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가 닥치면…
반면 손 전 고문에게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지금 새정연의 내부 사정은 워낙 복잡해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렵다. 더구나 내년 4월엔 총선이 있다. 친노와 비노가 분열되고, 호남이 비노를 선택하는 것 같은 야권발(發) 지각변동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손학규가 움직일 공간이 커진다.
무엇보다 호남이 손학규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 손학규에겐 고무적이다. 지금 호남은 문재인에게 실망했지만 문재인의 대타를 뚜렷이 찾지 못한 상태다. 박원순? 안철수? 손학규?…이러고 있다. 손 전 고문도 아마 ‘셀프 유배지’를 정할 때 ‘정약용’ 외에 ‘전남’도 고려했을 것이다.
지금 새정연 주변엔 ‘큰 정치’를 할 만한 인물이 별로 없다. 난세가 닥쳤을 때 깃발을 들고 야당 정치의 복원에 나설 만한 리더가 부족하다. 손학규를 선호하는 호남인들은 ‘문재인은 못 믿겠어. 친노는 이제 질색이야. 박원순은 서울시장으로만 봐와서 정치는 어떤지 잘 모르겠어. 안철수는 아직 어딘가 좀 불안해. 더구나 이 셋은 다 부산 출신이야. 경륜이나 안정감으론 손학규 만한 인물이 없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손 전 고문은 6월 2일 강진 흙집을 떠나 대구로 깜짝 외출했다. 그가 찾은 곳은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새정연 김부겸 전 의원이 일합을 겨룰 가능성이 높아진 수성갑 지역이다.
손 전 고문은 이날 ‘한국서화 평생교육원’ 개원식에 참석했다. 교육원 원장과의 인연으로 초청에 응했다고 한다. 행사에 앞서 김부겸 전 의원을 만난 손 전 고문은 “어려운 곳에서 고생이 많다. 멀리서나마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행사 후 김 전 의원 등과 저녁도 함께했다.
손 전 고문은 김 전 의원의 서울대 정치학과 선배로 서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선 김 전 의원이 손학규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만일 김 전 의원이 내년 총선 때 적지(敵地)인 대구에서 여당 거물인 김문수 전 지사를 꺾는다면 단숨에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할 수 있다. 새정연의 미래 블루칩인 김 전 의원은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다음은 김 전 의원과의 대화 내용이다.
“에이스 카드로 써야”
▼ 대구 저녁자리에서 무슨 말을 나눴나요.
“정치 얘기는 없었어요. 행사 주최자가 손 전 고문과 인연이 깊어서 참석했다가 온 김에 만난 것뿐이죠.”
▼ 손 전 고문이 정계에 복귀할 것 같습니까.
“지금 상태론 안 돼요. ‘야권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하는 상황까지 가면 몰라도. 야권이 분열 위험에 빠지면 당에서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아 당을 맡아달라고 요청할 순 있겠죠.”
▼ 그 이전엔….
“그분의 자존심이나 지금까지 해온 걸 보면 본인 입으로 말을 바꾸거나 하진 않을 거예요. 약속을 어길 분은 아니죠. (정계 복귀를) 작위적으로 할 순 없는 일이죠. 누가 바람을 잡아서도 안 되고.”
▼ 복귀할 상황이 된다면 언제쯤일까요.
“총선을 앞두고 야권이 분열될 수도 있는 지경이잖아요. 모두 제 목소리를 내고 엉망이 될지 모르죠. 그런 때 당을 추스를 인물이 필요할 수 있고, 그 인물이 손 전 고문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죠.”
▼ 당 혁신위가 제대로 된 혁신안을 내놓지 못하면….
“(당 혁신이) 만만치 않아요. 혁신위원 중에 발언권이 센 사람이 몇 명 있잖습니까. 8월에 혁신위 활동이 끝나는데, 이 사람들이 이 눈치 저 눈치 안 보고 두드리면…. 가령 야권의 외연 확장이나 재편이 아니라 ‘정체성 강화’ 운운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죠. 이러면 야권에 희망이 없겠다, 절박한 상황이다, 이렇게 판단해 범계파가 (손 전 고문에게) SOS를 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거죠.”
▼ 정치인 손학규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누구보다 준비와 훈련이 돼 있죠. 지역정치, 패거리 정치의 함정을 메울 몇 안 되는 리더죠.”
김 전 의원은 “야권이 손학규를 다시 불러내더라도 값싸게, 국면 전환용 불쏘시개로 써먹으려 하면 안 된다. 에이스 카드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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