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조화로운 한반도를 꿈꾸는 청년이 있다.
- 한반도의 갈등, 불협화음을 음악을 통해 화합, 하모니로 바꿔놓는 것을 사명이자 숙명으로 여긴다.
성인(成人)에게 이렇게 물으면 대개 답하기 난처할 것이다. ‘꿈’으로 나아가기엔 ‘삶’이 버겁다. 꿈은 잃었거나 숨겨놓았으되, 삶은 제 앞가림하느라 분주하다.
여기, 꿈꾸는 대한민국 청년이 있다.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조화로운 한반도를 소망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원형준(40). 린덴바움 페스티벌 앙상블의 음악감독이다.
참여하는 음악인
“오케스트라 연주자는 소리를 내는 것에 앞서 귀를 열어야 해요. 남의 소리를 듣고 내 소리를 조율해야 화음이 나와요. 나만 잘났다 목소리 높이면 남북관계처럼 소음만 나고요. 분단된 나라에서 태어난 연주자로서 음악으로 남북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는 건 숙명 같은 거예요. 반드시 이뤄낼 겁니다.”원형준의 꿈은 남·북한 연합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남북의 연주자들이 서울과 평양, 워싱턴과 베이징, 런던과 파리에서 불협화음이 아닌 화음으로 평화와 희망의 선율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는 오보에가 연주하는 A(라) 소리를 듣고 목관·금관·현악기를 조율한다. 남의 소리를 먼저 느끼고 나의 소리를 찾는다.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온 이들이 각자의 악기를 조율해 하나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것이 음악의 힘이다.
원형준은 ‘사회에 참여하는’ 음악가다. 음악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린덴바움 페스티벌 앙상블의 리더로서 소외, 갈등, 과거사, 질병 등을 해결하는 활동에 참여한다.
그는 예원학교 재학 중 도미(渡美)해 줄리아드 예비학교를 거쳐 줄리아드 음대와 메니스 음대에서 수학했다. 육영 콩쿠르 대상, 한국일보 콩쿠르 특상, 이화·경향 콩쿠르 1등. 줄리아드 예비학교 콩쿠르, 킹스빌 국제 콩쿠르 1등과 로즈메리 특별상도 차지했다. 10세 때 서울시향과 협연했으며 KBS 교향악단, 홍콩 판아시아 필하모닉, 매로스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매서피쿼 필하모닉, 줄리아드 오케스트라와 함께했다. 코리안심포니, 인천시향, KBS교향악단 객원 악장으로도 활동한다.
다른 분야와의 협업에도 관심이 많다.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를 증명한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과 함께 과학-음악 융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마크 로스코 채플 전시전에 초청받아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를 미술 작품 앞에서 연주했다. 4월 7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각에서 그를 만났다.
‘원 피플, 원 하모니’
▼ 남·북한 오케스트라 연합 공연을 위해 2009년부터 다양한 노력을 해왔더군요.“지난해 8월 15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국 오케스트라와 북한 합창단이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에서 만나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과 ‘아리랑’을 연주하기로 했는데, 남북관계가 경색된 탓에 무산됐어요. 번번이 실패했지만 꼭 이뤄내고야 말 겁니다.
최근엔 음악을 통해 남북관계를 소통과 화합의 차원으로 바꿔놓겠다는 뜻을 더 많은 이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세계 각국에서 강연도 합니다. 미국·유럽 대학, 연구소와 협업해 남북 간 문화 교류를 성사시키려 노력하고 있어요.”
남·북한 오케스트라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스위스인 지휘자 샤를 뒤투아와 의기투합해 서울-평양을 오가는 연주회를 기획했다. 2011년 뒤투아가 평양을 방문해 북측 동의를 얻어냈으나 얼어붙은 남북관계 탓에 무산됐다. 2012년, 2014년에는 스위스와 독일에서 남북 연합공연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2014년엔 중립국감독위원회 초청으로 판문점에서 남측만의 평화음악회를 여는 작은 성과를 거뒀다. 그는 “지난해 광복 70주년 기념 음악회가 성사 직전에 무산된 게 특히 아쉽다”고 했다.
