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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스포츠 줌 인

‘암벽 여제’ 김자인

“훈련으로 뼈 튀어나온 손발이 자랑스럽다”

  • | 이영미 스포츠 전문기자

‘암벽 여제’ 김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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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묻는다. “왜 클라이밍을 하느냐”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대답한다. 
“암벽 등반할 때의 모습이 가장 나다운 모습이다” 라고.


‘암벽 여제’ ‘스파이더 걸’ ‘암벽 위의 발레리나’… 김자인(30·스파이더코리아)을 수식하는 타이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스포츠클라이밍(인공암벽)이란 종목이 대중에게 관심을 끌면서 그는 어느새 이 분야에서 ‘여제’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독보적 위치에 올랐다.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클라이밍 월드컵 26회 우승, 한국 최초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아시아선수권대회 11연패, 세계 랭킹 1위 등 그의 실력과 존재감을 드러내는 숫자들은 그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153cm, 43kg의 왜소한 체구. 그러나 그 안의 숨은 근육들은 중력을 거슬러 목표점을 향해 오르는 힘으로 작용한다.

‘자일’과 ‘인수봉’

김자인의 아버지는 전 고양시산악연맹 부회장이고 어머니는 클라이밍 1급 공인 심판이자 전국여성산악회 부회장이다. 산악회에서 만나 결혼한 부모님 덕분에 김자인은 두 명의 오빠(자하, 자비)와 함께 자신도 산과 관련된 이름을 선물 받았다. 김자인의 자는 ‘자일’을, ‘인’은 인수봉의 인을 의미한다. 이렇듯 김자인이 스포츠클라이밍을 접하게 된 건 운명이었다. 

산을 좋아하는 부모님 영향에다 오빠들도 클라이머 선수로 활약한 터라 김자인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클라이밍을 배웠다. 그러다 오빠들이 비행기를 타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모습이 부러워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처음 암벽을 오를 때는 고소공포증 탓에 공중에 매달려 통곡한 적도 있지만 특유의 뚝심과 오기로 공포심을 이겨냈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스포츠클라이밍은 리드(Lead), 스피드(Speed), 볼더링(Bouldering)으로 나뉜다. 리드는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15m 높이의 인공암벽을 정해진 시간 안에 가장 높이 오르는 선수가 우승하는 종목이고, 스피드는 15m 높이를 가장 빠르게 오르는 선수가 우승이다. 볼더링은 안전벨트 착용 없이 4~5m 높이의 여러 코스 중 많은 코스를 완등하는 선수가 우승이다. 리드는 지구력, 볼더링은 순발력이 중요한데 김자인은 리드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올렸고, 나머지 두 종목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체구가 작은 김자인은 국제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신장이 큰 유럽 선수들을 상대로 힘든 싸움을 벌였다. 키가 큰 선수들이 한 번에 홀드(인공암벽에 튀어나온 부분)를 잡는다면 김자인은 홀드에 손이 닿지 않아 점프를 해서 잡는 편이다. 신체 조건의 불리함을 딛고 노력과 열정으로 정상의 자리에 오른 그는 키와 관련해서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만약 키가 10㎝ 정도 더 컸더라면 지금처럼 악착같이 훈련에 매달리지 못했을 것이다. 10㎝ 정도 더 크면 가장 이상적인 여성 클라이머의 신장이 되지만, 10㎝ 더 크지 않아서 지금의 김자인이 있다고 생각하면 신장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 없다.” 

다음은 김자인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역대 최다 월드컵 우승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2017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인 윤곡여성체육대상을 수상했다. 

“정말 영광스러운 수상이었다. 나보다 더 훌륭한 선수가 많은데 그중 내가 그 자리에 섰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미안했다.” 

미안하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이 상을 받을 정도로 내가 그렇게 큰 역할을 했나 싶었다. 이미 은퇴했지만, 김연아를 비롯해 장미란, 김연경 선수 등도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김자인은 2017년 8월 스포츠클라이밍 월드컵 리드 부문 여자부 통산 26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며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수립했다. 2010년 리드 세계 랭킹 1위, 월드컵 랭킹 1위, 2012년 리드 세계 랭킹 1위, 2013~2014년 세계 랭킹, 월드컵 랭킹 1위, 2016년 세계 랭킹 1위, 2017 세계 랭킹 2위 등 척박한 스포츠클라이밍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적을 올렸다. 

기록이 너무 많아 뭘 내세워야 할지 모를 정도다. 

