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대전화로 연결된 안규리(安圭里·51) 서울대 의대 교수의 목소리는 여리디 여렸다. 봄날의 아지랑이같이 어지럼증이 이는 목소리였다. 한마디 한마디에 힘들어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절망과 회한이 한숨처럼 토해졌다. 그는 “너무 힘들다”고 무너지듯 되뇌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희망의 속삭임에 기대고 싶은 듯, 혹은 스스로를 위안이라도 하듯 나지막이 말했다.
“아직 사건의 실체를 잘 모르잖아요….”
1월초 안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e메일을 보냈다. 곧바로 답신이 왔다. “지금은 인터뷰할 시기가 아닌 것 같다”며 “(서울대) 조사위원회 발표가 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것이었다.
1월10일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최종발표가 있은 직후 다시 e메일을 보냈다. 이번엔 응답이 없었다. 1월12일 검찰은 그의 집과 서울대병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다음날 기자는 그가 근무하는 서울대 병원 임상의학연구소로 찾아갔다. 7층 사무실에서 만난 한 여성 연구원은 그가 출근하지 않았다고 알려줬다. 이 연구원은 안 교수를 연결해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어제 검찰이 교수님 연구실에 들이닥쳐 자료를 다 가져갔다”며 “한동안 교수님을 인터뷰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안 교수가 “당분간 언론과 접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기자가 안 교수에게 e메일을 보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직 사건의 실체를 모르잖아요”
1월14일 아침 일찍 기자는 서울 혜화동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갔다. 그가 미혼이라는 점을 감안해 집 밖에서 한동안 기다리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전화를 걸었는데, ‘운 좋게’ 통화가 이뤄졌다. 그는 집이 아닌 모처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15분가량 이어진 통화에서 그는 복잡한 심정을 스스럼없이 내비쳤다. 기자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고 대체로 듣기만 했다. 대면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설득’할 때를 빼고는. 통화가 끝난 후 그가 한 말을 주섬주섬 취재수첩에 적었다.
그의 심경 고백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황우석 교수를 모차르트에 비유한 것이었다. 그는 “그분이 모차르트라면 나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환자들에게 들려주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실망과 아쉬움, 쓸쓸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비슷한 비유로 “그분이 옷을 만들면 그 옷을 (환자들에게) 입히는 게 내 역할이었다”고도 했다.
황 교수는 언젠가 안 교수를 두고 “황우석 사단이 벌이는 생명공학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을 하고 있다”고 찬사를 늘어놓은 적이 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안 교수가 미국에서 면역학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직후였다. 한국에서는 ‘기초연구’를 하지 않겠다고 작정한 안 교수의 생각을 바꿔놓은 사람이 바로 황 교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