“지난해 8월 15일 오후 통일대교(경기 파주시 문산읍) 남단 검문소에서 비무장지대 출입 허가 통보를 기다렸습니다. 통일부, 국방부, 유엔군사령부가 음악회를 허락했거든요. 북한 당국도 동의했고요. 단원들은 공연을 기다리면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과 북한 작곡가 최성환의 ‘아리랑 환상곡’을 연습했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열릴 예정이던 광복 70주년 평화음악회 ‘원 피플, 원 하모니’는 공연 시작 시각인 오후 7시에 취소가 확정됐어요. 남측이 심리전을 펼 경우 북측이 확성기를 조준 타격하겠다고 경고한 상황이었거든요. 유엔군사령부가 행사를 취소해야 한다더군요. 북측에선 사람들이 내려와 판문점 판문각에서 통일결의대회를 열었습니다. 예정대로 판문점으로 올라갔다면 남북이 베토벤의 ‘합창’과 ‘아리랑’을 합창했을 겁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모니
평양이 저지른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2015년 8월 4일) 도발로 인해 남북 긴장이 고조되면서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통일대교를 건너지 못했다. 스위스인 플루티스트 필리프 윤트, 프랑스인 지휘자 앙투안 마르기에 등은 트럭 짐칸에 올라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휴전선 인근 석장리미술관(경기 연천군 백학면)에서 남쪽만의 음악회를 열었다.▼ 현재도 북한 당국과 협의가 이뤄집니까.
“지난해 광복절 이후엔 접촉하지 못했습니다. 남북관계가 굉장히 나쁘잖아요. 공연이 성사되려면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의 승인이 필수예요. 통일부와 북한 채널을 각각 유지하면서 때를 기다립니다.”
▼ 북한 당국은 어느 쪽 채널로 접촉합니까.
“2011년부터 유엔 북한대표부를 통해 진행했습니다. 지난해엔 베를린 북한 대사관을 활용했고요.”
▼ 수익도 안 나는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요. 이렇듯 열정적으로 연합 공연을 추진해온 동기가….
“유대인 출신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청년을 모아 ‘서동시집(西東詩集, West-Eastern Divan)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연주하는 것을 보면서 음악가로서 엄청난 감동을 받았습니다. 서동(西東)에서 하는데 남북(南北)에서 못할 이유가 없지요. 이념이 어떻든, 피부색이 어떻든 연주자들만 모이면 오케스트라는 하모니를 만들어냅니다.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앞서 말했듯 각자가 서로의 음(音)을 듣는 덕분입니다.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조화로운 한반도를 꿈꿉니다. 음악을 통해 갈등, 불협화음으로부터 화합, 하모니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는 “이산가족 가정에서 자랐다. 증조할머니 산소(山所)가 개성에 있다”고 덧붙였다.
▼ 어린 나이에 줄리아드 음대에 입학해 공부하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 경제적 문제 등으로 학업을 중단한 것으로 압니다. 당시의 고민, 그리고 사회에 참여하는 음악인으로 진로를 수정한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당시 환율이 엄청나게 상승해 많은 유학생이 한국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면서 제 바람은 단순했어요. 뉴욕 필하모닉 같은 세계적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콩쿠르에서 1등 하는 것에 목표를 뒀죠. 경제위기 탓에 학교 다니기가 힘들어지자 음악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생각이 꿈틀거렸습니다. 왜 음악이 필요한 것일까, 전쟁이 나면 음악은 무엇에 쓸까 하고 생각했죠. 사람을 살리는 의사라든지,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공학자 같은 이들이 인류의 삶에 기여하는 것이지 음악가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보리수 숲 속의 조화
2008년 일본의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에 갔다가 뉴욕 필하모닉 지휘자 및 음악감독을 지낸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이 남긴 글을 읽는다.“번스타인은 지휘자, 피아니스트, 작곡가로서 여생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했어요. 그가 내린 결론은 ‘청년 연주자에게 기회를 주는 일을 하자’는 거였어요.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을 만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고요. 아, 이런 게 필요하구나, 싶었습니다. 음악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된 계기입니다. 음악과 사회를 연결해야겠다, 청년 연주자와 사회를 잇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 2009년 ‘린덴바움 페스티벌 앙상블’을 세웠습니다.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을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나무, 숲과 관련한 이름을 짓고 싶었는데요. ‘린덴바움’이 우리말로 보리수거든요.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지 않습니까. 숲 안에서 동식물이 생태계를 이뤄 조화롭게 살고요. 청년 음악도라는 나무가 숲을 이뤄 사회에 생태적 도움을 주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2009년부터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을 시작했습니다. 세계적 지휘자 샤를 뒤투아를 초빙했고요. 2010년 두 번째 페스티벌 때 뒤투아가 ‘남북 오케스트라’ 창립을 공식 제안합니다. 이듬해 유엔 북한대표부를 통해 북한 문화성과 접촉했고요.”
뒤투아를 비롯해 명문 오케스트라 악장수석 13명이 린덴바움 페스티벌 앙상블에 참여했다. 청년 음악도로 구성된 ‘린덴바움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도 창단했다. 지금껏 연주자 189명이 린덴바움에 발을 담갔다. 일부 단원은 린덴바움을 거쳐 홍콩 신포니에타, 베르비에 페스티벌, 서울시향, 코리안심포니 등 전문 교향악단 단원으로 옮겨 갔다.
