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호

풍미 끝판왕! 명란버터, 옥수수버터, 해초버터…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2-07-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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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초당옥수수버터. [버터 팬트리]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초당옥수수버터. [버터 팬트리]

    나는 먹는 걸 즐기지만 요리에 재주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스나 식재료를 마구 사놓고는 제때 먹지 못해 골치를 앓는 일이 많고, 괴상한 조합을 시도해 음식을 망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나에게 비장의 무기가 있다면 그건 바로 버터다. 나는 큼직한 버터를 사다가 손가락 굵기로 깍둑깍둑 썰어 냉동실에 둔다. 볶음밥을 마무리할 때, 스테이크가 거의 다 익어갈 때, 큼직하게 썬 채소나 퉁퉁한 소시지, 관자나 전복 등을 오븐에 넣어 익힐 때도 버터를 한 조각씩 더해 맛을 보탠다. 심지어 김치찌개가 알맞게 끓어오르는 순간에도 버터 한 조각을 퐁당 넣는다. 버터를 넣으면 요리 속에 숨어 있던 풍미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쉽게 말하면 감칠맛이 좋아진다. 이는 “버터는 느끼하다”며 즐기지 않는 나의 엄마도 인정하는 ‘버터의 파워’다.

    바게트 위에 해초버터와 김부각 올리기

    구운 쑥떡과 곁들인 쑥버터. [버터 팬트리]

    구운 쑥떡과 곁들인 쑥버터. [버터 팬트리]

    버터의 종류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유지방이 80% 이상 함유된 것을 ‘천연버터’라고 부른다. 유지방 함유량을 낮추는 대신 식물성 기름을 섞어 만들면 ‘가공버터’로 분류된다. 천연버터는 다시 발효버터와 감성버터로 나뉜다. 발효버터는 미생물이 살아 있는 버터라고 할 수 있다. 본래는 저온 살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유로 만든 버터를 지칭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저온 살균을 거친 원유에 젖산균을 넣어 발효한 버터가 더 많다. 감성버터는 저온 살균을 거친 원유 그 자체로 만든다. 정제버터는 천연버터를 가열해 수분을 증발시키고 유지방만 걸러 만든 것이다. 방탄커피 재료로 유명한 기(ghee)버터가 정제버터다. 다른 분류로는 소금 함유 여부에 따라 가염버터, 무염버터로 나뉜다. 천연버터는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으며, 그중 발효버터는 유럽에서 수입되는 것이 다수다.

    버터의 원료나 생산 공정 말고 풍미를 이야기해 보자. 버터라는 똑같은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풍미는 원산국, 원산지, 브랜드마다 정말 다르다. 그 미묘한 차이를 느껴보는 즐거움도 좋지만 버터라는 세계의 문을 활짝 넓힌 ‘풍미 버터’를 놓칠 수 없다. 컴파운드 버터, 플레이버 버터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여러 가지 천연 재료를 더해 향과 맛을 배가한 버터다.

    굴 파스타에 풍미를 더하는 해초버터. [버터 팬트리]

    굴 파스타에 풍미를 더하는 해초버터. [버터 팬트리]

    올리브와 앤초비가 들어간 버터에서는 재미나게도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풍미가 배어난다. 한 조각 입에 물면 군침이 절로 스며난다. 요리의 마지막에 한 조각 더해도 좋지만 두툼하게 썰어 크래커나 빵에 올려 맛보면 매끈한 버터 사이사이에서 씹히는 속재료의 식감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명란버터는 명란과 버터라는 조합만으로도 입맛을 돋우는데 산뜻한 레몬과 고소한 통깨까지 들었다. 따뜻한 밥 위에, 통통하게 삶은 우동 위에 버터를 넉넉히 얹어 조심조심 비벼 먹으면 간도 딱 맞고 감칠맛까지 꽉 찬다. 진도의 김과 완도의 매생이를 넣은 버터는 간장과 소금을 넣어 그 자체가 하나의 양념이 된다. 흰 밥과 어울리는 것은 당연하고, 찐 감자나 달걀 요리와 맛있는 조화를 이룬다. 이 버터를 만든 이의 추천은 바게트 위에 해초버터와 김부각을 함께 올려 맛보기다.

    피니시에 활약하는 맛의 ‘한 방’

    여러 가지 종류의 풍미버터. [책 ‘식스 시즌’ 발췌]

    여러 가지 종류의 풍미버터. [책 ‘식스 시즌’ 발췌]

    계절의 풍미를 담은 버터도 있다. 산딸기가 한창일 때는 버터가 새콤달콤한 맛을 지니고, 초당옥수수가 풍년이면 산뜻한 단맛이 버터에 가득 찬다. 가을이 깊어지면 응축된 맛이 좋은 곶감이 버터와 만나고, 겨울로 접어들면 새콤한 과즙을 자랑하는 감귤의 맛이 버터에 깃든다. 봄이면 단연 향긋한 쑥이다. 이토록 다양한 개성을 가진 버터의 쓸모는 더 다양하다. 솜씨 없는 내가 즐겨 하듯 요리의 마무리에 넣고 골고루 녹이면 또렷하게 맛을 끌어올려 준다. 하드치즈처럼 강판에 갈아서 요리에 뿌린 다음 입안에서 살살 녹이며 먹어도 좋다. 빵이며 크래커, 구운 떡 등에 듬뿍 바르거나 올려 먹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차가울 때 조각조각 썰어 그 자체로 즐겨보자. 녹아 말랑해지면 그대로 또 맛있다. 견과류가 든 버터는 흑맥주나 위스키 안주로 그만이고, 산뜻한 재료가 들어간 건 산미가 좋은 와인이나 우리 술 종류와도 썩 잘 어울린다. 무엇과 곁들여 먹을지는 입맛의 주인이 결정하지만 조리하지 않고 그 자체로 즐겨보길 꼭 권하고 싶다.



    다양한 요리에 스프레드처럼 사용하는 풍미버터. [책 ‘식스 시즌’ 발췌]

    다양한 요리에 스프레드처럼 사용하는 풍미버터. [책 ‘식스 시즌’ 발췌]

    한국에서 나는 식재료와 프랑스산 발효버터를 조합해 풍미버터를 만드는 이는 ‘버터 팬트리’를 운영하는 박원지 씨다. 어쩌면 우리나라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버터마스터인 그는 자신이 만드는 버터를 ‘피니싱 버터’라고 한다. 본래 버터는 서양요리에서 ‘피니시’에 많은 활약을 해왔다. 그 이름처럼 음식의 마무리를 책임지는 역할도 하지만 우리가 몰랐던 맛의 ‘한 방’을 선사하는 꽤 멋진 미식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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