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호

두둑한 이회창 텅텅 빈 노무현 꽁꽁 맨 정몽준

대통령선거와 돈

  • 글: 김기영 hades@donga.com

    입력2002-11-29 12: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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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잔치가 시작됐다. 옛날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선은
    • 엄청난 돈이 필요한 최대의 정치행사다. 자본주의 정치에서 돈의 위력은 만만치 않다.
    • 여야 후보들의 또다른 정치력, 대선자금 움직임을
    • 추적해 보았다.
    두둑한 이회창 텅텅 빈 노무현 꽁꽁 맨 정몽준
    선거를 돈으로 치르던 시대는 갔다고들 말한다. 미디어선거가 본격화되면서 돈보다는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아이디어와 기획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들 한다. 1997년 대통령선거는 미디어선거 시대를 여는 계기였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 선거라고 돈 없이 치를 수는 없다. 아이디어는 거저 나오는 게 아니다. 돈이 승부를 결정짓는 시대는 지나갔지만 돈 없이 승리를 얻을 수 없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여야 대선주자들은 어떻게 돈 문제를 해결하고 있을까. 다가올 대선에서 돈은 어느 정도 위력을 떨칠까.

    1992년 대선 때까지도 후보들은 무개차에 올라타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하루에 5~6차례 지역유세를 강행하는 빡빡한 체력전을 전개했다. 후보가 등장하는 정당연설회에는 으레 청중이 동원됐고 이들에게는 일당과 향응이 제공됐다.

    돈상자를 실은 트럭

    지역활동비 명목으로 지구당에 지급되는 돈도 어마어마했다. 돈선거가 극성을 부렸던 1992년 대선 때는 1만원권 현찰이 담긴 과일상자 수백개가 화물트럭에 실려 지역으로 배달되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돈이 지급되지 않으면 지역책임자들이 움직이지 않았고 선거 때면 중앙에서 내려오는 자금으로 한밑천 챙기는 게 지역 정치인들의 ‘수익모델’이었다.



    과거 대선에서는 각 후보가 수천억원의 천문학적 선거자금을 살포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일부 후보진영의 선거자금 실체가 드러나기도 했는데 대표적 사례가 1992년 대선 때 김영삼(金泳三) 후보 캠프의 선거자금 규모였다.

    1998년 4월 ‘주간동아’의 전신 ‘뉴스플러스’는 ‘대통령선거자금 운용계획(안)’과 ‘제14대 대통령선거 자금 결산보고’라는 두 가지 문건을 공개했다. 작성 주체는 당시 집권여당이던 민주자유당. 대선을 전후해 작성된 두 문건은 각각 대선자금운용을 위한 예산안과 결산안이었는데, 이 문건에는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캠프가 사용한 선거자금 규모가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문건에 따르면 ‘자금운용 계획’에 따라 민자당은 선거기간에 총 3176억900만원이라는 거액의 선거자금을 조성했는데, 이 가운데 김영삼 전대통령이 민자당에 내놓은 돈만 3080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조성한 자금 가운데 민자당이 사용한 대선자금은 3034억4000만원, 쓰고 남은 돈만 141억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92년 대선을 마치고 민자당이 선관위에 신고한 선거자금은 284억8000만원, 당시 법정 선거비용인 367억여원에도 못미치는 액수다. 하지만 이는 선거기간에 사용된 자금이고 선거기간 전,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집행된 선거자금은 법정선거자금 한도액을 10배 가까이 초과하는 금액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3000억원이 넘는 거액이 선거에 쓰였는지를 의아해 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 YS는 평생의 경쟁자인 김대중 후보와, 현대그룹을 배경으로 막강한 자금을 원군삼아 출마한 정주영 후보라는 두 거물과 맞서야 했다. 자연히 쓸 수 있는 돈은 최대한 끌어 쓰며 총력전을 펼쳐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돈으로 선거를 치르는 관행은 그 뒤로도 한동안 이어졌다. 문민정부 시절, YS의 정치자금 수수거부 선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돈 선거는 극에 달했다. 대통령선거 뿐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 자치제선거 때도 거액의 비자금이 살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신동아’는 문민정부 시절, 선거와 돈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경합지역 판세 및 지원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입수했다.