2010년 유럽연합(EU) 등과 제휴해 유럽과 아시아의 청소년을 한국으로 초청해서 ‘유로 아시아 체임버 뮤직 페스티벌’을 열었다. 2012년엔 주한 스위스 대사관과 함께 각국 주한 대사를 초청해 ‘린덴바움 스페셜 콘서트’를 개최했다. 음악을 통해 국제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게 목적이었다.
2013년 2월 영국 옥스퍼드 유니온 초청으로 한반도 평화에 관한 연주와 연설을 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중립국감독위원회 초청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판문점에서 음악회를 열었다. 2015년 3월에는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에서 연주와 남북 문화 교류에 관한 연설을 했다.
‘합창’과 ‘아리랑’의 공감대
2015년 8월 13일에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130여 명의 청년 음악가와 함께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에서 지휘자 정치용, 안투인 미구이에(유엔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와 함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과 ‘아리랑 환상곡’을 연주했다. ‘탈북자 정착기관 하나원 연주’ ‘특전사와 함께하는 호국 음악회’ ‘미술관 음악회’ ‘병원 음악회’ ‘찾아가는 음악회’ 등도 기획했다. 연세대 경영대와는 사회적 기업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는데요. 서동시집의 공연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다고 봅니까. 남·북한 오케스트라 연합공연은 평화와 통일에 어떻게 기여하리라 전망합니까.
“바렌보임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만든 게 1999년이거든요. 이스라엘 출신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영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힘을 모아 서동시집을 세웠습니다.(사이드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 영문학자·비교문학자·문학평론가·문명비판론자로 저서 ‘오리엔털리즘’은 현대의 고전으로 꼽힌다). 죽고 죽이는 전쟁을 치르면서도 음악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시도예요. 바렌보임이 음악회를 찾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오케스트라가 평화를 곧바로 가져다주는 건 아닙니다’라고 하더군요. 그게 사실이죠. 그럼에도 인종과 종교를 넘어 음악으로 하나 되는 오케스트라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보세요. 통일을 이뤄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박’이라고도 하고요. 그러려면 교류가 있어야 해요. 교류가 늘어나려면 대화가 필요하고요. 대화를 하려면 교감과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음악이 아주 좋은 첫 걸음이 될 거예요. 남북한은 같은 민족인데도 70년 넘게 갈라져 살았습니다. 다른 세상에서 산 이들이 공감하고 교감하는 데 음악만큼 좋은 게 없거든요. 서울에도 오케스트라가 있고 평양에도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남북의 오케스트라가 하나가 돼 서울과 평양에서, 또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돌며 평화와 희망을 호소하는 광경을 상상해보세요. 전율이 일지 않습니까.”
▼ 남북 연합공연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과 북한 작곡가 최성환의 ‘아리랑 환상곡’을 선곡한 까닭은 뭔가요.
“베토벤 교향곡 9번은 인류애를 강조한 작품입니다. 청각 장애가 생겼을 때 작곡했어요. 4악장에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하나가 됩니다. 독일 시인 실러가 가사를 썼는데, 분단된 것이 어떤 힘에 의해 서로 형제가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 대목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동·서독이 동시 입장할 때 베토벤 9번을 국가(國歌) 격으로 사용했어요. 동·서독은 통일 이전 올림픽에서 4차례 동시 입장했는데, 그때마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이 국가 노릇을 했습니다. 선수단기는 흑·적·황 3색으로 디자인한 독일기에 오륜마크를 달았고요.
“우리 정부부터 유연해지길”
▼ 한국 정부 및 북한 당국과 접촉하면서 협상을 할 때 어떤 점이 특히 어려웠나요. 남북 당국자들의 태도는 어땠습니까.
“처음엔 모든 게 막막했죠.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2009년 3월 개성공단 내 현대아산 근로자 억류사건이 발생하면서 남북관계가 얼어붙더군요. 평양에 어떻게 메시지를 보내야 할지 고민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주한 외국 대사들을 만났습니다. 스위스, 벨기에 대사는 북한대사이기도 하거든요. 그분들을 통해 북측에 의사 타진을 했습니다.
교류·협력 사업을 하는 단체들도 닥치는 대로 만났습니다. 통일부 관계자들과도 꾸준히 협의했고요. 2010년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린덴바움을 취재할 때 샤를 뒤투아, 피아니스트 백건우 선생 등이 우리의 뜻을 북측에 알렸습니다. 미국 시민권자면서 평양을 오가는 분이 유엔 북한대표부와 우리를 연결해줬고요. 정부 승인을 받았는데도 북한 인사에게 e메일, 팩스를 보낼 때는 떨리더군요.
당국자들의 태도 탓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할 만한 일은 없습니다. 음악을 통한 교류에 한국 정부는 찬성했고요. 북한 외교관들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줬습니다. 문제는 남북관계 경색이죠. 평양, 스위스, 독일, 판문점 연주가 취소되거나 연기된 것은 그때마다 남북관계가 틀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극복해내야죠.”
