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호

전자담배 1위 놓고 KT&G vs 필립모리스 박빙

[유통 인사이드] 유해성 논란 여전, 규제 움직임도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2-12-0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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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권련형 전자담배 국내 첫 상륙

    • 아이코스 출시 첫해 점유율 80%

    • KT&G 반격, 1분기 점유율 릴 45%로 1위

    • KT&G·필립모리스 1위 경쟁, BAT 맹추격

    • “일반 담배와 폐해의 본질은 차이 없어”

    한국필립모리스는 10월 2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차세대 궐련형 전자담배 기기인 ‘아이코스 일루마’ 시리즈를 공개했다. [뉴스1]

    한국필립모리스는 10월 2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차세대 궐련형 전자담배 기기인 ‘아이코스 일루마’ 시리즈를 공개했다. [뉴스1]

    “PMI(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는 연기 없는 담배 제품이 가져올 미래를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정일우 전 한국필립모리스 대표이사, 2017년 5월 17일)
    5년여 전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가 국내에 진출하자 잠잠하던 담배 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이코스는 당시 한국에는 없던 궐련형 전자담배 제품으로, 일본에서 앞서 흥행했던 터라 업계와 흡연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당시 무엇보다 주목받은 건 바로 필립모리스의 마케팅 방식이다. 아이코스는 담배를 불에 태우지 않고 가열만 하기 때문에 유해 물질이 적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존의 일반 궐련 담배는 몸에 좋지 않고, 궐련형 전자담배의 경우 덜 해롭다는 주장을 앞세우면서 담배 시장의 ‘판’을 바꾸려 했다.

    담배 시장 판 바꾼 ‘권련형 전자담배’

    당시 필립모리스는 담배의 독성·발암 물질은 담배가 불에 탈 때 나는 연기에서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아이코스의 경우 담배 ‘연기’가 아닌 ‘증기’가 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반 담배 연기보다 유해 물질이 90% 넘게 감소했다는 게 필립모리스의 설명이었다.

    소비자들은 즉각 반응했다. 아이코스 기기는 한국 출시 1년 만에 200만 대가량 판매됐다. 복수 구매를 감안하더라도 최소 100만 명 이상이 ‘아이코스 유저’가 됐다. 이후 경쟁사인 BAT(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와 KT&G가 같은 해 부랴부랴 궐련형 전자담배 제품을 출시했지만, 아이코스는 출시 첫해 점유율 80%를 기록하며 시장을 선점했다.

    그 이후 시장은 점차 예상 외의 방향으로 흘렀다. 국내 담배 시장을 장악해온 KT&G의 매서운 반격이 이어지면서다. KT&G는 탄탄하게 갖춰진 국내 영업력에 더해 지속적인 신제품 출시로 제품군을 확대하면서 영향력을 키웠다.



    결국 KT&G는 결국 올해 1분기 아이코스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5년 만에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궐련형 전자담배 점유율은 릴(KT&G)이 45%, 아이코스가 43%, 글로(BAT)가 11%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도 빠르게 커졌다. 아이코스가 처음 진출한 2017년 궐련형 전자담배는 국내 담배 시장 전체의 2%에 그쳤지만 지난해는 12.4%로 4년 만에 6배가량 증가했다. 또 궐련형 전자담배의 연간 판매량은 2017년 7900만 갑에서 지난해 4억4400만 갑으로 늘었다. 반면 일반 권련 담배의 경우 같은 기간 34억4500만 갑에서 31억4600만 갑으로 되레 줄었다.

    필립모리스가 최근 국내시장에서 3년 만에 아이코스 신제품을 출시한 건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체 담배 시장이 위축하는 와중에 궐련형 전자담배가 지속해 성장하고 있다는 점, 하지만 시장을 개척한 아이코스가 5년 만에 선두주자 자리를 뺏겼다는 점 등이다.