    A4 용지로 100여장에 달하는 이 문건은 YS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전국 선거구 가운데 접전 지역을 선정, 지역 상황과 지원 방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이 문건에는 전국에서 경합 선거구 101곳을 선정해 이를 A(최우선적으로 집중지원이 필요한 선거구), B(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선거구), C(지원이 필요한 선거구) 등 3개 지원등급으로 나누어 놓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 지원 대상 선거구에 대한 구체적 지원방안이 한결같이 ‘자금지원’이라는 점이다. 당시 집권당인 민자당이 아닌, 청와대 차원에서 자금지원방안을 내놓았다는 것은 당에서 지원하는 공식 선거자금 외에 별도의 정치자금이 선거지원 명목으로 뿌려졌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실제 1996년 총선 때 강삼재(姜三載) 당시 사무총장 주도로 안기부 자금 가운데 1197억원을 비공식적으로 총선 후보들에게 지원한 것과 관련, 이 문건에 나타난 지원방안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선거에서 돈이 구체적으로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지 문건에 등장하는 후보들의 현황과 선거전략, 그리고 지원방안 등을 세세하게 따져보자.

    서울이 지역구인 청와대 비서관 출신의 한 후보. 그의 지원등급은 A인데 지원방안 란에는 ‘충분한 자금 지원(당 외 지원 필요)’이라고 기록돼 있다. 정당에서 공식 지원되는 돈 이외에 별도의 자금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아래에는 ‘각하 관심 표명’이라는 대목이 있는데 YS가 관심을 갖고 있으므로 유의하라는 뜻이다. 이 후보는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깨끗하고 개혁적인 이미지가 장점이었지만 문건에는 그런 장점을 살리라는 식의 ‘구태의연한’ 표현은 없었다. ‘충분한 자금’이면 당선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역시 서울 어느 지역의 재야 출신 후보, 그의 지원등급도 A인데 ‘충분한 자금지원’을 최우선 지원방안으로 적시하고 있다. 검사 출신 인사가 출마한 서울의 또 다른 선거구. 이 후보의 지원등급은 B인데도 역시 최우선 지원방안은 어김없이 ‘자금 지원’이었다.

    이런 식으로 전국의 경합지역 후보들에 대한 지원책을 열거하면서 자금지원을 최우선에 놓고 있다. 적어도 YS정권하에 치러진 선거에서는 사용된 돈의 규모가 당락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이다.

    돈이 넘쳐나던 선거풍토는 1997년 대선에 이르러 바로잡아지는 듯했다. 본격적으로 미디어선거가 시작되면서 전국을 돌며 유세전을 벌이던 관행이 많이 고쳐졌다. 후보가 직접 TV에 나와 국민들에게 공약과 정견을 얘기하는 방송연설과 TV토론이 선거전의 메인 테마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선거기간, 이회창 후보와 김대중 후보는 각각 11차례의 방송연설을 했고 3차례 TV토론에 참여했다. 선거기간 대부분을 방송연설과 토론준비로 보냈다. 과거처럼 지방을 순회하며 청중을 동원하고 후보와 지지자들이 사자후(獅子吼)를 토하던 전통적 선거유세는 차츰 사라져갔다.

    선거방식이 이렇게 바뀌면서 수천억원씩 들던 선거비용이 크게 줄어들었다. 비용대비 효과 면에서도 과거 유세중심의 선거는 비효율적이었다. 들인 돈에 비해 효과도 크지 않았다. 미디어선거의 정착은 확실히 적은 노력으로 많은 유권자 앞에 후보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돈선거 대신 미디어선거가 등장한 이면에는 불가피한 사연도 있다. 1993년 실시된 금융실명제와 이후 마련된 돈세탁방지법, 선거자금 모금액수와 과정을 명시한 선거관계법의 등장으로 과거처럼 공공연히 검은돈을 모으고 쓸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미디어선거는 돈이 ‘궁해진’ 정치권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정치자금의 효용성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선거라는 ‘전쟁터’에 정치자금, 즉 ‘실탄’ 없이 맨몸으로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한 이번 대선의 법정 선거비는 350억원 가량. 그러나 과거 대선자금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이 정도 규모의 돈을 놓고도 정치권은 희비가 엇갈린다. 여유를 부리는 곳도 있지만 이 돈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애태우는 쪽도 있다.

