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호

“정의당은 민주당과 싸워야 한다”

칼 세이건 좋아하는 ‘입체적 반골’ 조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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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2-06-2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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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성적인 것은 잘 못 참는다

    • 당내 ‘검수완박’ 찬성론 납득 못 해

    • 진보는 무작정 정규직화 외쳐야 하나?

    • 좋아하는 보수는 유승민과 천하람

    • 공학적 계산에 빠져버린 진보정당

     6월 7일 ‘신동아’와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조성주 전 정의당 서울 마포구청장 후보. [조영철 기자]

    6월 7일 ‘신동아’와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조성주 전 정의당 서울 마포구청장 후보. [조영철 기자]

    낙선자를 만나러 망원동에 간다. 그것도 4.48% 득표한 사람을. 당사자도 계면쩍은 듯 첫마디가 “왜 저를 인터뷰해요?”다. 열 명쯤 있어도 좁지 않을 사무실에 (전직) 후보만 덩그러니 있는 걸 보고 “그러게요”라고 답할 뻔했다. 간이 책상 하나를 함께 옮겨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인터뷰 도중 부동산중개인이 고객을 데려와 사무실을 둘러봤다. 곧 임차 계약이 끝난다고 했다. 이제 와 고백하면 이런 분위기에서 진보 정치에 대해 논한 게 자못 그로테스크했다.

    이 사람은 생래적으로 반골(反骨)이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반골이 있다. 평면적인 반골, 입체적인 반골. 정의당의 조성주(44)는 후자다. 심상정을 잇는 진보 정치인이라 잘라 말하면 마치 밥을 짓다 만 느낌이 인다. 오래전 ‘2세대 진보 정치’를 갈파했던 조성주 자신부터 만족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학생운동을 했지만 운동권이 으레 가는 길로 가본 적이 없다. 정치·역사·사회학도가 즐비한 진보정당에서 이질적이게도 칼 세이건을 좋아하는 천문학도다. 그조차 2년만 다니고 중퇴했다. 이미 국회 보좌진으로 일하고 있는데 천문학과 졸업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관뒀단다. 이것이 부모도 어찌하지 못한 날것 그대로의 기질이다.

    ‘창백한 푸른 점’

    그만두긴 했어도 천문학도의 정체성은 몸에 새겨져 있다. 그를 만나 오랜만에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문구를 들었다. 1990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태양계 탐사선 보이저 1호가 찍어 보낸 사진에서 지구는 하나의 작고 푸른 점에 불과했다. 칼 세이건은 같은 제목의 책에 “그 작은 점을 대하면 누구라도 인간이 이 우주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유일한 존재라는 환상이 헛됨을 깨닫게 된다”고 썼다. 우주에서 보면 인류 역사를 풍미한 수십 가지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점조차 되지 않는다.

    “가끔 그런 농담을 해요. 여기서는 이런 게 차이라고 생각하지만 천체물리학에서는 몇 억 광년 정도 떨어져야 차이라고. 교조주의로 몰두해서 보는 것보다는 좀 떨어져서 넓은 시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데 설레는 것 같아요. 관성적인 것은 잘 못 참고요.”



    직업 노동운동가의 길을 택하지 않은 것도 관성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요.

    “네. 2006년 국회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을 때 굉장한 흥미로움을 느꼈어요. 여기서 굉장히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구나. 앞으로도 정치 쪽에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죠. 내가 직접 정치인이 된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참모나 정치업계에서 일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출마한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청년유니온을 만들면서 직접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노동계급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인천에서 자동차 유리를 만들었다. 조성주가 7년 전 쓴 ‘정의당 대표 출마선언문’의 두 번째 문장을 빌리자면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매일 반복되는 야근에도 월급은 단돈 20만원”이던 노동자였다. 단칸방에 살았고 임금 인상이 된 뒤에야 13평 아파트로 이사 갔다. 아들은 수재였다. 조성주가 다니다 만 학교는 연세대다.

    연세대까지 갔는데 학생운동을 했으니 부모님이 실망하지 않았나요.

    “반대했죠. 싫어했고 저러다 관두겠지 하셨죠. 진보정당 활동 시작할 때도 반대했어요. 물론 결사반대하고 이런 타입(type)은 아니었어요. 제가 어차피 말을 듣지도 않을 거라고 알고 계셔서 그랬는지.”

