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호

‘아리스’가 증명한 팬덤 문화의 사회적 효과

좌절에 굴하지 않고 꿈을 키우는 사회 만드는 선한 영향력

  • 조은재 대중문화평론가

    입력2022-06-2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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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덤 평정한 ‘아리스’ 특급 선행

    • 규모만큼이나 놀라운 순발력·기동성

    • 구석구석 뿌리내린 탄탄한 조직력·강력한 응집력

    • 다른 팬덤에도 건강한 자극

    • 선행 확산 이끌어내는 ‘착한 경쟁’

    김호중이 2022평화콘서트 행사장에 설치한 선행 굿즈 부스. 판매수익금 일부를 김호중과 아리스 이름으로 철원 장학재단에 기부한다. [김도균 객원기자]

    김호중이 2022평화콘서트 행사장에 설치한 선행 굿즈 부스. 판매수익금 일부를 김호중과 아리스 이름으로 철원 장학재단에 기부한다. [김도균 객원기자]

    아리스가 모금해 김천예고에 기증한 그랜드피아노. 서수용 교장이 직접 시연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아리스가 모금해 김천예고에 기증한 그랜드피아노. 서수용 교장이 직접 시연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가수 김호중의 팬덤 ‘아리스’는 3월 11일부터 14일까지 나흘 동안 2억7385만413원을 모아 경북 울진, 강원 삼척 등 산불 피해 이재민에게 기부했다. 아리스는 이전에도 김호중 모교 김천예술고등학교에 피아노 교체가 필요한 사실을 알고 3일 만에 2억 원을 모아 그랜드피아노를 기증한 바 있다. 전 세계적 사랑을 받는 K-팝 아이돌 팬덤 중에서도 고작 며칠 만에 수억 원을 모금할 수 있는 팬덤은 다섯 손가락에도 채 꼽히지 않을 것이다. 자체적인 콘텐츠 판매를 통한 매출액이야 달성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기부’를 위한 자발적 모금은 팬덤의 ‘과외 활동’이기 때문에 열성적이고 거대한 규모의 팬덤이라고 해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리스의 화력은 열정적이기로 유명한 트로트 가수 팬덤 안에서도 독보적인 사례다. 그동안 팬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이루어진 기부 금액만 총 5억 원을 돌파했다. 규모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이들의 순발력과 기동성이다. 대규모 팬덤이 자발적 모금을 통해 수억 원대의 기금을 조성하는 것 자체는 종종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리스는 그 수억 원을 불과 며칠 만에 척척 모아낸다. 그만큼 팬덤의 조직력이 탄탄하고 응집력과 결속력이 강력하다는 증거다.

    팬덤의 ‘선한 영향력’ 언제 시작됐나

    스타의 팬클럽이 기부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려는 움직임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특히 1990년대 1세대 아이돌이 대규모 팬덤을 거느리기 시작하면서 봉사활동이나 기부 등의 선행 또한 여러 가지 팬클럽 활동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팬클럽도 동호회인 만큼 집단 단위의 사회 활동을 통해 구성원의 유대감과 구심점을 강화함은 물론 대외적인 홍보 효과 또한 얻고자 하는 활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왔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도 팬클럽의 선행에 대한 언급이 짧게 나온다. H.O.T.가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출연한 이후로 기부 활동을 시작했다는 팬이 고아원과 양로원에서 봉사 활동뿐만 아니라 다달이 유니세프에 기부도 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실제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팬덤의 선행이기도 하다. 최근에도 생일이나 데뷔 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 증서를 발급받아 스타에게 선물하는 일이 자주 있다.

    콘서트 등 공연이 주된 콘텐츠인 가수의 팬클럽은 1990년대부터 쌀 화환 기부 등을 통해 공연을 축하하고 기념함과 동시에 선행에도 앞장섰다. 그룹 신화의 멤버 신혜성 팬클럽이 쌀 화환 기부 문화의 시초로 알려져 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유행 이전까지는 연탄, 반려동물 사료 등 여러 가지 기부 물품으로 다양화되는 흐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기부 화환은 콘서트장 앞에 없으면 허전할 정도로 익숙한 문화가 됐다.



    ‘아리스’ 기부가 만들어낸 것

    부산 연제구 응원 조직인 ‘부산그레이스방아리스’는 1월 6일 저소득 한부모 가정 청소년을 위한 이웃돕기성금 560만 원을 기탁했다. [부산연제구청]

    부산 연제구 응원 조직인 ‘부산그레이스방아리스’는 1월 6일 저소득 한부모 가정 청소년을 위한 이웃돕기성금 560만 원을 기탁했다. [부산연제구청]

    서울 서남아리스는 4월 28일 영등포구 양평동 안양천 일대에서 환경 정화 봉사 활동을 진행했다. [서남아리스]

    서울 서남아리스는 4월 28일 영등포구 양평동 안양천 일대에서 환경 정화 봉사 활동을 진행했다. [서남아리스]

    팬데믹으로 공연을 열 수 없게 된 시기에 팬덤을 형성하게 된 ‘미스터트롯’ 7인은 아직 공연으로 팬들을 만나는 일이 많지 않았고, 음악방송 등 방송활동에 주력하는 K-팝 아이돌과 달리 대면 행사와 공연이 주된 무대인 트로트 가수에게 팬데믹 비대면 시국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 김호중은 입대로 인해 애써 얻은 주목과 팬덤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에 처했다. 이때 김호중을 위해 결집한 것이 팬덤 아리스다.