    우선 한나라당은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돈 걱정’은 그리 안 하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이재현 재정국장은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그렇게 돈이 여유롭지는 않다”고 말문을 연 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은 방송과 신문의 광고비다. 방송과 신문의 광고료가 지나치게 비싸서 부담스럽다. 신문과 방송이 광고료를 깎아주지 않으면 모든 매체에 골고루 광고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국장은 “1997년에도 돈이 모자라 이회창 후보가 집을 팔지 않았는가. 이번은 그때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결코 넉넉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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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의 후원금이 한나라당으로 몰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한나라당 후원회의 모금행사

    하지만 이런 한나라당의 공식적인 설명과 달리 한나라당의 공기는 따뜻하다. 지난 추석 때는 모처럼 당직자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했다. 지난달 당 후원회 결과 현장모금액과 약정액을 합쳐 118억원이 모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여기에 선거용 국고보조금 125억원 가량이 지급될 예정이어서 한나라당은 당장 250억원 가까운 현찰을 손에 쥐고 선거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더해 선거 결과 유효득표의 15% 이상을 득표할 경우 홍보비 가운데 80억원 가까이를 보전받는다. 현재 계산만으로도 한나라당은 법정선거비용 한도 내에서 선거를 치르기에 별 무리가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이 보유한 현찰이 공식적인 발표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정당후원금. 이재현 국장은 “118억원 모금액이 전부 입금된 것도 아니고 지금도 조금씩 약정한 금액이 들어오는 상황이라 당 운영에 그다지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한나라당이 모금한 후원금이 공식발표보다 적어도 2~3배는 될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가의 한 소식통은 “집권초기 민주당의 경우 한해에 수백억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한나라당이 비록 야당이지만 집권이 유력한 정당이다. 기업들이 과거 야당 대하듯 얇은 봉투를 내밀었을 리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한나라당 공식 발표금액보다 훨씬 많은, 400억원대 이상은 모금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이런 얘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한 당직자는 “400억원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분위기로 봐서 118억원보다는 많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의 공식 후원금 외에 이회창 후보의 자금원으로 이후보 개인후원회를 주목한다. 여의도 부국증권 빌딩에 사무실이 있다 해서 ‘부국팀’이라 불리는 이후보 후원회는 국회의원 이회창의 공식 후원회다.

    정가의 한 소식통은 “비록 이후보 개인 후원회지만 부국팀의 모금 능력은 한나라당 중앙당과 서울시지부의 모금액수를 합친 것보다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법인 이름으로 후원금을 낼 경우 한나라당 공식 후원회에 돈을 낼 것이다. 법인 명의 후원금은 한나라당뿐 아니라 민주당에도 비슷한 규모로 내고 있어 그다지 정치적 의미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기업주 개인이 어느 후보를 후원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굵직한 재력가들은 이후보 개인후원회에 가입하고 정치자금을 내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후보 대세론이 힘을 받으면서 최근 들어 하루에도 30~40명씩 전국 각지의 재력가들이 이후보 후원회에 가입원서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 오피니언 리더급에 속하는 재력가들이 이후보 개인후원회의 주요 멤버들이라는 얘기다.

    25만명의 후원자

    현행법상 국회의원 개인후원회의 모금한도는 없다. 다만 모금된 액수를 국회의원에게 건네주는 데는 한도가 정해져 있다. 선거가 없는 해에는 1억5000만원까지,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까지 건네줄 수 있다.

    법이 이러니까 이후보 개인후원회가 아무리 많은 돈을 모금해도 이후보에게 전해줄 수 있는 돈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영수증을 받고 후원회에 정식으로 돈을 냈을 경우의 얘기다. 다른 방식으로 돈이 오간다면 이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지지율도 올라가지만 보이지 않는 든든한 후원군이 있기에 이후보 선거캠프는 그 어느 때보다 활력에 넘쳐 있다. 하지만 최근 부국팀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대선 출마를 앞두고 이후보가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할 경우 후원회는 어떻게 되느냐는 문제가 제기된 것.

    고민 끝에 지난 15일 부국팀 조직을 당 선대위 직능특위 산하기구로 전환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핵심 당직자는 “이후보가 대선후보 등록을 전후해 의원직을 사퇴하면 개인후원회를 둘 수 없어 법적 지위가 소멸된다”며 “이에 따라 후원회 조직을 없애기보다는 직능특위 조직으로 흡수해 대선승리에 일조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후원회측은 회원들에게 당 직능특위 위원으로 가입하라고 권유하고 있으며, 부국증권 빌딩 11층의 후원회 사무실은 제2의 당사로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부국팀이 공개한 공식적인 후원회원 수는 2만8000여명. 그러나 정가에는 이후보 후원회의 실제 회원수는 이보다 10배 가량 많은 25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얘기가 정설로 나돌고 있다.

