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임자가 결정됐느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나는 ‘후임’이라고 얘기하는데, 이 사람들은 후임이라는 개념 없이 전공 자체부터 새로 정하려 한다”며 서운함을 내비쳤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진은 2008학년도에 교수 1명을 신규로 채용하되 대상을 ‘경제학 일반’으로 결정했다.
김수행 교수는 1961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해 1967년까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그 이듬해까지 조교 생활을 했다. 1969년 외환은행에 취직, 1972년부터 1975년까지 외환은행 런던지점에서 근무한 게 계기가 돼 은행을 그만두고 영국에 눌러앉아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했다. 1982년 10월 귀국해 한신대 교수로 임용됐으나 학내 민주화투쟁을 주도한 혐의로 1987년에 해임됐다. 이때 떠돌이 시간강사가 된 덕분에 1989년 3월 ‘자본론’ 1권이 번역돼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노사갈등과 공황
몇몇 대학에서 강의를 하긴 했으나 엄연히 ‘비정규직’이던 그를 서울대 교수 자리에 앉힌 건 학생들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생들이 수업거부와 농성을 통해 ‘정치경제학 전공자’ 영입을 요구했던 것.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진보적인 학문과 사상에 대한 열기가 음지에서 양지로 확산되는 흐름을 탔다.
마침내 그가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게 1989년 2월이니 그로부터 20년이 채 안돼 서울대의 마르크스 경제학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인 것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위상은 어쩌다 이렇게 설 자리를 잃었을까.
“우리 학계 분위기가 미국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고 있어요. 또 다른 이유는 마르크스 경제학 자체를 사회주의와 연결시키는 경향 때문이에요.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과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걸 사회주의 건설에 관한 이론으로 간주하다 보니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자 마르크스 경제학의 효용가치가 사라졌다고 단정해버려요. 이건 잘못된 해석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했다고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소련에서 발달한 스탈린식 마르크스 경제학을 받아들였어요. 그건 경제 결정론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기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분석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마르크스 경제학이 외면당한 거예요.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휩쓸어버리니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다고도 할 수 있죠.”
서울대생의 보수화
김 교수가 설명하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은 이렇다. 자본주의는 자본가의 이윤추구에 의해 움직이며, 그 이윤은 노동자의 잉여노동이나 노동자로부터의 착취에서 나온다. 따라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 갈등과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가 운동한다. 반면 주류 경제학은 모든 걸 시장에 맡긴다. 따라서 노사갈등이나 공황이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게 김 교수가 지적하는 주류 경제학의 한계다. 자본주의 현실을 분석하고, 자본주의가 어디로 나아가는지 전망하기 위해선 여전히 마르크스 경제학이 유효하다는 얘기다.
▼ 서울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교수가 사라진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국내 대부분의 대학이 서울대를 벤치마킹하는 경향이 있어요. 서울대에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가 없어지거나, 전공한 교수가 사라진다는 게 전국 대학으로 영향을 끼칠까봐 염려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