    지금은 체념하신 건가요.

    “그런 지 꽤 됐죠. 어쨌든 제가 서른 이후에 청년유니온 활동도 하고, 국회 보좌진으로도 계속 일하고, 서울시(노동협력관)에서도 일하고 난 뒤에는 인정하시는 것 같아요. ‘쟤는 무언가에 휩쓸려 다니지 않고 자기 길을 가고 있다’고요.”

    조성주가 37세에 정의당 대표에 도전한 건 사건이었다. 그는 2015년 7월 전당대회 당시 1차 투표에서 17.1%를 얻어 노회찬(43%), 심상정(31.2%) 후보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고지를 점령하지는 못했으나 ‘당의 차세대’라는 상징 자본을 거머쥐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 마포구청장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이 입체적인 반골이라면 마포는 입체적인 자치구다. ‘마용성(마포·용산·성동)’으로 불리듯 고속 성장하는 곳이지만 어딘가 강남 3구와는 결이 다른 곳. 서울 어느 자치구보다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는 지역. 문화(홍대)와 첨단(디지털미디어시티)이 교차하는 장소.

    그는 이번 선거에서 정의당이 유일하게 낸 서울 지역 기초단체장 후보였다. 그는 7760표를 얻었다. 당선된 박강수 국민의힘 후보와 낙선한 유동균 더불어민주당 후보 간 표차는 3397표였다. 양당 후보 간 표차보다 두 배 많은 표를 얻었으니 선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진 건 진거다.

    ‘정청래 왕국’과 싸웠지만…

    마포구청장 선거 결과를 어떻게 자평합니까.

    “기대보다 낮은 득표율인데, 당 전체가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해서 구청장 후보 역량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웠어요. 정의당에 굉장히 어려운 선거였어요. 정의당이 ‘검수완박’ 법안을 민주당과 같이 통과시켰잖아요. 마포구청장 선거운동하는 와중에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고 나니 분위기가 확 바뀌더라고요.”

    지역 민심이 달라지던가요.

    “예. 출근 인사 때부터 유권자 사이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는 게 느껴졌어요. 캠페인 핵심은 민주당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이건 정의당 지역구 후보들이 호남이 아니고서는 잘 채택하지 않는 전략이거든요. 그래서 ‘정청래 왕국을 해체하겠다’고 했는데, 사실 제가 좋아하는 식의 정치적 표현은 아니에요. 그래도 어쨌든 민주당 권력을 심판해야 한다는 캠페인이 주효했던 것 같아요. 4.48%를 얻었는데 양당 후보 간 표차보다는 높은 득표잖아요.”

    ‘정청래 왕국 해체’는 속된 말로 먹힌 슬로건 같은데요.

    “저는 그렇게 봐요.”

    선거운동을 해보니 실제로 ‘정청래 왕국’의 벽이 좀 느껴지던가요.

    “이번에 마포을 지역구 쪽에 나온 구의원·시의원 후보들은 정청래 의원하고 찍은 사진을 플래카드에 넣었어요. 냉정하게 얘기하면 지방선거 캠페인을 한 게 아니라 ‘정청래 의원 5선 캠페인’을 한 셈이죠. (정 의원은) 굉장히 센 목소리를 대표하는 분이잖아요. 그 점을 공략한 게 맞았다고 봐요.”

    정 의원으로 대표되는 민주당과 각을 세운 효과다?

    “그래야 정의당이 독자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있죠. 그게 없으면 우리를 왜 찍어줘야 하는지 유권자를 설득하기가 어렵잖아요.”

    마포는 오랫동안 민주당 텃밭으로 꼽혔는데 이번에 국민의힘 후보가 구청장에 당선됐잖습니까. 투표율이 낮아서인가요.

    “다른 데는 현역 구청장들이 투표율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이겼잖아요. 성동구에서는 민주당 현역 구청장이 크게 이겼고요. 마포에서 오랫동안 민주당이 독식해 오는 과정에서 혁신이 없었고, 특히 관성에 젖어 있는 게 누적된 결과로 보여요. 시민들이 정의당에도 4.48%를 줬는데, 마포에서 민주당에 대한 심판이 작동했다고 볼 수 있죠.”

    마포 지역 정치인 면면을 보면 정청래·강용석·손혜원 등 ‘입김’ 센 스피커들이 많죠.

