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호

‘삼양동 흙수저’ 오세훈 대망론

정치 人生이 각본 없는 드라마 “총선 거치며 오세훈계 형성될 것”

  • 김성곤 이데일리 정치부 기자

    skzero@edaily.co.kr

    입력2022-06-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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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장 4선, 암흑기 벗고 정치적 부활

    • 구청장·시의회 선거 선전, 식물시장 ‘탈출’

    • 與 주자 중 중도층 거부감 적어

    • 전국적 지명도에 확장성은 플러스 요인

    • 차기 총선 분수령… 당내 우군 확보할까

    오세훈 서울시장이 6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선자대회 및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오세훈 서울시장이 6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선자대회 및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차기 대선 도전은) 굉장히 사치스러운 생각이다. 서울시를 글로벌 톱5 도시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시정에 최선을 다하겠다. 시장의 책무가 대통령과 비교해도 가볍지 않다.”

    6월 2일 새벽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선거캠프 상황실에 들른 오세훈 서울시장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보다는 긴장감이 묻어났다. 차기 대선 관련 질문에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오 시장 주변에서도 “대선은 1도 생각하지 않는다. 서울시에만 올인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오 시장은 여야를 통틀어 유력한 차기 주자로 부상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라는 주홍글씨 탓에 보수 몰락을 앞당긴 원인 제공자라는 오랜 비판은 자취를 감췄다. 국민적 평가도 유사하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김동연 경기지사 당선자와 더불어 ‘가장 기대되는 시·도지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오 시장의 마지막 도전은 2027년 제21대 대선이다. 오 시장이 차기 대권 최대어로 부상하면서 언론과 국민도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서울시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연간 예산 44조 원을 집행하면서 950만 시민의 삶을 책임지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수장이다. 전국 지자체장 중 유일하게 장관급 대우를 받으며 국무회의에도 배석한다. 외교·통일·국방 분야를 제외하면 대통령 업무와 사실상 다를 바 없다. 서울시장이 ‘소통령’으로 불리면서 유력한 차기 주자로 대접받는 이유다.

    입법, 사법, 행정을 두루 거친 오 시장의 차기 경쟁력은 막강하다. 달동네 출신의 흙수저 변호사로 시작해 개혁 성향의 소장파 국회의원을 거쳐 서울시장만 4번 역임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누구보다 빛난 전반기 10년, 시련의 연속이던 후반기 10년 등 20여 년의 정치 인생 스토리도 파란만장하다. 오 시장은 차기 구도의 변수가 아닌 상수다. 오세훈 대망론의 이면을 짚어봤다.



    차기 대권 지름길에 들어서다

    ‘87년 체제’ 이후 한국 정치에서 서울시장은 대권의 지름길로 통했다. 1995년 조순을 시작으로 1998년 고건 → 2002년 이명박 → 2006·2010년 오세훈 → 2011·2104·2018년 박원순 →2021·2022년 오세훈 등 역대 모든 시장이 대선후보로 거론됐다. 성공 사례는 이명박 전 대통령 1명이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던 이 전 대통령은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 개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바탕으로 2007년 대권을 거머쥐었다.

    서울시장을 거쳐 노무현 정부 시절 탄핵 사태 때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고건 전 총리나 3선을 역임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한때 유력한 대권주자였다. 한명숙 전 총리,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 김문수 전 경기지사,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서울시장 선거 패자들도 정치적 위상만큼은 대선주자급이었다. 5선 거물로 인천시장을 지낸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라는 무리수를 둔 것도 차기 대권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이보다 극적일 수 없다.” 오 시장의 정치 인생은 각본 없는 드라마다. 이번 승리로 정치적 암흑기에서 완벽하게 부활했다. 그의 정치 인생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오 시장은 2000년 16대 총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뒤 한나라당 개혁소장파 그룹인 미래연대의 리더로 이름을 날리며 정치자금법 개혁을 주도했다. 2006년 45세 때 역대 최연소 민선 서울시장으로 당선됐고 2010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정치 입문 이후 10년은 황금기였다.

