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中 연횡책 맞설 韓 합종책 1단계는 美+호주·뉴질랜드

[한반도 지오그래픽] 타이완 현상 변경 시, 유럽行 해로(Sea Lane) 상실로 中에 종속 우려

  • 백범흠 서울대 초빙교수·정치학 박사

    입력2023-10-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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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단계는 베트남, 그다음이 일본

    • 필요시 4단계로 캐나다와 ‘합종’해야

    • 中, 약한 고리 나라들과 ‘연횡’

    • 美日 지나치게 믿어선 안 돼

    중국은 지형적으로 유라시아 대륙 동부 연안(rimland)에서 핵심부(heartland)까지 펼쳐져 있다. 국경은 러시아와 북한, 베트남, 인도, 아프가니스탄, 몽골등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대국이다. 수치상으로 실효 지배 면적은 960만㎢, 해안선 연장(延長)은 1만4500㎦, 인구는 14억2500만 명, 국민총생산(GDP)는 18조2000억 달러이며 여기에 핵탄두 410여 기(基)를 보유한 초강대국이다. 중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각은 적극적 긍정론부터 적극적 비관론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중국이 한반도 남쪽에 자리한 분단국가 한국을 비롯해 세계 모든 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계속 영향을 미칠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특히 한국은 중국과 무역·투자를 포함해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 원화와 중국 위안화 간 환율 연동성이 큰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은 수천 년간 교류를 가져온 만큼 사회·문화적 관계도 밀접하다. 중국 한족(漢族) 세력이 가장 약했던 남송(南宋) 시대에 탄생한 성리학(주자학)은 조선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인의 사고와 행동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사회 일각이 갖고 있는 중국 중시론(重視論)의 철학적 근간에는 성리학이 비중 있게 자리하고 있다.

    [Gettyimage]

    [Gettyimage]

    美 세력 서태평양에서 밀어내는 중국

    중국의 핵심부 중원(中原)을 장악한 세력은 한족, 비(非)한족을 불문하고 고(古)조선 시대 이후 언제나 필요하다고 판단할 시 한반도에 군사개입을 주저하지 않았다. 서한(西漢) 무제의 고조선 침공, 수나라 양제(煬帝)와 당나라 태종·고종의 고구려와 백제 침공, 명나라의 임진왜란 개입, 청나라의 임오군란·갑신정변 개입, 그리고 청·일전쟁, 6·25전쟁 등 대(對)한반도 군사개입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특히 중국의 6·25전쟁 개입은 한반도 분단과 함께 북핵 문제라는 큰 후유증을 남겼다.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공격적 현실주의 입장은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대씨 고려·大氏 高麗)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 주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중국은 고조선과 부여, 옥저, 고구려, 발해, 정안국(定安國) 등 중국 둥베이 지방(만주)과 한반도 북부를 영토로 했던 우리 민족국가들이 한(漢)나라나 당(唐)나라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식의 억지 주장을 한다.

    중국은 1978년 12월 개혁·개방 이후 연평균 9.7%의 고도 경제성장을 토대로 2010년경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증강된 국력을 바탕으로 태평양 방면으로는 ‘미국 세력을 서태평양에서 몰아내겠다’는 △‘도련선(島鏈線) 전략’ △‘반(反)접근/접근거부(A2/AD) 전략’, 유라시아 방면으로는 동남아와 인도양, 중동을 거쳐 유럽과 아프리카로 진출하겠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과 인도양의 중요 항구를 연결하는 △‘진주 목걸이 전략’을 추구해 왔다.



    중국의 네 가지 전략은 상호 긴밀히 연결돼 있다. 중국의 남중국해 등 서태평양과 인도양 진출 가속화 목표와 긴밀히 연결돼 있는 도련선 전략이나 A2/AD 전략, 진주 목걸이 전략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들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다롄과 상하이, 후루다오 등의 조선소에서 여러 척의 항모와 수십 척의 구축함, 핵잠수함 등을 건조하고 있다. 또 다양한 사거리를 가진 둥펑(DF) 미사일 제조·배치, 독자 모델 전투기와 전폭기 생산, 핵탄두 증산 등 군사력 증강에 매진해 왔다. 이러한 중국의 목표가 제2의 당(唐)나라 건설, 즉 ‘중화민족의 꿈(中國夢想)’을 이루려는 것임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중국공산당은 2019년 10월 1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신중국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둥펑-41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했다. [AP/뉴시스]

    중국공산당은 2019년 10월 1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신중국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둥펑-41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했다. [AP/뉴시스]