    “포퓰리즘 정치의 대표적인 곳이죠.(웃음) 마포는 젊고 다양성도 있는 도시예요. 중산층도 많고 계속 발전하는 곳이고요. 정작 여기서 배출된 정치인들은 강한 언어를 통해 극단적인 강성 지지자들한테 어필하는 정치를 해왔습니다. 초기에는 그것이 젊은 층에 먹혔을지 몰라도 이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계속 마포를 거점 삼아 지역 활동을 할 생각입니까.

    “마포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부터 결심한 거예요. 2년 후 총선에 당연히 출마할 거고요. 구청장 선거에서 선거대책본부장을 한 장혜영 의원도 마포에 출마할 겁니다.”

    두 사람이 마포갑, 마포을로 나눠서 출마합니까.

    “누가 갑, 누가 을에 출마할지는 모르나 그런 계획을 세우고 애초에 이번 선거를 치른 겁니다. 마포에서 민주당 권력에 대해 명확하게 전선을 그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때 민주당 2중대 효과 누렸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오른쪽에서 네 번째)를 비롯해 정의당 대표단이 6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을 마친 뒤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뉴스1]

    여영국 정의당 대표(오른쪽에서 네 번째)를 비롯해 정의당 대표단이 6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을 마친 뒤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뉴스1]

    정의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정의당이 낸 광역·기초의원 당선자는 8명에 그쳤다. 4년 전에는 37명의 당선자가 나왔다. 대신 원외 정당인 진보당은 울산 동구청장 선거에서 김종훈 후보가 이겼고, 광역·기초의회 선거에서도 20명이 당선됐다. 여영국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지도부는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정의당이 원외 진보당에도 뒤졌습니다.

    “굉장한 위기죠. 지방선거 때문에 생긴 위기는 아니에요. 대선 이전부터 누적돼 있다가 이번에 확인된 거죠. 정치 노선, 조직 노선, 정당의 사회적 기반 등 세 가지 면에서 다 위기예요.”

    정의당 지도부가 총사퇴했으니 당에서도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낀다는 방증인데요.

    “두 가지 점을 꼭 말하고 싶어요. 하나는 정치 노선인데요. 정의당이 최근 5년간 ‘민주당 2중대론’을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정의당이 지방선거에서 최고 성적을 얻은 게 촛불집회 직후인 2018년 지방선거예요. 문재인 정부 인기가 높을 때 민주당 옆에 서서 민주당 2중대로 최고 효과를 누렸어요. 그건 정의당 실력이 아니에요. 그런데 여기에 취해 온 거죠.”

    조성주는 솔직했다. 껄끄러운 질문도 대충 넘기지 않았다. 깨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과감하게 도발했다. 누구를? 자기편을. 정의당 당원들이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민주당 2중대’다. 바로 그 당의 차세대로 꼽히는 인물이 “민주당 2중대 효과를 누렸다”고 진단했으니 파격이라고 할 만하다.

    “정의당이 민주당과 검수완박 법안을 통과시키면 지역 선거 못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당내 절대 다수의 리더급 인사들이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검수완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납득할 수 없었죠. 민주당 2중대에 대한 평가는 이번 지방선거로 내려진 겁니다. 또 하나는 조직 노선 얘기인데요. 저는 유권자들이 진보당을 대안 정당으로 여기고 찍어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당내 일각에서 진보당과 통합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는데, 둘은 같은 진보 계열의 정당일 수는 있어도 종류가 다른 정당이죠.”

    정의당 내 과거 NL(민족해방 계열) 출신들이 인천연합이라는 하나의 계파로 존재하는 게 현실이잖습니까. 그분들이 진보당에 전향적 입장을 가질 수도 있겠네요.

    “그분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구 NL’이라는 이념적 친화성보다는 오히려 다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뭐죠.