    반전은 2011년 ‘무상급식 투표’다. 보편적 복지 강화라는 흐름 속에서 “애들 밥그릇 뺏은 정치인”이라는 오명에 시달렸다. 이후 10년은 암흑기다. 재기를 위해 선거에 나설 때마다 패배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는 출마조차 못 했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서울 종로에서 정세균 전 총리에게 완패했다. 2019년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는 황교안 전 대표에게 졌다. 2020년 21대 총선 때 서울 광진을에 출마했다가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석패했다. 중앙 정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진 사실상의 낭인 시절이다.

    오 시장은 이때를 정치 공백기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고민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한 와신상담의 기간이었다고 술회한다. 반전은 지난해 일어났다. 2021년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승리로 극적으로 재기했다.

    바깥에서 보기엔 이번 서울시장 선거 승부의 추는 일찍 기울었지만, 캠프 내부에서는 말 못 할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2010년 재선 당시 한명숙 전 총리와의 피 말리는 진땀승, 2016년 20대 총선에서 정세균 전 총리에게 역전패당한 트라우마가 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번도 어려운 서울시장 선거를 네 번이나 승리하면서 오 시장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이는 여론조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6월 10일 한국갤럽이 공개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 따르면 이재명 민주당 의원이 15%, 오 시장이 10%를 얻으며 여야 각각 1위를 기록했다.

    국민의힘 지지층만 놓고 보면 오 시장이 20%로 1위다. 이어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9%를 얻으며 2위 그룹을 형성했다. 앞서 한국갤럽의 ‘가장 기대되는 시장, 도지사’ 여론조사에서도 오 시장은 김동연 경기지사 당선자와 함께 20%를 얻으며 1위를 기록했다(이 기사에 언급된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신율 명지대 교수는 “서울시장 선거에 4번 도전해 모두 승리했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큰 선거에 강하다는 게 증명됐다”며 “풍부한 행정 경험은 물론 중도적 이미지도 강점”이라고 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역시 “4선 서울시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선거에서 중요한 게 인지도, 호감도, 충성도인데 오 시장은 이번 선거 승리로 한마디로 민심을 잡았다”며 “행정 능력과 국회 경력까지 갖춘 보기 드문 차기 주자”라고 평했다.

    금수저 엘리트 아닌 달동네 흙수저

    오 시장과 윤석열 대통령은 같은 79학번이다. 오 시장이 1961년 1월생, 윤 당선인이 1960년 12월생이다.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180㎝가 넘는 훤칠한 키에 귀공자풍의 동안 외모로 어디를 가든 주목받는다. 화려한 외모 덕에 금수저 출신의 엘리트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강렬했다. 실상은 정반대다. 오 시장은 어린 시절 서울 삼양동 판자촌에서 지독한 가난에 시달린 흙수저 출신이다. 오 시장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 사다리의 재복원’을 강조한 데는 이런 어린 시절의 아픔이 녹아 있다.

    일단 ‘잠룡 오세훈’의 과제는 성과다. 과거 박원순 전 시장이 3선 시장이라는 타이틀에도 차기 구도에서 멀어진 것도 국민적 이목을 사로잡는 분명한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차기에 다가서기 위해 오 시장은 4선 시장에 걸맞은 성과가 필수적이다. 서울시 최대 난제인 부동산과 교통 분야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면 최상이다.

