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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아상의 무시무시한 전설과 바게트의 태생에 대하여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크루아상의 무시무시한 전설과 바게트의 태생에 대하여

크루와상은 큼직하지만 솜처럼 가볍다. [Gettyimage]

크루와상은 큼직하지만 솜처럼 가볍다. [Gettyimage]

오늘로써 격리 나흘째에 접어든다. 주변에 숱하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코로나19 감염담’을 들었지만 몸소 겪어보니 듣던 그대로 무척 괴롭다. 몸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홀로 갇혀 있는 적적함에 슬슬 몸서리가 쳐진다. 지금에 와서야 격리기간이 1주일로 줄었지만 2주나 격리를 하던 시절에는 다들 어떻게 이겨냈을지 아찔하다. 아프고 지루하던 중에 친구가 위로 차 보내준 빵 한 바구니가 집에 도착했다. 없던 입맛이 돌아올까 싶어 반갑기도 했지만 빵 대신 친구가 오면 좋겠다, 아니 빵이랑 친구랑 같이 도착해 와구와구 먹으면서 떠들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날씨 좋은 계절에는 맛있는 걸 천천히 먹으면서 신선한 바람, 산뜻한 계절의 향, 맛좋은 음식과 그 이야기를 두런두런 얼마든지 나눌 수 있는 때니까 말이다.

오스만투르크 상징을 닮은 크루와상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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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내가 집어 들어 한입 베어 먹을 참인, 눈앞에 놓인 크루아상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볼까.

크루아상은 전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빵으로 바게트와 함께 프랑스를 상징한다. 그런데 이 유명한 프랑스빵의 시작은 사실 오스트리아의 킵펠(kipferl)이라는 빵이다. 1683년 오스만투르크(현재 터키)의 공격으로 수더 비엔나가 포위됐을 때 어느 제빵사가 오스만투르크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었다. 이는 적군을 조롱하고, 적을 야금야금 베어 먹겠다는 결기를 담은 것이다. 다른 설도 있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빵 반죽을 준비하는 어느 제빵사가 오스만투르크 군의 기습을 알아차린 덕에 공격을 막을 수 있었고,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어 승리를 기념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전쟁 중에 비엔나 시민들이 오스만투르크의 상징인 초승달을 빵으로 만들어 씹어 먹은 데서 출발한 것은 매한가지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하게 생긴 달 모양 혹은 뿔 모양의 빵은 독일에도 있었으며 다른 유럽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구워 먹어 왔다고 한다. 다만 현재의 크루아상은 오스트리아의 빵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다.

크루와상을 만드는 모습. [Gettyimage]

크루와상을 만드는 모습. [Gettyimage]

이후 킵펠은 루이16세와 결혼한 마리 앙투아네트와 함께 프랑스로 건너왔다. 본래 버터와 달걀을 넣어 만드는 부드러운 브리오슈 반죽으로 굽던 것을 19세기 들어 프랑스 사람들이 반죽을 바꿔 굽기 시작했다. 현재의 크루아상은 버터가 듬뿍 들어간 발효 생지를 겹치고 접고 돌돌 말아서 적게는 12층, 많게는 30층에 가까운 결을 만들어 굽는다. 프랑스에서는 버터만 100% 사용한 크루아상은 마름모 모양으로 만들고, 이외의 유지가 들어가는 크루아상은 그 끝을 살짝 꺾어 등이 둥그스름한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어 차이를 두기도 한다. 큼직하고 통통한 이 빵은 크기에 비해 가볍기 그지없는데 한입 베어 물면 파사삭 부서지며, 윤기와 버터향이 동시에 느껴지고 사르르 녹다가 쫄깃하게 씹힌다. 도무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빵이다.

‘겉바속촉’ 바게트의 발랄한 특권

바게트는 프랑스에서 가장 보편적인 식품이다. 겉은 단단하지만 손으로 쉽게 찢어 먹을 수 있다. [Gettyimage]

바게트는 프랑스에서 가장 보편적인 식품이다. 겉은 단단하지만 손으로 쉽게 찢어 먹을 수 있다. [Gettyimage]

바게트 역시 뜯어 먹으며 할 이야기가 좀 있는 빵이다. 도대체 이 길고 가는 빵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바게트의 유래에 관한 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역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들어온 빵이 프랑스 스타일로 바뀐 것이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나폴레옹이 유럽 원정 시 가지고 다니기 쉽게 구운 빵이 바게트의 시초’라는 설도 있다. 다른 이야기는 이렇다. ‘제빵사는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일할 수 없다’는 법이 1920년에 제정됐다. 그러나 아침 일찍 맛있게 구운 빵을 손님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제빵사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렸던 크고 두툼한 빵 모양을 가늘고 길게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내가 프랑스의 제빵 장인에게 직접 들은 것이다.



프랑스에 지하철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다양한 인종의 노동자가 돈을 벌기 위해 이 위험한 일에 뛰어들었다.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 탓에 노동자와 관리자 간은 물론이고 노동자들끼리의 거친 싸움도 잦았다. 이때 사람들이 먹던 빵은 칼 없이는 잘라 먹을 수 없는 단단한 빵이었으니 누구나 칼을 지녔고, 그 칼은 사람을 공격하는 데도 쓰였다. 결국 칼을 쓰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빵이 절실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게트라고 한다. 겉은 단단하지만 손으로 쉽게 찢어 먹을 수 있는 빵 말이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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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65cm 길이의 ‘겉바속촉’ 빵인 바게트는 프랑스에서 가장 보편적인 식품이다. 그런데 바게트에도 식품 피라미드처럼 등급이 있다. 대형 마트에 줄 서 있는 대량생산 바게트가 피라미드의 맨 아래를 차지한다. 그 위에는 생지 반죽부터 성형, 굽기까지를 모두 빵집에서 직접 하는 ‘블랑제리에(Boulangerie)’의 바게트가 놓인다. 마지막 뾰족 지붕 자리에는 전통적인 발효제(르방 levain)를 넣고 만드는 ‘전통 바게트(Baguette de tradition française)가 차지한다. 전통 바게트의 제조법은 1993년 9월 13일 제정된 법령에 따라야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식사 예절을 중히 여긴다. 당연히 길에 서서 뭘 먹는다거나, 움직이면서 먹을 걸 입에 넣고 우물대는 걸 싫어한다. 그러나 바게트의 동글 뾰족한 끝부분을 길에서 뜯어 먹는 일은 서로 그러려니 해준단다. 오직 바게트만이 갖는 발랄한 특권이다.



신동아 2022년 9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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