    한나라당과 이후보로 돈과 사람이 쏠리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뭉칫돈’에 관한 얘기도 나오고 있다. 최근 한 유력 재벌기업이 이후보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안했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현정권 하에서 급속히 사세를 키운 것으로 알려진 이 재벌은 대북사업에 부쩍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회창 후보가 집권할 경우 김대중 정권과의 친밀도 때문에 사활을 걸고 추진중인 대북 정책에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했고, 이후보 진영과 인연을 맺기 위해 의사타진을 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재벌의 거액 후원금 제안에 대해 이후보는 “나중에 얘기하자”며 일단 거절했다고 한다.

    선대위 구성에서도 이후보의 대선자금 운용에 관한 심모원려(深謀遠慮)를 엿볼 수 있다. 김진재 전용원 의원 등 재력이 있는 의원들을 직능특위에 배치한 것이 대표적 사례. 재력가 의원들을 주요 포스트에 배치해 자급자족도록 함으로써 돈과 관련한 잡음을 없애겠다는 게 이후보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후보는 또 돈 씀씀이가 많은 선대위 내 기구의 장(長)에도 역시 재력가를 배치했다. 홍보위원장에 임명된 박원홍 의원이 대표적 인물인데, 홍보위원회는 신문 방송광고 등에 100억원을 지출할 부서다. 박의원은 당내에서 소문난 재력가로 알려져 있는데, 박의원 자신보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아들이 갑부라고 한다. 재력가 의원을 지출부서 책임자로 둠으로써 돈과 관련한 잡음을 애당초 없애겠다는 것이 이후보의 드러나지 않은 구상이라는 얘기다.

    지난 11월초 한나라당 의원들의 표정도 달라졌다. 10월까지만 해도 주머니 사정이 궁해서인지 기자들이 식사라도 하자고 할까봐 눈도 맞추지 않던 의원들이 11월10일을 전후해 먼저 전화를 걸어와 식사 제의를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한 기자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이런 태도변화는 곧 당에 돈이 돌기 시작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이 경제에만 적용되는 용어는 아니다. 한쪽이 부(富)하면 한쪽은 빈(貧)한 것은 자연현상. 요즘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는 하루하루 근근이 버텨 가는 상황이다. 선대위 한 관계자는 “하루 모은 후원금으로 그날그날 사용하고 있다. 이러다간 법정선거비용 350억원은커녕 선거를 제대로 치르기나 할지 걱정이다”라고 하소연했다.

    현재 노무현(盧武鉉) 후보측 자금원은 ‘개미군단’의 후원금이 거의 유일하다. 신용카드와 휴대전화, ARS, 온라인 계좌입금으로 모은 돈이 11월14일 현재 18억여원. 여기에 ‘희망돼지 저금통’으로 모은 돈이 현재까지 5억원 가량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선거위에서 일하고 있는 당직자들의 월급이 며칠씩 지연되는 사태도 벌어진다.

    한 당직자는 “보름 전에 쓴 운영비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대부분 당직자들이 자기 돈을 들여가며 일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11월20일로 예정된 후원회를 기대하고 있다. 예상목표액은 100억원. 하지만 목표치에 대한 내부의 전망은 엇갈린다. “그 정도의 금액은 무난히 모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과 “과연 가능할지 두고 봐야겠다”는 회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민주당 선대위 김홍섭 재정국장은 “물론 우리당의 위세가 약해지기는 했지만 당의 공식 후원회인만큼 관례로 봐서 대기업들이 기본적인 성의는 나타낼 것이고 그렇다면 100억원까지는 모금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국장은 “선거전에 돌입하면 교섭단체에 대한 국고보조금 120억원 가량이 지급될 예정이고 15% 득표를 할 경우 선거 후 국고에서 홍보비에 대해 보전을 해주기 때문에 여기에 후원금을 합하면 빠듯하지만 선거를 치르기에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낙관과는 별개로 민주당은 지금 최대한 긴축에 돌입한 상태다. 국고지원이래야 미래의 일이고 당장 현찰이 부족한 상황에 긴축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대선 예산지출계획도 안 쓰고, 쓰더라도 덜 쓰는 방향으로 편성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일례로 선대위 대변인실에 편성된 예산은 5000만원, 정책본부 예산은 3000만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평소 당 대변인실이나 정책위 예산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인 것이다.