    “진보당의 다수가 지금 민주노총에 강력한 역량을 행사하고 있어요. 민주노총이 오랫동안 정의당과 진보당 사이에서 결정을 못 한 채 하나의 진보정당에 힘을 몰아주지 못하고 있잖아요. 정의당이 가뜩이나 지역 기반이 약한데, 조직 노동이라는 베이스마저 없으면 앞으로 잘해 나갈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큰 것 같아요. 저는 생각이 달라요. 민주노총 조합원 사이에는 이재명 의원이나 민주당 지지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정의당과 진보당이 억지로 합쳐 민주노총 조합원들한테 ‘우리 지지해 주십시오’라고 해도 안 통할 겁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진보정당 분열은 관심사가 아니에요. 왜 민주당으로 (선거에) 안 나오느냐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의당이 민주당과 뭐가 다른지 명료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정의당이 민주당 의제에 끌려다니기만 한 것 아닙니까? 정의당만의 의제가 없으니 유권자들은 계속 심상정 의원만 보게 되는 것일 테고요.

    “맞아요.”

    민주당과 각을 설정하기 위해 일단 당내 투쟁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처럼 읽힙니다.

    “네. 당내에서 말로는 모두 ‘우리는 민주당과 다른 정당’이라고 얘기하지만, 검찰개혁이 진보의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의할 수 없어요. 노회찬 전 대표가 얘기했던 검찰개혁과 지금 민주당이 내세운 검찰개혁은 완전히 달라요. 노 전 대표가 뭐라고 했습니까? (책상을 탕탕 치며) 법이 만인이 아니라 만 명 앞에서만 평등하다고 했잖아요. 지금 검수완박이 만인을 위한 법과 무슨 관계가 있죠? 그러니까 진보의 정책과 어젠다도 이제는 낡은 거예요.”

    “심상정 의원이 피날레를 내려줬다”

    매끄럽고 명쾌하며, 논쟁적이다. 무엇보다도 찰지다. 이렇게 진보를 질타하는 정의당 인사가 있었나. 이즈음 깨달았다. 이 사람은 타고난 정치인이다. 주류(主流)의 문법을 답습하지 않고 자기만의 전선을 긋는 데 능한 그런 정치인.

    “나쁜 검찰이 있죠. 그러나 검사들 99%는 직장인이에요. 오히려 그게 더 문제일 수도 있거든요? 공익적 가치를 상실해 가고 그냥 직장인이 돼버린 검사…. 그 사람들이 민생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임금 체불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느냐 등이 시민한테 더 중요한 검찰 문제 아닙니까? 조국 사태 때도 특히 교육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거예요. ‘아니 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라는 얘기가 진보 내에서 나오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조직 기반을 무너뜨린 거죠. 진보가 어젠다를 혁신하지 못한 채 어느새 민주당과 차별성이 없어진 겁니다.”

    이 사람에게 정의당의 뼈아픈 대목을 계속 묻고 싶어진다. 이 사람도 속에 담아둔 말이 무척이나 많아 보인다.

    과거 한국 진보정당의 주된 지지층은 중산층 화이트칼라였습니다. 이들이 점점 민주당과 밀착해 가면서 정의당이 고정 지지층을 잃은 것 아닙니까.

    “맞아요. 거기에는 세대 효과도 있어요. 40~50대 화이트칼라가 과거에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을 오랫동안 지지해 왔죠. 그런데 이들한테 진보 정당이 (민주당과) 다른 정당으로서 실력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거죠. 그럼 당연히 민주당을 선택하게 되죠. 그런데 30대 이하는 달라요. 이들에게는 민주당이 반드시 대안은 아니에요. 다만 이 사람들에게는 기존의 진보 어젠다로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민주노총? 무슨 상관이야’ 이런 세대잖아요. 젠더 문제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고요. 정작 진보정당이 이들을 전혀 공략하지 못했죠.”

    민주당에서는 어쨌든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 같은 인물이 ‘586 용퇴론’을 얘기합니다. 정의당에서도 세대교체 주장이 십수년째 나오는데, 어떻게 세대교체를 해야 합니까.

    “오히려 위기일 때 비전을 놓고 경쟁해야 해요. 저는 자연스럽게 새 리더십이 출연하면서 새로운 진보 정치를 만들어갈 거라고 봐요. 그러지 않으면 문 닫아야 되는 상황이고요. 저는 인위적 용퇴론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자연스럽게 내 힘으로 (위세대를) 물러나게 하겠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그는 9월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했다. 격렬한 노선 투쟁이 벌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대선으로 1기 정의당은 문을 닫은 거예요. 심상정 의원이 피날레를 내려준 겁니다. 2기는 다음 리더십들이 새로 열어가 보자는 거죠. 지금의 위기는 예상했던 좌절이죠. 이제 여기서 출발하면 됩니다.”

