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의 사진을 보고 읽는 것은
빛 바랜 옛 사진을 보면 누구나 기억을 되살리려 애쓰게 된다. 언제였을까, 어디였을까, 함께 사진을 찍은 그 사람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 100년 전 한반도 곳곳을 담은 사진들이 있다. 세월은 사진을 역사적인 유물로 만들었고, 후세의 우리는 이 사진들을 단순히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읽어내야만’ 한다.
생생한 사진자료는 그 특성상 문자로 된 기록이 미처 알려주지 못하는 부분을 이야기해주곤 한다.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복장이며 표정, 배경과 풍광이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그것이 사진의 ‘기록성’이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며 ‘읽는’ 일이 한가한 날의 소일거리에 그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한말 우리 선인들의 일상이나 고적, 풍경, 풍속을 담은 사진들이 종종 발견되곤 한다. 외국인, 특히 서양의 외교관이나 여행자, 기자, 선교사들이 기록을 남기기 위해 찍은 사진들이다. 식민지 지배를 준비하던 일본인들이 한국의 사정을 조사하기 위해 찍은 것도 있다.
1860년대 이후 외국에 나갔던 한국인이 초상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1880년대 초에 이르러 개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몇몇 인사가 직접 사진을 찍은 경우도 있지만 역시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따라서 지금 남아 있는, 한 세기 전 한반도의 땅과 사람들을 찍은 사진은 대부분 외국인의 손으로 촬영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번에 ‘신동아’가 공개하는 사진들은 본래 일본인이 보관하던 개인 사진첩에 담겨 있던 것이다. 사진 속 곳곳에 드러난 단서를 종합해보면 대한제국 시기, 특히 1906~10년에 찍은 사진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1880년대 풍경을 담은 사진도 일부 눈에 띄는데 그 중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일본에 소개된 사진도 있는 듯 하다.
일본에서는 한국에 관련된 사진화보집을 개항 이후 일찍부터 간행했다. 풍속이나 생활상을 담은 사진들 가운데는 연출된 작품도 없지 않았다. 1970년대 이후 국내에서 간행된 한말 사진집은 대개 이 무렵 일본에서 출간한 사진집을 재편집한 것이다. 예컨대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와 ‘사진으로 보는 근대한국’(서문당, 1986) 같은 경우다. 서양인이 찍은 사진들을 정리한 것도 있다. ‘사진으로 본 백년 전의 한국(가톨릭출판사, 1986/1997)’ 같은 책이다.
‘신동아’가 펴내는 이 화보집에 수록된 사진은 상당수가 처음 공개되는 것이지만, 풍속이나 생활상을 담은 사진 가운데 몇몇은 앞에서 열거한 사진집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한 사진 가운데 일부는 혹 사진엽서로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공개된 사진이라고 해서 일부러 제외하지는 않았다. 100년이 지난 지금에는 어느 쪽이 원본인지 확인하기도 어렵거니와, 당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해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모두 180장 내외로, 고적·풍경, 풍속·생활, 인물·사건 관련으로 분류했다. 전국 각지의 고적과 풍경사진이 상당부분을 차지해 120점, 그 가운데 서울의 고적과 풍경을 담은 사진이 30점이다. 본 사진집에서는 이들을 재구성해 총 5부로 나누었다.
1900년대에 촬영된 사진 속 풍경이 1910년대, 심지어는 1930년대 한반도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에 의아해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우리 농촌사회에 근대화 바람이 분 것은 1960년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부터였다는 사실, 또 외국인의 눈은 언제나 이국의 토속적인 풍경에 초점을 맞추게 마련이라는 점이 답이 될 것이다.
각각의 사진에 부가한 설명은 여러 서적을 참고·인용한 것이다. 특히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1991년 발행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크게 의존했다. 혹시라도 부정확한 내용이 있다면 독자의 지적을 달게 받고자 한다.