“아무래도 역대 최다 월드컵 우승(26회)이 가장 의미 있는 기록이 아닐까 싶다. 2015년 10월 월드컵 6차 대회 리드 부문에서 우승하며 오스트리아 출신인 안젤라 아이터가 세운 월드컵 역대 최다 우승과 타이기록을 나도 갖게 됐다. 한 번만 더 우승하면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질 수 있는데 2016년에는 매번 2, 3위에 그쳤다. 눈앞에서 우승을 놓치곤 하니까 ‘난 이제 우승할 수 없는 건가?’ 하는 속상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그러다 2017년 8월 27일, 1년 10개월 만에 우승을 차지했을 때 정말 감격스러웠다.”

“나도 내가 신기하다”

지난 시즌 11세 어린 슬로베니아의 얀야 간브렛 등 신예들이 스포츠클라이밍 무대를 점령했다. 서른 살을 눈앞에 둔 김자인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2년여 만에 정상을 탈환했으니 그 기쁨이 오죽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우승 후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다. 간브렛은 내게 긴장감을 안겨주는 선수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내가 간브렛의 나이였을 때 나보다 나이 많은 선수들이 존재했듯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항상 우승을 독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뿐이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받아들이면 된다.” 

곧 스페인으로 자연 암벽 등반을 위해 출국한다고 들었다. 자연 암벽은 인공 암벽 타기보다 좀 더 위험한 편이 아닌가. 

“인공 암벽이나 자연 암벽이나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타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 두려운 마음도 없다. 인공 암벽은 대회 때마다 부담을 갖고 타게 되는데 자연 암벽은 대회 출전이 아니라 부담 없이 즐긴다는 차이가 있다.” 

시즌을 마치고도 쉼 없이 훈련을 이어간다. 푹 쉬고 싶을 법도 한데. 

“클라이밍은 이틀 이상 쉬면 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체중 조절에도 어려움이 뒤따른다. 시즌 끝나고 나서 너무 잘 먹었더니 몸이 스펀지처럼 음식물을 빨아들이더라. 지금 (체중)조절 중인데 대회가 없다 보니 대회를 준비할 때의 체중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운동하는 건 힘들어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데 배고픈 걸 참고 운동하면 재미를 느낄 수 없다.” 

김자인의 장점은 한결같다는 것이다. 

“나도 가끔은 내가 클라이밍에서 이 정도 위치에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클라이밍은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스포츠다. 2009년부터 세계 정상에 오르면서 꾸준히 내 자신을 단련해왔다. 정상은 차지하는 것도 어렵지만 유지하는 건 더 어렵다.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다. 가족을 비롯해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마지막 홀드 잡는 순간의 짜릿함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그동안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다. 언제 가장 큰 위기를 경험했나. 

“2013년 무릎 부상이 심했다. 이듬해 수술을 받았을 정도로. 2016년엔 손목 때문에 고생했다. 부상이 워낙 잦다 보니 그걸 잘 이겨낼 수 있는 요령도 생겼다. 오히려 그 시간이 내게 휴식을 주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부상이라고 완전히 쉬는 것도 아니라 재활하면서 다른 부위도 관리하는 등 나 나름대로 요령이 생겼다. 그런 점에서 2014 스페인 히혼 IFSC 클라이밍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은 큰 감동을 선사했다.” 

무릎 부상을 딛고 이룬 우승이었기 때문인가. 

“그동안 세계선수권대회는 이상하게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스페인 대회 출전을 위해 무릎 수술을 미루고 주사 치료받으면서 재활로 버틴 터라 꼭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욕심이 컸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예선부터 준결승까지 다 완등했고 결승에서도 마지막 홀드 잡고 완등을 찍은 순간의 짜릿함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세계선수권대회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은 대회였다. 다 쏟아부었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와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오랫동안 꿈꾸던 우승이라 그 기쁨이 더 큰 것 같다.” 

그 대회 마치고 무릎 수술을 받았나. 

“그해 시즌 마치고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은 오스트리아에서 했는데 후원사에서 수술 비용을 지원해줘서 잘 마칠 수 있었다. 당시 날 간호한 사람이 큰오빠였다. 내가 수술실 들어갈 때부터 울기 시작해서 마취 깨고 나왔는데도 계속 울고 있더라. 오스트리아에서 수술 후 2주를 더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와 재활 훈련을 시작했다.”

