반찬이다.

달고, 쫀득하고 쫄깃하면서 아작거리는 그 맛

우리 집 단골 반찬 밥식해는 오징어와 멥쌀로 만들어졌다. 엄마는 마른 오징어를 물에 불린 다음 다시 물기를 말려 잘게 썰었다. 생물 또는 반 건조 오징어보다 맛이 더 깊고, 씹는 맛도 좋아서였다. 고춧가루는 입자가 아주 고운 것으로 준비해 꼬들꼬들한 무에 먼저 버무려 발갛게 색을 들였다. 고두밥에는 엿기름 분말을 먼저 섞어 두었다가 준비한 재료를 모두 섞어 치대듯이 버무려 스테인리스 통에 담아 안방에 두었다. 아랫목이 없는 아파트이니 전기장판 위에 올려 이불을 덮어 두고 이틀 정도 삭힌 다음 냉장고로 자리를 옮겼다.

생생하던 재료들이 겨우 두 밤 만에 서로 엉긴다. 밥알에 살이 붙은 죽 같기도 하고, 주홍빛으로 잘 익은 고춧가루 색을 보면 젓갈 같기도 하다. 매운맛보다는 매운 냄새가 먼저 입맛을 돋우며 오징어와 무, 밥알이 엉겨 달며 쫀득하고, 쫄깃하면서 간혹 아작거린다. 비린내 없이 알싸한 감칠맛만 차지게 난다. 뜨끈한 흰 밥에 얹거나 달지 않은 팥죽에 곁들이고, 떡국, 부침개, 찐 만두에도 올려 먹는다. 여름의 오이지만큼 겨울의 식탁을 장악하는 게 바로 밥식해다.

옆에서 지켜보면 만드는 게 뭐 어렵나 싶지만 나는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다. 다행히 온라인 쇼핑몰에서 다양한 식해가 지역상품으로 유통 중이다.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다면 오징어가 들어간 밥식해부터 시작하고, 경험치를 쌓았다면 가자미와 다른 생선으로 조금씩 입맛을 넓혀보자. 크리스마스카드 진열대가 등장할 즈음부터 이듬해 설날까지가 바로 식해의 계절이다.



신동아 2022년 1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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