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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석학’ 케이티 오 “북한이 한국을 완전히 ‘봉’으로 안다”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재미 석학’ 케이티 오 “북한이 한국을 완전히 ‘봉’으로 안다”

  • ●文, 상사병 걸린 것처럼 애걸복걸
    ●북·미 정상 판문점 회동은 ‘원숭이 쇼’
    ●노동‘당’ 장마‘당’ 양당 체제
    ●사상의 강국 구멍 생겨
    ●선희가 젊을 적 참 예뻤는데…
[AP뉴시스]

[AP뉴시스]

‘거울나라의 앨리스(Alice Through the Looking Glass)’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속편이다. 루이스 캐럴이 묘사한 거울나라는 체스판처럼 생겼다. 뒤죽박죽이다.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앞으로 가려면 뒤로 가야 한다. 

여왕은 앨리스에게 이틀에 한 번씩 잼을 준다고 말한다. 단, 규칙이 있다. ‘어제의 잼과 내일의 잼이 있을 뿐이다.’ 앨리스가 묻는다. “언젠가는 오늘의 잼이 되는 거잖아요.” 여왕은 “설마, 그건 불가능해. 잼은 이틀에 한 번이야. 오늘은 오늘이고. 오늘이 아닌 날은 될 수 없으니까”라고 답한다. 

김일성 시대부터 북한이 말해온 ‘이밥에 고깃국’은 거울나라의 ‘오늘의 잼’을 닮았다. 북한은 앨리스가 거울나라에서 느낀 것처럼 모순으로 가득 찼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모호하다. 이중성을 지닌 수수께끼 같은 나라다. 

‘거울나라, 북한(Alice Through the Looking Glass)’은 오공단(미국명 케이티 오) 미국 국방연구원(IDA) 동아시아 책임연구원과 사회심리학자 랄프 해식이 함께 쓴 책이다. 2018년 출간한 한국어판 제목은 ‘북한, 비정상의 정상국가’. 

오공단과 해식은 앨리스가 돼 북한이라는 기이한 나라로 우리를 안내한다. 외부에서는 비정상인 게 ‘거울나라, 북한’에서는 어떻게 정상으로 인식되는지, 이 이상한 나라의 운명은 어디로 향하는지 탐구한다. 



오공단은 40년 넘게 북한을 연구한 한반도 전문가다. 캘리포니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랜드연구소와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일했다. 미국 외교협회 회원이다. 한반도 전문가 모임인 ‘코리아 클럽’ 설립자면서 초대 회장을 지냈다.


dog and pony show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났다. 

“영어로 표현하면 ‘dog and pony show’다. 한국어로는 ‘원숭이 쇼’. 별 볼일 없는 일종의 쇼 같은 일이었다. 이상한 짓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한 일이라 특별히 언급할 게 없다.” 

‘dog and pony show’는 겉만 번지르르한 광고나 시시한 구경거리를 뜻한다. 한국의 약장수 쇼와 비슷한 의미다. 

“밑에 사람 말도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TV 쇼 하듯 일을 진행했으니 회담의 의미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 역사상 돌연변이 같은 존재다.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 

-판문점 회동이 비핵화 협상 재개의 물꼬를 텄다. 

“북한은 비핵화를 할 계획이 없는 나라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부하지 않는다. 참모들이 자료를 만들어줘도 제대로 읽지 않는다.” 

-비핵화 의지가 없다? 

“한국, 북한, 미국의 비핵화 개념이 각각 다르다. 미국은 국제기구 검증이 가능하고 재기가 불가능한 비핵화를 원한다. 과거에 만든 핵무기와 핵과 관련된 시설 및 기술의 완전한 파괴가 미국이 말하는 비핵화다. 북한이 규정하는 완전한 비핵화는 5대 핵 국가(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핵을 파기하면 우리도 폐기하겠다는 뜻이다. 한국 정부의 비핵화 개념이 아주 재미있다. 한국은 ‘과거는 묻지 마세요. 조금씩 비핵화 과정을 보여주면 기쁘겠어요’라는 투다. 장래에 대한 걱정도 없는 듯하다. 같은 민족끼리 공존 공영하면서 살면 된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오히려 전략적”

-문재인 정부가 나이브(naive)하다는 건가. 