    중국이 추진하는 (제1, 제2, 제3) 도련선 전략과 A2/AD 전략의 핵심은 동아시아-서태평양의 한가운데, 십자로에 놓인 타이완이다. 어떤 식으로든 타이완의 현상이 변경되면, 남(南)서태평양과 북(北)서태평양은 양분(兩分)된다. 타이완의 현상 변경은 세계제국(World Empire)인 미국에는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에 대한 영향력 상실을 의미한다. 이것은 한국에 1차로 동남아를 거쳐 중동, 유럽으로 가는 해로(Sea Lane)의 상실을 뜻한다. 타이완의 현상 변경은 한국에 남서부 해로 상실에 따른 운송비용 급증, 석유와 천연가스를 포함한 전략 에너지 수급 위기 등 경제 안보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은 물론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가 중국의 군사력에 포위돼 종속될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타이완의 현상 변경이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에 대한 정치·경제·군사적 영향력 상실은 물론 태평양 전체에 대한 헤게모니 상실로 이어질 것을 너무 잘 아는 미국이 타이완의 현상 변경에 “무기력하게” 동의하고, 하와이 기점의 3도련선 이동으로 후퇴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도입 △미 국채 인기 하락 △석유 달러(petro dollar)의 핵심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반(離反) △중국과 러시아, 인도, 브라질, 남아공으로 구성된 BRICS의 확대(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집트, UAE, 에티오피아, 아르헨티나 신규 가입)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상대적 국력은 명백히 쇠퇴하고 있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으로 상징되는 국가 사회의 분열은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 할 것 없이 정치지도자 다수가 고립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이 중 한 가지만이라도 심화되거나 두세 가지가 결합해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칠 경우 제1도련선 내에 위치한 타이완의 안보는 극도로 불안해질뿐더러 한반도 역시 불안정하게 된다. 우리는 미국이 상대적 국력 약화와 함께 고립주의 추구로 인해 타이완이나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에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美 합종책 vs 中 연횡책

    중국에 의한 타이완의 현상 변경을 저지하고,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상유지(status quo)를 추구해야 한다. 유사 또는 동일한 경제 안보적 이해관계를 가진 동아시아-서태평양 국가들을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종(縱)으로 묶는 외교 노력도 필요하다. 말하자면 경제 안보 측면에서의 합종책(合縱策)이다. 합종책은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 최강 진(秦)나라의 공세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초(楚)·제(齊)·조(趙)·위(魏)·한(韓)·연(燕) 등 6개 국가가 취한 외교 전략을 말한다.

    합종책을 이론화한 소진(蘇秦)은 중국 서부에 자리한 최강국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국가들이 서로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진은 진나라를 제외한 6국이 연합해 어느 한 나라가 진나라로부터 침공을 당했을 때 다른 5개국이 그 나라를 지원해야 중원의 안정과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고 설파했다. 진나라 조정에 등용된 장의(張儀)는 진나라가 합종책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다른 6국을 1:1로 상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의는 6국과 1:1로 협상해 고립되는 국가를 한 나라씩 차례로 침공·병탄하는 방안, 즉 연횡책(連橫策)을 활용해야 진나라의 중원 통일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진나라는 장의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을 채택했다. 처음에는 먼 나라인 제나라나 연나라와는 친하게 지내면서 이웃에 자리한 한나라, 조나라, 위나라 순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진시황의 전국 통일은 장의의 연횡책에 기대 성공할 수 있었다. 진나라는 장의의 아이디어대로 1차로 한나라를 정복하고, 이어 조나라·위나라·초나라·연나라·제나라 순으로 공략해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만들어냈다.

    유라시아 대륙 최강국 중국도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중국몽’을 이루기 위해 연횡책에 기초한 대외정책을 취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이나 일본 주도의 이른바 경제블록주의·안보블록주의를 반대하고,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파키스탄 등과의 관계를 밀접히 하며, 비교적 약한 고리에 처해 있다고 믿는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현대식 연횡책’이나 다름없다.

    부상한 중국에 맞서 미국 주도로 미·일·호주·인도를 연결하는 4자 안보 대화 쿼드(QUAD), 호주·영국·미국을 묶는 오커스(AUKUS), 한·미·일 협력 등으로 구성된 인도-태평양 전략은 합종책의 일종이다. 미국은 이탈리아 출신 마키아벨리와 오스트리아 출신 메테르니히(Klemens Fürst von Metternich)적 시각에서 합종책을, 이에 반해 중국은 장의의 시각에서 연횡책을 구사하고 있다.