    당 살림이 빠듯하다보니 ‘가난한 집 식구들 반찬 다투듯’ 당내 갈등마저 노출되고 있다. 자금 부족에 대한 노후보측의 불만은 자연스레 한화갑(韓和甲) 대표 쪽으로 화살이 돌려졌다. 선대위 한 관계자는 “한대표가 선거대책위원장을 맡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야 당과 선대위의 인사와 재정이 통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대표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당은 당대로, 선대위는 선대위대로 각기 따로 움직이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한대표의 목표는 정권재창출이 아니라 당권 유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 딱 좋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둑한 이회창 텅텅 빈 노무현 꽁꽁 맨 정몽준

    민주당은 ‘푼돈’으로 버텨가고 있다. 10월29일 후원금 전달식에서 돼지저금통을 전달받고 즐거워하는 노후보와 당직자들

    선대위와 당 운영을 둘러싼 노후보와 한대표의 갈등은 최근 민주당 탈당사태로 공석이 된 사무총장 후임자 결정과정에도 드러났다.

    노후보는 선대위 이상수(李相洙) 총무본부장을 추천했다. 선대위와 당의 재정을 통합 운영하는 것이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당연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한대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대표는 배기선(裵基善) 의원을 사무총장 직무대행으로 임명해버렸다. 한 당에 재정책임자가 둘이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한대표가 11월12일 당 소속 의원들과 여의도 63빌딩 모 음식점에서 함께 한 오찬모임에서 당 재정문제를 거론하면서 노후보를 공격한 것도 민주당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대표는 이날 “대통령 후보가 ‘당이 도와준 것이 뭐가 있느냐’고 말하지만 경선 후 10억원 이상 줬다. 하지만 노 후보는 1원도 내놓은 적 없다. 나도 2억5000만원의 당비를 걷어다 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비용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노후보의 무능력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선 것인데, 거액의 선거자금을 척척 마련해오던 YS나 DJ 같은 대선후보들만 보아온 한대표로서는 당연한 문제제기일 수는 있지만 당 안팎에서는 “대표와 후보의 코드가 저렇게 달라서야 어떻게 선거를 치를지 모르겠다”는 걱정도 적지않다.

    아무튼 민주당은 지금 선대위는 총무본부에서, 당은 사무총장 직무대행이 재정을 운영하는 이중적 재정운영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앞으로 나올 국고보조금은 일단 노후보 선대위가 수령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중적 당 재정운영 구조는 두고두고 민주당의 골칫거리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지난 15일까지도 대통령선거 홍보전의 핵심 전력인 홍보대행사 선정을 마무리짓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일찌감치 웰컴기획, 나라기획 등 3개 기획사를 홍보대행사로 선정하고 방송 및 신문광고 제작을 시작했는데, 민주당은 대행사 선정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배경도 역시 돈 문제다. 이번 선거에서 신문광고와 방송광고, 그리고 인쇄물 제작 등 홍보에 들어갈 예산만도 대강 100억원이 넘을 전망이다. 여기에 방송연설까지 더하면 150억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방송연설을 제외한 나머지는 사실상 홍보대행사를 거쳐 지불된다. 그런데 홍보대행사들이 민주당의 자금력을 문제삼아 노후보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으면서 대행사 선정에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홍보본부 실무자들이 업체를 찾아다니며 홍보대행사 선정에 입찰을 해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2곳의 홍보대행사가 프리젠테이션에 참여했고, 어떻게든 민주당의 일을 맡기로 했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행사측에서 대행 비용에 대해 당 차원의 지급보증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국고보조금이나 환급금 등 국가에서 주는 돈은 어디까지나 해당 정당이 수령자다. 만약 정당이 이 돈을 다른 데 써버리면 대행사는 자칫 일은 해주고 돈을 못 받는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보증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자발적 후원자 늘고 있어

    이처럼 민주당은 지금 최악의 자금난에 빠져 있다. 선거라는 큰 행사를 앞두고 당과 소속 의원 모두가 주머니가 비면서 잔뜩 주눅이 들어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낙관론도 없지는 않다. 한 당직자는 “희망돼지 모금운동처럼 자발적 후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서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한나라당이 수천명의 재력가를 모아 행사를 할 때 우리는 인터넷에서 수만명이 모여 작은 돈이지만 노후보를 돕겠다고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돈에 관한 한 정몽준(鄭夢準) 의원의 국민통합21처럼 헷갈리는 정당도 없다. 정의원은 공개된 재산만도 1700억원에 이르는 재력가다. 하지만 그의 국민통합21은 최근까지 가난하기 짝이 없는 정당이었다.

