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호

정신분석학으로 본 정몽헌 회장 자살

현실도피, 복수심, 과도한 책임감

  • 글: 백상창 한국사회병리연구소장 letter913@yahoo.co.kr

    입력2003-08-21 17: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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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연 그 무엇이 정몽헌 회장을 죽음의 늪으로 끌고 갔을까.
    •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회장의 자살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 정회장 자살의 원인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정신분석학으로 본 정몽헌 회장 자살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런 자살은 한국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첫째, 누구나 부러워하고 ‘나도 저렇게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할 만큼 수많은 사람의 선망의 대상인 재벌 총수의 자살은 누구에게나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둘째, 정회장이 55세란 나이로 갑작스레 자살을 선택한 데서 오는 충격파는 특히 2000년 6·15선언 이래 남북이 화해한답시고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는 이른바 남북경제교류사업에도 미치고 있다. 고 정주영 회장이 소 1001마리를 몰고 북으로 들어간 이래 불붙은 이른바 남북경제교류사업은 정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자칫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

    정몽헌 회장의 죽음은 그가 속한 현대아산재단은 물론 현대 계열 전체에도 크나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유서를 통해 자신이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다’고 몇 차례 강조하고 ‘용서해줄 것’을 간청하면서도 김윤규 사장에게는 ‘대북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대목에는 그가 외로이 자살이라는 길을 떠나면서도 남은 사람들이 회사를 잘 꾸려나갈 것을 당부하는 심정이 담겨 있다.



    어쨌든 살기가 어렵다고 자식과 동반 자살하는 주부, 아들이 카드빚을 졌다고 자살하는 아버지 등이 생겨나고 있는 이 시점에 정몽헌 회장의 자살이 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불과 40년 전만 해도 세계 최빈국으로서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런데 세계 12대 무역국가, OECD에 편입되어 선진국으로 향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자살이 유행처럼 번져가는 현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허탈감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왜 자살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정몽헌씨 같은 사람도 자살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을 정신분석학 이론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체는 어떤 역경이 와도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려 하며, 다음 세대까지 연장하려고 하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법칙이다. 그렇다면 이런 만고의 진리와 같은 법칙을 무시한 채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현상은 도대체 어째서 일어나는 것일까?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1920년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몸소 경험했던 탓인지 인간의 마음속에는 ‘삶의 본능(libido)’에 대립되는 ‘죽음의 본능(thanatos)’이 있다고 갈파한 바 있다. ‘삶의 본능’이 사랑과 건설, 노동, 결합의 의지로 나타난다면 ‘죽음의 본능’은 증오와 파괴와 노동 거부와 분열의 길을 향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죽음의 본능’은 인간이 잠을 잘 때나 적을 만나 싸우는 공격행위를 할 때 나타나기 때문에 결국 ‘삶의 본능’을 돕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삶이 너무 고달프거나,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는 일마다 실패해 절망 상태에 빠질 때는 ‘죽음의 본능’이 한꺼번에 치밀어 자살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죽이고 싶다’가 ‘죽고 싶다’로

    자살현상에 대한 두 번째 이론은 K. 메닝거(Karl Menninger)의 학설에서 볼 수 있다. 프로이드의 ‘죽음의 본능’ 설에 기초하여 메닝거 박사는 인간이 자살하게 되는 3단계의 심리과정을 지적했다.

    첫 단계는 일상생활에서 일이 제대로 안 되거나, 방해하는 자가 있다고 느낄 때 그 대상을 ‘죽여버리고 싶다(wish to kill)’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죽임을 당하고 싶다(wish to be killed)’는 생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남을 향했던 살인적 증오심이 마치 부메랑처럼 자기 자신을 향해 되돌아오는 것이다. 메닝거 박사가 말하는 마지막 단계는 자기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상태(wish of death)’가 되고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다.

    메닝거는 이런 3단계 심리가 갑자기 발동해 자살을 실행하는 현상을 급성자살(acute suicide)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서서히 진행되면 만성자살(chronic suicide)의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메닝거는 만성자살 현상의 예로 알코올 중독증(alcoholism)을 들고 있다. 이 경우 술이 여러 모로 몸에 해로운 줄 알면서도 계속 마시게 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서서히 죽여간다는 것이다. 만성자살은 알코올 중독증 이외에도 고혈압 걸리기, 비만증 되기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메닝거의 이론에는 급성자살과 만성자살 이외에 신체의 일부분을 죽이는 ‘부분자살’도 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두통이나, 검사해도 아무 이상이 없는데 사지가 마비되거나, 갑자기 사물이 보이지 않는 현상 등이 여기에 속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살에 관한 세 번째 학설은, 19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E. 뒤르켐(Emile Durkheim)이 주장한 사회환경설을 들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사회가 갑자기 변하고 전통적 가치는 무너졌는데 새로운 가치관이 생겨나지 않는 경우에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는 곤경에 빠졌을 때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를 무규범(無規範), 즉 아노미(anomie)의 자살이라고 했다.