    韓 합종책은 호주부터 캐나다까지

    합종책은 부상(浮上)한 중국의 압박에 맞서 중국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지역인 한반도에 위치한 한국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외교 전략이다. 한국의 합종책은, 미국의 지원 아래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취해 시차를 두고 1단계로 호주와 뉴질랜드, 2단계로 베트남, 3단계로 일본, 필요시 마지막 4단계로 캐나다를 묶는 방안이다.

    한국은 실효 지배 면적 10만440㎦, 인구 5160만 명, GDP 1조7000억 달러, 재래식 군사력 6위의 G7급 분단국가다. 한국은 대내외 여건상 핵무장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으로부터 안보 위협을 받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2대 강대국의 영향력이 교차하는 십자로에 위치해 있다. 한국 사회의 안정과 번영, 안보에 대한 갈망은 어느 나라보다 크다.

    호주는 면적 774만㎦, 인구 2640만 명, GDP 1조7000억 달러,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남태평양의 배후지(hinterland) 국가로 4자 안보대화(QUAD)와 기밀정보 동맹체(Five Eyes) 회원국이다. 호주는 국토 면적이나 주요 분쟁 지역과 격리된 지리적 위치, 풍부한 자원 보유국이라는 점에서 잠재력이 매우 크다. 뉴질랜드는 면적 26만8000㎢, 인구 490만 명, GDP 2550억 달러로 호주와 같은 지정학적 배후지 국가이며 기밀정보 동맹체 회원국이다.

    베트남은 스프라트리(南沙) 군도와 파라셀(西沙) 군도 등 남중국해 각지에 산재한 도서의 영유권과 배타적경제수역(EEZ) 관할권 문제로 중국과 갈등하고 있다. 중국을 역사적 숙적으로 보고 있는 베트남은 면적 33만1000㎢, 인구 1억 명, GDP 4100억 달러의 떠오르는 용이다. 중국의 변경국가로서 베트남의 역사는 한반도 역사와 매우 닮아 있다. 우리 민족이 중국 둥베이 지방(만주)에 역사적 연고 의식을 갖고 있듯이 베트남 역시 광둥(廣東)성-광시(廣西)성 등 중국 서남부 지역에 대한 역사적 연고 의식을 갖고 있다. 베트남은 한국과 미국 등의 대규모 투자로 ‘세계의 공장’ 중국의 역할을 일부 대체해 나가고 있다.

    일본은 면적 37만8000㎦, 인구 1억2300만 명, GDP 4조4000억 달러로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자 G7 회원국이다. 일본은 냉전시대 소련 극동해군의 서태평양 진출을 방어하는 역할을 맡는 등 특히 강력한 해군력(해상 자위대)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을 협력 후순위에 놓은 것은 중국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다.

    미국과 함께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멀리 격리된 세계의 섬(World Island) 캐나다는 면적 998만㎦, 인구 4000만 명, GDP 1조9000억 달러로 G7와 기밀정보 동맹체(Five Eyes) 회원국이다. 캐나다 안보는 세계제국 미국 안보와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캐나다를 합종책의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인도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 일본, 호주와 함께 QUAD 회원국이자 중국, 러시아와 함께 브릭스(BRICS) 회원국이기도 하고, 핵무기와 각종 탄도미사일 보유국으로 지정학적 자주성이 강한 인도는 협력 대상국이 되기 어렵다. 인도와는 느슨한 연계 정도를 생각해야 한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는다

    한미일 3국 정상은 8월 18일 미국 워싱턴 인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협력의 ‘새 시대’를 선언했다. 한미일은 캠프 데이비드 원칙과 정신, 3자 협의 공약의 3개 문건을 통해 군사뿐만 아니라 경제와 기술, 공급망(Supply Chain)까지 포괄하는 연대와 협력에 합의했다. 한미, 미일 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느슨한 3국 협력’이 이번 선언을 계기로 ‘더 공고한 안보협력체’를 지향하는 것으로 진일보한 것이다. 이는 미국이 오랫동안 염원해 오던 것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18일(현지 시간) 미국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해 헬기에서 내리고 있다. 이날 3국 정상은 한미일 협력의 ‘새 시대’를 선언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18일(현지 시간) 미국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해 헬기에서 내리고 있다. 이날 3국 정상은 한미일 협력의 ‘새 시대’를 선언했다. [뉴시스]

    한미일 준(準)동맹, 인도·태평양 지역 새 질서,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출범’ 등 다양한 분석이 나올 만큼 국제정치적 의미나 파장도 크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점은 동아시아 지역 내 도전·도발·위협에 대한 3국의 즉각적 협의와 공조를 약속한 3자 협의 공약이다. ‘사실상 준동맹’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아울러 3국 정상은 공동선언에서 중국을 지역 내 기존 질서를 저해하는 주체로 거명하며, 타이완 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러시아에 대한 규탄과 함께 제재 지속에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한국 정부는 한미일 협력에 대해 “우리 국민의 위험은 확실히 줄어들고, 기회는 확실히 커질 것”이라고 했지만, 일부 국가는 이에 반발하고 있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는 중국과 북한, 러시아의 반발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 △청일전쟁, △러일전쟁, △6·25전쟁 사례에서 보듯 한반도가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 간 직접 충돌의 무대가 될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 등 유사 상황이 발생하면 중국과 일본은 100% 군사 개입한다고 봐야 한다.