    한국필립모리스는 10월 25일 ‘아이코스 일루마 시리즈’를 선보였다. 담배 기기 속에 잔여물이 남지 않게 해 기존과는 다르게 청소가 필요 없다는 점,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저절로 담배를 가열한다는 점 등이 이전 제품과는 다른 주요 특징이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라기보다는 기존 모델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이해된다.

    전자담배 3社 신제품 출시하며 경쟁 격화

    KT&G는 11월 9일 차세대 전자담배 ‘릴 에이블’을 출시했다. ‘릴 에이블 프리미엄’(왼쪽)과 ‘릴 에이블’ 기본 모델 4종. [KT&G]

    KT&G는 11월 9일 차세대 전자담배 ‘릴 에이블’을 출시했다. ‘릴 에이블 프리미엄’(왼쪽)과 ‘릴 에이블’ 기본 모델 4종. [KT&G]

    필립모리스의 이런 움직임에 경쟁사들도 분주해졌다. 올해 1위 자리에 올라선 KT&G 역시 최근 신제품을 선보였다. 2020년 출시했던 ‘릴 솔리드 2.0’의 후속작으로 ‘릴 에이블’을 11월 9일 출시했다. BAT 역시 국내에서 연내 새 제품을 출시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에 따라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을 놓고 필립모리스와 KT&G가 1위 다툼을 하고, BAT가 추격전을 하는 구도의 경쟁이 앞으로 더욱 격화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울러 이런 경쟁 속에서 기존 담배 시장의 판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도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우선 글로벌 업체인 필립모리스와 BAT의 경우 일반 궐련 담배 소비자들을 궐련형 전자담배로 전환하는 것을 공식적인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반면 국내 전체 담배 시장 1위 업체인 KT&G의 경우 아직은 두 형태의 담배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으려는 모습이다.

    백영재 한국필립모리스 대표는 아이코스 일루마 출시 간담회에서 필립모리스의 미래 비전도 함께 제시했다. 앞으로 2025년까지 비연소 대체 제품을 100개국에 출시하면서 최소 4000만 명 이상의 성인 흡연자를 비연소 대체 제품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비연소 제품의 순매출 비중도 50%까지 확대하겠다는 설명이다.

    백 대표는 “아이코스는 담배를 태우지 않고 가열하기 때문에 일반 담배 대비 유해 물질 배출이 평균 약 95% 감소된다”며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은 아이코스와 같은 비연소 대안 제품을 인정해 일반 담배를 계속 피우는 성인 흡연자들에게 더 나은 대안을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백 대표는 그러면서 궐련형 전자담배 규제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에 근거한 소통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부는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궐련형 전자담배가 연초 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며 “이 같은 과학적 근거에 맞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5년 전 아이코스 첫 출시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마케팅 전략이다.

    이에 앞서 BAT의 국내 법인인 BAT로스만스의 경우 아예 궐련형 전자담배가 덜 해롭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BAT로스만스는 10월 11일 ‘글로 위해 저감 1년 임상 연구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BAT로스만스는 23~55세 성인 500명을 △비흡연자 △금연자 △연초 지속 흡연자 △연초에서 글로로 전환한 그룹으로 나눠 1년간 임상 연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BAT는 이들의 주요 생체 지표와 특정 질병의 발병과 연관이 있는 잠재 위험 지표를 매달 검사했다. 연구 결과는 의학학술지 ‘인터널 이머전시 메디신(Internal and Emergency Medicine)’에 게재했다는 설명이다.

