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확신 없는 사람에 대해 말하지 않아”
尹은 대변인 선임하며 출마 채비
“金, 尹 정치 감각에 실망한 듯”
이준석 “尹에 일방적 구애 곤란”
野 자강론 커질수록 尹은 金이 필요
“金은 대통령감 찾는 노력 꾸준히 해”
김종인(왼쪽)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오른쪽) 전 검찰총장을 겨냥해 “확인이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 전 총장의 대선 출마 선언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김 전 위원장이 견제구를 날린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동아DB]
‘별의 순간’ 놓쳤다?
기이한 일이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1월 12일 CBS 라디오에서 윤 전 총장을 겨냥해 “별의 순간이 지금 보일 것”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열흘 뒤에는 기자와 만나 “여론조사를 보면 (당시) 윤 총장이 누구보다도 경쟁력이 있는 걸로 돼 있는데, ‘별의 순간’을 자기가 포착하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수도 있고, 포착을 못 하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점은 오롯이 ‘포착’에 찍혀 있었다.‘별의 순간’은 김 전 위원장이 십수 년 전부터 대권 잠룡을 칭할 때 즐겨 쓰던 표현이다. 그는 2007년 한 인터뷰에서 대선 출마설이 돌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두고 “인간에게는 살아가는 동안 역사에서 하나의 ‘별의 순간’이 있고 정운찬이라는 개인에게 그 순간이 도래했다”며 “‘별의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고 기회를 놓치면 역사의 흐름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급부상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두고는 “2012년에 이미 ‘별의 순간’을 놓쳤다”고 말한 바 있다.
윤 전 총장에 대한 김 전 위원장의 톤이 달라지면서 야권에도 뒷말이 무성하다. 김 전 위원장이 윤 전 총장의 정치 행보가 기대와 다르게 이어지자 지지를 거둬들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윤 전 총장은 4·7 재·보궐선거(재보선) 이후 정진석(5선), 권성동(4선), 윤희숙(초선) 등 현역의원들과 만나며 국민의힘과 접촉면을 넓혀왔다. 국민의힘 내부 사정에 정통한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윤 전 총장이 세 명의 의원과 만난 것만 (언론에) 드러났는데, 훨씬 더 많은 국민의힘 의원과 통화하고 만났다고 들었다”면서 “물밑에서는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고 자신을 알리며 동지를 규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치적 체급이 훨씬 높은 김 전 위원장과는 아직 만나지 않았다. 당초 윤 전 총장은 4월 17일에 김 전 위원장과 만나기로 돼 있었지만, 제3자를 통해 회동 취소를 통보했다고 한다. 이는 김 전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냉기류가 형성된 꼴이다. 김 전 위원장과 가까운 국민의힘의 한 당협위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김 전 위원장은 평소에 윤 전 총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타부타 얘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이 윤 전 총장의 정치 감각에 실망한 것 같은 분위기가 읽힌다. ‘윤석열-김종인 조합’은 끝난 게 아닌가 싶다. ‘별의 순간’에 치고 나왔어야 했는데, 그 타이밍을 놓쳤다. 그러면서 1~2개월을 허송세월했고, 그때 한 것이라고는 사람들 만나서 사진 찍은 것밖에 없지 않나. 간간이 나온 메시지에도 자기 언어가 없다. 무엇보다 지금은 대선판이 완전히 리셋(reset)됐다. ‘이준석 돌풍’이 불면서 기존 정치권을 싹 다 갈아엎으라는 국민적 열망이 표출됐다. 김 전 위원장이 윤 전 총장이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대권주자 한두 사람에 목을 맬 이유가 없어진 거다. 김 전 위원장도 일단 관망 모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이 정치참여를 선언해도 아직 넘어야 할 고개는 여럿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국민의힘 입당 여부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또렷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윤 전 총장이나 최재형 감사원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당 바깥 인사들이 ‘꽃가마’를 타고 대권가도에 무혈입성해선 안 된다는 분위기다.