    배종찬 소장은 “부동산과 교통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쉽지 않은 과제”라면서 “오 시장의 향후 행보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안심소득 추진과 TBS의 교육방송 전환을 통한 교육개혁 의지”라면서 “서울시정에서 구체적 성과를 내고 서민 친화적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면 중도층 견인을 통해 오 시장의 차기 경쟁력은 더욱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 시장은 서울시장 선거 국면에서 ‘약자와의 동행 특별시’를 주요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선거를 앞둔 전략적 공약이 아니라 차기 도전을 앞둔 그의 지향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오 시장 처지에서 다행스러운 점은 이번 선거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점이다. 그간 민주당의 반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식물시장의 처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절대우위를 보이던 서울 25개 구청장과 서울시의회 구조는 지방선거를 거치며 대폭 변화했다. 국민의힘은 25개 서울 구청장 선거에서 17곳을 승리했다. 직전 선거에서 민주당이 서초구를 제외한 24개 구청장을 석권한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서울시의회 변화는 더 극적이다. 총 112석(지역구 101명, 비례 11명) 중 국민의힘은 3분의 2에 해당하는 76석을 차지했다. 이는 직전 선거에서 민주당이 총 110석 중 102명을 독식한 것과는 천양지차다. 시장·구청장·시의회·구의회까지 특정 정당이 싹쓸이하는 지방선거 특유의 줄투표 성향을 고려하면 아쉬운 대목이지만 오 시장으로서는 그래도 정치적 운신의 폭을 넓혔다는 게 플러스 요인이다.

    오 시장의 차기 도전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역대 최다선 서울시장이라는 수식어는 ‘대선 비단길’이 아니다. 4선 서울시장은 분명 강점이지만 역설적으로는 치명적 약점이다. 네 번째인 만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버금가는 시정 성과를 내야 한다. 정치 공백기 10년 동안 여의도 정치권과의 관계도 멀어졌다. 오 시장의 차기 도전을 확실하게 지원할 오세훈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기필마로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을 치른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자가 당심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패배한 게 반면교사다.

    홍준표·안철수·원희룡·이준석에 한동훈까지

    여권 내 차기 대권 구도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경쟁자로 꼽히는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자,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 법무부 장관(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뉴스1]

    여권 내 차기 대권 구도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경쟁자로 꼽히는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자,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 법무부 장관(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뉴스1]

    현재 여권 차기 구도는 풍년이다. 윤 대통령과 격렬한 전투를 치른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자는 물론 당권 도전 이후 차기 도전을 노리는 안철수 의원, 내각에 입성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권토중래를 꾀하고 있다. 대선·지선 승리로 몸값이 높아진 이준석 대표와 인사청문회를 거치며 확실한 보수 팬덤을 형성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잠재적 라이벌이다.

    정면 승부는 2024년 22대 총선 이후다.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경험한 오 시장이 서울시정에서 성과를 낸다면 총선 판도도 달라질 전망이다. 전국적 지명도는 물론 중도층을 아우르는 확장성도 플러스 요인이다. 이 때문에 차기 대선을 위해 여의도 정치권과 스킨십을 늘리면서 우호 세력 확대에 공을 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차적으로 서울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오 시장과 전략적 연대를 맺을 수 있다.

    오 시장의 경쟁력에 대한 전문가 평가도 후한 편이다. 신율 교수는 오 시장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취약한 당내 기반과 관련해 “차기 지지율이 상승하면 당내 기반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고 강조한 뒤 “세빛섬을 비롯해 박원순 전 시장 재임 시절 평가 절하된 오 시장의 주요 정책이 향후 4년 동안 제대로 평가받으면 국민적 이미지도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배종찬 소장은 “결국 문제는 당심이다. 부족한 당내 기반을 얼마나 보완하는지가 중요하다”면서 “2024년 22대 총선에서 이른바 오세훈계로 분류할 수 있는 인사들이 국회에 어느 정도 포진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 전문가 역시 “오 시장은 여권 차기주자 중에서 중도층의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다. 대선과 지선을 거치면서 진보의 결집도가 약해진 상황을 고려하면 오 시장의 중도 이미지는 강점이 될 수 있다”며 “당내 조직 확대나 오세훈계 구축은 과제지만 여론조사에서 경쟁력을 보이면 계보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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