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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와보면 안다 왜 여기서 찍는지

최고의 촬영지 충북 제천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와보면 안다 왜 여기서 찍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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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는 사람은 안다. 적어도 영화계 사람들은 다 안다. 충북 제천이 사실은 영화의 본산이라는 걸. 부산을 제외하면 제천만큼 영화가 많이 촬영되는 곳도 없다. 면적 대비 영화 편수로 계산하면 부산도 뛰어넘을 만큼 제천의 영화 사랑은 남다르다.
제천에는 필름 커미션(Film Commission, 영화촬영 지원기구를 일컫는 말로 한국에서는 ‘영상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부산, 전주, 서울 등 14개 지역에 이 영상위원회가 있다)으로 청풍영상위원회가 활동하며, 2005년에 설립돼 지난 11년간 782편이나 되는 한국영화 촬영을 지원해왔다. 제천에서 이렇게 많은 영화가 찍히는 이유는 자명하다. 풍광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연말 들어 최대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박훈정 감독(‘신세계’ 시나리오 및 연출)의 신작 ‘대호’에서 조선의 마지막 포수 천만덕(최민식)이 호랑이와 쫓고 쫓기는 혈육전을 벌이는 곳이 제천에 있는 작성산과 금월봉이다. 작성산은 제천과 단양을 잇는 산허리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제천-단양-문경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른바 ‘단양 8경’이라 불리는, 국내 최고의 비경(秘境) 중 하나다.



한국에 이런 絶景이…

비경이라고 해서 하는 말인데, 제천 청풍호수에 도착하기 직전 도로 왼편으로 만나게 되는 금월봉 기암절벽도 영화에서 자주 배경으로 나오는 곳이다. 예컨대 ‘백호’뿐 아니라 강우석 감독의 신작 ‘고산자·대동여지도’도 여지없이 이곳에서 찍었다.
생각해보면 작성산이나 금월봉만큼 두 작품에 어울리는 곳도 드물다. 작성산은 국내 여느 산이 그렇듯 숲이 우거져 있지만, 500고지가 채 안 되는 만큼 공간이 비교적 낮고 넓게 퍼져 있는 형세다. 추격전을 찍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얘기다. 금월봉 역시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가 중간 중간 산자락에 서서 멀리 내다볼 때의 시점 쇼트와 특히 그 리버스(reverse) 쇼트를 찍기에 최적의 장소다.
김정호가 지도를 만들면서 그다지 호락호락한 산행만을 하지 않았을 터이다. 갖가지 기암절벽에 올라 멀리 내다보고 그것을 형상화하면서 기억하고 기록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호를 어느 산봉우리 정상에 올려놓기에 국내, 특히 남한에서는 금월봉만한 데가 없다.
사실 제천은 뭐 그리 내세울 것 없는 도시였다. 의병의 도시(‘대호’가 여기서 촬영된 것에는 그런 의미도 담겼는데, 영화는 조선의 정기를 빼앗기 위해 ‘大虎’를 잡으려는 일본 제국주의와 그에 저항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동시에 한 축으로 펼치기 때문이다) 아니면 갖가지 한약재가 나오는 약초 산지 정도로만 그간 지자체의 마케팅 포인트가 맞춰져 있었다. 제천에서는 2010년 국제 한방 바이오 엑스포가 열리기도 했다.
인구 약 13만 명. 대중적인 이벤트를 이곳으로 가져오기엔 좀 애매한 수치다. 부산은 400만, 전주는 60만 인구다. 영화나 대중 공연이 일회성 행사가 아닌 연례행사로 지속성을 가지려면 적어도 60만~400만의 소비 인구가 존재해야 한다.
물론 프랑스 칸처럼 인구가 7만밖에 안 되지만 칸 영화제를 비롯해 칸 광고 견본시 등등 1년 내내 온갖 국제 행사가 이어지는 곳도 있다. 하지만 그건 칸이다. 국제 행사의 맞춤형 도시로 키워진 곳이다. 제천은 애당초 그렇게 조성되지도 않았으며 그 같은 기획을 실현할 인력, 조직, 기구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모두가 된

