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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나

  • 가미야 다케시(神谷毅) / 일러스트·박진영

한국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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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고 하기엔 아직 이르겠지만, 한일 간에는 ‘이런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서 감탄했던 일도 있다.

“역시 마징가Z는 최고였다.”

나와 같은 세대인 30대 중반 한국인 친구와 식사를 하면서 어릴 때 즐겨 본 TV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자 그가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애니메이션 ‘마징가Z’에 열중했다고 한다!

“주제가가 어떤 거였지?”

둘이서 흥얼거림과 동시에 크게 웃었다. 일본어와 한국말의 차이는 있어도 멜로디는 똑같았다. 그가 어릴 때 본 것은 일본 것을 직수입해 더빙한 애니메이션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는 여성에게도 물어보았다. ‘들장미 소녀 캔디’ ‘요술공주 세리’는 물론 그보다 더 큰 인기를 모았던 ‘미래소년 코난’이 방영되는 시간에는 길거리에 아이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도 그맘때 텔레비전이 뚫어져라 보았던 것들이다. 외국인데도 어린 시절의 그리움까지 공유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밖에는 없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같은 역사 속에 살고 있다는 기분을 맛보았다.

그러나 여기서 그 신문사 선배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정부는 당시 일본 문화의 유입을 제한하고 있었지만, “애니메이션은 일본 대중문화라고 볼 수 없어서 무국적(無國籍)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당시에도 규제대상 외로 취급됐다”(문화관광부 담당자)고 한다. 옷(기모노·着物)이나 가옥 등 일본 분위기가 적나라하게 연출되는 장면이 있으면 한국 방송국에서 편집해 방영했다고 한다.

우연히도 나와 이야기를 나눈 여성의 부친은 방송국의 성우로 활동하셨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의 할아버지역을 맡은 분이셨다.

“(극 중에서)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 ‘파파가 죽어버렸다’고 하면서 운 기억이 나요. 그건 유럽의 애니메이션인 거죠?”

내가 “그것도 일본 게 맞다”라고 했더니 그녀는 말을 잃었다.

‘애니메이션 제작기술은 발달하지 못했지만 장사가 되니까 사면 된다’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사실 매우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품의 출처를 숨겼기 때문에 많은 어린이가 한국 애니메이션으로 알았다고 들었다. 어른들도 사실을 굳이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복잡한 대일(對日) 감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것이 애니메이션 분야만으로 끝나면 좋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한국에 와서 알았다. TV 프로그램 중에도 일본과 꼭 닮은 것이 있다. 편의점에 들어가면 일본 가루비사(社)의 ‘갓바에비(새우)센’과 꼭 닮은 ‘새우깡’이 진열돼 있고, 모리나가사(社)의 ‘하이추우’와 비슷한 한국 크라운제과의 ‘마이츄우’가 있다. 지난해 한국의 상표권소송재판에서 ‘하이추우’가 ‘마이츄우’에 졌을 때는 모리나가사를 대신해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의 ‘갓바에비센’이나 ‘하이추우’를 모르는 한국 분들에게 나의 이런 주장은 받아들여지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 서로 ‘오리지널’을 모르면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대립의 고조는 ‘알고 있는 것’의 기반이 부족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경우가 많다. 서로를 아는 것만으로 ‘섬’ 문제나 ‘카피’ 문제가 100% 해결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대립의 격화(激化)는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한일관계 고시(考試)’의 모범답안이 될 수 있을까. 그럼 내가 우등생일까 하고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낙제생이다.

독일월드컵. 일본은 첫 경기에서 히딩크 감독의 호주에 ‘아름답기까지 한’ 역전패를 당했다. 이때 한국에 거주하는 한 일본인 친구는 “아파트 위층에 사는 사람이 일부러 마루를 더 세게 밟아 소리가 울렸다”고 슬퍼했다.

일본이 패한 다음날, 하필이면 이런 날 엘리베이터에서 알고 지내던 동아일보 기자분들을 만났다(아사히신문 서울지국 사무실은 동아일보 미디어센터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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