    연구 결과 연초 담배에서 ‘글로’로 전환할 경우 여러 건강 지표가 개선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화학·생물학 검사를 한 결과 글로 흡입 시 나오는 독성이 연초 연기보다 90~95% 낮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은지 BAT로스만스 대표는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운 집단이 연초 담배를 끊은 집단과 비슷한 수준의 독성물질 노출 수준을 보였다”며 “흡연 관련 질병을 알 수 있는 염증성 지표와 고밀도 콜레스테롤 수치, 산화 스트레스 지표 등이 감소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BAT로스만스는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 대표는 “글로가 ‘위해 저감’ 제품임을 소비자들이 알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은 광고 등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어 “소비자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 중”이라며 “최근 글로의 점유율이 높아진 것도 위해 저감 부분이 알려진 영향이 크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반면 KT&G의 경우 경쟁사들처럼 전자담배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KT&G의 전체 매출액 가운데 수출 비중이 30% 수준에 그친다. 아직 일반 궐련 담배 비중이 월등히 높은 국내 시장에서 버텨야 하는 상황에서 급격한 전략 변화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김은지 BAT로스만스 대표가 10월 11일 웨스틴조선 서울에서 열린 ‘글로 위해저감 1년 임상연구 결과 발표’ 미디어 간담회에서 궐련형 전자담배 ‘글로’를 소개하고 있다. [BAT로스만스 제공]

    김은지 BAT로스만스 대표가 10월 11일 웨스틴조선 서울에서 열린 ‘글로 위해저감 1년 임상연구 결과 발표’ 미디어 간담회에서 궐련형 전자담배 ‘글로’를 소개하고 있다. [BAT로스만스 제공]

    KT&G 주주, 핵심 사업 집중하라며 압박

    흥미로운 점은 최근 KT&G의 한 주주가 이런 경영 행보에 문제 제기를 했다는 사실이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 플래시라이트 캐피털 파트너스는 최근 KT&G에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 등이 담긴 주주 제안을 했다. 이 사모펀드는 이상현 전 칼라일 한국지사 대표가 설립한 펀드로, KT&G 지분 1%가량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제안서에는 KT&G가 인삼 사업을 분리하고, 부동산 개발 등 핵심 분야가 아닌 사업을 정리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특히 전자담배 등 궐련형 담배의 대체 상품 매출을 2027년까지 적어도 절반까지 끌어올리고, 세계시장에 대한 진출 노력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사모펀드는 이런 내용을 담은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공개해 여론전을 펼치기도 했다. KT&G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쪽에서는 담배 회사들의 이런 움직임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존재한다. 담배 회사들 주도로 이뤄진 연구 결과를 들고 건강에 덜 해롭다며 마케팅을 펼치는 게 아이러니하다는 지적이다.

    9월 16일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전자담배의 확산,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제1회 금연정책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임민경 인하대 의대 교수는 토론회에서 “궐련형 전자담배의 경우 많은 유해 성분의 검출 농도가 궐련에 비해 낮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궐련에 없는 새로운 성분이 검출되고 있다”며 “니코틴 농도도 크게 감소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는 담배회사 중심의 연구 결과에 의존하고 있고 제품 성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며 “전문 기관에 의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담배업체들의 마케팅 방식에 문제 제기를 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위해성이 떨어진다는 내용으로 마케팅하는 모든 전자담배는 일반 담배와 폐해의 본질은 차이가 없다”며 “이 같은 마케팅은 흡연자의 금연 의지를 무력화하고, 특히 청소년의 흡연을 조장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 “사각지대 놓인 전자담배, 제도개선 시급”

    이에 따라 앞으로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같은 토론회에서 이기일 복지부 제2차관은 “(전자담배는) 법적으로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법·제도적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이번 토론회를 통해 전자담배 관련 정책 방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법·제도적 개선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앞서 미국의 경우 2020년 식품의약국(FDA)이 아이코스를 ‘위험저감 담배제품’으로 마케팅할 수 있게 해 주목받은 바 있다. 이 인가를 받은 건 아이코스가 최초다. 필립모리스는 이런 점을 지속해 강조하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 식약처의 경우 2018년 “외국 연구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일반 담배보다 덜 유해하다는 근거는 없다”는 내용 등이 담긴 유해성 분석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이후 추가적인 시험 결과나 공식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담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자담배 역시 건강에 해롭다는 점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정부가 단기간에 기존 견해를 뒤바꿔 전자담배를 권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며 “지금처럼 담배 업체들의 자체 연구 결과가 아니라 신뢰성 있는 과학적 데이터가 쌓일 때까지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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