    이는 어찌 보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상황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 ‘잘살아보세’ ‘가난의 한을 풀어보세’ 하고 열심히 일하던 ‘근대화운동’과 그 과정에 인권과 자유가 침해되었다면서 열화와 같이 일어난 ‘민주화운동’에 이어 우리가 북한보다 좀 잘살게 되었다고 우쭐대면서 ‘북한어린이 돕기’ ‘분유 보내기’ ‘국수공장 지어주기’ “김정일도 민족주의자다” 하면서 북한을 지원하는 이른바 ‘남북평화운동’이 진행되면서 상당수 한국인은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우울증과 깨달음

    뒤르켐은 ‘아노미적 자살’말고도 자기가 속한 동지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충성하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를 ‘순교자적 자살’이라 명명했다. 이런 와중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고 죽음을 택하는 것은 ‘이기적 자살(egoistic suicide)’로 분류했다.

    뒤르켐 주장의 핵심은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환경이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는 1000만명 이상이 접속한다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살사이트’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 인간이 자살하는가에 대한 네 번째 학설은 유전설이다.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작가 E.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는 노벨상문학을 받았을 정도로 인기와 영예를 누렸지만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의 가계를 조사했던 바 4대에 걸쳐 5명이 자살로써 삶을 마감한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정몽헌씨 일가도 평탄치는 않다. 그의 큰형(몽필)은 사고사를 당했고 바로 위 형(몽우)은 자살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자살에 대한 다섯 번째 학설은 이른바 대뇌생리학설(大腦生理學說)이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면 대뇌의 신진대사에 필요한 세로토닌(serotonin)이란 물질이 일정량 있어야 생기가 돌고 살맛을 느낀다는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이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이 생기고 살맛을 잃게 되며 때로는 자살을 하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바로 이 실험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오늘날 세계의 제약회사들은 우울증을 치료하는 항우울제(antidepressant)를 제조하여 공급하고 있고 이 약물은 전세계의 정신과 진료실에서 애용되고 있다.

    이때 물론 전문의 처방에 따라 항우울제를 쓰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자살도 예방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약물만으로 처방하는 경우 그 효과는 지속성이 없고, 약이 떨어지면 더 큰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다시 말해 약물을 이용해 자살충동을 억제하는 것 외에 그의 삶의 자세인 인생관을 바꾸어주는 ‘깨달음’의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정신적 행복이나 마음의 안정, 참다운 기쁨은 약물이나 돈이나 물질 또는 권력만으로 얻을 수 없고, 각 개인이 가진 높은 정신적 가치와 깨달음, 그리고 자신의 태어남의 의미를 꿰뚫어보는 새로운 삶의 자세에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자살에 대한 여섯 번째 이유로는 환상이 꼽힌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묘한 병적인 환상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자신의 지난날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보고 더 이상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믿는 이들이 이런 환상에 빠지면 자신도 모르게 마치 블랙홀에 빠져들듯이 자살을 선택하게 되다는 것이다.

    이런 환상들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첫째,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평소 자신을 괴롭혔던 자들에 대한 복수심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내가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자’는 복수심을 갖게 되고, 거기서 병적 희열을 느끼며 자살을 한다는 견해다.

    자살을 재촉하는 둘째 환상은 이른바 영생에 대한 환상으로, 자신이 육체적으로 죽음으로써 영원히 살게 된다는 병적 망상이 든다는 점이다. 자살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병적 환상은 이른바 죽은 자와의 재회에 대한 환각이다. 자신을 사랑해주었으나 일찍 사별한 어머니 등 가까운 사람과 저 세상에 가서 만나면 얼마나 기쁘겠느냐는 환상에 사로잡혀 자살을 결행하게 된다고 학자들은 보고하고 있다.

    어느 것이나 다 지극히 병적인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살 결행자들은 불행히도 판단할 능력이 없다. 정신의학적으로 볼 때 이는 퇴행증(退行症)에 걸리는 일종의 정신병리적 증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프로이트 이래 120여 년간 연구돼온 인간의 심층심리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토대로 자살의 현상과 그 원인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정몽헌씨의 자살 동기를 살펴볼 차례다.

    인간의 자살심리에 대한 여러 연구와 학설을 놓고 볼 때 정몽헌씨의 자살은 어디에 해당될까.

    우선 그의 가계에서 이미 자살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가계유전설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부친을 빼닮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시각에 의문이 생긴다.

    고 정주영 회장은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 자갈밭에서 농사 짓는 게 싫어 일찍이 가출해 온갖 고통과 역경 끝에 세계적인 재벌이 돼 1960, 70년대 한국의 경제발전에 엄청난 공헌을 했다. 그의 불타는 야망, 창의성과 성취욕구, 백절불굴의 의지 등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일이 뜻대로 안 되거나 부하직원들이 제대로 일을 못했을 때 ‘촛대 뼈 차는 일’을 서슴지 않는 등 공격성을 내보인 것은 부정적 측면으로 인식되고 있다.

