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호

이재명의 ‘출중한 능력’에 대한 의구심 퍼지다

[여의도 머니볼④] 李의 진짜 덫은 ‘사법 리스크’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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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2-11-29 13: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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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갤럽 조사 기준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11월 첫째 주 29%, 11월 둘째 주 30%, 11월 셋째 주 29%, 11월 넷째 주 30%를 기록했습니다. 한 달간 답보 상태에 있는 건데요. 별다른 이벤트가 나타나지 않는 한 당분간 이 추세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이 와중에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도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 조사와 함께 진행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은 11월 첫째 주부터 셋째 주까지 계속 34%를 기록했고 마지막 넷째 주에 33%로 소폭 하락했습니다.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1%포인트 차이이니 통계상 의미 없는 수치라고 보면 되겠죠. 한마디로 민주당의 지지율도 답보 상태에 있는 겁니다.

    보통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 제1야당이 반사이익을 누리게 마련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과는 딴판이죠.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당권을 쥔 날은 8월 28일입니다. 이날 전당대회에서 77.77%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됐죠. 이 대표가 당선되기 직전인 8월만 해도 민주당의 지지율은 갤럽 조사 기준으로 36~39%를 오갔습니다. 9월 이후에는 10월 둘째 주에 38%를 기록한 것 빼고는 좀체 35%의 벽을 넘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대신 8월까지만 해도 24% 안팎이던 무당층이 11월 셋째 주 30%, 11월 넷째 주 29%로 오른 게 눈에 띄죠. 민주당에서 이탈한 5% 안팎의 유권자층이 무당층에 남아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이하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이에 대해 가장 흔한 해석은 이런 겁니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다보니 민주당이 지지율의 벽에 가로막혔다는 거죠. 이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잇따라 구속됐습니다. 검찰이 이 대표와 가족의 계좌 추적을 위한 영장을 발부받은 사실이 알려졌죠. 이 대표로 검찰의 수사가 향하는 상황이 여론에도 부정적으로 반영됐다는 게 이와 같은 해석의 핵심입니다.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사법 리스크’가 중대한 변수이긴 하겠으나, 그것만으로 이재명 대표에게 위기가 왔다고 보기는 무리라고 봅니다. 지난 대선에서 대선후보 이재명을 지지한 유권자 중에서도 이재명 후보가 도덕적이라는 이유로 찍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막연한 추정이 아니라 데이터에 나타나는 바로는 그렇습니다.

    4월 1일 동아시아연구원(EAI)이 발간한 ‘부동산 정책과 후보자 도덕성: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슈가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라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집필자는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인데요. 보고서는 어떤 이슈가 투표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는 실증적 연구를 소개합니다. 투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로 나타났습니다. 31.1%의 응답자가 1순위로 부동산 문제를 꼽았고 1, 2순위 응답을 합친 비율도 38.9%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도덕성 논란이 투표 결정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투표 결정에 영향을 미친 1, 2순위를 합친 비율을 보면 ‘윤석열 부인 허위경력 주가조작 논란’이 26.4%로 부동산에 이어 2위였습니다. 그리고 이재명 대표의 이슈인 ‘대장동 특혜 의혹’이 24.2%로 3위였죠. 자 이렇게만 놓고 보면 윤석열 당시 후보가 도덕성 논란에 좀 더 강하게 휘말렸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4위는 21.2%로 나타난 ‘이재명 도덕성 논란(형수 욕설 등)’이었기 때문이죠. 여기다 ‘이재명 후보 부인의 법인카드 유용 논란’에 대한 응답률 합계 10.1%를 합치면 이재명 당시 후보와 관련된 도덕성 논란의 비율 합계는 55.5%나 됩니다. 윤석열 당시 후보와 관련한 도덕성 논란의 합계 41.7%보다 또렷하게 높은 겁니다.

