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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라이벌

보잉 vs 에어버스

세계의 하늘 양분한 대륙 대표군단

  • 강홍구 |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windup@donga.com

보잉 vs 에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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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버스, ‘유럽 서바이벌’ 기수

보잉737을 최초로 활용한 항공사는 독일의 루프트한자. 루프트한자 그룹은 1965년 2월 보잉으로부터 21대의 737기를 주문했다. 보잉 역사상 미국 이외 국가의 기업으로부터 신형 항공기를 주문받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보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까지 737의 누적 주문량은 7367대. 지난 한 해 실적만 보면 전체 주문량(1338대) 중 737의 비중이 85%(1184대)에 달한다. 보잉에 737은 최고의 효자 모델이다. 보잉은 737이라는 날개를 달고 세계 민간항공기 시장은 물론 군용항공기 시장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에어버스는 유럽 항공기 제작업체들의 경쟁력 확보 과정에서 세워졌다. 1960년대에 보잉 등 미국 대형 기업들과 경쟁하던 유럽 회사들은 상호 협조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물꼬가 트인 것은 1967년 7월. 프랑스, 독일, 영국은 ‘항공산업 기술에서 유럽 업체들의 협력을 강화하고 경제적·기술적 발전을 높이기 위해’ 에어버스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1967년은 경쟁사 보잉의 베스트셀링 모델 737이 출시된 해이기도 하다.



1969년 프랑스 르부르제에서 열린 에어쇼는 2년 전의 약속이 이행되는 자리였다. 프랑스 교통장관 장 샤망과 독일 경제장관 카를 쉴러는 그해 5월 29일 세계 최초의 쌍발 엔진 여객기 A300 출시에 공식적으로 합의했다. 이로써 에어버스가 공식 출범하게 됐다. 하지만 영국은 정부와 영국항공기사업(BAC·British Aircraft Corporation) 간의 이견으로 컨소시엄 참여를 유예했다. 그러다 1978년 자국 항공기 제조회사 호커 시들리와 BAC가 합병한 영국항공기우주산업이 에어버스의 주식 20%를 사들이면서 컨소시엄에 참가하게 됐다.

여러 국가가 모여 모두를 위한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크게 기여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에어버스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로저 베텔리다. 프랑스 출신의 유명 엔지니어인 그는 1967년 최초의 협상과정에서 A300 프로그램의 기술 총괄 담당으로 선임돼 각 구성원을 연결하는 가교 노릇을 했다.

에어버스가 공식 출범한 이후 베텔리의 역할은 더욱 두드러졌다. 각 업체의 장단점을 꿰뚫고 있던 베텔리는 협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업체별로 임무를 부여했다. 가령 조종석 관련 기술에 강점을 가진 프랑스 업체에는 조종석을, 영국 업체에는 날개를, 독일 업체에는 기체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출범 초기 미흡했던 생산 시스템의 기본을 갖추게 됐고 업체 간의 역할 조정이 원활해졌다. 베텔리는 “우리 모두가 국기의 색깔이나 언어의 차이에 대한 두려움 없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에어버스에 쏟아 붓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A300을 통해 기초를 닦은 에어버스는 중거리용 항공기 A320으로 날개를 활짝 폈다. A320이 개발된 1984년은 세계경제가 불황에서 서서히 회복되던 시기. 이에 따라 신형 항공기 수요가 늘어난 항공사들은 신형 항공기 A320을 경쟁적으로 주문했다. A320이 에어버스의 대표적 베스트셀링 모델이 된 것이다. 1988년 에어버스가 받은 주문은 900건이 넘었다. 불과 4년 전인 1984년의 주문이 411건이었음을 감안하면 폭발적인 성장이었다. 이후 에어버스는 A330, A340 등을 잇달아 출시해 모델의 일체감을 강조하며 통일된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애썼다.

1990년대 들어 에어버스의 위상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1991년 걸프전이 계기였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다국적군과 이라크 간의 전쟁이 터지면서 항공사들은 신형 항공기 주문을 취소하고, 기존 항공기의 지속성 강화에 힘쓰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고객사 사정이 이러하니 항공기 제작업체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에어버스는 얼어붙은 시장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언젠가는 항공기 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확신한 에어버스는 A320 확대 기조를 놓치지 않았다. 에어버스의 과감한 결정은 결국 큰 보상을 안겨줬다. 에어버스의 사업 확장 의지를 확인한 항공사들이 잇따라 주문을 넣으면서 1990년대 중반 에어버스는 보잉과 함께 세계 항공기 제작 시장을 양분하게 됐다.

‘하늘 위 호텔’ vs ‘꿈의 비행기’

이후 20년 경쟁구도를 지속해온 두 회사의 접근 방식은 최근 들어 대형화 또는 첨단화로 다소 엇갈리는 양상이다. 양사가 주력 기종으로 밀고 있는 A380과 787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에어버스는 2005년 500석 규모의 초대형 여객기 A380을 선보였다. 초대형 항공기 제작은 에어버스의 숙원사업 중 하나. 흔히 ‘점보 여객기’로 불리는 보잉747에 밀려 에어버스는 대형 여객기 분야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 400석의 보잉747보다 큰 A380을 개발해 점유율 제고를 꾀한 것이다.

A380은 2층으로 된 기내 구조에 실내 공간도 넉넉해 ‘하늘 위의 호텔’로 불린다. 운항 거리는 약 1만5700㎞, 기체 길이는 72.72m, 높이는 24.09m다. A380 기본형의 경우, 3단계 클래스 기준 최대 525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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