    그간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은 이유로 거론된 요인은 분단 및 냉전체제였습니다. 정작 냉전 이후 태어난 세대도 정의당을 주목하지 않는 게 현실인데요.

    “한국 사회가 분단돼 있는 건 현실이니까 그런 요인도 일정 부분은 있겠죠. 그런데 그것이 진보정당이 성장하지 못한 이유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는 기본적으로 보수 쪽으로 약간 다 기울어진 운동장이에요. 자본주의 경제라는 게 그렇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저는 인정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하는 진보 경향 정당들은 사민주의를 비롯해 다른 가치를 함께 발전시켰어요. 마치 한국만 굉장히 특수한 상황에 처한 것처럼 얘기하는 건 일종의 자기변명이자 알리바이죠.”

    진보의 禁忌

    조성주 전 후보는 지방선거 당시 마포구청장 선거운동에서 “민주당 권력을 심판해야 한다는 캠페인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했다. [조영철 기자]

    조성주 전 후보는 지방선거 당시 마포구청장 선거운동에서 “민주당 권력을 심판해야 한다는 캠페인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했다. [조영철 기자]

    586 기득권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요.

    “전대협 출신 586 정치인들이 최근 20년간 대한민국 정치에서 혁신적이거나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어요. 자리 유지, 권력 유지에 더 몰두했죠. 폭력적 팬덤 정치에 더 몰두한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시민들이 학생운동 출신 인사들을 굉장히 이른 나이에 정치권으로 보내줬던 이유는 한국 정치를 바꿔보라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거죠. 더 큰 시각으로 보면, 산업과 노동시장 변화 과정에서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하는 내부 노동시장에서 특정 세대가 굉장히 큰 혜택을 받았어요. 그에 반해 다음 세대는 달라진 조건 탓에 힘들어졌는데, (586 정치인들이) 이와 같은 격차 해소에 나서지 않는 거죠.”

    진보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에서 오히려 불평등이 심화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동의해요.”

    정의당이 문재인 정부 시기에 불평등이 심화했다는 지적을 제대로 했느냐는 의구심도 드는데요.

    “그러니까요. 민주당이 잘못해 불평등이 심화한 게 아니냐는 얘기를 정의당이 해줬어야 했는데 못 했죠. 당내에서 동의하지 않는 분도 많을 텐데, 저는 문재인 정부 최저임금 정책이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개선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첫해 16% 인상을 정해 놓고 이듬해 또 두 자릿수 올렸잖습니까. 최저임금은 올해도 오르고 내년에도 올라야 하는 임금이에요.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해버리면서 앞으로 못 올리게 됐어요. 첫 해 8% 인상하고 산입 범위나 주휴수당 문제부터 정리해 갔으면 국민적 반발이 그렇게 크지 않았겠죠. 그런 고민 없이 16% 인상해 놓고 산입 범위 정리하려 하니까 조직 노동과 자영업자는 반발하고 일자리 안정자금으로 3조~4조 원씩 넣게 됐잖습니까. 고용안전망에 3조 원을 넣었으면 1년이 아니라 수년간 불안정 노동자들의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데.”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변혁이 질서 파괴와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에 잠정적 해결책과 점진적 변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조성주가 인정하건 안 하건, 그의 말을 듣다 보면 묘하게 버크의 보수주의가 떠오른다. 궁극적이라는 단어보다 잠정적이라는 단어가 조성주의 진보와 맥이 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본디 진보의 세계에서는 깃발로 내 편 네 편이 갈린다. 조성주는 그 ‘깃발 놀이’가 너무나도 싫다.