    김호중이 공연을 열지 못하고 입대로 음반 발매도 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아리스가 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 교류를 통해 내 스타를 꾸준히 알리고 선한 영향력을 선사함으로써 구심점을 잃지 않고 결집하는 것이었다. 오로지 지지하는 스타를 위해서만 발휘되는 구매력은 공연과 음반 대신 광고와 기부, 선행 등에 발휘됐으며 그것이 지금 아리스의 발군의 화력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아리스의 선행은 온전히 김호중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기도 하다. 김호중이 아티스트로서 공백기를 갖는 동안 김호중의 이름을 아리스가 사회 곳곳에서 선행을 통해 계속해 회자시키면서 공백기를 채웠다. 군에 입대한 아티스트는 제대 후 연예계 복귀에 고전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래서 최근 연예기획사들은 입대에 대비해 공백을 채울 콘텐츠를 준비하기도 한다. 아리스는 그 공백을 선행으로 채운 것이다.

    클래식하게, 체계적으로 힘 모으는 ‘아리스’

    기부와 같은 선행은 남에게 베푸는 행위이지만 도움을 받는 이뿐 아니라 주는 이도 행복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기부는 ‘아름다운 중독’에 비유되기도 한다. 아리스가 기부 모금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공연과 음반에 소비할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기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돌 가수의 입대로 ‘군백기’(스타의 군복무로 인한 공백기)를 보내는 팬덤은 많지만, 아리스처럼 단기간 기부금을 모으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는 그만큼 아리스가 팬덤 활동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리스는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소모임 형태의 응원 조직이 활성화돼 있다. 그래서 기부나 봉사활동이 필요한 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힘을 모으는 것 또한 가능하다.

    K-팝이 세계적 사랑을 받으면서 팬덤 또한 전 세계에 걸쳐 대규모로 형성됐지만, 그만큼 팬덤의 구심점이나 활동 지속성을 담보하기란 과거보다 어려워졌다. 웹상에서의 화제는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실질적 영향력을 체감할 기회는 오히려 과거보다 어려워진 경우도 많다. 그래서 지역 중심의 오프라인 활동은 그 자체로 팬덤의 구심점이 될 뿐만 아니라 콘텐츠 재생산 차원에서도 긍정적 효과를 발휘한다.

    팬데믹이 사라진 이후 ‘아리스’의 화력 또한 전보다 커질지언정 줄어들 리 없다. 군복무를 마친 김호중이 공연과 음반으로 팬들을 찾아올 때마다 아리스 또한 그동안 체계화한 팬덤 활동을 통해 그를 더 높이, 더 멀리 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9월 열리는 김호중의 단독 콘서트장 앞에도 ‘아리스’의 쌀 화환 행렬이 줄을 잇지 않을까 싶다.

    주변으로 확산하는 아리스의 ‘선한 영향력’

    아리스의 선행은 김호중 공식 팬카페 ‘트바로티’에 기록되고 있다. [‘트바로티’ 팬카페 홈페이지 캡처]

    아리스의 선행은 김호중 공식 팬카페 ‘트바로티’에 기록되고 있다. [‘트바로티’ 팬카페 홈페이지 캡처]

    때로는 팬덤들이 경쟁적으로 기부에 참여하기도 한다. 팬덤의 화력과 입지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다. 3월 대형 산불 피해가 발생했을 때도 그랬다. 아리스가 나흘간 대형 산불 피해 구호 성금으로 약 2억7000만 원을 모금해 화제를 모으자 다른 스타 팬덤의 기부 참여 빈도와 규모가 한층 커졌다. 이러한 경쟁적 기부는 단순히 음반 구매력으로만 화력을 입증하려는 ‘소모적 덕질’이 아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선행 문화가 지역사회의 구석구석까지 퍼지도록 확산을 유도하고, 사회 유지 동력으로 환원되게 하는 ‘착한 경쟁’인 셈이다. 이는 음반 대량 구매로 인한 환경파괴 문제가 대두되는 요즘 중요하게 짚어야 할 부분이다. 대형 팬덤의 구매력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져 있으나, 이를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거나 선행으로 거듭나게 하려는 시도는 아직 주요하게 여겨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의 선행은 김호중과 아리스 스스로를 성장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를 지지하는 선한 영향력으로 승화한다. 기부 단위도 웬만한 NGO 단체에는 대규모 프로젝트 기금이 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렇게 ‘트바로티’의 이름값에 걸맞은 선행으로 도움을 받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김호중의 이미지가 제고됨은 물론 그가 부르는 트로트나 클래식 음악 팬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아울러 제2의 김호중과 아리스를 꿈꾸는 이들이 좌절에 굴하지 않고 꿈을 키우는 사회를 좀 더 빨리, 튼실히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5개 꼭지로 이뤄진 <[Special Report] ‘영원한 식구’ 김호중과 아리스의 행복한 동행> 전체 기사는 오프라인 ‘신동아’ 7월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김호중과 아리스의 행복한 동행’을 大특집으로 다룬 ‘신동아’ 7월호 표지.

    ‘김호중과 아리스의 행복한 동행’을 大특집으로 다룬 ‘신동아’ 7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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