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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號 70돌 | 김호기 교수가 만난 우리 시대 지식인

“보수도 진보도 짐을 덜라 기억하되 미화하지 말라”

이문열 작가

  •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보수도 진보도 짐을 덜라 기억하되 미화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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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선생은 어느 시점부터 정치적 견해를 가졌다고 생각합니까.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분이지만, 동시에 대표적으로 보수적 견해를 표방해온 작가이기도 한데요.

이문열 1990년대 중반 내지 후반일 거예요. 그때 비로소 ‘적(敵)’ 개념이 확고해졌어요. 내가 결국 적 개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아, 그럼 내가 서 있을 곳은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실’이 된 아버지

김호기 선생을 뵈면 여쭤보고 싶었던 것 가운데 하나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웅시대’가 월북한 좌파 지식인과 남한에 남은 가족의 수난을 그렸다면, ‘변경’은 월북한 아버지를 둔 세 남매의 성장 과정을 그렸습니다. 선생께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이문열 아버지는 제게 현실적인 기억이 전혀 없어요. 만 두 살 때 헤어졌고, 아버지 사진도 남지 않았어요. 어릴 적 하나 있던 사진도 없어졌고 나중에 서른 살 때쯤 아버지 친구 분한테 찾아가 처음 (사진을) 봤어요. 홀로 찍은 사진은 없었고, 졸업 앨범에 여러 명이 찍은 사진이 있었어요. 여덟 명이 찍은 사진인데, 친구 분이 알려주지 않아도 한 번에 알아봤어요. 까까머리들 속에 “이 사람 맞지요?”라고 물어보니까 “알아보네”라고 했습니다.



제게 전혀 현실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변경’에서 일단의 감정을 표현했지만, 기본적인 감정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게 많이 작용했어요. 아버지에 대해선 보통 양가적 감정이 작용하잖아요. 한편으로는 그리워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가 내게 부여한 나쁜 유산 때문에 싫어도 하는 것 말이에요. 미워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버지였고, 저 사람은 왜 그걸 선택했을까, 하면서도 동시에 다가가게 되는 존재였어요. 그 사이를 왔다갔다 하던 기억이 납니다.

김호기 1990년대 후반 아버지를 만나러 중국에 가기도 하셨습니다. 그때 언론에 크게 보도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문열 1998년 5월 연길에 가서 우여곡절 끝에 북한에 사는 여동생을 만났어요. 아버지는 그해 3월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199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아버지는 제게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어요. 그전까지는 끊임없이 제 행동의 제약원리로 작용했지요.

김호기 부친의 이야기를 들으니 분단의 비극을 선구적으로 다룬 최인훈 선생의 소설 ‘광장’이 떠오릅니다. ‘광장’을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이문열 대단한 작품이지요. 아, 이렇게 이데올로기 얘기를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전에 이데올로기를 얘기하는 것은 반공소설밖에는 못 보았는데, 그때 처음으로 이데올로기 문제를 반공소설이 아니어도 다룰 수 있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어요.

김호기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작가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살아오면서 이 시대를 이끈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두 세력의 승인

이문열 묘하게도 두 세력이 가장 큰 힘을 가졌을 때 오히려 상대편을 인정하는 상태가 되더군요. 근대화 세력 또는 산업화 세력이라는 말을 들은 게 1990년대 중반 이후일 거예요. 1990년대에 들어와 우리 사회는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어요. 그들이 권력으로 나타난 것은 1998년이지만. 그때 근대화 세력, 또는 산업화 세력이라는 말이 생겨나더군요. 또 1980년대에 그렇게 가혹하게 억압했는데 민주화라는 말이 저절로 사회적인 세력으로 등장했어요. 그전에도 많은 사람이 시위도 하고 데모도 했지만 그때에는 민주화라는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거든요. 이런 것을 보면서 근대사회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을 느꼈어요. 상대방에 대한 승인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김호기 선생이 보시기에, 민주화 세력이 먼저 등장하고 그 다음에 산업화 세력이 나타났다는 것인지요.

이문열 1980년대에 근대화 세력 또는 산업화 세력도 원형을 가지고 안착했고, 그때 민주화 세력도 그전까지 불리던 이름과는 달리 민주화 세력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어요. 그 사회적 승인은 민주화 세력에 대해 먼저 이뤄졌고, 그들이 먼저 주도권을 잡은 뒤에 산업화 세력의 승인이 이뤄졌어요. 내가 꼭 쓰고자 하는 게 있는데, 이 두 세력이 자기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에요. 그과정이 1980년대에 이뤄졌다고 봅니다.

김호기 ‘영웅시대’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변경’은 제목부터 인상적이었습니다. 1986년에 집필을 시작해 1998년에 12권을 완간하셨습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변경입니다. 광복 70년인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면 날카로운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변경’에 담으려 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이문열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제국의 변경이 우리 한반도에서 만난 셈이지요. 변경이 만났을 뿐 아니라 한반도는 상대방에게 자기 세계를 보여주는, 미국과 소련의 쇼윈도가 됐어요. 보통 제국은 변경에 착취를 가하기보다 오히려 쇼윈도를 가꾸게 돼요. 쇼윈도를 통해 자기 제도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요. 이러한 변경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을 담고 싶었습니다.

김호기 우리 현대사의 사회변동에는 외인(外因)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하지만 외인 못지않게 내인(內因)도 중요했습니다. 파란만장한 격동의 현대사를 생각해보면, 내인, 다시 말씀드리면 내부의 책임도 크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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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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