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은 원산-금강산 개발을 위해 도로, 철도를 보수·신설하려고 한다. ‘금강산 1단계 개발 총계획’ 문건은 “강원 통천군에 하루 3000~4000명을 수용하는 국제공항을 짓는다” “원산-금강산을 잇는 90㎞를 74개의 교량과 도로 및 9개 기차 터널로 직선화한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은 원산 및 금강산 개발에 78억 달러(8조5000억 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투자금은 외자 유치를 통해 조달한다.
오응길 총사장이 말한 대로 원산-금강산 관광지구 개발은 “국가 단위에서 밀어붙이는” 사업이다. 지난해 4월 3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원산-금강산 관광지구 총계획을 비준(정령 제18호)했고, 6월 11일에는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를 창설(정령 제48호)했다.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 계획’ 문건에 따르면 △각종 휴양 문화 시설과 생태 환경이 조화된 세계적 관광지구 △생태 환경이 절대적으로 보존된 역사 유적 관광지구 △국제적 휴양 및 치료 관광지구로 개발한다. 공항, 항만, 철도, 도로, 전력 등 기반시설과 골프장, 카지노 등 위락시설을 짓는 데 필요한 자금 조달에 사업의 성패가 달렸다. 평양이 외자 유치에 소매를 걷어붙인 까닭이다.
북측은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외자를 유치할 수 있을까. 또한 독점 계약을 맺은 현대그룹을 배제하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 현대그룹 측은 4월 10일 “금강산 관광과 관련해 북측과 맺은 모든 합의는 어느 일방의 결정으로 취소되거나 효력이 상실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금강산 관광은 1998년 11월 시작됐다. 사실상 현대그룹 작품이다. 정주영-정몽헌-현정은으로 이어졌다. 현정은 회장은 “목숨과 맞바꾼 큰 뜻이기에 끝까지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한다(상자기사 참조).
주한 미국대사관이 2009년 8월 28일 본국에 보고한 비밀 전문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의 대화 내용이 담겨 있다. 위키리크스(www.wikileaks.org)가 2011년 9월 2일 폭로한 이 문건은 캐슬린 스티븐스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2009년 8월 25일 현정은 회장을 만나 얻은 정보를 보고한 것이다.
김정일은 그해 8월 16일 현정은 회장을 만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사망했지만 나는 살아 있다”며 “남북관계가 어려움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상호불신”이라고 주장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두 고인(故人)을 거론하면서 김정일은 ‘의리’라는 낱말을 썼다. 비밀 전문에는 ‘EUI RI, RIGHTEOUSNESS AND LOYALTY’라고 적혀 있다.
현정은 회장은 스티븐스 대사에게 “금강산 관광사업을 재개하려 방북했는데, 북한보다 한국에 걸림돌이 더 많다”고 불평(complained)하면서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북측과 합의한 5개 항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탄식(lamented)했다.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 사건 직후 중단된 사업은 지금껏 재개되지 않았다. 2008년 7월부터 2015년 3월까지의 관광 매출 손실액이 9725억 원에 달한다고 현대아산은 4월 9일 밝혔다. 협력업체를 포함하면 손실액이 1조3000억 원쯤 된다고 한다.
현대그룹이 주도적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움직인 것은 현정은-김정일 면담이 이뤄진 2009년 8월이 마지막이다. 현정은 회장은 2009년 8월 10~17일 평양 방문 때 △금강산 관광의 조속한 재개 및 비로봉 관광 개시, 금강산 관광 편의와 안전 보장 △육로통행 및 체류 관련 제한 해제 △개성관광 재개 및 개성공단 활성화 △백두산 관광 개시 △추석 때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 5개 항에 합의했다. 당시 청와대는 현정은 회장이 김정일을 만나 임의로 합의한 것을 불쾌하게 여겼다. 5개항 합의는 현정은 회장이 스티븐스 대사에게 탄식한 대로 결국 휴지 조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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