이 사진들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꼭 100년 전인 1905년, 한국은 일본의 강제에 의해 이른바 을사조약을 체결했다. 한국이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출발점이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한국은 일제의 사슬에서 벗어나 해방이 되었고,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는 대부분 국민의 반대 속에서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졌다. 2005년은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지 100년이고, 광복 60주년인 동시에, 한일 양국이 다시 교류한 지 40년이 되는 해다.
따라서 올해는 우리에게 일본이라는 가깝고도 먼 나라와 복잡하게 얽힌 과거를 되돌아보고, 동시에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일 양국정부는 정상회담을 통해 국교정상화 40주년인 올해를 ‘우정의 해’로 지정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100년 전에도 한일 사이의 ‘우정’이 강조된 바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우정은 언제든 깨지기 쉬운 질그릇일 뿐이다. 진정한 한·일 양국의 우정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 못지않게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두 나라 사이에는 ‘우정’이라는 말이 여러 의미로 사용된 짧지 않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긴 이야기는 필요 없을 것이다.
먼저 100년 전 사진 180점을 ‘보자’. 그러고 나서 다시 한번 사진을 ‘읽자’. 이 사진을 찍은 100년 전의 일본인들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한국의 풍물과 한국인의 생활상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한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놀라우리만큼 세밀한 조사를 벌였다. 역사적 유물이나 유적·풍속·생활 등 인문환경부터 동식물·광물 등 자연환경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몰랐고 관심조차 가지지 않은 부분까지 조사했다.
이는 한국 통치를 위한 기초 조사이자 한국의 후진성을 부각시켜 일본 지배의 정당성을 강조하려는 측면도 있었다. 이 사진들의 이면에 일제의 한국침략 과정의 단면이 숨어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바라보자면 이들 사진, 특히 일상의 삶을 다룬 사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근대화되지 않은 상태, 혹은 가난과 불결일 것이다. 그러나 밖으로 드러난 모습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한가로움과 여유, 더불어 살던 당시 사람들의 삶을 읽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한말의 역사와 시대의 아픔을 읽어내는 눈은 더욱 중요하다.
너무 무겁게 시작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가벼운 호기심으로 사진 자체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사진을 읽어내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독자들이 간도의 풍경을 담은 마지막 사진까지 찬찬히 들여다보고 책을 덮는 순간 을사조약 강제 체결 100년과 광복 60년, 한일국교정상화 40년이 되는 2005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다면 이 사진들의 가치는 충분한 것이다.
최기영 (서강대 사학과 교수·한국근대사)
일러두기
1. 이 책은 대구 유컬렉션(대표 유성철)이 2003년 10월 일본 도쿄에서 입수한 개인사진첩에 담긴 180여장의 사진 전체를 복사촬영해 제작했다. 이 가운데 몇몇은 학계와 언론에 일부 알려진 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이번에 새로 공개되는 것이다. 사진의 순서 및 배치, 크기 등은 원 사진첩을 따르지 않고 해설자와 ‘신동아’ 편집실의 판단에 따라 5부로 재분류해 구성했다.
2. 이 책 및 각 부의 제목은 조선시대와 구한말을 다룬 문학작품에서 인용·차용해 ‘신동아’ 편집실이 붙인 것이다. 예를 들어,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바람은 공산에 찬데’라는 3부 제목은 조선 초기의 무인 김종서(1390~1453)의 시조로부터 변용했다.
3. 원 사진첩에는 촬영자나 촬영일자, 제작자 이름과 같은 구체적인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각 사진 옆에 손으로 직접 쓴 한문 몇 글자가 전부다. 책 본문의 사진에 달려 있는 해설 가운데 굵은 글씨는 주로원 사진첩의 표기를 옮겼고, 설명부분은 이를 바탕으로 해설자가 다양한 자료를 참고해 작성했다.
4. 각 부 해설과 사진설명을 맡은 최기영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근현대사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저서로 ‘대한제국시기 신문연구(일조각, 1991)’, ‘한국근대계몽운동연구(일조각, 1997)’, ‘식민지시기 민족지성과 문화운동(한울, 2003)’, ‘한국근대계몽사상연구(일조각, 2003)’ 등이 있다. 한국근대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에 관한 논문을 다수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