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속한 알릭스파트너스는 부도가 났거나 부실에 처한 기업들의 상황을 호전시키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늘 사정이 어렵고 급박한 기업들을 만나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관심사는 ‘미리 위험신호를 감지할 수는 없을까’에 모아진다. 위험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대책도 앞서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알릭스파트너스가 개발한 것이 ‘기업부실화지표(Corporate Distress Index)’다. 알릭스파트너스는 2000년 기업 부실화 예측을 위한 조기 경보 모델의 일환으로 기업부실화지표를 개발했다.
미국에선 1980년대부터 기업의 신용등급 이외에도 ‘알트만 Z 스코어(Altman Z Score)’라는 지수를 적용해 기업의 부실 정도를 측정해왔다. 기업부실화지표는 알트만 Z 스코어를 몇 단계 더 발전시켜 기업의 이익/손실 상태와 현재의 재정 및 현금 보유 정도, 그리고 주가 등 주요 데이터와 과거 부도 및 준(準)부도 상태에 들어갔던 기업군의 데이터 등을 종합하여 분석하는 지표다.
상장사 27% 도산 위기
또한 이 지표는 ‘낙관적 기대를 바탕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는가’ ‘의사결정이 지연되지 않았는가’ 등의 정성적 분석도 반영한다(상자기사 참조).
기업부실화지표는 현재의 현금 보유 및 재정 상태를 파악하는 신용평가 모델과는 용도가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Q씨라는 고소득 연봉 직장인이 있다고 가정하자. 도박 등 ‘특수한’ 취미가 없는 한, 그는 분명 신용도가 좋은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그의 높은 신용도는 그가 향후 3분기까지 지금의 직장에서 동일한 연봉을 받으며 일할 것을 담보할까. 아니다. 기업부실화지표는 Q씨가 앞으로도 계속 높은 연봉을 받는 직장인의 지위를 유지할 것인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알릭스파트너스는 기업부실화지표를 적용해 2012~2014년 국내 코스피 및 코스닥 상장기업의 부실 위험성을 분석했다. 이 3년치 분석 결과는 상당히 중요한 시사점을 드러낸다. ‘우리 경제가 만성질환 환자와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참조).
분석 대상 상장사 중 위험 경고, 즉 ‘2년 내 도산 위험이 있다’는 경고를 받은 곳이 2012년과 2013년에는 26%, 2014년엔 27%에 달한다. 4곳 중 1곳 이상이 도산 위험에 처한 셈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3분기 내 도산 위험이 있는 기업이 2012년 11%, 2013년 9%, 2014년에 다시 11%로 1년 새 2%포인트 올라갔다. 다른 국가들의 3분기 내 도산 위험 상장기업 비율은 미국 7%, 유럽 4%, 일본 2%에 그친다.
이처럼 고위험군 기업의 수가 줄지 않고 늘어나는 것은 우리 경제에 내재한 한 가지 우려를 드러내는데, 바로 우리 경제가 만성적으로 부실기업을 안고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