▼ 개인적 차원에서 극복하긴 힘들어 보입니다. 독일의 전례를 보면 정치·군사적 차원과 문화·인도적 차원은 분리해 접근해야 하는데, 한국의 경우는 아직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남북의 청년이 DMZ에서 만나 1주일만 연습하면 곧바로 서울, 평양 공연을 함께 할 수 있어요.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처럼 세계를 돌며 공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고요.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오케스트라만이라도 하나 돼 활동하는 것은 음악적으로는 간단한 일입니다. 이렇게 쉬운 일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정치·군사적 차원에서 모든 게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부터 유연해지면 좋겠어요. 오케스트라 합동공연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쓸모없거나 의미 없는 일이 아니거든요.”
▼ 문화 교류는 통일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겁니다.
“북한이 뻣뻣한 태도를 표하는 것은 어쩔 수 없죠. 한국 정부만이라도 순수한 문화 교류는 정치·군사적 차원과 무관하게 정례적으로 이뤄지도록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 뒤투아가 2011년 평양을 방문해 북측의 동의를 받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요. 그 배경에 한국이 낳은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1917~1995)과의 친분이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습니다.
“사명감 갖고 음악 하라”
▼ 평양에 있는?
“윤이상 선생을 존경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평양에 있는 듯합니다.”
▼ 김일성과 친분이 있었으니까요. 올해 2월에는 남북 연합공연의 성사와 홍보를 위해 미국의 여러 대학을 돌며 다양한 활동을 했다면서요.
“하버드대 등의 초청으로 스피치도 하고 질문도 받았습니다. 연합공연에 대해 관심이 크더군요. 음악이라는 순수한 도구를 이용해 남북이 만나고 소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버드, 프린스턴, 조지타운 학생들과 우리가 그룹을 만들었어요. 미국에서 리서치, 펀드레이징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버드, 프린스턴, 조지타운의 초청을 받아 ‘음악을 통한 한반도 하모니’를 주제로 특강하고 연주했다. ‘하버드 크림슨’ ‘더 데일리 프린스턴’ ‘하버드 폴리티칼 리뷰’가 강연 내용을 다뤘다.
▼ 피아니스트 조성진(22) 씨가 지난해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꿈을 키워가려는 청소년이 적지 않습니다. 신동아-미래전략연구원 공동기획 ‘미래한국 청년열전’의 취지 중 하나가 청년들이 밝은 미래를 열어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연주자이자 음악감독으로 다양한 모색을 해온 사람으로서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쇼팽이 폴란드 사람입니다. 우리가 연주하는 쇼팽의 마주르카, 폴로네이즈는 폴란드 민요예요. 쇼팽은 클래식 작곡가면서 피아니스트지만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민요를 클래식 주법으로 변주해 곡을 남긴 사례입니다. 폴란드의 인문(人文)을 바탕으로 삼아 거장의 반열에 오른 거죠.
“함께 할 게 널렸는데…”
저는 클래식이 인문학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과 클래식이 사회 문제를 해결할 때 요긴하다고 믿습니다. 사회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일했으면 좋겠다고 청년 음악가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라가 못하는 일을 음악, 인문학이 해낼 수 있다고 믿어요. 사회를 변화시키고 종국엔 세상을 바꾸겠다는 청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움직임을 이끌어내고 세상을 변혁하는 일에 청년이 도전해야 합니다. 위축될 필요 없어요. 자신감을 갖고 믿는 가치를 실현하려 노력하다보면 더 나은 세상을 맞이할 겁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더 많은 예술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평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북한 전문가가 아니에요. ‘음악’이라는 제 전공 분야를 갖고 통일을 꿈꾸는 거예요. 현악 4중주를 가정해 볼까요. 바이올린 둘, 첼로 하나, 비올라 하나인데 어느 나라 사람이 모여도 하모니를 만들어냅니다. 그게 음악의 힘이에요. 예술을 통하면 더 쉽게 소통하고 화해합니다.”
▼ 최근 경남 통영 ‘윤이상기념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윤이상은 한국에서 버림받았으나 통일을 지향하고 고민한 음악가입니다. 북한이 배출한 천재 음악가 정추(1923~2013)는 카자흐스탄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북한의 민주화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헌신했고요. 두 음악가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활동하는 청년이 늘었으면 좋겠네요.
“윤이상, 정추 선생의 음악을 통해서도 남북이 할 일이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남북교류를 하려면 절차적 어려움이 상당합니다. 쉽게 이뤄질 일이 한반도에서는 안 돼요. 스포츠라든지, 예술이라든지 남북이 함께 할 것이 널렸습니다. 음악, 영화, 미술, 체육에 정치적 성향이 있기 어렵잖아요. 예술 교류를 통해 공감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예술을 통해 쌓은 공감의 기반은 정치·군사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도 도움을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