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BNK 3000억, 우리銀 700억… 금융사고 왜 일어나나

[금융 인사이드] 혁신안도, 검사 출신 금감원장도 無소용

  • 나원식 비즈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3-09-19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기본 원칙조차 안 지킨 내부통제 시스템

    • 이복현 “여전히 옛날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 CEO 책임지도록 제도 개편… 효과는 ‘글쎄’

    한국 금융권에선 내부통제 미비·도덕적 해이 등 원인으로 사기·횡령 등 금융사고가 빈번히 발생한다. [Gettyimage]

    한국 금융권에선 내부통제 미비·도덕적 해이 등 원인으로 사기·횡령 등 금융사고가 빈번히 발생한다. [Gettyimage]

    “일부 직원의 도덕적 해이로 금융사고가 많이 발생했다. 금융기관 내부통제 시스템의 미비점을 보완해 사고 재발 방지와 금융시장 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 (2001년 1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

    “최근 금융기관 내부통제 소홀과 금융 종사자의 윤리 의식 약화로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2006년 1월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연이어 발생해 금융산업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데 대해 매우 개탄스럽다. 불량한 내부통제 및 임직원의 금융 윤리 결여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4월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한국 금융권에서는 사기·횡령·배임 등 사고가 잊을 만하면 벌어지곤 한다. 그때마다 지적되는 사고 원인은 같다. 내부통제 미비와 도덕적 해이, 직원의 윤리 의식 부족이다. 사고 금액이 크면 금융 당국으로 불똥이 튀기도 한다. 비난 여론에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해당 금융사를 샅샅이 털어 검사하고 은행장은 고개를 숙여 사과한다. 금융사 내부통제 시스템을 관리하는 금융 당국 수장은 고개를 숙인다. 제도개선에 나서겠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만 결국 같은 이유로 사고가 재발한다.

    근래 이런 일들이 또 반복되는 모양새다. 지난해 4월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700억 원 규모 초대형 횡령 사고가 많은 이들을 경악게 했다. 역대급 횡령에 비난 목소리가 거세지자 금융 당국은 부랴부랴 제도 강화에 나섰다.



    “내부통제 시스템 전혀 작동 안 한 것”

    8월 17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내부통제 강화 등을 위한 은행장 간담회’에서 참석한 은행장들이 자료를 살피고 있다. 뉴스1

    8월 17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내부통제 강화 등을 위한 은행장 간담회’에서 참석한 은행장들이 자료를 살피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월 금감원은 은행 내부 통제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은행의 준법 감시 부서 인력 확충과 전문성 확보, 장기 근무자 감축, 사고 예방 조치 운영 기준 재설계 등이 골자다. 이후 은행들은 올해 1분기 이 방안을 앞다퉈 내규에 반영했다.

    지난해 금감원에 검사 출신 이복현 원장이 부임한 것도 금융권의 긴장감을 더했다. 실제 이복현 금감원장은 취임 뒤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내부통제 자체 점검을 확대하고, 필요시 내부통제 조직 및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결국 모두 소용없었다. 검사 출신 금감원장이 취임하고, 이후 금융 당국이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발표하는 와중에도 횡령·배임 등 금융 범죄는 계속됐다. 8월 초 BNK경남은행에서 500억 원이 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횡령 사고가 적발돼 또 한 번 충격을 안겼다. 금융감독원이 긴급 현장 검사를 실시한 결과 BNK경남은행 횡령금액은 2988억 원으로 늘어났다.

    경남은행과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횡령 혐의를 받는 직원은 2007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PF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상환된 대출 원리금을 자신의 가족이나 제3자 계좌 등에 이체하는 방식으로 횡령을 저질렀다. 또 PF 시행사의 자금 인출 요청서를 위조해 가족이 대표로 있는 법인 계좌에 자금을 이체한 혐의도 받고 있다.

    주목할 점은 우리은행과 경남은행에서 벌어진 횡령 사고가 닮은꼴이라는 것이다. 두 사고 모두 특정인이 한 부서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면서 돈을 빼돌렸고 문서를 위조해 가족 명의를 이용하는 수법을 썼다.

    은행 직원의 부서를 순환시키는 것은 금융 당국이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내놓을 때마다 포함되는 내용 가운데 하나다. 그만큼 사고 예방을 위한 필수 시스템이라는 뜻이다. 특히 부동산 PF와 같은 고위험 업무에 특정 인사가 오래 근무할 경우 대형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한 은행업계 관계자는 “특정 직원이 10년 넘게 장기 근무를 하는 동안 직무가 안 바뀐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같은 부서에 함께 일한 직원들이 있을 텐데 거액의 횡령 사고가 이어지는 동안 눈치채지 못한 점을 보면 내부통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실한 내부통제 시스템 만연

    문제는 이런 부실한 내부통제 시스템이 금융권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에만 여러 건의 금융사고가 줄줄이 터지고 있다. KB국민은행 경우 직원들이 상장사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00억 원대 부당이득을 챙겼다가 금융 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업무상 알게 된 고객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 매매 차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DGB대구은행에선 1000건이 넘는 불법 계좌가 개설됐다는 의혹이 불거져 금감원이 곧장 긴급 검사에 착수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본행 직원 수십 명이 평가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고객 문서를 위조해 증권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밖에서도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8월 말 금감원은 롯데카드 직원의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 현장 검사를 실시해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금감원 조사 결과 롯데카드 마케팅팀 직원 2명이 협력업체 대표와 공모해 롯데카드가 105억 원을 이 협력업체에 지급하도록 한 뒤 배임한 혐의를 확인했다. 직원들은 이 중 66억 원을 페이퍼컴퍼니와 가족회사 등을 통해 빼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곳곳에서 금융사고가 터지자 금융 당국은 다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이복현 원장은 전임 원장들과 마찬가지로 국회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는 9월 4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옛날 기준으로 은행이 운영되고 있고, 감독 당국에서도 기준을 더 높여 운영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고 말했다.

    “보여주기식 처벌보다 제도 보완을”

    금융 당국은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에게도 책임을 물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내부통제 관련 임원별 책임 범위 사전 확정을 골자로 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을 의원 입법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임원별 책임을 구체적으로 명문화하겠다는 의도다.

    개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관리·노력이 있었음을 소명하면 면죄부를 주는 방안이 함께 담겼고, 조직적·반복적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만 CEO를 문책 대상으로 하는 조건도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간 금융사고가 나도 CEO에겐 책임을 묻기 어려웠던 점을 보완한 것만큼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처벌 수위를 높이는 동시에 금융 당국과 금융사가 상시로 금융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보여주기식 처벌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제도 보완을 통한 시스템 강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그간 내부통제 관련 규제를 강화했는데도 사고가 지속돼 안타까운 심정이긴 하지만 관련 시스템이 금융권 내에서 점차 진화해 과거와는 다르게 사고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당국과 금융사가 함께 사각지대를 함께 줄여가는 ‘정공법’을 꾸준히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