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리 전투 참패의 교훈
6·25전쟁과 백선엽, 정일권 등의 참전 장군을 다룬 ‘가장 추운 겨울(The Coldest Winter)’의 저자 데이비드 핼버스탬 등에 따르면 중공군은 화력이 약하고 전술 이해도도 낮은 한국군을 상대로는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과감한 작전을 감행했다. 1951년 5월 중공군 9병단이 1개 대대 병력으로 강원 인제군 현리 후방의 오마치 고개를 점령하고는, 남쪽으로 후퇴하고자 현리에 집결한 한국군 3군단(사령관 유재흥)을 궤멸한 게 대표적 사례다.
현리 전투 참패로 국군 3군단은 해체됐다. 이 전투는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됐다. 이 전투는 임진왜란 때 칠천량해전(1597), 병자호란 때 경기 광주 쌍령 전투(1636)와 함께 3대 패전 중 하나로 꼽힌다. 쌍령 전투 때는 조선군 4만여 명이 청군 1000여 명에게 궤멸됐다.
6·25전쟁을 겪은 후 한국 지도층은 미국의 정치·경제·군사적 힘의 우산 아래서 살아왔다. 강력한 해·공군력을 갖추고 전시작전권을 행사해온 미군의 지원 아래 한국군은 육군 중심으로 발전했다. 미군과 국군 사이에 일종의 분업 체계가 들어선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국군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물론 정신력 측면에서도 미군에 과도하게 의존했다. 요컨대 국군은 전쟁을 독자적으로 기획·수행할 능력을 온전하게 갖추지 못했다. 인구 782만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국군 지도부는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상부의 지시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유약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 군이 이렇게 된 원인 중 하나로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이후 제대로 된 군사작전을 못해봤다는 점을 지목할 수 있다.
전시작전권이 환수되면 전쟁 발발 시 국군이 주력을 맡고 미군이 이를 지원하는 정상적 형태가 설정된다. 또한 전시작전권이 환수된다고 해서 주한미군이 갑자기 철수하거나 한미동맹이 종식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10월 연례안보협의회에서 전시작전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한 한미연합사의 용산 잔류도 추진한다. 예정대로 전시작전권을 환수했더라면 군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우리 힘으로 북한을 포함한 외부의 침공을 막을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깊이 인식했을 것이다. 또한 분열될 대로 분열된 우리 사회를 통합하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미군 의존 DNA’
안보 환경이 우리 못지않게 거친 이스라엘군에는 한국군과 달리 위기에 대한 절박함이 살아 숨 쉰다.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일어나더라도 미군이 존재하는 한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한국군 고위 인사들에게 잠재돼 있다. 장군들의 심리 속에 ‘미군 의존 DNA’가 흐르는 셈이다. 만약 미군이 철수하면 군 수뇌부가 가장 먼저 심리적으로 무너질지도 모른다. 한미 군사동맹을 활용하는 것과 미국에 우리의 생존을 맡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제집 지키는 일을 이웃집 힘센 사람에게 맡겨놓은 가정에선 온갖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외교가 일각에선 ‘지금 전쟁이 발발하면 우리 군은 그대로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서애 류성룡은 ‘용겁불혼(勇怯不混·용감한 자와 겁쟁이를 함께 섞지 말라)’이라고 했다. 인제 현리 전투, 경기 광주 쌍령 전투, 거제 칠천량 해전의 지휘관을 닮은, “미군을 제외하고 한국군이 1대 1로 북한군과 싸우면 한국군이 진다”고 ‘용감하게’ 말하는 장군들은 물러나야 한다. 미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을 계속 행사할 경우 북한은 물론 중국, 일본을 상대로도 군사적 억지력(deterrence)에서 다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까지라면 모르겠으나 중국이 부상하는 반면 미국이 상대적으로 쇠퇴하며 일본도 전쟁 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뀐 지금, 국가 운명과 직결된 안보를 앞으로도 계속 미군에 맡기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재정 문제가 심각한 미국 일각에서 주한미군 철수론까지 거론되는 현실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중국군, 일본군이 이 땅에 다시 상륙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전시작전권은 통일과도 깊게 연관된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반도, 특히 북한 지역이 미국, 일본 같은 해양세력 영향 아래 들어가는 것을 우려해 왔다. 6·25전쟁 때 중국은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고 38선을 돌파할 기미를 보이자 인민해방군 파병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한반도 통일은 중국의 외곽 방어선인 북한의 소멸을 의미하며 미군이 북한 지역에 진주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통일을 위해서는 중국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베이징은 전시작전권을 갖지 못한 한국이 미군의 북한지역 진주를 막을 수 없으리라고 판단할 소지가 크다. 중국이 한반도 통일을 용인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중국은 한국이 최소한 미군의 북한지역 진출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설 때에만 통일에 협력하거나 묵인할 것이다.
북한이 우리 어깨너머로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에 집착하는 것도 우리가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지 않아서다. 6·25 때 우리가 그토록 원했지만 전시작전권을 보유한 미국의 반대로 ‘재차(再次)의 북진’을 시도조차 못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징집 대상 인구 감소
1960~1970년대에도 강조된 자주(自主)·자강(自强)을 의식하지 않고는 통일은 고사하고 안보도 확보할 수 없다.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스스로를 지키려 하지 않는 자, 그 누가 도우려 하겠는가?”라고 했다. 지도자들이 자주·자강 의식을 갖지 않고서는 전시작전권을 환수해도 군대를 제대로 운용할 수 없을 것이다.
강력한 군대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미국에 대한 우리 군의 과도한 정신적 의존을 해소해야 한다. 전시작전권 환수에 대비해 육군 현대화, 해·공군력 증강, 정보 획득 기술 및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육·해·공군 병력 수를 현재의 52만·6만8000·6만5000명에서 30만·12만·10만 명으로 조정하고, 육군 병력 감축으로 절감한 예산을 육군 현대화와 해·공군력 강화에 사용해야 한다.
징집 대상인 18세 남성 인구가 2020년께 26만5000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라도 군 현대화가 필요하다. 정규군만 15개 군단 102만 명으로 구성된 북한 지상군에 대응하려면 우리도 지상군을 보완해야 한다. 청·장년대 연령의 예비군과 경찰을 대상으로 매년 2~3주의 군사훈련을 실시해 강력한 예비대로 유지해야 한다. 지휘의 효율화를 기하기 위해 미군, 독일군, 이스라엘군 등에 비해 필요 이상으로 비대한 군 상층부도 대폭 축소·조정해야 한다.
해·공군력의 상당 부분을 미군에 의존한 육군 중심의 체계에 길든 군대로는 현대화한 중국군이나 일본군은 고사하고 북한군도 제대로 상대할 수 없다.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세계적 수준에 올랐듯, 국군도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대규모 전투와 전쟁을 기획·실행할 역량을 갖춰나가야 한다. 군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위기의식을 가져야 강한 나라를 만들고 통일도 이뤄낼 수 있다.
세계제국 미국이나 이스라엘은 지속적인 전쟁 상태에 처해 있으면서도 나라를 발전시켜왔다. 로마 제국, 오스만투르크 제국, 청(淸) 제국도 마찬가지다. 개인도 그렇겠지만 국가 역시 적당한 긴장 속에 있어야 국민을 통합하고 발전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창출해낼 수 있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