그럼에도 제천에서 지금껏 800편에 가까운 영화가 촬영될 만큼 영화가 이 공간에 깊이 들어오게 된 것은 순전히 국제영화제 때문이다. 2005년 시작돼 2015년에 열한 번째로 열린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영화와 음악이 없던 이곳의 여름 한때를 ‘난장’으로 만든다.
매년 8월 중순이면 청풍호 바로 옆에 대형 스크린과 무대가 설치되고 음악영화제가 열리는 약 일주일 동안 밤마다 뜨거운 향연이 펼쳐진다. 오후 8시에는 야외 영화상영이 있고, 그게 끝나는 10시쯤에는 3시간 가까이 불타는 록 공연이 이어진다. 김창완밴드와 전인권의 들국화 같은 전(前) 세대 밴드에서부터 옥상달빛, 스몰오, 바비 킴과 이적, 장기하 등등 초호화 뮤지션의 공연이 줄을 잇는다.
영화는 영화대로 사람들을 휘어잡는다. 2012년 개막작으로 상영된 ‘서핑 포 슈가맨’ 같은 다큐멘터리는 영화제 이후 일반 극장을 통해 소개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5년 개막작 ‘다방의 푸른 꿈’은 옛 가수 이난영의 숨은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로 영화계뿐 아니라 음악 분야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영화제가 열리는 청풍호 야외무대에는 매일 밤 3000명 넘는 관객이 꽉꽉 들어찬다. 우기(雨期)에 해당하는 시기여서 폭우가 쏟아질 때가 적지 않지만 오히려 관객들은 그럴수록 더욱더 팬덤 현상을 일으킨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라 오히려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이런 관객 가운데 상당수가 바로 영화감독 혹은 배우, 영화 관계자들이다.
제천은 영리하게도 영화제를 통해 국내 영화계 인맥을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유입시켰다. 사람들은 청풍호의 풍광을 보면 일단 입이 딱 벌어진다. 한국에 이런 절경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풍호에서 영화제를 맛본 영화감독들은 자신의 다음 촬영지로 이곳을 염두에 두고 떠난다. 청풍영상위원회는 이들 감독, 영화인들을 놓치지 않고 지원과 협조를 제공한다.




‘오빠’ 믿고 따라가는 제천

제천은 한마디로 수직형 도시다. 제천의 위아래 꼭짓점은, 청풍명월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 경치의 청풍호에서 시작해 거의 직선거리로 31.8㎞ 밑에 떨어진 곳에 있는 의림지까지다. 모든 행사는 이 두 곳 중 어느 한 곳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의림지는 역사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곳이다. 의림지는 저수지다. 삼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수리시설로는 최고(最古)를 자랑한다. 지금은 저수나 관개(灌漑)시설보다는 마치 작은 호숫가 주변 같은 휴양시설로 활용되는데, 그러기에는 클래식한 분위기가 넘쳐나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저수지 주위의 소나무와 수양버들은 실제로 수백 년을 훨씬 넘긴 것들이다. 그 나무들을 옆으로 두고 의림지 둑방을 산책하면 옆에서 걷는 사람의 숨결이 한층 다정하게 느껴진다. 의림지는 이제 저수지도, 호반도, 유원지도 아니다. 서울에서 약 2시간 반이면 당도할 수 있는 만큼 딱 하루거리의 드라이빙 데이트 코스로 제격이다.
내친김에 청풍호까지 내달리면 실로 감탄을 자아내는 절경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그러면 하루가 꽉 찬다. 청풍호에는 마침 호텔들이 있다. 겨울의 의림지에서 따뜻한 밀월(蜜月) 분위기를 연출했다면 급작스럽게 찾아올 어둠을 피해 조금 일찍 청풍호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 애매하다고 생각돼 상대가 주저할 수도 있겠다. 옛날식이라면 “오빠 믿지?”라는 표현이 오갔을 터이지만 요즘 세대는 그런 촌스러운 대화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를 묵어 갈 생각이라면 청풍리조트의 호반 쪽 방을 얻는 것이 좋다. 어스름해지는 저녁과 달빛의 청풍호를 지켜본 남녀가 꿈같은 밤을 보낸 후 아침에 커튼을 걷고 맞이하는 호수의 풍경은 사람들을 자못 무아지경에 빠지게 한다. 청풍호는 혀를 내두르게 할 만큼 아름답다.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심성을 다시 생성케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착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종종 도시를 떠나 자연을 맞이해야 할 이유를 깨닫게 만든다.  