“순진하다기보다는 자기들 나름의 이념이 있다. 민족끼리 잘 해볼 수 있으며 미국은 한반도에서 서서히 나가야 하고 중국과 잘 지내야 한다는 이념이 있기에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비핵화, 비확산 개념의 정의조차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북한이 한국을 완전히 ‘봉’으로 안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족속’이라고 생각하는 듯싶다. 창피하게도 한국 정부가 그렇게 여기게끔 행동하고 있다.” 

-핵보유국 인정과 제재 해제가 북한의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에서 동결·비확산으로 후퇴할 수도 있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트럼프가 그러려고 해도 되는 일이 아니다. 김정은, 트럼프의 판문점 만남을 보는 시각은 민주당, 공화당 할 것 없이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다. 국가 정책이라기보다 트럼프, 김정은 두 사람의 개인적 행동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밑의 사람들 달달 볶아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만난 것은 표를 얻고자 연출한 TV 리얼리티쇼다. 트럼프가 동결 수준에서 선을 긋는다면 미국에서 난리가 난다. 핵 문제에 매달려온 전문가들이 가만히 있겠나. 의회의 벽도 넘지 못한다. 대통령제 국가지만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김정은은 공세적 핵 질주를 거쳐 핵무장 완성을 선언한 후 단계별 등가교환에 의거한 핵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핵을 가지면서 제재를 풀고 지원도 받겠다는 게 평양의 목표다. 김정은이 오히려 전략적인 지도자처럼 보인다. 비정상국가의 정상이 트럼프뿐 아니라 시진핑(習近平), 블라디미르 푸틴을 만났다. 김정은 처지에서 돌아가는 걸 보면 이상하게 모든 일이 잘 돼간다. 트럼프 만나러 싱가포르에 가겠다고 하니 중국이 전용기 내주지, 트럼프가 판문점까지 찾아왔지. 김정은은 한미동맹은 서서히 망가질 것이고 중국과 등 비비면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김정은이 급할 게 하나도 없다. 주민들은 좀 굶더라도 자기는 살이 쪄 있다.”


“놀랄 만큼 속도 붙을 것”

-북한은 핵무장을 통해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강국’이 됐다고 실제로 ‘믿는’ 듯하다. 

“그렇게 믿도록 선전·선동한다.” 

-핵으로 재래식 군사력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군비를 줄여 그 여력으로 경제 건설과 인민 생활 향상에 집중하겠다는 게 핵·경제 병진노선이다. 

“핵을 뒷배로 삼아 개혁·개방에 나선다? 소련은 미국보다 숫자로만 보면 핵탄두가 더 많았다. 그런데 붕괴했다. 핵을 가졌다고 경제에서 이익을 얻는 건 아니다.” 

-북한은 비정상국가처럼 핵과 미사일로 동아시아 안보를 위협하면서도 정상국가가 되기 위한 제한적 개혁·개방을 지향한다. 

“최근 중점적으로 들여다보는 게 북한 내부다. 예전과 달리 정보가 들어가고 나온다. 북한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외부와 소통한다. 굉장히 광범위하게 휴대전화 문화가 퍼져나가고 있다. 정보가 드나들면 생활 방식과 이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일당독재 국가가 아니다. 당이 2개다. 조선노동‘당’과 장마‘당’이 존재한다.” 

북한에서 시장화와 개방화는 불가역적인 것이 돼버렸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시장친화적 정책을 추진해왔다. 

“조선노동당은 이념적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아첨을 떠는 대상일 뿐이다. 자신과 아이들의 장래를 의탁한 정당은 장마당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놀랄 만큼 속도가 붙을 것이다.” 

핵심 권력과 시장 세력 간 세력 균형의 추가 장마당에 유리한 쪽으로 움직인다는 게 그의 견해다.