    치미는 분노와 심리적 압박

    정몽헌씨가 그의 부친과 다른 점이 있다면 머리가 좋고 자존심은 강하나 부친의 권위에 압도된 탓인지 성격이 내성적이라는 점이다. 부친의 사망 이후 그는 2000년 6·15선언을 전후해 추진된 대북사업을 그대로 추종했다.

    그런데 5년에 걸친 대북사업의 결과는 허망했다. 김정일에게는 핵개발도 가능한 달러를 안겨준 셈이 되었고,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상까지 탄 반면, 돈을 댄 정몽헌씨는 껍데기만 남았다. 게다가 정권이 바뀌자 특검이 시작돼 대북 비밀거래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됐고 ‘150억+α’란 것이 튀어나와 정몽헌씨는 마치 죄인이나 된 양 사직당국에 불려다니는 신세가 됐다.

    연세대 국문과를 수석 졸업할 정도의 뛰어난 머리와 강한 자존심의 소유자로 일에 대한 책임감이 남달리 강했던 정씨에게 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게다가 특검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대북거래에 관여했던 정치인들이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걸 보면서 죽이고 싶은 분노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의 유서에 ‘내가 어리석었소’란 말과 ‘용서해달라’는 말이 네 번 이상 반복된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몽헌씨의 자살은 메닝거의 해석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친이 정권과 더불어 벌인 일을 충실히 이행하다가 헤어나지 못할 깊숙한 늪에 빠진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워낙 내성적인 성격인 데다 부친처럼 고생과 시련을 겪으면서 자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현실도피와 복수심리, 그리고 책임의식 등을 느껴 마침내 자살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정몽헌씨의 자살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엿볼 수 있는 병리현상과 자신으로선 선택을 피할 수 없었던 대북사업이 빚은 비극이라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재벌 총수의 자살을 보면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인격의 그릇을 넘는 재산이나 권력, 명예 등은 결국 그 사람을 죽이는 독(毒)이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은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간 사람처럼 덮어놓고 출세하고 돈을 벌어 남 보란 듯이 살기를 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행복을 가져오는가? 대체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필자는 정신병원의 임상경험과 가정법원 법정, 그리고 한국사회 병리 연구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행복이란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일 줄 알고, 뜻을 세우고, 묵묵히 노력하고, 실패하면 수정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뜻을 이룩하려는 삶 속에 있는 것이다.

    정몽헌 회장의 자살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은, 어쩌면 현대를 사는 모든 한국인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고민이나 하는 일에 대해 온 가슴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상의하고 조언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보면, TV 화면에서는 화려하고 쾌락으로 가득 찬 모습들만 보여지고 있지만 막상 사회 내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엄청난 병리가 진행되고 있다. 속임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마침내는 자기 자신마저 속이며 살고 있는 게 오늘날 한국사회의 자화상이 아닌가.

    이런 병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 만큼 재벌 총수처럼 중책을 맡은 사람은 고교 동창 정도가 아니라 인생 경험이 많고 올바른 판단력을 가진 사람에게서 자신의 선택과 진로에 대해 진지한 충고를 들을 기회를 가져야 한다. 중요한 일을 진행하면서 혼자 마음속에만 담고 남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하다 보면 결국에는 지뢰밭에 빠지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반성 있어야

    정몽헌씨의 자살을 두고 또 하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정치권 전체의 피를 토하는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정치란 자신이 쌓은 모든 지식과 경험, 애국심과 정열을 불태워 조국을 위해 이바지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치판을 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을 향한 이합집산이 이루어지고, 정치적 반대파를 마치 철천지원수를 대하듯이 하며, 국민들의 뼈아픈 처지는 외면한 채 오로지 대중적인 인기를 높이는 일에만 주력한다든가 음성적인 정치자금 수수로 부를 쌓거나 당파 싸움에 의한 권력투쟁에 전념한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한국 정치사를 보면 권력을 잡은 이들은 국가 백년대계는 아랑곳없고 당대에 한 건 하기, 왕창 큰일 저지르기, 자신의 한(恨) 풀기 등에 열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가 정도를 벗어나면 기업이 정경유착을 시도하게 되고, 분식회계, 주가조작 등을 예사로 하게 된다. 그 피해는 결국 기업에게 돌아가게 마련이고 결국엔 정치와 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만 심화시킬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참여정부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권을 잡을 때마다 되풀이돼온 ‘신세 진 사람에게 빚 갚기’보다는 자살이 없는 사회, 누구나 희망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줄 것을 기대한다.

    우리의 정치·경제가 투명해질 때 진정 북한 인민을 살리는 건강한 민족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재벌 회장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조국의 번영과 평화통일의 밑거름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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