볼거리 못지않은 먹을거리

영화제가 열리는 8월이 아니어서 다소 황량해 보이긴 해도 겨울은 겨울대로 운치를 주는 법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두 사람 모두 (쫓겨날 각오를 하고) 회사에 병가나 휴가를 낸 후, 본격적인 제천 영화 기행을 떠날 채비를 하려면 일단 먹어야 한다. 제천에는 볼거리 말고도 먹을거리가 기가 막히게 풍부한데, 문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아침식사는 청평호 근처로 잡는 것이 좋은데 ‘잠박골 가든’ 같은 곳에서 푸짐하게 오리백숙이나 송이백숙을 먹는 것이 든든하다. 송이버섯에 인삼, 황기, 엄나무가 얽히고 여기에 오리나 토종닭이 어우러진다. 평소 백숙을 잘 먹지 않는 여성들의 입맛에도 거부감을 주지 않을 만큼 담백하다.
먹는 얘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수다를 떨어본다면, 제천에는 ‘빨간 오뎅’이 유명하다. 부산에 ‘부산 오뎅’이 있다면 제천에선 ‘빨간 오뎅’이다. 제천에 왔으면 꼭 맛봐야 할 간식으로 꼽힌다. 매운맛의 빨간 소스가 묻어 있는 ‘빨간 오뎅’은 4개에 1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다. 시내 극장 ‘메가박스 제천’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린 후에야 맛볼 수 있다. 인기 만점이라는 것도 때론 성가신 일이 된다.
용천 막국수 역시 제천에 가면 꼭 한번 먹고 와야 할 음식 중 하나다. 이 막국수는 사실 별다른 게 없다. ‘물막국수’라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국물 맛이 일품이다. 여름철 무더위에 먹으면 적당하지만 겨울에도 나쁘지 않다. 점심식사로는 이만한 메뉴가 없다.


기이한 카타르시스

영화 탐방 1호 장소로는 옥순봉이 좋다. ‘조선 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마지막 장면이 찍힌 곳으로 유명하다. 이 영화는 조선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코미디 사극이다. 김명민과 오달수가 이루는 콤비는 셜록 홈스와 왓슨의 버디 무비를 우리 식으로 패러디한 모습이어서 오히려 독창적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웃음폭탄 속에는 사실 정조 시대의 개혁과 보수, 유교와 천주교, 양반과 노비 등 상반되는 다양한 관계가 깊이 녹아 있다. 다양한 층위의 주제가 겹겹이 쌓여 있는 만큼, 그 진심이 통한 덕인지 개봉 당시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대박을 쳤다.
영화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도 이전 문제 등이 이어지면서 탄핵까지 갔던 당시 정치 상황이 조선시대 정조의 개혁정치를 놓고 벌어진 정쟁의 음모로 치환돼 펼쳐진다. 조선의 신하들도 정조를 ‘갈아치우려’ 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기이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현실에서 쉬쉬하는 얘기는 종종 영화 속에서 포효하듯 소리쳐진다.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매력은 바로 그 지점에서 찾아진다.
옥순봉은 이 영화의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해졌으며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영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기를 한번 와본 사람이라면 자발적으로 입소문을 내기 마련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명민과 한지민이 헤어지는 장면, 오달수의 정체가 코믹하게 드러나는 장면에서 나온다. 엔딩 장면인 만큼 풀 샷(full shot)으로 옥순봉에서 바라보는 청풍호의 절경 전체가 잘 드러난다.
마지막 장면 말고도, 한지민이 가문의 명예를 위한답시고 천주교에 귀의한 자기 아들을 죽이고 며느리까지 살해하려는 시부모의 칼날을 피해 뛰어드는 천 길 낭떠러지가 바로 여기 옥순봉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영화 ‘조선명탐정’의 핵심 로케이션이었다는 얘기다. 꼭 영화를 떠올리지 않아도 호수와 주변 산세가 어우러진 풍광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원사이드 러브, 그 스산한 벌판

