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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메두사의 뗏목’ ‘미친 여자’

테오도르 제리코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포사람 원장

‘메두사의 뗏목’ ‘미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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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뗏목’ ‘미친 여자’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이 거대한 작품 앞에 서면 역동적인 구도와 격렬한 감정 표현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습니다. 스물다섯 살의 젊은 제리코는 절제와 균형을 강조한 다비드의 신고전주의를 넘어서서 인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율을 느낄 정도로 리얼하게 재현해낸 것이지요. 그림을 자세히 보자면 마치 신화를 역동적으로 묘사한 바로크의 대표 화가 루벤스가 참혹한 현실 세계로 하강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리코는 루벤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낭만주의 회화의 대표작이라면 많은 이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떠올리는데,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이 있었기에 그 작품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당대에 ‘메두사의 뗏목’이 큰 관심을 모은 이유 중 하나는 이 사건의 원인에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배가 암초에 걸려 난파당하자 선장과 일부 선원은 구명보트로 탈출했는데, 퇴역 장성 출신인 뒤 쇼마레라는 선장은 뇌물을 주고 선장 자리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5년 동안 배를 타본 경험이 없던 그가 승객을 놔두고 먼저 탈출한 비윤리적 행동은 당시 프랑스 국민의 큰 공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프리카 식민지 개발을 위해 떠나는 거대한 군함, 선장의 뇌물과 관료의 부패, 자기들만 살겠다는 상류층의 이기주의 등이 이 작품의 배경에 있습니다.

인간 내면에 주목

요컨대, 제리코는 이 작품을 통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묘사하는 동시에 많은 이를 위기로 내몬 상류층의 부정부패를 고발하고자 했습니다. 작품이 발표되자마자 격렬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참혹성에 대한 경악과 부패한 사회 현실에 대한 분노가 작품에 그대로 드러난 셈입니다.

제리코의 그림을 포함한 낭만주의 회화를 볼 때마다 저는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해보곤 합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인 동시에 감성적 존재입니다. 학교에서는 이성을 중시하지만 현실에서는 감성이 앞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차가운 이성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감성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감성적인 게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지만,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그 감정을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개인 정신건강을 위해서나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나 모두 중요한 일입니다. 자연스러운 감정에 대한 과도한 억압은 결국 우리 인간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소중한 인간관계에서도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안타깝게도 세상을 일찍 떠난 탓에 제리코는 다른 작가들처럼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메두사의 뗏목’ 외에 주목을 받은 그의 작품들은 정신병자를 다룬 초상화 연작입니다. 낭만주의자답게 그는 인간의 내면에 주목했고, 인간의 심리적 고통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정신병자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정신병원을 찾아가 환자를 직접 관찰하고 의사의 자료를 참고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심리적 좌절과 공격성

‘미친 여자(Insane Woman·1822)’는 이러한 연작 중 하나입니다. 얼굴에는 따뜻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상대방을 응시하는 눈빛이 매우 서늘합니다. 무엇인가를 의심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다소 외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 하나를 골똘히 생각하거나, 아니면 생각 자체를 잃어버리면 이런 표정을 짓게 되지 않을까요. 제리코가 젊은 나이인데도 이렇듯 인간의 내면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섬세한 존재이고, 깨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감정의 영역은 특히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감정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낭만주의 회화에 늘 공감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상담학을 공부해온 제게 제리코의 작품은 인간의 본래적인 심리와 감정에 대해서 작지 않은 통찰을 안겨줍니다. 200년 전에 그려졌음에도 그의 그림에서는 제가 상담을 통해 만나는 현대인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분노 문제로 돌아가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는 분노조절장애는 심리적 장애의 하나입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개인이 적극적으로 치료받아야 합 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적 차원에서 분노를 유발하는 조건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 역시 세워야 합니다. 심리적 좌절이 타자에 대한 공격성으로 드러나는 게 분노라면, 이런 심리적 좌절을 낳은 과도한 경쟁에 대한 사회적 처방은 시급하면서도 중요한 일입니다.

‘메두사의 뗏목’ ‘미친 여자’
박상희

1973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포사람(사단법인) 원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 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우리 사회를 물들이는 분노 현상을 지켜보면서 문명의 발전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문명의 발전은 기본적으로 이성의 성숙과 과학기술의 혁신에 기반을 둡니다. 문명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데 자기 마음속 분노를 조절할 수 없어 자신도, 타인도 파괴해버리는 사람이 점점 더 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한편이 답답해집니다. 지구를 포함해 우주는 참으로 넓은 공간입니다. 하지만 이 우주 못지않게 인간의 마음 역시 넓고 깊은 또 다른 공간입니다. 또 하나의 우주인 마음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신동아 2015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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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포사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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