    이에 더해, 고립주의 추구 등 미국의 외교정책 변경 가능성과 함께 일본의 향배도 예단할 수 없다. 또한 한미일 군사협력은 한국의 대(對)중국 경제협력에도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국력의 기초가 경제력이기 때문에 우리의 주요 경제협력 파트너인 중국과 근린 우호관계를 미리 악화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작가 김훈이 이순신 장군의 삶을 소설화한 ‘칼의 노래’에는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끼니는 시간과 같았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도 않았다”는 구절이 나온다. 심지어 전시(戰時)에도 ‘끼니’로 상징되는 경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사기(史記)’는 “통치자는 국민을 하늘로 삼고, 국민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王者以民人爲天, 而民人以食爲天)”라고 했다. 전쟁은 무기로 수행하지만, 무기를 다루는 인간은 먹지 않고선 살 수 없다.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군사력 확대를 통해 안보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일상생활조차 영위할 수 없다.

    두 발을 땅에 딛고 대응해야

    한미일 군사협력 심화는, 경제 안보와 군사 안보 측면을 총합해 볼 때 이득보다는 손해를 더 많이 가져다줄 가능성이 있다. ‘강대국의 흥망(The Rise & Fall of the Great Powers)’의 저자 폴 케네디는 “10~20년 뒤 누가 선두에 설지 아직 불확실한 상황에서 각국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위험을 분산하고 손해를 줄여나가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정학적 혼돈 국면에서 강대국이 아닌 한국이 송곳처럼 튀어나와 행동하면 할수록 한반도 불안정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 정부 외교가 자유와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점은 일견 긍정적이지만 한국을 미국의 이중 하위 파트너로 행보(行步)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세계제국 미국조차 ‘전략적 모호성’ 전략을 활용한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메시지만 따로 떼어놓지 않는다. 이렇게 디리스킹(de-risking)을 통해 핵심을 제외하고는 중국과 협력의 틀을 유지한다.

    외교는 디테일이 중요한데, 한국 정부는 중국과 협력할 공간을 애써 축소시키고 있다. 한국과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항상 동일하지는 않은 미국과 일본이 우리와 가치 및 이익을 늘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 국력이 쇠퇴하고, 외교 고립주의를 추구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늘어나는 미국 현실에서 지금 미 정부의 ‘바이든 노선’을 절대적으로 추종해도 될까. 트럼프가 다시 등장한다면?

    외교 수단에 불과한 한미동맹이 절대적 가치로까지 부각되고 있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숭명사대(崇明事大)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긴 것과 유사하다. 성리학 사대부들은 반대파를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붙였다. 외교 현실은 단순하지 않으며, 일부 모순적이다. 때로 미국의 기대에 부응하고, 때로 미국을 달래가면서,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중국이나 북한도 끌어안고 가야 한다. 분단국 한국은 지정학적 모순 속에서 당면한 문제를 다층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 외교, 특히 보수 시각의 외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에 이어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흉상 이전 추진 논란 등이 생생하게 보여주듯 현 정부에서도 내정(內政)의 연장(延長)인 외교 분야에서 보수와 진보 간 분열과 대립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치인과 언론인을 필두로 한국 사회가 북한과 중국, 일본, 옛 소련 등이 관련된 이념의 소용돌이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두 발을 땅에 딛고 대응해야 하는 분야가 바로 외교안보다. 외교 안보는 국가 존망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어느 정부든 야당과도 초당적으로 소통해야 국민적 차원의 정책 수용성이 제고된다. 분단국 한국은 약소국은 아니지만, 강대국도 아니다. 강대국이 아닌 한국은 합종책(合縱策)을 추진하는 한편, 은인자중하면서 국력을 키우는 ‘도광양회(韜光養晦)’와 함께 상황의 변화를 주시한 다음 민첩하게 행동하는 ‘이일대로(以逸待勞)’ 전략을 취해야 한다.


    백범흠
    ● 1963년 1월 경북 예천 출생
    ● 정치학 박사·서울대 방문교수
    ● 前 주프랑크푸르트 총영사
    ● 前 한·중·일3국협력사무국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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