위에서 경치를 내려다봤으면 이제 평지로 가야 한다. 평지는 자신이 그 풍경 안으로 들어가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제천에는 그럴 만한 곳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백운면 운학리 마을이다. 이 마을의 들판과 벌판, 그리고 폐건물 등은 많은 영화에서 부분부분 사용돼왔지만 올곧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그 유명한 ‘마더’다.
아들(원빈)이 과연 살인범인지 아닌지, 마음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온몸과 마음에 광풍이 일 때 엄마(김혜자)가 바람을 맞으며 지나가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엄마는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아들이 여자아이를 죽였을 것임을. 하지만 엄마는 또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절대로 그걸 믿지 않을 것이며 믿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그 어미의 마음, 지독한 원사이드 러브, 세상의 진실을 뒤바꾸거나 뒤엎을 만큼 맹목적인 모성의 분위기가 영화에서는 스산한 바람과 함께 기이하게도 가공(可恐)할 느낌으로 전달된다.
백운면 운학리 마을의 벌판에 서 있으면, 혹은 그 언저리로 가는 길목의 겨울 들판을 마주하고 있으면 ‘마더’에서의 그 장면, 그 감정이 되살아난다. 모성애는 자기중심적일 때 엄마 스스로의 존재조차 떨게 만들 만큼 차갑고 무서운 힘이 된다. 영화 ‘마더’가 위대한 걸작이라는 것은 모성의 일반론을 부수고 그 양면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다.
추운 들판까지 봤으면 따뜻한 요깃거리가 생각날 것이다. 두 가지 음식을 추천할 만하다. 매콤한 등갈비찜 아니면 종류별로 푸짐한 나물과 곤드레밥이 함께 나오는 나물정식이다. 전자를 먹으려면 시내로 들어가야 한다. 중앙로 1가에 있는 두꺼비식당이 가장 유명하다. 등갈비찜도 등갈비찜이지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밥을 등갈비찜 국물에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이다. 밥도둑이 따로 없다. 이건 정말 잊을 수 없는 맛이다.
후자, 즉 나물 맛을 보고 싶으면 모산동에 있는 호반식당에 가면 된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많은 나물이 놓인 밥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물은 나물만 먹으면 좀 밍밍하다. 여기에는 된장찌개가 제격이다. 호반식당이 유명한 것은 바로 이 된장 맛 때문이다. 이곳 음식을 경험하게 되면 제천이 나물의 도시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찍고 가게 된다.
밤이 깊어지는 만큼 더 이상의 영화 기행은 조금 무리한 일이 된다. 어제의 숙소로 돌아가 1박을 더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도 있겠다. 그전에 가볼 만한 장소 혹은 영화의 로케이션 지역이라면 ‘화차’를 꼽을 수 있다. 조금 이상한 느낌일 수 있겠지만, ‘화차’에서 여주인공 김민희가 자신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된 어머니를 골목길에서 밀어 살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를 한 번쯤 가보고 싶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악마=욕망=자본=돈’의 민낯

어미가 딸을 죽이고 딸이 어미를 죽이는 일을 두고 천륜을 어긴 행위라고들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현대 자본주의하에서 버젓이 거의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양극화가 점점 심각해질수록 가족이 가족을 죽이는 일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김민희의 모습을 보고, 아냐 저건 영화 얘기일 뿐이야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다. 저게 바로 우리 안에 담긴 ‘악마=욕망=자본=돈’의 참모습이라 생각하게 된다.
주인공의 악마성을 처음으로 엿보게 되는 장면이 바로 그 골목길 신(scene)인데, 그걸 찍은 공간은 송학면 입석리 마을에 있다. 영화를 찍은 곳이라 해서 다 대단한 공간은 아니다. 영화는 인공의 미학이다. 빛(조명)도 만들고 바람도 다 만들어서 한다. 입석리 마을은 세월과 함께 조용히 스러져가는 마을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평범하게 보이는 공간에 그렇게 엄청난 스토리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건 ‘역설의 현실감각’을 새롭게 해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광풍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가.
평범한 것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으며 기이한 것은 또 한편으로 봐서는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 전복(顚覆)의 가치들을 서로 꿰맞추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획득해가는 과정이다. 그러기에는 영화만한 것이 없다. 영화가 가는 길을 따라가보는 이유는 바로 그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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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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