“자동차 네 바퀴가 따로 돈다”

-북한은 ‘사상의 강국’ 아닌가. 

“국가가 인민에게 해주는 게 별로 없다. 예전에는 잘 몰라서 굶었는데 이제는 알아서들 삶을 개척한다. 사람들이 장마당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구축해가고 있다. 과거에는 당 간부가 사윗감 1순위였는데 지금은 남이 갖지 못한 능력으로 돈을 벌어오는 이가 주목받는다. 사상의 강국에 균열이 생겼다. 김정은이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니 실각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김정은은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물놀이장, 스키장, 백화점 등을 건설했다.” 

김정은은 김정일 시대에 지은 개선문, 주체사상탑 등과는 성격이 다른 생활밀착형 랜드마크를 건설했다.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의 초고층 건물은 가시성이 높으면서 자부심을 일으킨다. 

-북한의 고위층은 인민을 통제하면서 개혁·개방하는 게 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북한은 4등급으로 이뤄진 사회다. 제일 위에 김씨 일가가 있다. 그다음에 고위층이 있다. 그 아래 한국의 관료와 비슷한 일반 간부가 있다. 맨 아래가 주민이다. 4개 그룹이 따로 돌아가는 게 북한이다. 김정은은 모두가 자신에게 충성하기를 바란다. 전체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이 충성하고 있다고 믿으려 할 것이다. 고위층은 당 간부를 들들 볶으면서 김정은에게만 충성해 특권을 유지하려 한다. 굉장히 골치 아픈 존재는 일반 간부다. 국가에서 주는 급여로는 생활할 수 없으니 시장에 기생해야 한다. 주민들과 긴장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주민이 돈을 벌어 거꾸로 일반 간부를 흔들기도 한다. 자동차의 네 바퀴가 따로따로 구동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겉으로 보면 단합돼 있고 잘 뭉쳐져 있는 것 같은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게 북한이다.” 

-수령만 섬기는 로봇 같은 사람들이 더는 없다? 

“북한 지역은 조선왕조 때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시기 내내 민주와 자유를 맛보지 못했다. 바야흐로, 역사상 처음으로 바깥을 알기 시작했다. 한국이 잘산다, 중국도 우리보다 잘산다, 미국인은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최선희(외무상 부상)나 리용호(외무상) 얼굴을 봐라. 그 사람들을 젊었을 때 회의에서 만나곤 했다. 선희가 예전에는 참 예쁘고 귀여웠다. 지금은 얼굴이 다 망가졌다. 북한 고위층 가운데 평온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사람을 본 적 있나. 다들 딜레마에 빠진 표정의 불행한 얼굴 아닌가. 그게 바로 북한의 실상이다.”


“안달복달 말고 의연하라”

오공단 박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오공단 박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이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완벽한 경제 제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처럼 열린 국가, 민주화된 국가일 때는 제재가 통할 수 있으나 북한이나 이란 같은 나라는 제재로 행동을 바꾸기 어렵다. 한국도 예전에는 일종의 독재국가였으나 민주화를 이뤄냈다. 국민들이 일어나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일어나 운명을 개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보의 확산이 가장 중요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전쟁할 수도 없고, 김정은을 암살할 수도 없다. 그게 현실이다. 스스로 변화하도록 북한 주민을 더욱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한다. 한국에 들어온 탈북민이 북한 주민과 소통한다. 탈북민부터 잘 챙겨야 한다. 예전에는 못이 들어갈 구멍 자체가 없었다. 두드려도 소리 나는 곳이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는 정보가 북한으로 계속 들어가야 한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못 만나서 상사병 걸린 사람처럼 애걸복걸한다. 북한이 핵을 가진 존재이며,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의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안달복달할 게 하나도 없다. 북한과 함께 뭘 하지 않으면 뭔가 잃는다는 식의 행동 양태를 바꿔야 한다. 조바심 내지 말고 의연하게 가야 한다.”




신동아 201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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