김자인은 2013년 4월 프랑스 미요에서 열린 볼더링 월드컵 2차 대회 예선에서 착지를 하다 오른쪽 무릎 인대를 다쳤다. 3개월간의 재활 끝에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대회의 리드 부문에 출전, 우승을 차지했다. 그해 7월에는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KNN타워 빌더링(빌딩과 스포츠클라이밍의 한 종목인 볼더링의 합성어)에 도전, 성공적으로 건물을 정복했다. 28층 높이의 빌딩을 맨손으로 구조물을 잡으면서 정상에 올라섰고, 10m 오를 때마다 100만 원의 기부금을 적립해 모두 1280만 원을 기부했다. 이듬해 2014 스페인 히혼 IFSC 클라이밍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미뤄둔 무릎 수술을 받은 것이다. ‘독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스포츠 클라이밍 개척자

김자인이란 선수가 나타나기 전까지 스포츠 종목에서 클라이밍이란 종목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의 스포츠클라이밍 개척자란 타이틀이 주는 무게감, 부담 같은 게 있나.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진 편이다. 선수뿐 아니라 일반인도 배우고 싶어 하고 문의도 많이 온다. 동호인들이 즐기는 종목으로 인지도가 상승하긴 했지만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시스템이 정립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이 부분은 내가 앞으로 관심을 갖고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나중에 은퇴해서라도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클라이밍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까진 국내 환경이 매우 열악한 편이다. 

“선수들은 국제 대회 출전 경험이 많아야 하는데 그런 지원이 부족하다. 국가대표팀은 있지만 국제 대회 출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선수들은 개인 비용으로 출전할 수밖에 없다. 일본, 중국, 유럽의 대표팀 선수들은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국제 대회에 출전한다. 우리는 대표팀에 선발됐어도 개인 훈련을 하다가 공항에서 만나 대회가 열리는 나라로 향한다.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작지만 긴 오름짓

555m 롯데월드타워를 오르는 김자인 선수. [동아DB]

555m 롯데월드타워를 오르는 김자인 선수. [동아DB]

스포츠클라이밍의 시간 규정이 기존 8분에서 6분으로 줄어들었다. 체구가 작다 보니 시간 단축이 불리한 요소가 됐을 것 같다.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체격이 작은 내가 동작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또 천천히 등반하는 스타일이라 키 큰 선수들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다. 2016년부터 코스 스타일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전에는 작은 홀드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큰 홀드들이 많이 생겼다. 키가 작은 나로선 멀리 뻗어야 하고 치고 나가야 하는데 큰 볼륨의 홀드는 손가락 힘으로 컨트롤하기가 어렵다. 계속 바뀌는 규정들로 인해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2017년 5월 123층(555m) 롯데월드타워를 맨손으로 등반했다. 예능 프로그램인 MBC ‘무한도전’에 이 장면이 방영되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그 높은 빌딩을 오른 이유가 무엇인가. 높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 

“그런 두려움은 없었다. 물론 밑을 내려다보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의 까마득한 높이였지만 장비를 안전하게 갖춘 상태라 설령 추락하는 일이 발생해도 안전할 거란 믿음은 있었다. 걱정한 건 555m란 높이가 가늠이 안 됐다는 점이다. 200m까진 연습해봤는데 500m 이상은 처음이라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또 홀드를 잡고 올라가는 암벽 타기와 달리 빌더링은 같은 구간으로 올라가면서 계속 한 근육만 사용하게 되는 부분도 걱정이었다. 체력은 우려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다음 날 조금 힘들긴 했지만 죽기 직전의 상황은 아니었다. 

빌더링은 대중에게 많이 노출되는 부분이다. 내가 스포츠클라이밍을 통해 알려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롯데월드타워 등반에 나선 것이다. 빌더링 당시엔 정신이 없어서 내가 완등했구나 하는 생각만 했는데 나중에 가족들과 함께 저녁 먹고 그 빌딩 앞을 지나가는데 다시 보니 너무 높아 보이더라. 저길 어떻게 올라갔는지 신기했을 정도다.” 

김자인은 등반을 시작한 지 2시간 29분 만에 롯데월드타워를 완등하며 세계 최고 높이 신기록을 세웠다. 빌더링으로 발생한 수익금 중 빌딩 높이 555m와 동일한 555만 원을 어려운 아동청소년을 위한 후원금으로 내놓았다. 김자인은 당시 롯데월드타워 등반을 감행한 이유를 개인 SNS에 소개한 바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클라이밍이라는 멋진 스포츠를 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고, 그것이 어떤 등반 형태이든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나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고 싶었다. 그로 인해 더 많은 클라이밍 인프라가 생겨나고 그것으로 하여금 현재 존재하는, 또는 앞으로 생기게 될 국내의 인프라가 좀 더 발전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최고의 클라이머, 타고난 클라이머, 능력 있는 클라이머는 아니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클라이머가 되고 싶다. 때문에 나의 작지만 긴 오름짓으로 어려운 친구들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0 도쿄 올림픽부터 스포츠클라이밍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올림픽은 월드컵과 달리 리드, 볼더링, 스피드 등 세 종목 점수를 합산해 우승자를 가린다. 굉장히 힘든 도전이 될 것 같은데. 