    “그게 지금 한국 진보의 한 상징이죠. 선명성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큰 거예요. 진보정당일수록 이럴 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어야 했는데, 똑같이 얘기했잖아요. 정의당은 ‘최저임금 더 올렸어야지’라고 하는데,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이즈음 다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고 싶다. 박용진. 전직 민주노동당 대변인. 현재 공식 직함은 민주당 의원. 비공식으로는 ‘조금박해’의 일원. 박용진은 우석훈(경제학자), 김세연(전 국회의원)과의 대담집 ‘리셋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을 전부 철폐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그 누구도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며 이렇게 부연했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겪고 있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주겠다, 그리고 차별하면 꼭 처벌하겠다고 약속해야만 옳습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토를 다는 것은 진보의 금기(禁忌)다. 조성주의 생각을 알고 싶다. 박용진의 발언을 그대로 전달한 후 물었다. 이 대목에서 그의 답변이 유독 길었는데 우리 사회가 귀담아들을 얘기라 생각해 가급적 요약을 최소화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박용진 의원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공감하는 바가 커요.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온전한 학술 용어는 아니에요. 정규직이 아니어서 비정규직이죠. 그럼 정규직은 뭘 의미하는 걸까요? 고용안정성의 의미는요? 이번 주에 일하고 다음 주에 쉬는 플랫폼 노동자는 실업자인가요? 그러니까 너무 다양해진 거예요. 2000년대 초반 만들어진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불안정 노동 남용 문제를 시정하는 효과는 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예를 들어) 플랫폼 노동자를 모두 정규직화하는 게 답인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오히려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짜고 그 나름대로 룰을 세팅해 줘야 합니다. 프리랜서 노동에서도 지켜야 할 룰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3개월간 업무를 하기로 했는데, 클라이언트 사정으로 2개월 만에 종료했으면 남은 임금 줘야 할 거 아니에요. 이런 룰을 세팅해 줘야 하는데, ‘정규직화’라는 주장이 그런 논의를 다 납작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서울시에서 (노동협력관으로 일하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많이 다뤄봤어요. 정규직화는 회사의 직원이 되는 건데, 그럼 복지나 임금 격차는 어떻게 할 거냐는 문제가 딸려 와요. (정규직화하는 직무의) 업무가 다 다르잖아요. 우리는 직무급 체계도 아니니 모두가 가장 위를 봐요. ‘나도 가장 많이 받는 저 사람처럼 받아야지’ 이렇게 돼버리니 모두가 위를 향해 질주해요. 그러니 정규직화로 정규직이 된 뒤에 다음 정규직화에는 반대해요. 정규직 사이의 임금 격차가 정의롭고 공정한지에 대해 진보의 답이 없는 상황에서 그냥 무작정 정규직화를 때려 넣으니까 안에서 갈등이 생기죠. 갈등은 나 몰라라 하고 정치는 빠지는데, 정말 나쁜 거죠.”

    “그게 표는 아니에요”

    그러니 20대들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공정의 문제로 바라보게 됐고요.

    “그렇죠. 다만 저는 동의하지는 않아요. 그런 논의의 마지막은 ‘너 공부 못했잖아’가 돼버리더라고요.(웃음)”

    기승전 ‘능력주의’가 되죠.

    “어떻게 세상을 그것으로만 평가하겠어요. 적절치 않죠. 다만 노동시장의 공정에 관해 얘기할 때 전 세계적 대원칙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입니다. 우리는 그것조차 안 되잖아요.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업에 들어가느냐가 임금을 결정하는 거 아닙니까. 이 상황에서 진보가 말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해당 기업 정규직이 받는 임금과 복지만큼 (비정규직에) 해달라는 거예요. 그런데 공공부문 및 특정 대기업과 나머지 기업 사이의 임금과 복지의 격차가 너무 큰 거죠. 중소기업 정규직보다 대기업 비정규직이 더 많이 받잖아요. 그럼 중소기업 정규직 처지에서 ‘정말 비정규직이 문제냐’ 물을 수 있죠.”

    동일 노동을 해도 고임금을 받는 직장은 대체로 노조가 센 곳이죠.

    “그렇죠.”

    그러니 아이러니하게도 조직 노동자가 상위 중산층이 된 셈 아닙니까.

    “맞습니다. 2019년 노동연구원 조사를 보면 국민의 65~70%가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75~80%가 지금의 노동조합이 나를 위한 노동조합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민들이 보는 한국의 조직 노동은 그들끼리만 좋고 그 효과는 다른 데로 발현되지 않는 것이죠.”

    ‘공공부문 강화’에 딴소리를 하는 것도 진보의 금기다. 민간에 맡기면 ‘시장의 실패’가 일어날 것이라는 오랜 문제의식이 누적된 결과다.

