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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 별곡-한국의 碑銘문학 2

도산 안창호와 태허 유상규

“공동묘지 태허 옆에 묻어달라”… 묵살된 도산의 유언

  • 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도산 안창호와 태허 유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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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와 태허 유상규

태허 유상규의 장남 유옹섭씨. 도산 안창호에 대해 새로운 증언을 했다.

도산의 묘 이장 문제는 고인과 유족에게는 원통한 일이지만 되돌리기에는 행정절차상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미 도산은 개인의 도산이 아니라 국민의 도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망우공원의 안창호 묘지석이 전혀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도산의 묘지석은 사람들이 붐비는 능선 길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수풀로 뒤덮여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옹섭씨가 부친 유상규의 묘를 벌초할 때마다 함께 손질하면서 일반인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옹섭씨가 경기중학 시절에 찍은 도산 묘 사진에서 당시 도산 묘의 원래 비석 모양을 볼 수 있는데, 이 비석은 아마 이장 때 땅에 묻혔을 것이다. 아무리 주인이 떠난 자리라지만 묘지터와 묘지석의 관리가 이렇게 허술할 수는 없다.

도산이 망우리에 묻힌 후 수주일간 양주경찰서는 묘지 입구에서 방문객을 일일이 심문했고, 그 후 1년간이나 묘지기에게 도산의 묘를 묻는 자의 주소와 이름을 적게 했다. 일제는 죽은 도산을 무서워했고, 도산을 찾는 국민의 마음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감시하지 않는 지금, 망우리묘지의 선현들을 찾는 국민은 거의 없다. 국민의 정신이 그만큼 빈약해진 것이거나, 나라가 무관심하니 국민도 모른체하는 것이리라. 혹자는 구태여 무덤까지 찾아갈 필요가 있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는 것만큼 보이고 느낀 만큼 발걸음이 닿게 마련이다.

죽은 자의 소원

도산 안창호와 태허 유상규

서울 강남 도산공원의 안창호 동상.

필자는 수십 차례 망우리공원을 찾는 동안 일본인 아사카와의 묘 앞에 놓인 꽃다발이 시든 것을 본적이 없다. 그만큼 아사카와의 묘를 찾는 일본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무엇 하러 아무 볼 것도 없는 자국인의 묘를 찾아오는 것일까. 우리에게 망우리묘지는 그저 용마산 등산로나 자전거로 순환로일 뿐인데 말이다. 등산을 하다, 자전거를 타다 “어, 저분 무덤이 여기에 있었네”하고 지나치는 게 우리네 자화상이다.

이런 현실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다시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할 수도 있다. 도산의 묘를 지키던 일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묘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이 합해지면 무서운 힘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지금의 망우리를 찾는 일본인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때가 지나면 고인의 묘지(정신)에 관심이 없다고. 도산의 묘터(墓址)는 이렇게 그가 가장 사랑했던 한국민에게서 버림받고 있다.



도산은 그가 원해서 망우리묘지에 묻힌 후 30년 만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장됐다. 그러나 그의 넋만은 강남으로 이장되지 않았다. 죽은 도산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이장을 거부했거나 친애하는 유상규도 함께 데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후세인은? 도산대로를 장식할 도산의 유해가 중요했지, 도산의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도산은 민중과 같이 공동묘지에 묻히기를 소원했다. 세상은 산 자들의 것, 고인의 말은 세인의 필요에 따라 인용되고 때로는 묵살된다. 도산이 떠난 자리에 홀로 남은 유상규의 묘비가 지금 이토록 쓸쓸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까. 어버이처럼 사랑한 도산의 묘터가 저렇게 방치된 것을 바라보는 고인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애절할까.

도산 안창호와 태허 유상규
김영식

1962년 부산 출생

중앙대 일문과 졸업

한국미쓰비시상사 근무

現 지원상사 대표

2002년 계간 리토피아 신인상(수필), 2003년 문예진흥원 선정 우수문학사이트(일본문학취미)

역서 : 기러기(모리 오가이, 리토피아)


옹섭씨는 지난해 국가로부터 아버지 유상규 선생을 국립묘지로 이장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 건국훈장을 받은 애국지사가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은 당연한 일. 공군 장성 출신인 옹섭씨도 국립묘지에 갈 자격이 있다. 부자가 국립묘지에 나란히 묻힐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부자가 함께 묻히니 좋고, 나라의 관리를 받게 되니 후손들도 여러모로 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부친의 묘를 당분간 망우리공원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국립묘지로 가게 되면 자신과 후손들은 좋지만, 정신적 부자 사이였던 도산과 태허는 영원히 헤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 후손의 희망이나 편의보다는 도산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 비록 후손들이 유상규 선생의 묘를 국립묘지로 이관해도 뭐라 할 순 없지만, 도산의 유언을 알게 된 이상 도산과 태허의 넋까지 갈라놓을 수는 없는 일. 산 사람의 소원도 들어주는데 죽은 사람의 소원조차 무시하는 세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신동아 200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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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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