“메달을 따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는 메달을 목에 걸고 있는 모습보다는 올림픽 무대에서 2014년 스페인 세계선수권대회 때처럼 나의 모든 걸 다 쏟아부은 후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만큼 후회 없는 대회를 치르고 싶은 게 우선이다. 지금으로선 올림픽 출전이 1차 목표다. 올림픽에 나가려면 20명의 선수 안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단 그 목표만 세워뒀다.” 

김자인이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면 우리 나이로 33세가 된다.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도전이겠지만 마지막 남은 올림픽 완등을 위해 기량을 더욱 끌어올리겠다는 각오를 덧붙였다.

2020 도쿄 올림픽 도전

클라이밍을 해서 그런지 악력이 일반 남성보다 더 세다고 들었다. 

“그런 소문 때문인지 사람들이 날 보면 악수부터 해보자고 한다. 등반할 때 작은 홀더를 잡아야 하는 탓에 손가락 끝의 힘이 좋은 편이다. 그런데 클라이밍의 특성상 손가락 관절염이나 어깨 부상을 달고 사는 편이다. 지금 오른쪽 가운뎃손가락도 뼈가 튀어나왔다. 힘을 줄 때마다 통증이 심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 겉모습만 멀쩡할 뿐 손도 발도 모양새가 다 기형적이다.” 

손은 그렇다 치고, 발이 왜 기형적인가. 

“클라이밍 할 때는 원래 발 사이즈보다 20㎜ 정도 작은 신발을 신는다. 내 발 사이즈가 230㎜ 정도인데 암벽화는 205㎜를 신는다. 그러다 보니 발가락이 모두 굽어 있다. 뼈들도 툭툭 튀어나와 있고. 여자는 손발이 예뻐야 한다고 하는데 난 둘 다 완전 빵점이다. 그래도 내 손, 발이 부끄럽다고 생각지 않는다.” 

2015년 12월 동갑내기 소방공무원 오영환 씨와 3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하고 나서 가장 좋은 점이 어떤 부분인가. 

“항상 내 편이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된다. 남편도 실내 암벽타기를 즐기는 사람이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응원해준다.” 

김자인은 남편을 실내 암벽장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2014년 무릎 수술을 받았을 때 남편의 존재가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이 됐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오영환 씨는 아내가 국제 대회에 나갈 때면 ‘부담감을 버리고 클라이밍을 즐기라’는 내용의 손편지를 써준다고 한다.

손끝과 발끝에 의지해 암벽을 오르다 보니 손과 발의 뼈가 툭 튀어나와 있다. [박해윤 기자, 동아DB]

손끝과 발끝에 의지해 암벽을 오르다 보니 손과 발의 뼈가 툭 튀어나와 있다. [박해윤 기자, 동아DB]

암벽 위의 발레리나

고려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스포츠심리학을 배운 그는 논문이 통과될 때까지 굉장히 힘든 과정을 밟고 지나가야 했다. “처음엔 너무 고통스러워서 내가 왜 대학원에 다닌다고 했을까” 하는 후회가 물밀 듯했지만 선수 생활 이후 자신이 걷게 될 미래를 준비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시간들을 다 감당해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논문 주제는 클라이밍을 통한 몰입과 관련된 내용이었다고. 

김자인은 자신을 향한 다양한 수식어 중 ‘암벽 위의 발레리나’란 별명을 좋아한다. 유럽 선수들이 거칠게 암벽을 오르는 것과 달리 김자인은 특유의 유연성과 근력을 앞세워 좁고 복잡한 구간을 우아하고 민첩한 동작으로 길을 만들어간다. 홀드 사이를 점프해서 날다시피 하는 모습은 발레리나를 연상케 한다. 클라이밍이란 길을 찾아냈고 그 척박한 길에서 성적으로 흔적을 남기며 또 다른 길을 향해 끝없이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김자인. 오랜만에 ‘작은 거인’이란 단어가 생각날 만큼 강한 인상과 여운을 안겨주는 여성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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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미 스포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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