    유권자들에게 ‘무엇을 보고 후보에게 투표했나’를 물은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자신이 지지한 후보의 어떤 대목이 마음에 들어서 찍었느냐고 질문한 건데요. 흥미롭게도 이재명 후보를 대통령으로 택한 유권자 중에서도 ‘후보의 도덕성’ 때문에 그를 택했다는 사람은 겨우 1.4%에 불과했습니다.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 중에서는 그래도 ‘후보의 도덕성’ 때문에 찍었다는 사람이 20.2%가 있었죠. 말하자면 이재명을 찍은 사람도 그의 도덕성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이재명의 지지자들은 그의 무엇이 좋았을까요. 응답자의 63.1%는 ‘후보의 능력과 경력’이라고 했습니다. 즉 도덕성은 좀 떨어지지만 능력이 출중하니 택했다는 거죠. 이재명을 찍은 유권자 중 ‘후보의 소속 정당’ 때문에 투표했다는 사람은 5.9%에 불과했습니다. 민주당 후보라는 점도 별반 고려사항이 아니었다는 얘기입니다. 반면 윤석열의 지지자 중 ‘후보의 능력과 경력’ 때문이라고 답한 비율은 13.7%뿐이었습니다. 대신 ‘후보의 소속 정당’(15.2%)이나 ‘후보의 공약’(14.6%), ‘후보의 이념’(11.0%) 등이 대체로 고른 비율을 보였죠. 정리하면 지난 대선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반감이 심한 상황에서도 ‘도덕성은 떨어지나 능력이 출중한 이재명’이 사실상 개인기를 통해 당선의 문턱까지 간 선거였다고 할 수 있죠.

    저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현재 야당 당수인 이재명 대표의 도덕성이 유권자의 반감 심리를 자극했다는 해석에는 신중하게 접근합니다. 그보다는 다른 각도로 살펴보고 싶은데요. 바로 ‘출중한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퍼지는 중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대표가 당권을 쥐고 난 뒤 어떤 어젠다를 던졌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여당이 이른바 죽을 쑤는 상황에서 거대 의석을 가진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텐데도 ‘당대표 이재명’은 존재감이 없죠. 전당대회 슬로건으로 ‘유능하고 강한 민주당’을 내세우긴 했는데, 실제로 드러나는 현상은 다른 겁니다. 원내에 입성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국회의원 이재명’이 통과시킨 법안도 아직 없습니다. 몇 가지 법안을 발의하긴 했으나 본회의 통과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죠.

    이것은 ‘행정가 이재명’과 ‘의회의 이재명’이 마주한 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과도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알려져 있듯 이 대표는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하며 화끈한 추진력으로 전국구 정치인 반열에 올랐습니다. 단체장으로서는 꾸준히 성과를 낸 셈이죠. 다만 지방자치단체와 여의도의 메커니즘은 다릅니다. 여의도는 당대표라고 한들 국회의원들게 ‘이래라 저래라’만 할 수는 없습니다. 상명하복의 공무원 조직과는 다릅니다. 발의하고 싶은 법안이 있다면 당내 의원들을 설득하고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여의도의 정치력이죠. 그런데 이 대표에게는 집행력은 보이나 정치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이재명에게 기대하는 ‘출중한 능력’이 좀체 나타나기가 힘든 겁니다.

    그러므로 저는 현재 이재명 대표가 빠진 덫은 ‘사법 리스크’가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무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 인생의 대부분을 행정가로 살아온 이 대표로서는 한번 쯤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사법 리스크’와는 별도로, 차기 주자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려면 결국 어서 빨리 여의도에 안착하는 모습이 필요해 보입니다. 법정 공방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아진 이 대표로서는 그와 별개로 고난이도의 숙제를 받아든 셈입니다. 그렇지만 이 고난이도의 숙제를 풀지 않으면 차기 대권으로 가는 길은 마땅치 않아 보입니다. 앞으로 함께 지켜보시죠.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서 확인해 주십시오.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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