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민중가요의 합법화, 대중화를 동시에 달성했다는 점에서 노찾사의 공로는 독보적이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함께했고, 우리 사회에는 지금도 여전히 노찾사의 노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우울하다.
노찾사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민중가요에 뿌리를 둔 태생적 한계로 인해 딱히 노래가 전하는 풍경을 시각화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목 놓아 부른 적이 있다면 인천시 부평구 신트리공원에 가보기 바란다. 노랫말의 원작자이자 1980년대 노동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박영근(1958∼2006) 시인의 시비(詩碑)가 있다. 커다란 화강암 시비 앞면에 그의 시 ‘솔아 푸른 솔아-백제 6’이 새겨졌다.
부르네 물억새마다 엉키던/ 아우의 피들 무심히 씻겨간/ 빈 나루터, 물이 풀려도/ 찢어진 무명베 곁에서 봄은 멀고/ 기다림은 철없이 꽃으로나 피는지/ 주저앉아 우는 누이들/ 옷고름 풀고 이름을 부르네/ 솔아 솔아 푸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글자체는 시인이 남긴 육필원고에서 땄다. 박영근은 1974년 전주고 1학년을 중퇴하고 상경해 구로공단 일대에서 공장 노동자로 떠돌며 살았으며, 1985년 인천 부평으로 이사했다. 시인이 25년 동안 산 곳이 부평이었고, 마지막 삶터도 부평이었다. 시비가 고향인 전북 부안이 아니라 부평 신트리공원에 세워진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노찾사의 흔적을 느끼게 해줄 ‘끝내주는’ 뉴스가 등장했다.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과 경희궁 서울역사박물관이다.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은 금천구가 옛 벌집을 구입해 그 시절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한 곳이다. 상설 체험관이라 느긋하게 찾아봐도 된다. 벌집으로 불리던 가리봉동 133-52번지 구로공단 노동자 거주지가 눈길을 끈다. 두 평 남짓한 방, 지금은 사라진 ‘후지카 석유곤로’가 맨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방구석 앉은뱅이 책상이 남루하다. 못 배운 한을 풀고자 했을까. 앉은뱅이 책상에 놓인 ‘철학에세이’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책들을 보니 먹먹해진다. 신문지로 도배한 벽에는 할리우드 여배우와 팝송 가수 사진 열댓 장을 다닥다닥 끼워 넣은 액자가 있다. 여공들은 돈을 아끼려고 한 방에 3~4명이 살았다. 이런 방이 6개 잇대어 있는데 화장실은 하나다. 아침마다 화장실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으리라.
생활관 직원 김선영 씨에 따르면 과거 이 일대에서 일했던 중년여성들이 혼자 오거나 친구들과 찾는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오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쪽방문을 열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눈물 때문에 체험관을 다 둘러보지 못하고 흐느끼며 떠난다고 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의 ‘가리봉 오거리’ 전시회는 구로공단 반세기를 기념해 서울시가 기획했다. 노찾사를 그리워하는 세대는 즉시 역사박물관으로 달려가기 바란다. 7월 12일이면 전시회가 끝난다. 철거 예정인 가리봉동 133-52번지 벌집주택단지에서 가져온 문짝들을 비롯해 생활가구들을 실감 나게 전시해놓았다.

구로공단은 진한 땀 냄새와 애환이 밴 우리 산업화의 시발점이다. 1977년 전성기 때 10만여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공이었다. 그들의 삶을 극명하게 나타낸 노래가 ‘사계’다. 우리는 적어도 이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그들에게 한없는 연민과 함께 예의를 차려야 한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가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 땅의 수많은 누나, 언니, 여동생이 흘린 회한과 고독의 눈물에 대해 우리는 오늘 말을 아껴야 한다.
‘폭풍이 부는 들판에도 꽃은 피고/ 지진 난 땅에서도 샘은 솟고/ 초토 속에서도 풀은 돋아난다/ 밤길이 멀어도 아침 해 동산을 빛내고/ 오늘이 고달파도 보람찬 내일이 있다/오! 젊은 날의 꿈이여, 낭만이여 영원히’
그 시절을 재현한 여공의 방, 낡은 액자에 끼워져 있던 바이런의 시 ‘희망’이다. 그렇다, 좋은 것은 언제나 미래에 있으리(The best is yet to be). 우리는 그렇게 믿고 살아냈다.
- 1990년대 초 필자는 서울 신촌의 한 여대 중강당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그날 하객으로 온 소프라노의 선창으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결혼축가로 다 함께 불렀다. 이날 풍경은 2011년 7월 12일 ‘중앙일보’에 실린 필자의 기명 칼럼 ‘루이뷔통 vs. 똥색 비닐가방’에 잘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