    청년들은 공공부문의 ‘공공성’보다 ‘처우’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인천국제공항공사 같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는 싸움이 ‘전쟁’처럼 돼버렸고요. 이런 상황에서 공공부문 강화는 소수에게만 좋은 일자리에 들어갈 기회를 주는 결과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진보가 공공부문에 대해서도 자기만의 어젠다를 가져야 해요. 자기 내용을 바꿔야 합니다. 지금 공공부문은 좋은 직장이 돼 있죠. 과연 높은 임금을 주면 공익성이 발현되는가…. 제 생각에는 아닌 것 같아요. 요즘에는 오히려 그 높은 임금과 처우가 공익성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작동하는 게 아닌가 싶고요. 다른 식의 대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공부문 혁신은 보수의 어젠다인데, 진보도 그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보정당은 공공부문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혁신하지 않으면 어떻게 강화를 주장하겠습니까. 사회에 기여하는 정도가 더 커지려면 더 혁신해야죠. 냉정하게 말하면 공공부문이 신의 직장이어서는 공익성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진보가 내세우는 공공부문 혁신안에는 임금 개편 문제도 담길 수 있습니까.

    “당연히 거론해야 한다고 봐요. 저는 공공부문 직무급제는 바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직무급제는 업무 난이도와 성격, 요구되는 기술, 지식·경험 등에 따라 임금을 차등화하는 방식이다. 기술직, 사무직, 단순노무직 등 직무에 따라 임금 테이블을 따로 마련하다 보니 일부 직군에서는 임금 하향 조정 가능성이 있다. 이에 그간 공공부문 노조는 직무급제 도입을 두고 “보수체계 개악 시도”라고 반대해 왔다.

    직무급제를 주장하면 공공부문 조직 노동이라는 정의당의 주된 지지층을 잃게 되지 않을까요.

    “정말 그럴까요? 정의당이 조직 노동에서 표를 받았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물론 (조직 노동에 해당하는) 그 10%가 무슨 사회악은 아니잖아요. 그런 건 아니지만 진보정당 득표 전략 혹은 조직화 전략의 핵심을 80%에 맞춰야죠.”

    이른바 ‘조직 밖의 노동’에….

    “네. 조직 안에 있는 노동에 (득표 전략을) 맞춰서는 저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회적으로 유용하지도 않다고 봐요. 정치 후원금 받을 때 어려운 점은 있겠죠.(웃음) 한국 정치가 정치 후원금 받기 진짜 힘든 구조거든요. 목돈으로 당길 수 있는 노조나 협회가 아니면 유권자들이 개별 의원을 후원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정의당처럼 가난한 정당이 힘겨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게 표는 아니에요.”


    측음지심을 잃다

    혹시 보수 정치인 중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유승민이요. 오래전부터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을 보수 정치인 중에 좋아합니다.”

    지금 좀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데….

    “개인적 팬심으로는 안타까워요. 또 다른 사람으로는 이번에 국민의힘 혁신위원으로 들어간 천하람 변호사도 좋아해요. 센 단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합리적으로 보수의 이야기를 하고, 또 진보 쪽과도 소통할 수 있는 분이더라고요. 호남에서 계속 출마하는 용기도 있고.”

    과격한 단어를 쓰는 걸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진보주의자 이전에 민주주의자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동체의 선을 위해 일하는 민주주의자라면 상대를 공격하는 센 단어와 극단적인 행위는 하지 말아야죠. 물론 그게 어렵죠. 사람들은 다 센 걸 좋아하니까.(웃음)”

    그를 만나러 가기 전부터 마지막 질문으로 무엇을 던질까 수없이 고민했다. 그러다 우연히 심상정 의원이 2013년에 출간한 저서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의 한 구절을 접했다.

    “안톤 체호프의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 인간이 이렇게 나약하고 누추하고 복잡하구나. 그런 존재들을 보면서 위로를 느낍니다. 저는 그 마음의 정체가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이라고 봅니다. (중략)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차이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제 답은 이것입니다. ‘인간이 처한 삶의 조건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느냐, 그리고 그것에 대해 공동의 책임감을 느끼느냐.’ 이것입니다.”

    이 구절을 소개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지금도 이런 구분이 유효하냐고.

    “(잠시 뜸 들이다) 지금은 진보정당이 그걸 다시 가져야 할 때 같은데요.(웃음) 오히려 정의당이 그걸 너무 많이 잃어버린 것 같아요…. 우리도 너무 공학적인 계산이나 합리주의에 빠져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드네요.”



    인터뷰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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