이준석 “尹이 의도에 따라 결정하면 될 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가운데)이 6월 9일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에서 열린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최근 대변인을 임명하는 등 출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야당은 재보선에서 압승한 뒤 헌정 사상 처음으로 30대 원내교섭단체 대표를 탄생시켰다. 이는 윤 전 총장에게 나쁠 게 없는 일이다. 그만큼 당이 쇄신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자금력이 넉넉지 않은 그가 독자 세력화를 택하기에는 부담이 많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높아지는 지지율에 비례해 국민의힘이 자강론을 펼 가능성도 커진다. 이와 관련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기자에게 “국민의힘 입당은 윤 전 총장 쪽에서 본인의 의도에 따라 결정하면 될 일”이라면서 “다만 우리 당에 있는 구성원들이 거기에 너무 흔들린다든지, 일방적으로 구애한다든지 이런 쪽으로 방향이 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성을 막지는 않겠지만 굳이 마중까지 나가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윤 전 총장 처지에서도 꼬리를 내리고 혈혈단신 입당하는 모양새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단 그의 ‘시드머니’는 지지율이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6월 7∼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013명을 대상으로 대선주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은 35.1%였다. 이는 한 달 전 조사보다 4.6%포인트 오른 수치다. 2위 이재명 경기지사는 같은 기간 지지율이 2.2%포인트 내려 23.1%를 기록했다. 야권 후보인 홍준표 무소속 의원(4.6%),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3.0%),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2.8%)의 지지율은 미미했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2%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최근의 정치 환경은 급변했다. 조직이나 정치력보다는 대중적 인기가 성패를 좌우한다. 당심은 곧 민심을 따라간다. 이것은 윤 전 총장에게 유리한 패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캠프 사무실, 지원 차량, 홍보 문자가 없는 3무(無) 선거운동으로 제1야당의 당권을 거머쥐었다.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세가 엿보이자 당원들이 전략적으로 표를 몰아준 것이다. 이 대표가 ‘탄핵에 찬성했다’거나, ‘탈당 전력이 있다’는 둥 네거티브는 먹히지 않았다. 4·7 재보선에서도 민심에서 앞선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내 경선에서 나경원 후보를 이겼다. 즉 윤 전 총장으로서도 압도적 지지율을 바탕으로 조직을 꾸리고 세력을 키운 뒤, 이를 지렛대 삼아 ‘입당 게임’에 돌입하는 게 유리하다.
尹의 ‘입당 게임’과 김종인의 노련함
바로 이 점 때문에 윤 전 총장과 김 전 위원장 간의 관계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윤 전 총장으로서는 국민의힘 내부 사정을 잘 알면서도 주류 세력과는 결이 다른 조력자가 필요하다. 김 전 위원장의 경우, 대선에서 역할을 하려면 유력한 대권주자와 손을 잡아야 한다. 윤 전 총장에게는 영향력과 전략적 감각을 갖춘 김 전 위원장이 필요하다. 김 전 위원장은 야권의 압도적 대선주자인 윤 전 총장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대선과 총선 등 선거 실무에 잔뼈가 굵은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이렇게 진단했다.
“(윤 전 총장을 향한) 김 전 위원장의 발언에는 ‘나를 찾아오면 병풍 역할도 해주고, 전략도 조언하고, 선거 구도도 만들고, 복잡하게 꼬인 상황도 정리해 줄 텐데,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느냐’라는 뜻이 읽힌다. 김 전 위원장이 ‘윤석열은 대통령이 안 돼’라고 정확히 워딩을 한 적은 없지 않나.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에게 누구와 정치를 하고, 제3플랫폼에서는 어떻게 활동하며, 국민의힘에는 언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입당해야 하는지 코치해 줄 수 있다. 김 전 위원장만큼 영향력이 있고 판을 잘 읽는 사람은 현존 정치인 중 없다. 윤 전 총장이 김 전 위원장의 감정을 상하게 할 필요가 없다. 만약 김 전 위원장이 자꾸 안 좋은 소리하고 딴 사람을 찾으면 그것도 상당히 마이너스 효과다.”
한국 정치에는 ‘김종인 대 반(反)김종인’의 구도가 있다. 이와 같은 구도는 대통령이나, 대통령직 근처에 갔던 대권주자(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말고는 존재한 적이 없다. 서로 맞수인 정당을 4~5년 사이에 오가며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는 점도 한국 정치에 전무후무한 일이다. 여야 할 것 없이 그를 대체할 인물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종인은 대통령감 찾아다녀”
김 전 위원장은 저서 ‘김종인, 대화’에서 대통령의 자질로 ‘개방에 대한 인식’ ‘안보에 대한 관점’ ‘다양성에 대한 이해’ ‘경제에 대한 지식’ ‘교육에 대한 의지’ 등 다섯 가지를 꼽았다. 이와 관련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직이 없던 지난해 5월 8일 기자와 만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과거 김 전 위원장 주변 분과 사적으로 교류하며 들은 바로는 민주당 비대위 대표 갔을 때도 그런 사람들(대통령감)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민주당에서 키워보려 한 사람도 몇 명 있다고 들었다. 그런 노력을 꾸준히 하는 분이다.”
즉 김 전 위원장은 여전히 야권 대선 정국, 더 나아가 한국 정치를 움직이는 ‘키맨’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전 총장 참모 라인에 김 전 위원장이 필요하다는 측과 부담스럽다는 측이 모두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결국 어느 시점이 되면 윤 전 총장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윤 전 총장이 야권 단일후보가 될 수 있을지와 관련해 김 전 위원장의 역할은 여전히 남아 있다. 윤석열과 김종인의 미래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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