    11월 중순 들어 국민통합21 당사는 조용할 날이 없다. 일부 당직자들이 활동비 지급을 요청하며 소란을 벌이기도 했고 당사 주변 식당 주인들이 몰려와 밀린 대금 지급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 13일 경기대 고준환 교수 등 당원 및 자원봉사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 쓸 선거자금 200억원을 현대중공업 모 재단의 이사를 통해 정후보의 보좌진이 관리, 집행한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돈이 있으면서 왜 풀지 않느냐고 항의한 것이다.

    이런 소동이 있은 직후인 지난 13일 정후보는 창당 후 처음으로 돈지갑을 풀었다. 140여명의 자원봉사 당직자들을 A(국장급) B(부장급) C(일반직) 세 등급으로 나누고 A급에는 120만원을, B급에는 100만원을, 그리고 C급에는 60만~80만원을 활동비로 지급했다. 이날 정후보는 전국 54개 지구당에도 1000만원씩 지구당 운영비를 지급했다. 이날 지급된 돈은 모두 합쳐 6억원이 조금 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처럼 돈지갑을 열었지만 오랜 가뭄으로 말라붙은 당직자들의 허한 마음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일부 당직자는 자신의 급수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아들고는 허탈해 했다고 한다. 지급된 활동비가 같은 급수의 다른 당직자보다 적다는 사실을 확인한 일부 당직자들이 현대 출신 경리책임자에게 따지기도 했는데 돌아온 답이 걸작이었다고 한다. “줄을 잘못서서 그렇다”는 얘기였다. 줄을 잘못서서 그렇다니 무슨 얘기일까.

    국민통합21 당직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주군(主君)’인 전현직 의원을 따라 입당한 이들이다. 이들 정치인 가운데 정후보에게 능력을 인정받은 정치인이 있는 반면, 나쁜 평가를 받은 정치인도 있다는 것. 그런데 모시는 정치인이 정후보에게 나쁜 평가를 받으면 함께 입당한 당직자들의 평가도 덩달아 나빠져 활동비 지급에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이다.

    돈 쓸 때 기다리는 정후보

    신당 창당 이후 최근까지 정후보가 쓴 돈은 대략 20여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간에는 정후보가 본격적인 대선을 위해 자신의 현대중공업 주식을 담보로 150억원을 제2금융권으로터 빌렸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정후보는 이 돈을 여러 개 시중은행에 분산 예치해 놓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쓸 때가 되면 쓴다는 게 정후보의 생각인 것 같다. 하지만 그때까지 당직자들과 정후보의 돈을 보고 국민통합21로 모여든 일부 정객들의 불만에 찬 목소리를 어떻게 잠재울지 의문이다.

    국민통합21이 당장이라도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경우 국고지원금 규모가 달라진다. 70억~80억원의 현찰을 국고에서 지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지구당위원장들의 불만은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역대 대통령선거를 보면 패배한 후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급격히 자금난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 애당초 선거자금이 부족해 막판에 이르러 어쩔수 없이 실탄부족에 몰리게 되는 경우다.

    또 하나, 더 근원적인 이유는 패배가 예상되는 후보에게는 선거 종반으로 갈수록 돈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당선이 유력한 후보에게로 재력가들이 줄을 서게 된다. 재력가들의 선택은 어찌보면 인지상정일 수도 있다. 1987년 대선 때 김영삼 후보가 막판 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1992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후보도 투표 5일을 남겨두고 금고가 바닥나는 어려움에 처한 끝에 패배하고 말았다.

    이런 전례 탓에 최근 들어서는 선거자금을 최대한 아꼈다가 선거 막판 결정적 순간에 사용하는 것이 정치권의 관례가 됐다. 정가에서는 그 시기를 대략 투표 한 달 전으로 보고 있다. 올해 대선 투표일은 12월19일이다. 그러니까 그 한 달 전인 11월19일 이후 여야 대선후보들의 돈 씀씀이가 본격적으로 공개될 전망이다. 화려한 돈잔치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과거 대통령 선거는 ‘돈 선거’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에 충분했다. 3김씨의 극한대결과 그들의 막강한 자금조달능력, 그리고 이를 막는 제도적 장치가 전무한 상황에 사용한 돈의 규모가 곧 대선승리를 가늠하는 기준이었다.

    3김이 모두 떠난 이번 대선에서 과연 돈잔치는 끝날 것인가. 진정 정치자금에서 자유로운 대통령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희망의 실험이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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